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건축가 조병수 ③

ㅁ자집, 사진_김종오
ㅁ자집, 사진_김종오
ㅁ자집, 사진_김종오
ㅁ자집, 사진_황우섭
ㅁ자집, 사진_황우섭
땅집, 사진_황우섭
땅집, 사진_김용관
카메라타 뮤직 스튜디오, 사진_김종오
카메라타 뮤직 스튜디오, 사진_김종오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프로젝트는 ㅁ자집일 것 같아요. 단순한 구조, 박스를 활용한 공간 구현의 출발점이 됐다고 볼 수 있는데요. 

ㅁ자집은 방수 방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집이에요. 또 제가 쓸 건물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과감하게, 홀가분하게 평소 생각을 적용해볼 수 있었죠. 방수를 하지 않으면서 심플하게 지붕을 마무리할 수 있었고 한옥에서 쓰인 목재 기둥을 사용하면서 실험적인 부분도 있었어요.

만약 방수면을 처리하게 되면 끝으로 물이 스며들기 때문에 파라펫 벽을 올려야 하거든요. 형태적으로 복잡해지는 거죠. 없어도 될 것들이 군더더기처럼 붙으니 자꾸 다른 식으로 건물을 만들게 돼요. 이 경우 파라펫을 안 올려도 콘크리트 단면 자체로 간단하게 끝나니 충분히 담백한 맛이 나죠. 방수를 처리하는 방법을 통해 지붕 단면을 심플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걸 통해서 방수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렇게 단순한 박스 시리즈가 생겨났죠. 나중에 제주도 명상집도 하게 되고 아름솔유치원, 이외수 선생님 문학관도 같은 방식으로 하게 되면서 새로운 캐릭터가 생겨나게 된 거예요. 땅집, 틸트 루프 하우스, 최근에 한 지평집까지 다 같은 방식이죠.

 

말씀하신 것처럼 본인의 집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가능했을 듯합니다. 지붕에 방수하지 않고 20cm 두께로 타설하겠다고 했을 때 어느 의뢰인이 용납했을까 싶어요.

그렇죠. 실험하려고 했다면 용납을 안 했겠죠. 저의 집이라 하더라도 시공사에서조차 용납을 못 해서 본인들이 직접 방수액을 타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 집은 실험하는 거니까 그냥 해보자 했어요. 콘크리트 타설 때 피니셔를 통해 표면 장력으로 시멘트를 끌어올리는 식으로 방수를 해서 성공했어요. 새로운 방수 방법을 개발하게 된 거죠.

 

동생이신 씨앤오건설의 조영묵 대표님이 시공에 참여해서 설득이 가능했던 부분도 있을까요?

안 그래도 동생이 콘크리트 타설하는 날 전화가 왔어요. ‘이거 크랙이 가기 때문에 분명히 물이 샐 것입니다. 방수액을 좀 타서 하겠습니다’라고 해서 타지 말라고 했어요. 크랙은 콘크리트 타설 후 4시간 안에 발생하기 때문에 4시간 후에 쇠흙손으로 문질러서 마감해주면 크랙이 안 갈 것이라고 믿는다, 한번 해보자고 강력하게 주장을 했죠. 자료를 찾아보면서 크랙이 가는 시간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시도해도 물이 새지 않을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물론 시공자는 물이 샐 거라고 생각하고 콘크리트가 굳자마자 올라가서 담수 테스트를 했어요. 옆을 막아놓고 물을 부어서 ‘물아 새라, 물아 새라’ 했는데 새지 않으니 놀란 거죠.(웃음) 지금 20년이 넘었는데 전혀 안 새요. 이제는 콘크리트 방수 중에 가장 완벽한 방수는 방수를 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데 동의를 하죠.

 

덕분에 완벽하게 떨어지는 상자의 원형이 만들어졌는데 그 외에도 유리를 끼우는 방식이나 다른 디테일에서도 상당히 과감한 방식을 시도했어요. 구상한 바를 실험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확신을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래서 공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공자들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다 안된다고 했거든요. 보통 천창을 만들면 스틸로 프레임을 짜고 실리콘으로 메꾸는데, 늘 물이 새요. 그 스틸 프레임 없이 그냥 유리만 얹자고 제안하니까, 다 터지고 문제가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공부하기로는 콘크리트도 돌을 갈아서 만든 거고 유리도 돌 속에 있는 석영으로 만든 건데, 비슷한 성격의 성분이라고 본 거죠. 철이 열을 받으면 늘어나잖아요. 스틸 프레임의 경우 팽창지수가 훨씬 높기 때문에 하자가 날 수 있지만, 유리를 콘크리트에 바로 끼우고 실리콘 처리하면 하자가 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천창은 어떤 스틸로 해도 문제가 생기지만, 수축팽창지수가 거의 비슷한 콘크리트와 유리는 하자가 거의 없죠. 

