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근대적 자아로서의 개인

건축가 최욱 ④

깨어 있는 개인, 일상성의 회복

일상을 유지하는 방법이 흥미로워요. 비교적 일찍 주무시고 새벽에 일어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새벽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특별한 일을 하는 건 아니에요. 깨어나서 일기를 적어요. 전날에 대한 일기 혹은 꿈에 대한 분석. 시인 랭보가 새벽으로부터 아침으로 깨어나는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거든. 해가 떠있을 때 깨어나면 기분이 안 좋아요. 어스름한 상황에서 밝아오는 걸 직접 봐야 편해요. 내가 있는 공간도 늘 해를 뜨거나 지는 것을 바라볼 수 있어요. 그렇게 가볍게 책을 읽거나 마당이나 서재를 돌아다니거나 그리고 운동하러 갔다가 사무실에 와요. 대부분 4시 전에 일어나죠. 우리 집 옆에 절이 있는데, 어느 스님이 염불을 안 외우는 지 다 알아.(웃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겠네요.

귀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건축을 하다보면 사무실에 나와서 내 시간을 갖기는 힘들잖아요. 전화를 받거나 미팅을 하거나,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죠. 아침 시간에 건축을 하는 건 아니거든, 개인적 시간이지.

 

아침 시간을 위해서 일찍 주무시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저녁 모임이 만들어내는 사회 생활이라는 게 있고 모두들 참여하길 원하잖아요.  

저는 저녁을 아내와 같이 해요. 사회 생활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공식적인 사회 생활은 거의 참석을 안 하죠. 저녁때 외국에서 온 친구들 혹은 직원들, 내 주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 빼고는 거의 없어요.

 

언제부터 그렇게 생활하셨나요. 

학생 때는 당연히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가질 수 없죠. 늘 밤을 새야 하니까. 장건축에 다닐 때는 사무실의 스케줄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잖아요. 1994년도에 개인 사무실을 만들면서 서서히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때는 젊었고 직접 모형, 도면부터 일을 다 했어야 하니까. 4시간은 자야 되잖아요. 그 생활이 습관이 되었고, 그때부터 20년 정도 된 것 같아. 시간이 지나면서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끔 공간을 다 바꿔놓았죠.

 

집에도 해가 뜨는 걸 볼 수 있는 큰 창을 만들고, 사무실도 그렇구요.

큰 창을 만드는 건 어릴 적 기억 때문인 것같아요. 어릴 때 몸이 아팠거든. 그래서 집안에서만 살았다고. 6년 정도 집에서만 살다보면 큰 창이 필요해요. 집이 부산이었는데, 마당이 있고 대청이 있었던 기억이 나요. 한때, 내 작업을 스스로 분석해봤어요. 항상 창이 커요. 시선이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봐요. 그게 한국건축의 특징이거든. 내 작업에 그런 특징이 있더라고. 원인을 분석해보니 어릴 적 기억이 영향을 미쳤을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밖에서 들리는 소리, 냄새에 민감해지는 거지.

 

한국은 워낙 모임도 많고 더군다나 클라이언트가 있는 직업이라 거절하기 힘든 상황도 있잖아요.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물론 기본적인 것은 참석하지만, 가급적이면 안 만든다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패턴화되죠. 저는저녁 파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와인바도 있었고, 사무실도 술 마실 공간이 있고. 내 라이프스타일에 필요한 공간이 이 범주에 다 있어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밖으로 안 가죠. 그런지 오래 됐어요. 내 라이프스타일 안에서 할 수 있는 정도로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거지.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관계들, 저녁 행사와 술자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데, 불안하지 않았을까 궁금했어요.

안 불안해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건축가가 되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고, 현실적으로 목적을 위해서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모든 게 그냥 과정이었고 어떻게 해결하냐의 문제였죠.

내가 성격은 예민한데 세상에 대해 약간은 둔감해요. 호기심은 있지만, 기웃거릴 정도의 호기심은 없던 것 같아요. 조르지아 아르마니의 자서전을 보면, 이 사람이 워커홀릭이거든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한다구요. 기자가 어떤 책을 보냐고 물었을때, 너무 바빠서 책을 볼 시간이 없다고 해요. 주말에 뭐하냐고 물으니, 자기 친구랑 TV를 본대요.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편안하게 자신의 일상을 지켜준 친구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게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물론 현실 생활은 그보다 복잡하겠죠. 하지만 저런 태도로 살아가면, 자신의 내적인 에너지가 나와서 남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거잖아요. 저렇게 살 자신만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자기 루틴을 가지고 주말을 보낼 수 있고, 일상이 그냥 자신의 충만한 삶이면 좋겠다 싶어요.

