Interview

건축가 조병수 ④

이번 건축가특집에서 기린그림의 영상으로 소개되는 건축물에 대해서도 여쭤볼게요. 꺾인 지붕 집의 경우는 ㅁ자집, 땅집 이후로 지붕에 변주가 일어나는 집을 만드셨는데요. 지붕에 변화를 주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지붕이란 기분 좋은 공간이죠. 앉아있으면 여유롭고요. 다만 지상층이 좋은데 굳이 힘들여서 지붕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으니 많이 이용하지 않는 편이기는 하죠. 꺾인 집의 경우, 땅을 처음 보러 갔을 때 경사가 너무 심했어요. 거의 45도 이상이었던 것 같아 놀랐죠. 어렵게 올라가야 하는데 위로 가도 평지가 없어요. 어딘가는 파서 넣어야 하는데 그러면 박스를 넣었을 때 묻히게 되죠. 그래서 지붕을 꺾으면서 넣게 되었어요.
그렇게 되면 마당을 하나도 못 갖는 집이 돼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지붕을 제2의 마당으로 활용하자고 했어요. 집 옆으로 돌아 올라와서 지붕에 앉아 차를 마신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고추를 말린다든지, 그런 기능을 할 수 있게 했죠. 밑에서 볼 때와 3m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느낌이 또 매우 달라요. 위로 올라가서 여유롭게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활용한 거죠. 지붕은 경사 따라 자연스럽게 꺾여 올라갔는데, 약 10년 전에 만든 ‘이외수 문학관’도 유사한 이유로 경사를 따라 꺾여 있죠.
 
꺾인 집은 내부에서도 단 차이가 있는데 지붕과 연관이 있나요?
만들고 보니 땅속으로 반 정도가 매입된 상태인데, 뒤쪽으로 환기, 채광이 안 되잖아요. 작지만 중정을 하나 뚫어서 주방 쪽으로 공기가 통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바람이 밑에서 불어오면 전면 창을 통해 올라가서 뚫린 공간으로 돌 수 있게 환기를 유도한 거죠.
또 지붕에 앉을 때 꺾인 곳은 기대앉을 수 있지만, 평평한 바닥에 앉는 건 불편하잖아요. 그곳을 웅덩이처럼 파서 내 몸이 그 안으로 편하게 내려가 앉도록 했죠. 거제도 지평집에서처럼 내 몸이 조금 내려가서 앉았을 때 훨씬 포근하게 느끼고, 보는 각도도 지평선에 더 가까워지는 거죠. 조경을 더 멀리 조망할 수 있게 두 개의 공간을 밑으로 내리게 되었어요.
밑으로 내린 마당 하나는 주방 위의 독립된 실링이 되어서 아래층의 공간감을 정의해주고, 그 아래로 식탁도 두어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어요. 또 하나는 안방 바닥을 내려앉게 해서 침대에 누웠을 때 지평선 높이로 보이게끔 유도하게 된 거죠. 작은 높이 변화를 통해서 전체를 조망하거나 편안하고 풍요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집을 만들고자 했어요.  
 
지평집은 예약이 몇 개월 이상 밀릴 정도로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펜션과 같은 숙박 시설에 일상과 다른 체험을 하러 오는데, 그곳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경험은 어떤 것일까요?
제주도에 가보면 3, 4층짜리 모텔들이 마구잡이로 지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곤 해요. 최소한 바다 쪽으로는 건물이 없으면 너무 좋겠는데 말이죠.
거제도의 지평집 땅은 돌아서 위로 올라가는 땅이 아니라 내려가는 땅이었어요. 그 땅을 통해서 바다가 보이는데, 건물을 지으면 너무 안 좋아지는 거죠. 방치된 상태의 조경과 땅의 흐름이 너무나 좋고 아름다운데, 우리가 또 망가트려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망가트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서 건축주가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땅집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 이후 작업한 명상집 등을 바탕으로 응용문제 푸는 기분으로 해보자 했죠. ‘과연 될까?’ 생각했는데 적당한 경사가 있었어요. 기존 지형의 높이를 조심스럽게 단면도로 그려서 그곳에 계속적으로 설계해봤죠. 그래서 지평집 단면도를 보시면 점선으로 그려져 있는 게 기존의 지형인데, 우리가 새로 설계한 것과 거의 비슷하게 가요. 그러면서 식사하는 공간, 오피스 위에 있는 공간들과 아래 있는 공간에 레벨 차이를 좀 두었죠.
땅의 뒤편에서 볼 때는 땅과 거의 하나처럼 붙어가게 하고, 뒤에 있는 공간도 낮춰서 튀어나오지 않게 해주고, 카페 내부바닥 자체도 40~50cm 낮춰서 내 몸의 위치가 지평선에 조금 더 가깝게 했어요. 그래서 지평선과 수평선이 만나는데, 앞에 있는 집들의 지붕이 살짝 떠서 그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그런 관계를 만들고자 했죠.
 