시각적으로 봤을 때도 제3의 재료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유리와 콘크리트가 아주 담백하게 대비되어요. 또 유리를 여러 겹으로 쌓아서 빛을 받았을 때 빛이 엣지에 비치게 하고자 했죠. 물론 ㅁ자집에서는 시공사가 꺾어서 빛이 새어 나오지 않게 만들어져 있기는 해요. 이후 두 상자집부터는 빛이 완전히 새어 나오게 만들었어요. 

항상 의문스러웠던 부분이었어요. 유리라는 게 참 아름다운데 왜 프레임에 끼는 순간 그 아름다움이 사라질까 생각해봤죠. 유리의 엣지가 같이 보이는 게 중요했어요. 빛이 유리에 닿았을 때 옆으로 타고 가서 엣지에서 빛이 나오는데, 틀이 끼워져있으면 엣지의 반사가 덜 되는 거죠. 그런 부분을 생각해볼 때, 같은 표면에 붙고 제3의 재료가 들어가지 않을 때 하자도 적고 시각적으로도 깨끗한 경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시도한 거죠.

 

결국, 재료와 구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가능한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경험만 가지고 밀어붙이는 것으로는 부족할 수 있는 거죠. 특히 설계자와 시공자의 차이점이라면, 시공자들은 시공의 편리성을 더 잘 이해하고 있지만, 설계자는 그 근본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구조라든지, 두 재료가 만났을 때 어떻게 되는지 말이죠. 그런 후에 그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서 만들지는 시공자가 더 잘 알겠죠.

 

한옥의 고재를 써서 기둥을 대신하셨는데 불규칙하게 배치하면서 공간이 더 흥미롭게 전개되는 듯해요.

저는 불규칙함이라는 말씀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기둥은 나중에 2층 증축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지만, 보 없이 한 번의 콘크리트 타설로 끝내보자는 의도였어요. 보 없이 20cm 두께의 콘크리트로 타설했을 때 지탱할 수 있는 거리는 5~ 6m가 최대거든요. 어느 부분에서 재더라도 5~6m 내에 들어오게끔 하다 보니까 나온 배열이죠. 그러니까 완전히 불규칙은 아니고 숨겨진 규칙이 있는 거죠.

 

고재가 갖는 특성 때문에 묘하게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한국적인 공간의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 있어요.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이 10개의 기둥은 ㅁ자집 설계 전에 가지고 있었어요. 지나가다가 고재 쌓아놓은 걸 봤는데 그 질감이라든지 듬직함이라든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사 놨던 거예요. 다만 목재는 콘크리트와 상반된 재료인데, 콘크리트는 반영구적인 재료라면 목재는 습기를 먹었을 때나 건조해졌을 때 수축 팽창이 일어나고 변화하는 재료죠. 그래서 두 가지를 같이 접목해서 구조로 쓰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때도 어느 정도 계산을 한 거죠. 나무가 옆으로는 많이 줄어드는데 위, 아래는 거의 줄지 않거든요. 그래서 5~7mm 정도 줄어드는 걸 예측하고 시공자와 협의했어요. 그런데 눈에 띄지 않지만 대략 이 정도 크기 지붕의 콘크리트는 크립(creep)이라고 해서 1~2cm 정도 서서히 주저앉아요. 그 변화가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면 크랙이 발생하지 않고 목재가 줄어드는 길이와 비슷하게 맞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유리로 가운데 중정을 만들고 바깥쪽에 나무를 기둥으로 세웠는데 유리를 통해서 보이는 투박한 목재 기둥의 느낌이 좋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자신의 집을 지을 때 졸업 논문 때 그렸던 박스 형태가 등장한 것은 오래 생각한 건축 원형과 맞닿는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경험과 인식’이라는 주제를 본인의 집을 통해 실현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설계하실 때 염두에 두신 건가요?