 

개인의 세계에 몰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가장 큰 힘이 아닌가 싶어요. 젊은 세대가 그렇게 하기 힘든 이유는 불안감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소셜네트워크가 남을 기웃거리게 되어 있죠.

 

SNS는 전혀 안하시나요?  

안 해요.

 

스타건축가가 되기보다 일상성을 중요시하는 것을 대비시켜 한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이렇다 할 건축가의 위상 자체가 없다보니 스타건축가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스타건축가의 정의가 뭘까요?

 

대중들이 인지하고, 많은 건축주가 우선적으로 그 브랜드를 사려고 하죠.

그렇죠. 우리가 코카콜라를 먹을 때 항아리에 먹으면 맛이 안 나잖아요. 거기에는 광고의 전략이 숨어있는 거잖아요. 스타건축가는 디자인을 잘해서만 스타건축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이나 순간이 만들어낸 브랜드 가치가 있는 거고, 광고처럼 돈을 더 줘도 스타건축가를 써서 광고 효과가 있어야 스타건축가거든요.

 

작품과 퍼스널리티가 분리된거죠.

분리된거죠. 자본주의가 심화되면 건축이 광고판이 되는 거고, 스타건축가를 쓰는 게 월등하게 유리하기 때문에 30년 전의 스타는 지금도 스타예요. 자본주의에서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스타건축가로서의 자질을 갖춘 건축가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런 스타성을 건축가가 못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탄생하지 않는 것일 거고.

스타건축가는 사회의 메커니즘 안에서 탄생하는건데, 스타건축가가 되기 위해 건축을 한다는 게 내 입장에서는 어리석고 철없이 느껴지는 거죠. 되면 좋지만 렘 쿨하스처럼 흉내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 주어진 여건과 현실에서 성실하게 해나가는 태도는 중요하잖아요.

우리 사무실에서도 잡지책으로 큰 사람들은 어느 순간만 극복하면 스타가 될 수 있다고 믿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나는 사무실 세미나에 다 동네 건축가들을 초청해요. 화려하지 않더라도 진중하게 만들어내는 사람들. 진지한 생각 자체가 모여서 나라가 되는 거거든요. 한두 명의 스타가 나라를 만들진 못해요.

스타건축가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다국적 기업이 있어요. 유태인이 주를 이루죠. 출발이 달라요. 우리가 유태인이 될 수도 없는 거고. 그 사회 현실을 모르고, 내가 엉뚱한 곳에서 춤추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죽으면 억울하잖아요. 엉뚱한 곳에서 춤을 안 추겠다는 거죠. 에너지 낭비를 안 하겠다는 거지.

그래서 내가 말하는 일상성은 흔히 이야기하는 일상(everyday life)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한 개인의 세상에서 자신의 자각이 인지된 자아에요. 그걸로 일상을 살아야 된다는 거지.

 

개인의 일상성을 자각하고 개인적인 세계에 몰두하는 건, 창작활동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묵묵히 자기 내면의 시간, 내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내 일상은 지극히 잠잠해요. 특별한 것이 없어요. 호기심이 별로 없죠.

 

사회가 가지고 있는 미학적 가치는 번뜩이는 천재가 만드는 게 아니라 꾸준한 항성, 일상이 만들어간다는 이야기하셨는데요. 하루키가 글쓰는 작업을 마라톤에 비유한 게 생각나더라고요. 삶에 대한 철학으로 일상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네요.

사르트르가 구토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게 상징적으로 일상에 대한 구토거든. 근대적 자아로서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일상을 회복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상에 대한 구토로부터 시작이 된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 일상이라는 것은 항상 깨어있는 것. 열린 깨어남이죠. 그게 일상이어야 하고 그게 아니면 습관이죠.

 

중요한 부분이네요. 재미있게 읽은 책이나 영화가 있나요.

워낙 책은 잡식이라. 그보다 기억에 남는 책을 뽑으라고 하면 티지아노 테르자니라는 이탈리아 종군기자가 죽기 전에 아들에게 구술한 내용을 엮은 책이 있어요. 티지아노 테르자니는 뛰어난 중군기자였어요. 중국이건 캄보니아건 위험한 전선으로 달려가 세상에 알렸거든. 지식인으로서의 큰 의무였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런데 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요. 역사는 그런 쳇바퀴에서 끊임없이 달려가는 거였더라.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역사가 아니며, 그저 하나의 단편적인 진실을 전달하는 전달자밖에 아니었다. 그래서 네가 하고 있는 일에 큰 역사적인 일을 부여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으니 그냥 네가 진짜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해요. 소위 공명심을 가지지 말고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 진실한 행복일거다’ 이게 아버지의 결론이에요. 『네 마음껏 살아라((La)fine e il mio inizio)』, 좋아하는 책이에요.

