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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 가옥 (구 독일선교사 주택)

사진_홍난파 가옥 전경_문화재청
사진_홍난파 가옥_문화재청
사진_홍난파 가옥_문화재청
사진_홍난파 가옥_문화재청
사진_홍난파 가옥 출입구 계단_문화재청
사진_홍난파 가옥 홍난파상_문화재청

홍파동 홍난파 가옥은 1930년대 독일 선교사가 지은 벽돌조 서양식 건물을 작곡가 홍난파 선생이 인수하여 살던 집이다. 붉은색 벽돌 벽체에 기와를 얹은 서양식 건물로 1930년대 서양식 주택 특성이 잘 보존되어 있어 가치가 있다. 등록문화재 제90호이다.

출처 : 문화재청, 홍파동 홍난파가옥 등 8개소 등록문화재 기록화 조사보고서

사진 :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 구분 : 등록문화재 제90호 (등록일자 2004년 9월 4일)
소재지 : 서울시 종로구 홍파동 2-16 
소유자 : 원소유자 – 독일인 선교사, 현소유자 – 서울시 종로구청
건립 연대 : 1930년
건축 구조 및 양식 : 조적조, 시멘트 기와
설계 및 시공 : 미상
건물 용도 : 주택
건축 규모 : 대지면적-304.3㎡                   
                    건축면적_121.45㎡
                    연면적_121.45㎡
                    층수_지상1층, 지하1층
 

주소 서울시 종로구 송월1길 38

이용시간 하절기 (4월-10월) 11시 ~ 17시
                 동절기 (11월-3월) 11시 ~ 16시

휴관일 주말 및 공휴일 

이용요금 무료

문의 https://lanpa.co.kr/

 

