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 쓰는 집

영상 ㅣ 전봇대집 (The Pole House)

조윤희, 홍지학

2021년 11월 2일 2:00PM
예약금 1원 결제 후 참석 시 환불

낡은 동네 풍경 구출하기

전봇대와 집
최첨단의 기반시설로 깨끗하게 정비되는 아파트 단지가 보편적 주거 개발 해법으로 활용되는 요즘 도시에서 골목의 한 켠을 지키는 전봇대는 오래된 동네의 상징이다.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영위하기 위해 온갖 전력, 통신 케이블을 공중에서 분배하기 위한 지지대의 기능을 하면서, 동네의 풍경에 가장 큰 인상을 남기는 사물이기도 하다. 

서계동에서 1971년 완공한 2층 건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 건물 모퉁이에서 덕지덕지 얽힌 케이블들을 힘겹게 받치고 있던 전봇대가 집에 대한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은 건물을 ‘전봇대집’이라고 이름 짓고, 자칫 동네 경관의 방해자로 인식될 수 있는 전봇대의 존재를 긍정하고, 이를 우리 건물의 일부분으로 읽기 위해 노력했다. 


오래된 시간을 드러내기
기존의 낡은 건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면서 부각하려 했던 부분은 50년 전에 축조하며 쌓인 흔적들을 다시 수면 위로 불러오는 것이다. 골목과 단절되어 폐쇄적인 모습을 띠던 저층부의 벽들은 주요 구조 부위만 남겨두고 최대한 덜어내어서 가볍고 투명한 공간을 길 위에 드러내고자 했다. 기존 기둥에 오랜 세월 덧붙어 있던 불필요한 장식물들을 떼어내고, 벽돌 쌓기로 둘러싸인 기둥의 거친 면을 투명한 유리 벽 너머로 노출하고, 별도의 조명으로 그 질감이 건물 디자인의 일부가 되도록 의도했다. 그리고 유리 벽으로 감싼 거친 기둥과 골목길 사이에 새로운 시간이 덧대었는데, 흰색으로 도장한 철판으로 긴 화단을 두고 조경이 부족한 골목길에 녹색공간을 더해주었다. 


구축에 담긴 시간의 디자인
전봇대집의 2층은 방 네 칸과 주방 겸 거실을 지닌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집을 사무실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고치면서 기존의 집이 지니고 있던 기억을 사무실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전용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방을 나누는 벽체의 표피(skin)를 걷어내고 조적벽을 드러내어, 기존의 방 구획이 자연스럽게 사무실의 워크스테이션들이 차지하는 영역으로 사용될 수 있게 했다. 동시에 이 벽들이 구조적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던 벽체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조적벽과 슬라브가 만나는 상부를 덜어내어 빛과 소리가 흘러나오도록 하였다. 건물이 축조된 과거의 내러티브를 공간화하면서, 동시에 벽들로 인해 잘게 나누어져서 공간이 협소해 보일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디자인 선택이었다. 

기존 주택으로 쓰였던 건물은 외부를 향하는 창이 부족해 실내가 다소 어두웠다.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계단실 코어벽 상부에 천창을 내어 빛이 부드럽게 사무공간에 흐를 수 있도록 했다. 이 천창은 기존 슬라브를 부분적으로 절개하여 만들 수 있었는데, 이때 자연스럽게 드러난 철근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도록 했다. 이를 통해 건물이 지닌 시간을 디자인의 주요한 요소로 전용한다는 전봇대집 전체의 디자인 방향과 맥락이 유지되도록 하였다. 


즉흥성의 건축
서계동 전봇대집은 컴퓨터 위의 도면과 모델링을 통해 모든 것이 치밀하게 계획되어 시공된 건물이라기보다는 현장에서의 즉흥적인 마주침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디자인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킨 결과물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오랜 시간의 속살을 긍정하고 우리의 전봇대집 디자인 정체성으로 읽힐 수 있도록 노력했다. 