그랬던 것 같아요. 왜냐면 성북동에 있을 때 제 책상 옆에 포스트잇이 7~8장이 붙어 있었는데 항상 ㅁ 자에 사람이 누워있는 그림이었거든요. 훨씬 더 작은 공간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최소한의 공간이면서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ㅁ자집은 원래 땅속으로 묻고자 했어요. 그때 지금 씨앤오건설의 조영묵 씨가 담당이었는데, ‘예산도 없는데 묻으시면 안 됩니다. 물이 들어가서 파손되고 습기가 차고 방수가 어려워요’라고 했어요. 미국을 오가면서 대학에서 가르치던 때라 시간이 없어서 마지막 날, ‘알겠다 그러면 땅속에서 끌어올려 위에다 올려서 짓자, 그렇지만 밖으로 창은 거의 내지 말자’하고 지었죠.

졸업 논문 프로젝트의 원형에 가까우려면 땅에 묻혀 있어야 해요. 그마저 형태가 없고 경험만 있는 공간이었는데 그래서 땅집을 다시 하게 된 거죠. 또 제가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니까 이왕이면 위에는 집을 지었으니 이곳은 윤동주의 시와 정신을 기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땅집을 시낭송회하고 포럼이나 토론회를 하는 공간으로 쓰게 되었어요. 어쨌건 졸업 논문의 원형에 가까운 건 땅집이죠.

졸업 논문은 교수님들이 굉장히 좋아하셨는데 그 당시에 했던 작품 자체는 실패작이라는 평을 받았어요.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죠. 꼭 땅에 묻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었고, 시각적인 비례에 얽매이지 않는 경험, 체험이 중요한 공간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거였는데 그중 하나가 땅집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최근의 거제도 지평집까지 그와 유사한 박스 시리즈가 비슷한 맥락에서 이어지고요.

 

흥미롭게도 저는 땅집에 갔을 때 평안하면서도 아직 닫히지 않은 무덤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매우 고요한 공간인데 왜 죽음을 떠올렸을까 싶었죠. 소장님이 젊은 시절 그렸던 해골 그림도 연상되었고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짓고 나서 몇 년 후 이나미 교수님이 저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질문을 이어 나가다 보니 땅에 대해 처음 생각했던 건 언제일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무덤 팠던 구멍에 대해 생각도 하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끄집어낸 적이 있었죠.

땅집을 짓겠다 하고 웅덩이를 파놨는데, 한번은 저녁 늦은 시간에 현장에 도착한 적이 있어요. 웅덩이 밑으로 내려가서 본 여름의 하늘이 너무 좋았죠. 나무가 바람에 움직이는데 하늘이 보이고 반딧불이 날아다녔죠. 땅속으로 약 2m 남짓 내려갔는데, ‘내려와서 보는 나무숲은 땅 위에 서서 볼 때와 완전히 다르구나’, ‘자연을 좀 더 특별하게 경험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포근하고 훨씬 더 낭만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사우스케이프 프로젝트 할 때는 나무를 옮기느라 뽑은 자리가 언덕 위에 파여 있더라고요. 그 안에 들어가서 앉았는데 굉장히 느낌이 좋은 거예요. 언젠가 이런 공간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죠.

 

지금 다시 ㅁ자집을 바꾸셨는데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는지, 무엇을 구현하고 싶으셨는지요?

막 ㅁ자집을 지을 당시, 공사 중에 봤을 때 굉장히 좋았어요. 그런데 단열재도 붙이고 유리도 붙이고 마감재도 붙이고 다 해놓고 나니까 실망스럽더라고요. 군더더기가 많이 붙은 거 같고요. 그렇지만 단열도 해야 하고 바람도 막아야 하니 한 18년 동안 그렇게 살았죠. 그런데, 집이 오래되어 수선하려고 보니 공사 당시가 기억났어요. 그러면 집을 해체해 놓고 한 일 년 정도 써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전시도 계획하고 있고요.

결국, 내부로 막혀 있지 않다면 건축이 아니고 조형물이 되는 거겠죠? 어떻게 보면 비와 바람은 막아주고 그늘도 만들어 주니까 건축물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고요. 지금 이 상태로 새로운 걸 찾아보고 탐구할 수 있는 부분이 뭘지 생각해보면서, 부분적으로 커튼이나 등도 설치해서 어떤 제3의 건축공간, 환경적 조각(sculpture)과 건축 사이의 공간을 실험해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자연에 대한 경험으로 귀결되는 것일까요?