위치서울시 종로구 송월1길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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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 오픈하우스서울 2019 , 도시 안의 영토, 국제 교류 공간 Another Territory of Seoul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오픈하우스서울이 스페셜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평소 가보기 힘든 영국, 미국, 프랑스, 스위스, 캐나다, 이집트 대사관과 근대 선교사 기지 등 국제 교류 공간의 문을 여는 스페셜 프로그램이 2019년 9월 20일(금)부터 29일(일)까지 열립니다.  프로그램  오픈 9월 11일 (수)  참가 신청 9월 16일 (월) 오후 2시 부터 외교는 국가 간 협상과 조정, 교섭을 하는 모든 방식의 국가 관계를 말합니다. 또한, 국가 간의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어느 때보다 외교의 무게를 느끼는 요즘, 서울 안의 국제 교류 공간들을 중심으로 스페셜 프로그램이 열립니다.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열리는 이번 스페셜 프로그램은 “도시 안의 영토, 국제 교류 공간(Another Territory of Seoul)”이라는 주제로, 서울에 자리 잡은 현대, 근대, 구한말의 국제 교류 공간들의 문을 엽니다. 각국의 외교 활동의 거점이자 ‘영토 안의 영토’인 대사관과 대사관저는 국가 간 교류의 최전선에 있습니다. 특히 각국의 대사관과 대사관저는 건축물뿐만 아니라 소장한 문화재, 미술품 등을 통해 각국의 문화적 역량을 드러내는 문화 교류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국제 교류의 장은 국가 간 교류만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민간 교류의 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며, 특히 근대 시기에는 선교와 교육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교류가 이어져 왔습니다. 근대의 선교 기지와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근현대 시기의 학교는 서양 문물의 전파와 함께, 한국의 문화를 맞이하는 교류의 장이 되었습니다.  오픈하우스서울 2019는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함께 스페셜 프로그램으로 국제 교류가 이어지는 여러 장소를 공개해, 시민들과 함께 문화를 통한 친밀한 교류를 펼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오픈하우스 프로그램, 투어 프로그램 진행과 함께, 오픈하우스서울 웹사이트에 외교 공간에 대한 대사들의 인터뷰를 소개, 국제 교류의 의미와 공간을 통한 문화 교류의 의미를 담을 예정입니다. 또한, VISIT YOURSELF 코너에서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장 주변으로 나만의 답사 코스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여러 국제 교류 공간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현대의 국제교류공간]  각국 외교 활동의 거점이자 영토 안의 영토인 대사관과 대사관저는 국가 간 교류의 최전선에 있다. 특히 각국의 대사관과 대사관저는 건축물뿐만 아니라 내부에 설치된 문화재, 미술품 등을 통해 각국의 문화적 역량을 드러내는 문화 교류의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역사적 내력이 있고 건축적으로 탁월한 대사관 6곳의 문을 연다. 오픈하우스 프랑스대사관 9.20(금) 09:30, 11:00 9.21(토) 13:30, 14:45, 16:00 9.22(일) 09:15, 10:30  진행_ 고은미 학예연구사, 정인하 교수, 강준구 건축가, 정다영 학예사 스위스대사관  9.21(토) 14:00, 14:30, 15:00, 15:30 진행_ 이인호 건축가, 염상훈 교수 영국대사관 9.27(금) 15:00, 15:30, 16:00, 16:30 대사관 진행 캐나다대사관  9.28(토) 16:00, 17:00, 18:00 대사관 진행  미국대사관저 9.29(일) 14:00-17:00 자율방문 이집트대사관 9.28(토) 10:00, 11:00 진행_ 장윤규 건축가, 하젬 파미 대사
VISIT YOURSELF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장과 연계해 나만의 답사 코스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국제 교류 공간들을 소개한다.
외교의 최전선이자 ‘도시 안의 또 다른 영토’인 대사관은 현대의 대표적인 국제 교류 공간이다. 대사관의 건축은 그 나라의 문화적 역량을 드러내는 동시에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이를 반영해 문화 교류의 상징을 담기도 한다. 영국 빅토리아 양식에 인도의 건축 스타일이 더해진 129년 된 영국대사관, 1962년 한국의 거장 김중업의 대표작인 프랑스대사관, 1976년 주재국의 건축 양식을 따라 지은 최초의 대사관저인 미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 2001년 한국의 건축가 장윤규와 희림건축이 로제타스톤을 재해석해 설계한 이집트대사관, 그리고 2019년 한옥을 재해석해 현대적인 건축물로 승화한 스위스대사관까지, 역사적 내력과 건축적 탁월함으로 주목받는 대사관과 대사관저 6곳의 문을 연다.   Special OPENHOUSE 프랑스대사관   9월 20일 – 22일 스위스대사관   9월 21일 영국대사관       9월 27일 이집트대사관   9월 28일 캐나다대사관   9월 28일 미국대사관저   9월 29일
근대 및 왕실의 국제 교류 공간 국제 교류의 장은 국가 간 교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간 교류의 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며, 특히 근대 시기에는 선교와 교육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교류가 이어져 왔다. 근대의 선교기지와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근현대 시기의 학교는 서양 문물의 전파와 함께,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고 맞이하는 교류의 장이 되었다. 대표적 근대 선교기지와 교육기지를 살펴본다. 또한 근대국가로 변모하기 위해 열강들과 치열한 외교 전쟁을 펼쳐야 했던 대한제국의 공간들은 근대를 향한 꿈과 좌절이 배어있는 곳이다. 경운궁(현 덕수궁)을 중심으로 한 대한제국의 외교 장소와 건축물을 통해 대한제국 국제 교류 공간의 근대성을 살펴본다. 