중국작가들 책도 좋아해요. 중국 작가들은 문필이 뛰어나고 교묘할 정도로 지적이고, 익살스러워요. 그 이유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인데, 그 단수가 보통이 아니에요. 특히 위화(余華,  Yu Hua), 모옌은 정신적인 레이어가 참 대단하다 싶어요.

 

취미 생활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집중하는 것이나.

사소한 것들. 대단한 취미는 없고. 나는 매니아는 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책은 꾸준히 보고 많이 봐요. 가볍게 읽는 책들. 음악도 거의 안 들어요. 그냥 일상을 기록하는 게 내 삶인 것 같아. 느끼고 보고, 가끔 여행 다니고.

 

올해 오픈하우스서울에서 공개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방문하시는 분들이 어떤 측면을 주목해서 봤으면 하시나요.

우리가 만든 공간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1964빌딩을 예로 들자면 상부의 공간은 그냥 기능적인 것이고 저층부는 높이 열려서 주변과 포용하는 것이에요. 공공에 열려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간에서는 시각적으로 일소점 투시가 생기는데, 1층 로비 내부 공간을 보면 의도적으로 일소점을 깨는 요소들이 있어요. 내 해석으로 일소점을 깬다는 것은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느낌이나 인지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에요.

쿠킹 라이브러리 같은 경우에는 예를 들어 부엌이라고 하면 김이 오르고 냄새가 오르는 것들이 포함돼서 공간이 이뤄져요. 공간이 시각적이 투시도가 아니라는 거죠. 낮에도 빛이 들어와서 거리와 동화되기도 하고 밤에는 낮과 밤이 절묘하게 교차해요. 밖에서 보면 단순하지만 안을 살짝 엿보면 뭔가 부엌이라는 공간이 주는 따뜻함, 자연광이 있고, 밤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면들을 연상해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디자인 라이브러리도 마찬가지로 주변에 가로등이 몇 개 없어요. 그런데 밤이 되면 도서관에 포근하게 조명이 켜지면서 사람들이 공부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들이 중요해요. 그런 부분이 공공에 대한 배려 같아요.

주변으로 열려있고. 내부는 빛에 대해 다루고, 형태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라는 것. 그런 생각들을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인가를 통해서 부산물처럼 나온 것이 외관이죠. 파사드 디자인을 거의 안해요. 그것이 한국건축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것을 실행시키는 과정에서 재료에 대한 탐구, 물질로써 공간을 만들기 위한 완성도를 높이는 노력을 계속 해온 것이네요.

한옥에 몰두해 왔으니까 한옥의 현상학의 미에 대해서 주목하죠. 앞서 말했듯이 그림자의 퀼리티가 내외부가 다르다는 것에 주목을 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외벽은 거칠게 처리하고 바닥의 마감은 단단한데, 그 위에 가벼운 건축이 있는 거죠. 우리나라 건축이 그런 거잖아요. 예를 들어 로비 내부의 윗면에 넓은 면이 펼쳐지면 압도적이죠. 근데 윗면이 선이 되면 압도적인 면이 없어져서 천정면이 시각적으로 분산되고 가벼워져죠. 그래서 시각적인 투시도 효과, 중압감이 덜 생긴다는 거죠. 재료 같은 경우, 퍼스펙티브가 생기지 않는 화면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재료가 개입되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그런 의견을 통해서 공간이 나오는 거죠.

 

건축을 모르는 분들이 서울이라는 도시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연스럽게 볼 수 있으면 가장 좋은데. 서울의 역사, 도시 구조를 아는 것은 중요한 거 같아요. 아돌프 로스가 방에서 살기 위해서는 악기 연주하는 법을 배우듯 방에서 거주하는 법을 배워야 된다고 했거든. 도시에 머무는데 이 도시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불행한 거에요. 서울이 어떻게 형성이 되어있고. 인구밀도가 전 세계적으로 높고 지형학적으로 굉장히 독특한 입지를 가지고 있고, 빨리 성장했고, 600년 동안 도읍지였고, 그런 것들을 잘 해석하다보면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읽히는 게 있거든요. 그렇지 않다면 이 도시가 못 생겼다는 식으로 볼 수도 있어요. 서양의 시각에서는 이 도시의 밀도, 에너지, 불협화음 등에서 생동감이 있다고 느끼고, 가능성을 찾구요. 이 도시를 건축적으로만 바라보면 굉장히 시선이 한정적이에요. 포괄적으로 보고 즐겨야 미래 예측도 가능하죠. OHS
 

진행 임진영, 최춘웅
사진 정유진 

+참고문헌: 와이드건축 55호 건축가 최욱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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