서계동 전봇대집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장의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낡은 건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방법을 탐구하는 프로젝트였고, 이 작은 도시적 개입이 어둡게 잊혀가는 작은 동네의 골목을 새롭게 밝히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구보건축 사진 텍스처온텍스처

설계: 조윤희(구보건축)+홍지학(충남대)
설계팀: 박신영 
위치: 서울시 용산구 서계동 232-3
용도: 근린생활시설(사무실, 카페, 갤러리)
대지면적: 99.2㎡
건축면적: 59.93㎡
연면적: 119.86㎡
규모: 지상 2층
구조: 철근콘크리트
최고 높이: 7.2m 
외부 마감: 드라이비트 외단열 시스템, 1층_저철분 강화 유리(제작), 2층_남선창호 알루미늄 시스템창호
내부 마감: 1층 기둥 전면_기존 조적벽 및 철제 노출 위 발수제 / 2층 벽체 및 천장_기존 조적벽 노출 위 발수제, 석고보드 위 페인트, T9 열연강판 문틀(구로철판) / 2층 바닥재_비스타 포쉐린 타일, 이건 gena texture 천연마루 티크러스틱 / 2층 및 계단실 가구 및 문_코어 합판 위 오일스테인, 자작나무 합판 위 투명코팅 

 

조윤희
2015년 구보건축을 설립하여 건축 설계작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대와 MIT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의 이로재와 미국 보스턴의 Howeler+Yoon Architecture에서 실무 경험을 쌓아왔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도시 만들기에 관심을 두고 있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홍지학
서울건축, 해안건축, 미국 보스턴의 CAU(Center for Advanced Urbanism)에서 연구와 실무 경험을 쌓은 후 2015년 구보건축을 설립했다. 미국 MIT 건축대학원에서 Architectural Urbanism을 전공했으며, 서울대학교에서 건축역사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구보건축 웹사이트
www.gubowork.com