Interview “대사관은 일종의 무대이자 만남의 장소”, 리누스 폰 카스텔무르 주한 스위스 대사 한국에 오신 지 3년이 되어 가는데, 한국에 오기 전 서울에 대해 접할 기회가 있었는지, 또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지 궁금하다. 주한 스위스 대사로 정식 근무하기 전, 서울에 익숙해지고 또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짧게 머물다 간 적이 있다. 나에게 서울은 동북아시아가 아닌 매우 새로운 아시아였다. 서울은 흥미로운 도시라 좋아하는 장소를 꼽자면 매우 많다. 우리는 서울 안에서도 중심지에 살고 있어서 이 일대를 산책하듯 걸어 다니는 것을 즐긴다. 도시에서의 특권이자 가장 호사스러운 행위는 바로 시내를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점 같다. 나무와 빌딩 등 온갖 것들을 관찰하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난 경험이다. 얼마 남아있지 않아 아쉽지만, 한국의 전통 건축도 좋아한다. 예를 들어 도시 안에 있는 종묘를 정말 좋아한다. 그 외에 인근의 작은 장소들도 좋아한다. 만약 사람들과 사람들이 살았던 곳을 알고자 하고, 역사와 전통에 대한 인상을 얻고자 한다면, 시내를 걸으며 관찰하는 것이 좋다. 비록 서울은 유럽의 소도시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도시지만, 도시산책자이면서 도시관찰자로서 서울 생활에 큰 즐거움을 얻고 있다. 지난 5월 스위스대사관이 정식 개관했다. 초기에 신축이냐 이전이냐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다. 이 부지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새 건물을 짓게 된 중요한 동기가 있었는가? 우리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항상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옵션도 있고 제약들도 있다. 당시 명백한 사실은 전임자들이 보기에 기존 대사관 건물이 너무 작고, 낡았으며,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만약 부지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건물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복원할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철거하고 새로운 대사관 건물을 지을 것인가? 더 나아가 이 부지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대사관 부지의 경제적 가치가 높으니 그냥 땅을 팔고 심플하게 도심의 고층 오피스 건물 공간을 임대해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거주지를 매입할 것인가? 그것들은 고민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결국, 기존 대사관 건물은 지속할 수 없고, 우리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 양국 관계의 밀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고, 한국도 G20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점차 중요한 국가가 되어가고 있었으며, 한국은 스위스의 중요한 경제, 문화, 과학기술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한국 내 스위스의 존재를 업그레이드하고, 좀 더 강화하고 싶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건축물에 투자하게 되었다. 또 스위스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대사관이 이 자리에 둥지를 튼 지 40년이 넘었고, 그동안 스위스는 한국과 우호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구축해왔을 뿐 아니라 좋은 파트너 관계도 형성해왔는데 왜 굳이 장소를 옮겨야 하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웃 환경이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외부환경은 개발로 인해 바뀌고 있는데? 우리도 역시 변화할 거야.’ 그래서 가장 합리적인 합의점은 부지를 그대로 유지하되 새로운 건물을 짓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거대한 타워를 짓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대사관은 클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 때마침 우리는 기존 건물의 디자인이 건축물로서 매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장소는 그대로 가져가되 건물을 바꾸자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국제현상공모를 시작했다. 스위스대사관 건물을 국제공모를 통해 짓는다. 모스크바도 그랬고, 베이징도 곧 그럴 것이다. 스위스는 물론이고, 유럽 국가, 아프리카, 미국, 아시아 건축가들이 참여해 경쟁한다. 서울 프로젝트의 경우 70명이 넘는 건축가들이 참여했었다. 스위스대사관의 주변은 급변하는 서울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주변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결과적으로 스위스대사관이 돈의문 일대 땅의 흔적을 기억하는 곳이 된 셈이다. 대사관과 변화된 주변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일종의 대화, 과거와의 다이얼로그’라고 생각한다. 지금 건물은 모던한 빌딩이지만 과거의 일부를 여전히 반영하고 있다. 최종 당선작의 제목은 “스위스 한옥”이었는데, 재미있는 부분은 스위스에는 한옥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마당이 있는 한국 전통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은 스위스 건물인 것이다. 내 생각에 건축가는 한국에 한국과 아무런 상관없는 단순한 스위스 건축물을 짓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설계 초기부터 주변 환경과의 다이얼로그를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들은 한국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스위스적이지만 동시에 한국적이면서도 이곳 환경과 잘 어울리는 것을 원했다. 보다시피 스위스대사관은 전통 한옥이 아니다. 