오히려 ‘이게 뭐지?’라는 반문을 통해서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방에 앉아있을 때도 그렇고요. 공간이 크면 클수록 좋겠지만 작은 공간에 앉았을 때도 공간감이 확고하고 좋은 공간과 그렇지 못한 공간의 차이가 뭘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거고요.

결국은 편안함이나 행복일 것 같은데 그것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것들, 그 속에 자연도 포함되겠죠. 바람이 살랑 불면 ‘아, 아주 미세한 바람인데 편안하고 좋구나’, 소나기가 쏟아지면 ‘비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이게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구나!’, 그렇게 나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고 느끼는지 보고, 그다음 나 자신에 대해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 그런 여유로움을 주는 것이 건축이 할 수 있는 좋은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카메라타 뮤직 스튜디오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공간입니다. 단순한 박스가 등장한 곳이기도 하고요. 처음 설계하실 때 의도가 궁금해요.

카메라타를 설계할 당시 저는 미국 몬태나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요. 그 지역에서 농부들이 지었던 건물들, 솔직하고 담백한 공간들에 관심이 있었어요. 특히 창고 같은 경우엔 큰 볼륨으로 지어지는데, 몇 개의 재료로 잘 지은 것들이 많았죠. 창이 많지 않은 창고에 들어갔을 때의 차분함이나 썰렁함이 참 좋았어요.

그래서 음악감상실을 설계할 때 그런 창고 같은 공간에서 조용히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제안하게 됐죠. 물론 창고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오래전에 본 아주 심플한 성당 건물도 있었어요. 오스트리아 콘스탄츠(Konstanz) 호숫가에 있는 성당인데, 길고 좁고 높은 비례감이 참 좋아서 그 건물을 연상해서 제안했죠.

황인용 선생님은 소금 창고를 떠올리셨어요. 어릴 때 인천 앞바다의 염전에서 소금 창고에 숨어 들어가 있을 때의 조용함과 빛이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아름다움을 연상하셨죠. 그런 공간에서 음악을 들으면 좋겠다고 동의해주셨어요.

거의 비슷한 시기에 ㅁ자 집도 지어졌어요. 아주 심플하게 그려서 쉽게 시공할 수 있는 건축, 그러면서도 그 안의 경험은 풍요로운 건축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그게 결국 친환경적인 건축이 아닐까 생각했었죠.

 

카메라타의 경우는 음악 감상을 위해 공간 안에서 소리의 경험을 많이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기다란 박스의 건물을 설계해놓고 보니 앞뒤의 거리가 꽤 길어졌어요. 벽의 폭이 좁으니까 반사된 음이 다시 반사되어서 갈 때까지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죠. 앞에 앉은 사람이 바로 듣는 소리와 돌아 들어오는 소리의 시차 때문에 에코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게 되죠. 물론 흡음재를 사서 쓸 만큼 여유가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었어요. 어느 정도의 에코가 발생할지 일단은 지어놓고 봐가면서 흡음을 보강해가자고 설명해 드렸어요. 약간의 울림소리는 울림통 역할을 해줄 수도 있으니까요.

어쨌거나 흡음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천장판 구조재를 톱으로 켜서 칼집을 냈어요. 그렇게 천장판에 높고 낮게 결을 만들면서 고음, 저음을 고루고루 흡수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한 면을 흡음판으로 만들어 준 셈이 되었고요. 목재를 부분적으로 썼고 또 사람들이 앉으면 몸 자체가 흡음재 역할을 할 거라고 봤어요.

다만, 반사돼서 도는 음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난반사를 시키게끔 벽체는 일반 합판 거푸집을 쓰지 않고 거친 질감을 냈죠. 그 지역의 오래된 제재소에 아직도 큰 줄 톱을 가지고 있는 곳이 있었는데, 거푸집 목재를 줄톱으로 자르면 줄 자국이 출렁거리면서 그 자국이 수평으로 나게 돼요. 그걸 의도적으로 더 많이 나게 했어요. 또 남북으로 들어오는 빛이 낮에는 높은 각도에서 들어와 줄톱에 의해 콘크리트 질감이 생동감 있게 살아나도록 의도했죠.

 

내부 공간의 간결함을 만들기 위해 메자닌 부분은 와이어를 강하게 당기는 식으로 매달았습니다. 단순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구조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연구하고 적용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직원들에게도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20여 년간 해온 건물을 보려면 구조를 보라고 해요. 건물 디자인이 특별한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그 안의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자 했던 경우가 꽤 있다고 말하죠.