처음에는 6개 건물을 똑바로 배치했어요. 뭔가 거북하게 올라온 건물은 아니었지만, 주변이 유기적이다 보니 그걸 따라서 기하학적인 형태로 네 채와 두 채로 나누었죠. 바다를 향해서 옆의 경사를 따라가게 되었고, 그렇게 건물들이 꺾이면서 그 사이로 빛이 들어가고 환기, 채광이 되게 했어요. 땅 사이가 벌어지면서 빛이 새어 나온다면 건물 자체가 아름답지 않더라도 특별함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마당도 시골집 마당의 느낌처럼 땅의 생긴 모양대로 충돌하면서 생기는 자투리 공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방문객들이 이런 모습과 경험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기지(GIZI)_Art Base>는 박서보 화백의 작업실이자 뮤지엄이 함께 있는 곳입니다. 주변의 복잡한 환경에 대해 어떻게 보호하면서 열린 공간을 만드느냐가 핵심이었는데요.
기지 프로젝트가 위치한 곳은 반듯하고 언덕도 적당하고 참 좋은 땅이었어요. 반면에 그 땅에서 주변을 바라본 느낌은 주거단지 대부분이 그렇듯이 연립주택들이 난립해서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거꾸로 프라이빗의 문제도 있었어요.
우리가 짓고 들어가야 할 집은 자연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 어느 정도는 닫혀야 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죠. 동시에 3세대가 거주할 공간, 스튜디오와 전시 공간이 다양하게 들어가야 하는 복잡한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래서 그걸 하나로 묶으면서도 바람이나 빛이 통하고 주변에 거슬리지 않는 어떤 상자를 만들어내고자 알루미늄 메탈을 접고 타공을 해서 해결했던 거죠.
 
알루미늄 메탈의 틈을 통해서 빛과 바람은 통하고 시각적인 보호를 하도록 의도하신 건가요?
기지에서 사용한 알루미늄은 익스팬디드 메탈(expanded metal)이 아니에요. 여기서는 다른 방식을 써보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이곳의 중요한 기능이 주거고, 밖에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안쪽의 보조프레임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걸 만들어내야 했죠.
그래서 종이를 접으면 더 단단해지듯이, 알루미늄판을 접어서 테스트를 해봤어요. 굉장히 단단해져서, 위아래 두 지점만 고정해도 될 정도로 보강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높은 곳은 거의 6m까지도 가능해, 밖에서도 심플하고 안에서도 심플하고 수직 보강제가 하나도 안 들어가게 해결되었어요. 눈높이에서만 잘 보이게 하고자 했던 건데, 이곳에 맞는 걸 찾아낸 케이스죠.
                           
하이라이트는 완전히 열리는 2층의 코너 창입니다. 어떤 경험을 주고자 하셨나요?
기지에는 여러 기능이 요구됐는데, 그중 하나가 손님맞이 공간이었어요. 박서보 선생님의 손님들이 많이 오시기 때문에 그분들을 접대하고, 그림도 보여드리고, 앉아서 편하게 말씀도 나누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특히 세계적인 박물관장님들이나 출판사 관계자 등 외국에서 손님이 많이 오시는데, 열려 있는 한국적인 마당의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옥에서도 문이나 창을 열면 외부와 하나가 되는 공간이 있죠. 열렸을 때와 닫혔을 때의 느낌이 굉장히 다른데, 전체가 열렸을 때는 그야말로 시원하게 외부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 수 있으므로 그렇게 하고자 했어요. 특히 동남측 코너에서는 유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양쪽으로 열려서 트이게 만들고자 했어요. 박서보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창이고 공간이 되었죠.
 