한옥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축물이다. 나는 이곳의 다이얼로그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면서도 주변의 다양한 요소들과 서로 대위(counterpoints)를 이룬다는 것이 흥미롭다. 30-40년 전에는 이곳에 거의 비슷한 모양의 한옥 건물들만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모두가 변해가고 있지만 어떤 것들은 그대로 있기도 하고 우리도 변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지를 경제적 논리로 접근할 생각이 없었고, 우리에게 충분할 정도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곳의 가장 큰 호사는 주변에 고층빌딩이 없어서 머리 위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다시 말해 우리는 현대적으로 변해야 했고, 다른 형태와 규모를 원했지만, 그렇다고 획일적인 것은 싫었다. 결국, 우리의 새로운 시도가 언덕진 이곳의 지형이라든가 주변 개별 건물들, 도시를 향해 열려 있는 건물 배치,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작은 주변 동네 등등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음악으로 이야기하자면 마치 바흐의 다성(polyphonic)이나 대위법(counterpoint) 같은 것이다. 즉 동일한 한 가지만 있는 것보다 다양한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고 건축물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VISIT YOURSELF 경교장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선생이 1945년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 1949년 6월 26일 암살당할 때까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1938년에 건립된 이 건물의 명칭은 당초 죽첨장이었으나 김구선생의 거처로 사용되면서 근처의 개울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자유중국대사관 관저, 국군의료진 주둔지, 월남대사관 관저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1968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인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하1층, 지상2층 규모의 양관으로 전면 분할의 비례가 아름답고 1층의 출창과 2층의 들임 아치창을 이용한 단아한 외관이 일품이며, 김해경(시인 이상)이 졸업한 경성고공 출신으로 우리나라 근대 건축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김세연(1897~1975)이 설계하여 1930년대 건축술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으나, 건물의 우측면과 후면은 병원의 신축건물과 연결되었으며 내부구조도 병원용도에 맞추어 개조된 상태이다. 출처 및 사진 제공 : 문화재청   주소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강북삼성병원  이용 시간 9:00 – 18:00 휴관일 월요일/1월 1일 휴무 이용요금 무료  
Interview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한 시대”,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 한국에 오신 지 2년이 되어간다. 한국에 오기 전 서울에 대해 접할 기회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2003년과 2004년에 처음 한국을 짧게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한국이 조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4년 후인 2017년에 다시 왔을 때 변화한 서울의 모습에 매우 감명을 받았다. 여러 고궁이 복원되고 녹지가 조성되어 수많은 매력적인 공간들이 새로 생겨나 있었다. 주한 영국대사로 부임하기 전, 2017년 하반기에 서울에 머물며 한국어를 공부했다. 이때 여러 장소를 방문하여 서울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한 곳을 고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사관 옆에 있는 덕수궁은 산책하기 매우 좋다. 생각에 잠겨야 할 때 종종 덕수궁을 걷곤 한다. 가끔은 연필과 스케치북을 챙겨가서 덕수궁을 스케치하기도 한다. 서울의 박물관과 미술관도 매우 좋아한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청계천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 그리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자주 간다. 각 박물관의 특별전도 다 챙겨보려고 노력한다. 내가 오기 전 옛 서울의 모습을 매번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돈의문박물관마을도 찾아가기 좋은 장소다. 광장시장과 같은 서울의 전통 시장도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동대문 시장의 수많은 옷과 액세서리의 종류는 갈 때마다 매번 놀랍다. 야구팬이기 때문에 잠실 야구경기장 또한 내 리스트의 상위 10위에 항상 포함돼 있다. 이 모든 장소 가운데 가장 좋았던 경험은 바로 인왕산 등산이다. 인왕산에 오르면 서울의 멋진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그의 삶과 시를 감상하는 것 또한 매우 감명 깊었던 경험 중 하나다. 대사관과 대사관저가 위치한 서울시 중구 정동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과거 한국에서 영국대사관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사관도 영국대사관이 유일하다. 정동이라는 장소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조선 시대와 대한제국의 수많은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중구 정동에서 살며, 또 일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다. 