건축가조윤희, 홍지학
건축주주식회사 조앤조
일시2021년 11월 2일 2:00PM
위치서울시 용산구 청파로93길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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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House 고쳐 쓰는 집, 오픈하우스서울 x 기린그림 오픈하우스서울 2021의 올해 주제는 <고쳐 쓰는 집>입니다. 지난해 코로나 19로 돌아본 <집의 공간>에서 효율과 기능에 집약된 주거에서 벗어나 내외부 공간의 중간지대를 탐색했던 오픈하우스서울은 올해 집을 고쳐 쓰는 행위를 통해 집의 수명을 늘리고 공간의 가치를 발견하며 이를 새로운 형식으로 확장하는 작업들을 주목합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집을 원형에 더 가깝게 수리하고 집의 수명과 의미를 이어가고 있는 수졸당과 주변의 재개발 사이에서 방치된 다가구 주택을 사무실과 스튜디오로 변모시킨 Face-lift 상도와 전봇대집, 의뢰인의 어릴 적 기억이 담긴 50년대 주택을 게스트하우스로 변경한 보눔 1957, 60년대 주택을 과감히 수리해 아늑한 집을 만들어낸 예진이네집, 그리고 100년된 윤동주가 머물렀던 연세대학교 핀슨홀을 리노베이션해 윤동주기념관으로 변모시킨 프로젝트까지, 집을 고치는 의미와 과정을 기린그림의 영상으로 만나봅니다. 또한 리모델링,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롭게 단장한 프로젝트를 현장에서도 만나볼 예정입니다. 집을 짓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고쳐 쓰는 집>을 만나보세요.   온라인 프로그램  영상 수졸당(守拙堂)_승효상 영상 전봇대집(The Pole House) _조윤희, 홍지학 영상 Face-Lift Sangdo_이승택, 임미정 영상 보눔 1957_김찬중 영상 윤동주기념관_성주은, 염상훈, 최선용 영상 예진이네 집수리_김재관    현장 프로그램 (10월 22일 오후 2시 예약 오픈)  11월 1일 오후 1시 서울공예박물관_송하엽, 천장환, 이용호 11월 6일 오전 11시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리노베이션_김승회(진행_ 백남혁 경영위치) 11월 7일 오후 1시, 3시 윤동주기념관_성주은, 염상훈, 최선용 11월 8일 오후 2시 해방촌 갤러리 더 월_김승회(진행_ 이예슬 경영위치 팀장) 협력 프로그램 <빈집의 재발견> (10월 22일 오후 2시 예약 오픈)  서울특별시 집수리지원센터 × 오픈하우스서울 10월 30일 오후 2시 건축가 김중업의 사직동 주택 ㅣ 진행_안창모 교수  10월 30일 오후 4시 건축가 김중업의 사직동 주택 ㅣ 진행_김현섭 교수
고쳐 쓰는 집 영상 ㅣ 수졸당 (守拙堂), 승효상 1986년 5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수근 선생께서 남기신 말씀으로 나는 공간설계사무소를 3년간 이끈 적이 있다. 선생이 부재에도 선생의 건축을 계속할 수 있다며 분투하였지만 늘 허무할 수밖에 없었고 끝내 선생이 남기신 울타리에서 나오고 만 때가 1989년 말이었다. 15년간 선생의 문하에서 익힌 건축의 방법은 너무도 내게 익숙한 것이었어도 그걸 확인해줄 이가 없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내 건축을 찾겠다고 독립한 나는 내 건축을 전혀 몰랐고 심지어 나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만큼 15년은 김수근건축에 철저히 동화되어 내 신체가 되기까지 한 족쇄였지 않았을까?  내 건축을 찾기까지 아득한 방황과 결렬한 자아 부정 등의 과정을 통해 신음하듯 뱉은 게 ‘빈자의 미학’이라는 용어였다. 선언이라고 해도 된다. 그때까지 내 모든 지난날들을 용광로에 넣어 녹여 겨우 추출한 단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작업한 게 수졸당이다.   그 이후로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물론 대단히 많은 작업을 그사이에 마쳤으며 여전히 건축의 현장에 머물러 있는 나에게 그간의 세월은 실패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과도하게 말하면 내가 작업한 건축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여 기억하는 것조차 힘들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작업이 이 수졸당이다. 내가 지금 얼마만큼 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하며, 그럴 정도로 수졸당은 내 건축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 1993년에 완공되어 28년간 삶의 때를 묻힌 수졸당이 처음으로 대청소를 하여 원형을 다시 찾았다. 그 사이에 지가가 어마어마하게 올라 주변은 죄다 상업용의 시설로 변했지만, 이 집의 주인인 유홍준 교수는 그 세찬 상업주의에 저항하였고 이제는 이른바 ‘현대의 유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믿기로는 앞으로도 오랜 세월을 이 땅 위에 서서 우리가 살았던 기억을 이으며 전하게 된다. 수졸당은 그래서 이미 역사며 문화의 한 부분일 거다.   아랫글은 수졸당을 지은 직후인 1993년에 쓴 것이다.    