구조라는 것은 구조사무실에서 해결하는 게 아니고, 건축가가 확실하게 어떻게 하라는 제안을 주고 왜 그런지, 어떻게 해결할 건지 같이 풀어나갈 때 좋은 건물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림만 그려서 넘겨선 안 되고, 구조를 철저하게 생각해서 넘겨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카메라타의 경우에도 내부를 심플하게 하려면 기둥이 많이 나오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위의 메자닌으로 올라갈 때 계단이 생기면 산만하고 사람들 발소리도 들릴 것 같아서 콘크리트 벽을 하나 놓고 그 뒤로 다 숨겼죠. 주방시설, 계단, 화장실이라든지, 소음이 발생할만한 것들을 다 뒤로 숨겨주고 그 안의 공간은 순수한, 그야말로 비어있는 사과 상자 같은 공간을 만들었어요. 일부는 동쪽으로 나지막하게 들어가는 공간을 깔아 넣었고, DJ 실도 안쪽으로 밀어서 넣었어요. 네모난 보이드 공간 자체는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죠.

 

박스를 시도하는 이유에 대해서 한 비평가는 ‘본질적인 공간의 경이로움을 탐구한다’라는 비평을 하기도 했는데요. 박스 시리즈를 통해서 담고 싶으셨던 아이디어는 무엇이었나요?

처음 시작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단순한 것이 좋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고요. 자연이나 지형, 여러 건물이 있거나 하는 조건들로 주변은 항상 복잡하니까, 건물은 더 단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죠. 헤이리 마을도 이미 복잡해지기 시작했었고 여러 건축가가 들어와서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내게 될 테니까요.  

그 이후로 두 개의 상자, 세 개의 상자로 만든 집이나 상자 안에 상자가 들어간 집 등 여러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상자를 좀 더 띄우기도 하고 빗기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좀 더 상자와 상자 간의 관계성, 자연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관계성이라고 하면 둘 사이의 관계도 있을 테고, 둘과 주변과의 관계도 있을 테고, 두 개의 사이 공간도 있겠죠. 사적인 사이 공간도 있고 개방적으로 연결되는 곳도 있고요. ㄱ과 ㄴ의 관계 아니면 너와 나의 관계, 그런 관계성을 많이 생각하면서 만들어나갔어요.

 

고려제강 수영공장인 <F1963>은 공장을 리노베이션한 프로젝트로 철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는 프로젝트입니다. 규모도 컸고요. 어떤 주제로 접근하셨나요?

F1963보다 2년 정도 앞서 키스 와이어 콤플렉스가 지어졌어요. 키스 와이어센터 쪽은 수련원, 기숙사, 오피스 공간이 같이 들어가 있고, 키스 와이어 뮤지엄이 지어졌고요. F1963은 공장건물을 공공에 개방해 상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쓸 수 있게 개조한 프로젝트에요. 2차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진행되었죠.

처음 설계 의뢰를 받고 가보니 언덕이 있더라고요. 항상 부산에 가면 특별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 그때도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그게 무얼까를 생각해봤는데 일단은 날씨가 더 온화하고 포근해요. 그리고 산과 비슷한 가파른 지형과 바다가 만나는 도시인 것 같아요. 

그런데 키스 와이어 센터가 놓일 대지에 갔더니, 그 뒤로 고속도로가 뚫리고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아름다운 지형과 산이 다 뭉개지고 잘려나가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약 3,000평 정도의 공간을 넣어야 하는데, 기대어 놓기에는 언덕의 크기가 너무 작은 거예요. 언덕을 다 없애고 앉혀야 하는 정도의 크기인 거죠. 법규상 고층(high rise)으로 세울 수 없는 지역이었고요.

그래서 지형을 망가트리지 않고 그나마 보존을 하고자 했어요. 자생적으로 조성된 대나무와 뒤편의 좋은 소나무 군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 그리고 박스로 풀어낼 때처럼 몇 개의 박스가 어떻게 배열될지, 자연스럽게 흐르는 지형이 박스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죠. 물론 모두 박스는 아니지만요. 가서 보시면 건물 모양도 모양이지만 그보다는 땅의 흐름과 건물의 흐름이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 땅의 흐름을 좀 더 경험하게 만드는 공간이 된 것 같아요. 뮤지엄으로 들어가면 와이어로 지지가 되는 램프를 타고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밖으로 나오면 언덕의 윗부분까지 도달해서 자연스럽게 언덕을 타고 내려가게 되죠.