그 시대에 건축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축물 대부분은 현재 박물관 또는 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여 영국의 선대 외교관들이 130여 년 전 사용했던 건물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역사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정동에는 영국문화원도 있다. 한국 최초의 현대 교육 기관 중 한 곳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위치한 이곳에서 영국문화원은 다양한 연령층에 영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사관저가 1890년에 지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벽돌과 석재를 이용한 한국에서 보기 드문 서양식 건물이다. 그로부터 130여 년이 흘렀고, 보기 드물게 여전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건축, 디자인 강국으로 유명한 영국인데, 혹시 새로운 건축 디자인에 대한 욕심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영국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자국의 디자인 및 건축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와 전통 또한 존중한다. 선대 외교관들이 한영 관계를 구축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건물을 이어받아 오늘날까지 우리의 파트너들을 환영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는 종종 서울시청 서소문 건물 13층에 올라 정동의 전경을 눈에 담는다. 수많은 역사적 건물들 사이에 영국 관저가 자리한 것을 보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 이러한 건물을 현대식 건축물로 바꾼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한국에 부임한 후부터 계속 살고 계실 텐데, 대사님과 가족들은 어느 공간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불편함과 좋은 점은 무엇인지, 1890년에 지어진 건물에 산다는 것에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관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1층의 테라스와 2층의 발코니이다. 두 곳 모두 관저의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하기에 좋은 장소이며, 2층 발코니에서는 남산도 조금 보인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더욱 사랑받던 장소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테라스와 발코니는 복잡한 도시 속 휴식과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공간이다. 관저 인테리어는 현대 생활방식을 따라가기 위해 여러 차례 리모델링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19세기 건축 양식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VISIT YOURSELF 구 러시아공사관 구 러시아공사관은 1884년 러시아와 조선 사이에 조러수호통상조약 체결 후 1890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원래 건물은 벽돌로 된 2층 구조로 한쪽으로 탑을 세웠으며 입구에는 개선문 형식의 아치문이 있었다. 이 건물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A.I.Sabatin, 1860~1921)이 설계를 맡았는데, 그는 1883년부터 조선정부에 고용되어 독립문, 덕수궁 중명전 등 다수의 근대 서양식 건축물을 설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높은 언덕에 르네상스식으로 건축된 러시아공사관은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전망이 좋았으며, 당초 부속건물이 추가로 4채 건축되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살해되는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1896년 이곳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여 1년 가량 머물게 되는데 이를 아관파천이라 한다. 이로써 개혁을 주도하던 친일내각은 친러내각으로 교체되었으며, 고종이 이곳에 머물렀던 기간 동안 국제정치의 주요한 무대가 되었다. 이후 고종은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환궁하여 그곳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1950년 6·25전쟁의 여파로 외벽 일부와 3층 전망탑을 제외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1973년에는 전망탑 부분에 대한 보존처리가 진행되었으며, 1981년 이 일대의 발굴과정에서 러시아공사관의 지하층 구조가 밝혀졌는데 이때 전망탑의 동북쪽에 지하통로로 알려진 유구가 발견되었다. 사적 제253호이다. 출처 및 사진 : 서울중구청, 문화재청 제공   주소 서울 중구 정동길 21-18 정동공원 이용 시간 제한 없음 휴관일 없음 이용요금 무료 문의 서울 중구청 www.junggu.seoul.kr
VISIT YOURSELF 정동교회 정동교회는 1898년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개신교 교회이다. 사적 제256호이다. 미국공사관, 이화학당, 배재학당과 인접했던 곳이며, 기독교 전파와 교육 사업이 이 일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빅토리아식 예배당으로 붉은 벽돌을 사용한 건물이다. 본래는 십자형으로 115평이었으나 1926년 증축 때 양쪽 날개부분을 넓혀서 현재는 175평의 네모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원래 건물은 그대로 두고 양 날개 부분만 늘려지었기 때문에 건물의 원래모습에는 손상이 없다. 벽돌쌓기를 하였으며, 곳곳에 아치형의 창문을 내어 고딕양식의 단순화된 교회당 모습을 이루고 있다. 돌을 다듬어 반듯하게 쌓은 기단은 조선시대 목조 건축의 솜씨가 배어있어 주목된다. 이 교회당의 종은 장식없는 내부 기둥들의 겉모습과 함께 소박한 분위기를 지니기 있다. 소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북미계통의 단순화된 교회건물이다. 출처 및 사진 제공 : 문화재청   주소 서울시 중구 정동길 46 이용 시간 제한 없음 휴관일 없음 이용 요금 무료 안내 www.chungdo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