이번에 소개된 운중동 주택은 기존과 다른 어휘도 보입니다. 특별히 표현하고자 하는 게 있으셨나요?
운중동 주택은 프로그램이 복잡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주변의 조건이 상당히 달랐어요. 남서 측 방향으로는 전망이 좋고 남쪽은 비교적 괜찮은데, 옆으로는 건물들에 의해 거의 다 막혀있는 구조였어요. 또 집이 도로에 바짝 붙어야 해서 올려다보이는 상황이었고요. 그런 부분이 배타적이면 안 되니까 박스가 아무리 좋더라도 배타적이지 않게끔 변화를 준거죠. 아래 박스와 뒤 박스를 일부 휘게 하고 그 사이로 빛이 들어가게 해서 하루의 변화를 주택 안에서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그리고 안에서 사각형으로 창을 내기보다는 프레임으로 만들어 안쪽은 조금 가려주고 트여주는 방법이 시도되었고, 그것이 형태적으로 나오게 된 것 같아요.
 
많은 비평가가 소장님의 건축을 ‘유기성과 추상성의 만남’이라고 표현합니다. 서로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주제를 어떤 식으로 접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유기성이라는 건 기하학적인 형태가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선과 흐름, 바람이나 구름의 흐름이라든지 지형의 흐름처럼 아주 부드러운 부분을 의미하는 거고요.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자연인 거죠.
추상성은 실제로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럴 것이라고 가정하는 거죠. 사각을 그리면 사각형이 되고 직선을 그리면 수평선이 되고 직선을 세워서 그리면 수직선이 되는 것들을 추상성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그곳에 사각형 공간을 콘크리트로 만들었는데, 그 안에 들어가서 자연을 관찰할 때 구름이 좀 더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거나, 바람이 내 몸을 통과해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든지, 그런 경험을 더 잘 인지할 수 있게 하려는 거죠. 추상적인 것을 통해서 유기적인 것들을 경험하는 것, 딱딱한 선을 통해서 부드러운 것이 적극적으로 우리 몸에 인지될 수 있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 같은 거겠죠.
 
또 다른 키워드는 ‘땅의 건축’입니다. 여러 프로젝트에서 지형은 중요한 출발점으로 언급되는데요.
‘땅의 건축’은 땅과의 관계에 대한 건축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땅집을 지어놓고 꺼진 공간에 들어가서 보니 하늘이 잘 보이더라, 나무가 더 잘 보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움직임, 반딧불의 움직임이 더 잘 인지되더라는 거죠. 꼭 땅만의 건축은 아니고 땅을 통해서 하늘도 보이고 자연도 보이고 우리 자신을 좀 더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건축이 아닐까 하는 거죠.
그에 관한 관심은 땅이 좋다는 데서 시작한 것 같아요. 땅이 좋다는 건 땅에 앉는 느낌이 좋다는 거죠. 땅에 웅덩이를 파고 앉으면 느낌이 색다르면서 포근할 수 있다, 땅을 많이 훼손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부터 출발하는 것 같아요. 어릴 때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시골에서 놀았던 기억을 통해서 받았던 인상, 흙냄새, 빗소리 등이 강하게 남아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고요.
또 땅은 하늘처럼 태연하고 아름답지 않지만, 만물을 소생시키는 어머니 같은 것, 나 자신의 존재감은 없지만, 남들을 존재하게 해주는 참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하늘보다 더 강하고 힘이 있는 것이라는 도덕경의 글, 노자 사상도 저에게 영향을 줬어요.
 