 

키스 와이어 뮤지엄과 센터가 신축이라면, F1963 프로젝트는 리노베이션으로 진행되었는데요.

뮤지엄 의뢰를 하셨을 때 그곳에서 공장을 보게 되었죠. 허름하지만 나름의 성격이 있어서 언젠가 이걸 개조해서 뮤지엄을 하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처음에는 회장님이나 담당자 분들이 그게 무슨 말인지 긴가민가하셨겠죠. 요즘은 재생 건축이 많아졌지만, 벌써 10여 년 전이었고 허름한 공장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것만 생각하고 계실 때였으니까요. 리노베이션을 몇 번 제안하고 기록으로라도 남기려고 사진을 찍곤 했었죠.

그러다가 공장건물이 없어지기 전에 그 공장에서 부산 비엔날레의 일부가 열리게 되었고 작가들이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그렇다면 일반인들이 좋아할 수 있겠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고쳐보자고 했고, 현재의 방향으로 진행되었어요.

 

공장건물을 리노베이션할 때 주의 깊게 다루었던 부분이 무엇이었을까요?

첫 번째는 기존에 있는 걸 가능한 한 그대로 활용하고자 했어요. 그래서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연관되는데 쓰레기를 하나도 만들지 않는다, 여기 있는 건 다 100% 재활용한다고 생각했어요. 거친 바닥도 그냥 두거나 꼭 제거하거나, 잘라내야 하면 그걸로 가구를 만든다든지, 다른 곳의 바닥재로 쓰든지 재활용하고자 했죠.

그런데 건축법이 까다롭다 보니까 기초를 상당히 보강해야 했어요. 그곳이 옛날에 진흙 바닥이어서 지반이 약한 데에다가, 흙을 다져서 만든 공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구조 엔지니어 측에서는 구조를 많이 보강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때문에, 건물을 거의 새로 지어야 경제성이 있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30년간 쓰면서 지금 있는 구조도 많이 다져졌기 때문에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구조 측에 제기했고, 한국의 구조 엔지니어들은 이 흙의 토질 자체가 안 좋으니 새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어요.

그래서 외국의 사례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외국 엔지니어의 의견을 검토해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솔루션과 방법을 제시했어요. 파일을 박지 않고 기존 구조 위에다가 엮어서 보강하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처리를 했죠. 중요한 구조적인 보강을 했고 그러면서 기둥에도 있는 듯 없는 듯 추가된 기둥들이 있어요.

또 공장 여러 개를 계속 붙여가며 지었기 때문에 내부는 빛도 안 들고 환기도 안 되고 동선도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게 되어 있었어요. 일반 건물로 쓰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죠. 그래서 가운데를 잘라내서 중정을 만드는 것으로 제안했어요. 처음엔 좀 더 깊게 파서 땅에 내려가 있는 포근한 느낌을 받도록 제안했죠. 이 건물이 앉혀지기까지의 땅의 본질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편의상 설계 과정에서 조금씩 줄어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현재는 의자 높이 정도(45cm 정도)로 되어 있죠. 도서관 부분만 1.2m 정도로 깊게 파여서, 내려가면 공간감이 있고 포근한 느낌이 들어요. 어쨌건 건물이 구조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라든지 문제점, 가능성에서 출발하고자 했어요.

 

트윈 트리(TT)의 경우는 기존 작업과 달리 수직 타워입니다. 또 그 위치가 광화문이자 동십자각 맞은편에 있는 중요한 자리이잖아요. 여러 가지로 어려운 땅인데, 상당히 유기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사과 상자를 주장하던 바쁜 시기에 다른 손으로는 트윈 트리의 유기적인 곡면 건물을 구상하게 되었어요. 물론 거기에도 두 개의 박스를 앉혀 봤었죠. 그런데 차가 돌아가는 길이라 어떻게 해도 투박하게 튀어나오게 돼요. 특히 코너에 있다 보니 경복궁 쪽에서 바라다볼 때 어느 각도에서건 모서리 부분이 아주 날카롭고 느낌이 좋지 않았어요.