오랜 도시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수없이 많은 건축물이 이 땅을 빼곡히 메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건축이 여전히 세계의 건축과 괴리를 느끼게 하고 있음과 한국문화의 중심에서도 멀리 있음을 고백해야 하는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다른 몇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난 수십 년 간 우리 사회 구조를 지배한 잘못된 정치행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더불어 균형 잡히지 못한 부의 축적에만 몰두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가치가 왜곡된 그런 사회에서 빚어지는 건축의 모습은, 더 높이 만, 더 크게만, 더욱 위엄 있게 만 보이기 위한 것들에 더욱 큰 관심을 두게 하였고, 그 결과 그 속에서의 삶의 의미는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갑자기 축적된 부가 헛된 장식과 구호에 쏟아 부어진 결과, 거리를 메운 건축은 찬란하되 껍데기뿐이었고 화려하되 졸부의 헛된 욕망을 나타내는데 만 골몰하였음에 우리의 삶은 자꾸만 일그러지고 또한 박제될 그러한 위험에 처해 있음도 아울러 직시해야 한다.  우리네 조선의 선비들이 빚은 도시와 건축은 어떻게 저토록 높은 격조와 품위를 가졌었나. 그것의 바탕은, 물질보다는 정신에, 욕정보다는 이성에 더욱 큰 가치를 둔 청빈의 정신이었을 터이며, 그의 위에선 선비정신은 조선 500년을 지탱케 하며 우리의 뿌리가 되어 있음을 다시 기억해 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자기의 땅보다는 남의 것을 더 채워주려 하고, 더 작은 땅을 점유하려 하며 그것도 남과 같이 쓰기를 원하는 그런 염치와 절제의 건축을, 사회와 고립된 높은 벽체로 싸인 그림 같은 집이 아니라 이웃과 연결된 보다 낮은 그런 집을, 육신이 편안하기보다는 정신이 맑기를 원하며 육체를 왜소화시키는 기능적인 집보다는 오히려 반 기능적이어서 삶 자체가 진솔해지는 그런 공간을, 우리로 하여금 사유케 하고 스스로를 반추시키는 배경이 되는 그런 지적 벽면을, 이제 우리의 도시에 다시 세워야 함을 믿는다. 이 아름다운 산하와 반만년 역사를 이은 우리네 삶의 모습이, 저런 못난 건축 속에서 그 질을 보장받을 수 없다.  세기말을 앞둔 지금, 그러한 일그러진 편린과 대립해야 하는 우리의 정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그것은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까닭이 된다. 보잘것없는 집'이라는 뜻의 이 집은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를 위한 집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유 교수는 한국 미술사에 남다른 식견을 가진 미술평론가이며, 또 그는 민중의 삶에 애착을 가진 지성이다. 그는 나에게 설계를 의뢰하기까지 여러 번 망설였다고 한다.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 대한 불신 등이 그러한 망설임의 대부분이었는데 이를테면 비싼 것, 편하지 않은 것 등이 그것이다. 유 교수는 이러한 것이 선입 관념일 수 있음을 알고 나에게 이런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며 설계를 의뢰하였으며 동시에 나의 건축적 의지에 결코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고, 이 약속은 끝까지 지켜졌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제가치가 우선된 토지, 주거 정책으로 인하여 크게 잘못된 주택관을 가지게 되었는데 주택을 사용에 대한 관념보다 소유개념을 더욱 중시한다는 것으로 그 결과 집 속의 공간이나 그 속에서의 삶보다는 집을 구성하는 벽체와 지붕의 모양 등에 더욱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얻어진 주거형식이라는 것이 주어진 필지에 높은 담을 쌓고 자기를 보호받기 위해 그 담 위에 철조망을 또 두르고 그 속에 아파트처럼 기능적인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은 부분은 `저 푸른 초원'을 즐기기 위해 잔디 깔고 나무 심는 그러한 것인데, 이러한 집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이웃이 있을 턱이 없고, 가족의 아이덴티티가 있을 수 없으며, 더불어 개인의 프라이버시 또한 오히려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와지붕 시대 이후의 참다운 주거문화를 실현해 본 적이 없으며 오로지 주택이 가족 신분에 대한 상징으로서 여겨져 온 결과 껍데기만 있는 졸부의 주거문화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집 장사와 개발업자들에게 상당 부분 있지만, 그렇다 하여 건축가들의 책임 또한 면하기 어렵다.  내가 이 집을 설계하면서 가진 의문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다시 도시주택의 전형을 만들 수 없을 것인가. 주택은 도시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나. 주택에서 삶의 형태와 공간의 형태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주택은 기능적이어야 하나. 이 시대는 어떤 주거형식을 요구하는가. 이 집이 완성되면서 이러한 의문문이 얼마만큼 그 해답을 구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성취한 몇몇은 요즘 나의 건축을 송두리째 지배하고 있는 빈자의 미학에 대한 구체적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였고, 그 성취는 대부분 유 교수가 전적으로 건축가를 신뢰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며 그와 설계와 시공 기간 중 내내 나눈 여러 이야기가 오래 기억될 것이다. 1993.  글 승효상  사진 김잔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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