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로세무서 앞(서울 종로구 삼일대로30길 22)에서 집합 후 함께 이동합니다.
‘루프스테이션 익선’은 137-6번지, 166-5번지 두 개의 작은 필지에 두 건축이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갖도록 설계되었다. 이 중 166-5번지는 과거 누동궁 터였던 166번지가 분화된 다섯 번째 필지이다. 누동궁은 약 2,500평 정도의 규모로 조선 25대 왕인 철종의 형이 사는 집이었다. 대문 좌우의 행랑을 익랑이라고 불렀는데, 누동궁 익랑의 생김이 특이해서 동네 전체를 익랑골, 익량동, 익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또 당시 조선의 행정 관할 범위 상에서 익선동은 정선방 관할에 있어 ‘선’ 자를 추가한 익선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익선동 166번지의 분할은 일제 강점, 소위 조선 최초의 디벨로퍼라 불리는 정세권의 도시형 한옥 개발에 기인한다. 정세권은 1920년에 건양사라고 하는 회사를 설립하고 익선동을 비롯해 서촌, 북촌, 성북동, 왕십리, 혜화동, 휘경동 등에 한옥 주택을 개발했다. 서울 안에서 100년 전 주거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도시형 한옥은 대부분이 정세권의 건양사가 개발하고 지은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익선동은 그 군락이 가장 크게 지켜지고 있는 동네이다. 166으로 시작하는 필지는 현재 약 80여 개가 분포한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소유 회사들이 큰 개발이나 토목공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 때문에 도시형 한옥은 대개 10~20평 내외의 작은 규모로 지어졌다. 그런 조건 속에서 정세권은 서민들에게 질 좋은 거주 공간을 공급하고자 했으며, 도시 생활에 적합한 한옥 평면을 직접 개발했다. 정세권이 만든 한옥의 대표적인 특징은 ‘중당식’으로, 가운데를 마당으로 비운 것이 아니라 거실 공간으로 채워 당시의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하게 한 것이다. 익선동 골목 보행의 분위기는 이때 조성된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익선동은 길 속에 백 년 전 과거의 도시적 라이프스타일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한옥식 담장이나 벽으로 둘러쳐진 인간적 스케일의 폭이 만들어내는 골목의 아늑한 분위기와 길 위로 늘어뜨린 처마의 길이와 높이, 그 속에서 도시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소리까지, 익선동은 다양한 삶의 감각으로 채워져 있다. 루프스테이션은 이러한 익선동의 고유한 감각을 닮되 새로운 자극제가 되도록 개입하고자 한다.
전시 공간으로서의 개방감을 확보하되 모든 것을 반사해버리고 마는 커튼월의 표면으로 머물지 않도록 구조와 외피의 관계를 역전시켜 목재로 마감된 철골 기둥을 가로에 면하게 했다. 기둥은 공간을 드나드는 보행자들이 만지고 지나갈 수 있고, 안쪽의 유리문을 개방했을 때 가로에 리듬을 부여하는 내외부의 가상 경계가 된다.
글 에스오에이
사진 신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