단순한 구축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경험과 인식’에 대해 비평가들은 ‘거침 속의 세련됨, 세련됨 속의 무심함’으로 표현합니다. 그 부분이 소장님께서 말씀하시는 ‘막의 미학’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평소 한국 고유의 특성으로 막사발의 예를 자주 드셨는데, ‘막의 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이것이 소장님의 건축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막’의 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건 막사발로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막사발을 공부하다 보니 빠른 속도로, 즉흥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것이 한국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지형과 날씨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적당히 만들어서 잘 적응하고 써야 하는 건축의 흐름을 보더라도 말이죠. 중국으로부터 전형적이고 대칭적인(symmetrical) 건축이 들어와서 불국사 같은 게 지어졌다면, 이후 시대가 지나면서 지형에 적응해가죠.
막사발도 그 자체가 대칭적이거나 완벽한 형태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어떤 재질감이나 손의 흐름, 만드는 속도에 적당히 적응해서 우리가 만졌을 때는 따뜻하게 다가오는 미학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죠. 막사발뿐 아니라 민화라든지 춤이라든지, 음식이나 술,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막'자가 들어간 게 많아요. '막'자가 없더라도 버무려내는,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깊은 맛 같은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거고요.
그렇다고 해서 막의 미학이나 의미를 건축에 직접적으로 도입하려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가끔 생각은 해보죠. 그런 것들이 적용돼서 나타날 수 있는 어떤 편안함이나 아름다움은 없을까? 아니면 이미 그렇게 되었던 것들은 없을까? 그러면서 고건축도 바라보게 되죠. 기둥을 편안하게 받히는 주춧돌처럼요. 까치호랑이 같은 경우도 그렇고, 막 생긴 것들을 ‘못난이’라는 귀여운 애칭으로 불렀던 것처럼 해학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한국 문화에 그런 따뜻하고 좋은 면이 있는 것 같은데, 현대 미학이나 현대 건축, 서양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게 아닌가. 이런 좋은 점들을 부각시키고 더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우리나라 고건축 특히 민간에서 만드는 한옥이나 도자기 같은 미학에서는 많이 적용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에서 배우면 어떨까. 약간 거친 상태로 덜 끝마쳤어도 편안함이 있는 상태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무조건 완벽하게, 모든 게 매끈해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 떨치고, 때에 따라 비틀어줘야 할 경우 너무 강박관념을 가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면 그 공간이 과연 나쁜 공간이기만 할지, 때에 따라선 그 또한 흥미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을지, 그런 부분에 꾸준히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는 편이고요.
하지만 건축이라는 게 만드는 과정이나 법규 등에서 그런 부분을 많이 허용하지는 않죠. 그런 생각을 반문하는 정도로 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도시 재생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데요. 지난 전시를 통해 광화문과 옛 중앙청에 대한 제안도 새롭게 화두를 던지셨고요. 최근에 도시 재생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건축가가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재생에 대한 소장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건 재생 프로젝트라서가 아니라, 기존 건물을 허물지 않고 쓰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였어요. 물질을 절약하는 것 이전에, 땅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구축물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활용함으로써 굉장히 흥미로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도시 재생의 의미는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기존에 있던 걸 보전함으로써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이라든지, 주변과의 관계를 훨씬 친근감 있게,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요소에 있는 것 같고요.
무엇보다도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이 멋있게 잘 지어지고 있지만, 막 지어도 오래된 건물이 대부분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나이를 먹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 않나 싶죠. 재료가 주는 편안함도 있고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들 기억도 있고요. 1960~70년대의 역사적 콘텍스트(context) 속에서의 우리를 일깨워주거나 흥미롭게 해주죠. 어떤 재료를 쓰더라도 새 재료가 주지 못하는 감흥이 있어요.
제가 보는 가장 큰 가치는 편안함인 것 같아요. 주변과의 관계도 있고 재료가 주는 느낌이나 그 자체일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있었던 건물을 수리해서 들어갈 때의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번에 케네스 프램튼의 <현대건축:비판적 역사> 5쇄에 드디어 한국 건축에 대한 챕터가 등장합니다. 한국 건축에서는 고 김수근, 건축가 조민석과 함께 조병수 소장님이 언급되었는데요.
그 연장선에서 한국 건축에서 한국성은 이미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본질에 대한 질문을 탐구하고 건축을 통해 해석하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계의 건축 지형 속에서 한국 건축이 어떻게 포지셔닝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소장님의 생각과 소감도 궁금합니다.
케네스 프램튼의 역사책에 나온다는 것 자체는 자랑스럽고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아직 한국 건축이 국제적으로, 미학적으로 논리화되어있지 않아서 그 사람들은 ‘이게 뭐지?’ 긴가민가한 정도죠. 일본 건축의 ‘와비사비’처럼 확실하게 이해되는 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 같아요.
그것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 생각에 국제적으로 인간이 다뤄온 미학 중 중요한 하나의 장르가 빠져있는 것 같아요. 자연에 순응하면서 생기는 편안함과 해학, 그러면서 해결해나가는 미학적인 부분은 분명 거론되지 않았죠. 이제 주목할만한 시점이 온 것 같아요.
외국에서도 ‘한국, 뭐지? 뭐가 있는 거야? 중국과 일본과 다른 게 뭔가가 있나?’하며 주목하기 시작한 거죠. 때문에 우리 스스로 이걸 국제적 기준에서 잘 정리하고, 비판할 건 비판하고 그와 유사한 건 유사한 대로 설명하면서,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요.
이번에 나온 책에는 그런 부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다거나 의미가 부여되지 못해 아쉽지만, 이런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정도는 소개가 되고 있으니, 우리의 미학을 조금 더 정리해서 좋은 건축, 좋은 미학적 개념으로 발전되고 잘 받아들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건축가로서의 삶도 여쭤볼게요. 하루 중 여유로운 시간은 언제이신가요?                                                                      
저는 새벽형이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조용히 작업을 정리해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 있고요. 두 번째로는 저녁 7시에 집에 가거나 누군가를 만나 와인 한잔하건, 이야기를 나누건 편안해지는 시간이 있죠. 저녁 일곱 시에 사무실을 떠나면 일은 잊어버리는 편이거든요. 고민을 많이 안 하는 편이라 그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는 그야말로 온전히 먹고 쉬고 사람들을 만나서 담소하기 때문에 행복한 시간이죠.
 