박스라는 걸 고집할 게 아니라 땅의 흐름을 더 보자고 생각하고 운전해서도 가보고, 걸어도 봤어요. 경복궁 쪽에서 바라볼 때 강한 모서리 선이 나오는 것보다는 부드러움이 있으면 좋겠다고 싶었어요. 그래서 흐름을 따라 앉히게 된 게 지금의 곡면이 나온 거예요. 땅 자체가 사각이 아니라 찌그러져 있어요. 그 형태를 따라서 뒤로는 90도 직선형을 따르고, 앞은 라운드 형태를 따르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형태예요.

사과 상자가 만들어질 때 널빤지를 가져다 잘라서 로직에 의해 쉽기 쉽게 만들었듯이, 이곳도 주어져 있는 요건에서의 로직 자체는 분명했던 것 같아요. 사과 상자에서는 판재라면 여기서는 약간 휘어져 있는 형태, 뒤는 조금 더 반듯한 형태죠. 그러면서 두 건물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그 두 건물 사이로 광화문으로부터 피맛길 쪽으로 이어지고, 또 피맛길 쪽에서 걸어 나올 때는 동십자각을 통해서 경복궁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두 개의 타워가 선다면 어차피 곡면으로 만들어지니 그 사이공간에 더 드라마틱한 경험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게 설계의 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수직 타워, 임대용 건물은 기준층이 반복되기 때문에 변화를 주기가 어렵고 경험 측면에서도 한정적일 수 있죠. 건축가로서 어떻게 다른 경험을 주고자 하셨나요?

때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어떤 경우는 땅이 특별한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그 땅으로부터 좋은 기운이나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흐름을 받아들이고 싶은 경우가 있을 테고요. 트윈 트리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그걸 받아들이는 방법으로써 틈새에 중간 공간을 두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게 했어요. 그냥 바로 땅 위에 세운 게 아니고 틈을 만들어서 두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만들고자 했던 거죠.

그렇지만 항상 그렇게 하는 건 아니에요. 어떤 경우는 건물이 약간 떠오르면서 주변에서 들어오게 한다든지, 위에서 쓰는 공간의 마당이나 플랫폼이 필요하다면 조금 띄우고 밑에는 흐름을 허용해준다든지,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것 같고요.

평면이 반복되어 올라갈 때 건축가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쓰죠. 특히, 1980년대 이후로는 휴먼 스케일의 건물을 만들고자 매스를 분절해서 적층한다거나, 그 사이에 녹색층을 둔다든지 사람들이 모여드는 사회적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기능적으로 둔다든지 하는 거죠. 어떤 건물이 도로에서 너무 가까워, 보는 각도에 따라서 위압적이라면 셋 백 시키면서 리듬으로 분절하는 방법도 있을 테고, 때에 따라서는 중간을 열어서 바람이 통하고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있겠죠.

땅이 가지는 조건이 첫 번째로 영향을 미칠 것 같고, 두 번째로는 기능적인 측면, 즉 어떤 것이 필요한지, 유용한지 프로그램상 사용자 측면인 거죠. 그리고 법규적인 해석과 비용들이 세 번째로 작용하는 게 될 것 같아요.

 

트윈 트리는 보기에 3차원 곡면처럼 보이지만 모두 2D로 분할해 해결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DDP처럼 두 방향으로 휘어진 3차 곡면은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죠. 이 건물은 처음 모델링 했을 때 유기적인 면을 수평적으로 분할했어요. 각 층을 6개로 분할해서 수직으로 서 있는 면으로 이어지죠. 그러니까 2차 곡면이 적층해 연결됨으로써 3차 곡면이 되도록 만든 최초의 건물일 것 같아요.

오브아럽(Ove Arup)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왜냐면, 창문 프레임 단면상에서 어느 부분은 유리가 안에 들어가고 어느 부분은 밖에 들어간다면 단열이 안 될 거라고요. 결국, 구조적으로 연결을 시키면서도 단열이 해결되는 방안을 찾았어요. 그렇게 해결한 유일한 건물이라서, 오브아럽에 초청받아 강의도 했어요. 어쨌건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했어요. 명확한 논리를 가지고 만들고자 한 것도 있었고요. 그렇게 2차 곡면의 유리를 마감하게 됐는데, 85% 정도는 평유리에요. 15%만 가지고 곡면을 만들었고, 곡면도 반경(radius)이 50cm짜리부터 2m까지 변화되는 5종류만 만들어서 그걸 조합함으로써 면을 만들었죠. OHS

 

진행 임진영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
인터뷰 ④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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