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성북동 길상사 맞은편 언덕에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들어 갔다가 우연히 20평 남짓한 땅을 하나 샀다. 그 땅에는 아주 낡은 집이 한 채 있었다. 땅을 가득 메우며 들어 앉은 그 집엔 손바닥 만한 마당이 있었다. 작아도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었던 그 사람은 그 집을 고쳐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네를 조금 둘러보다가 집에서 조금 내려오면 나오는 큰 길 변에 있는 ‘북악수퍼’라는 사실은 동네 구멍가게에 음료수를 마시러 갔다. 그곳에서 음료수를 마시다가 북악수퍼 바로 맞은편에 고래등보다도 크게 집을 짓는 현장에 일하러 온 어떤 분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했다. 이차 저차 해서 저기 보이는 골목길에 집을 하나 샀는데 어떻게 할 지 생각 중이라고 했는데 그 분 (아직까지도 누군지 모른다)이 그럼 가온건축에 한 번 가보라고 이야기했다고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동네 수퍼의 도움으로 집을 한 채 짓게 된 것이다. 그 분은 인터넷을 뒤져보고 적당하다 판단을 해서였는지 우리를 찾아왔다. 물론 우리가 거절할 일은 없었다. 우리는 그 동네를 찾아가봤다. 빨리 지나가면 모르고 그냥 지나칠 정도로 좁을 골목이 구부정하게 큰 길에 슬쩍 꼽사리를 끼고 있었고 골목에서 두 번째 집... 너무 낡아서 손가락으로 튕기면 그냥 주저 앉을 정도로 낡은 집이 한 채, 몇 년 째 사람의 냄새라곤 맡아보지도 못한 허기진 자세로 퀭한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일단을 고치자고 이야기를 했고 이런 저런 보강과 이런저런 칸막이와 방수와 통기와 채광을 하면서 보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집을 고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되어 다시 원점에서부터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하지만 신축을 하기 위해서는 현행의 법에 적합한 안으로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법에서 허용되는 범위는 한 층의 면적이 7평 정도 밖에 되지 않고 층 수도 2층 이상은 불가능 했다. 결국 집의 연면적이 14평인데 그 면적으로는 아무리 단출한 살림을 한다고 해도 턱없이 작았다. 결국 2층 위에 법에서 허용하는 한도내의 다락방을 넣어 2.5층의 집을 짓게 되었다. 여러 가지 공사여건상 가장 적합한 방식은 경골 목구조 방식이었고 집들로 둘러싸인 동네에서 가급적 햇빛을 잘 받을 수 있고 바람이 잘 통하는 ‘얇은 집’의 형식으로 지었다. 1층은 거실의 용도로 사용하고 2층은 침실의 용도 그리고 다락 층은 누마루와 서재로 사용하기로 했다. 공사는 쉽지는 않았지만 규모가 워낙 작다 보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다만 좁은 마당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원래 있었던 담장을 살려서 거실에서 바라다보이는 편안한 벽으로 설정하고 그 앞에는 작은 감나무를 한 그루 심어 계절을 느끼고 특히 가을의 주황색을 감상하도록 했고 나머지 모든 빈 곳과 틈새를 마당으로 설정하여 위치에 맞는 들꽃을 50종 정도 열심히 심었다. 그리고 담벼락에는 심었던 들꽃들의 이름과 위치를 적은 ‘들꽃지도’를 그려 넣었다.
마치 꽃씨가 날아와서 느닷없이 메마른 시멘트바닥 틈새에 한 홉도 안 되는 땅을 찾아 꽃을 피우듯이 들꽃처럼 집이 하나 피어 난 것이다.
글 임형남, 노은주
임형남, 노은주
임형남, 노은주는 가온건축 공동대표로 홍익대, 중앙대에서 강의했고, 금산주택, 산조의 집, 루치아의 뜰, 신진말 빌딩, 존경과 행복의 집, 성옥기념관, 언포게터블 등을 설계했다. 적십자 시리어스 리퀘스트, 유니세프 아동,청소년 친화공간, 북촌길‧계동길 탐방로 등 도시․사회 관련 설계를 진행했고, KBS 남자의 자격, SBS 학교의 눈물 등에 멘토로 참여했다.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임형남, 노은주는 건축 뿐만 아니라 ‘환원된 집’(2011), ‘최소의 집’(2013) 등의 전시와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사람을 살리는 집』, 『나무처럼 자라는집』, 『작은 집, 큰 생각』, 『이야기로 집을 짓다』,『서울풍경화첩』등 9권의 책을 내어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칼럼과 조선일보 <골목발견>을 연재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