즐겨 하는 취미가 있으신가요?
저는 태생적으로 아날로그형인 것 같아요. 젊었을 때부터 골동품 시장 다니는 걸 좋아했고 음악도 긁어서 나는 LP 소리가 신기하고 좋았고, 그런 것들이 가지는 맛이 좋아 아날로그적인 취미를 많이 가진 것 같아요. 그리고 하루 중 최소 한 시간 정도는 걷죠. 부지런히 땀 흘리며 걸으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요. 걷는 것 자체가 싫을 때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행복감을 주는 것 같아요. 건강을 유지해주고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취미는 일하는 것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과 연관성이 있죠. OHS
 
소장님이 머무르시거나 지내시는 곳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산길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설악산에 거의 2주에 한 번씩은 가는 것 같아요. 주로 가는 짧은 코스는 2~3시간 만에 올라갔다 내려갈 수 있어요. 세계 어디에 가도 그런 좋은 코스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몬태나에도 오래 살았고 유럽에도 살아봤지만 정말 아름답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곳이죠.
지금처럼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하늘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이럴 때 산에 가면 물이 철철 넘쳐흐르거든요. 깨끗하게 땀도 씻겨 내려가고 신선한 공기의 느낌이 너무 좋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태풍과 태풍 사이, 지금인 것 같아요.
곡성이라는 작은 도시에도 자주 갔어요. 논밭 버드나무 우거져있는 들길에 개울물이 철철 넘쳐 흐르거든요. 정말 풍요롭고 더위도 꺾이기 시작하면서 잘 익은 찐 옥수수들도 있고요. 평범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지만, 코로나를 겪고 다른 곳에 가서 보면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건지 새삼 알게 되죠.
 
소장님께 건축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건축은 놀잇거리예요. 아무리 휴가를 가서 즐거운 일을 해도, 설계만큼 흥미롭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떠한 즐거운 일도 설계 다음으로 즐거워요. 그렇다면 저는 이걸 놀잇거리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진행 임진영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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