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물이 오르막길에 위치해 있어 이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미리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술마시는 만화방 [GRAPHIC]
사이트는 용산구 경리단길 후면 다세대 주택촌 사이에 위치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활성화되었던 장진우 거리의 끝에 대지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제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그 많던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폐업하여 을씨년스럽게 거리가 변해 있었다. 주변은 경사지고 어수선한 주변 다세대 주택 단지들이 서로의 창을 맞대고 살아가고 있다. 사실, 경리단의 주변 환경은 빼어난 자연환경이나 넓고 시원한 조망을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사이트 자체가 남산을 등지고 있어 건물의 창을 내면 마주치는 풍경이라고는 옆집 다세대 주택의 벽돌뿐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책에 집중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창을 과감하게 없애게 되었다. [그래픽]은 그래픽 노블의 마니아들이 찾는 곳이다.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로 어쩌면 최적의 사이트 일 수 있다. 이 공간은 다른 복합적인 프로그램은 제외하고 순수히 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변의 다세대 주택들과는 완전히 분리시켜 독서에 집중시키는 것을 공간의 가장 큰 목적으로 설정하였다. 또한, 마니아들만이 찾아오는 공간이기에, 입구성을 일부러 숨겨 공간을 더욱 독립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출입구를 길게 둔 것과 내부로 들어와 엉뚱하게 문이 열리는 것 또한 이러한 장치들의 연속이다.
내부 공간과 외피
책에 집중하기 위해 창을 배제하고 사선 제한의 법규를 활용해 매스가 후퇴되는 각 층간의 틈을 통해 외부 빛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내부의 최상층까지 보이드 공간을 만들고 천창을 두워 하루 종일 외부의 빛이 내부로 침투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그 내부 공간들은 램프로 연결하고 그 램프의 벽면을 활용해 책을 배치하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들을 계획하게 되었다. 건물의 내. 외부 소재로 사용된 세라믹 패널들은 도자기를 굽는 문평 작가와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설계 초기 건축물의 내. 외부 마감재를 고민하던 중 할아버지가 물려준 오래된 사전을 보게 되었고, 그 사전들의 단면을 쌓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보니 그 선들이 아름답게 느껴져 그것을 건축으로 구현해 보고자 하였다. 마침, 갤러리에서 문평 작가의 전시를 보다가 그의 작업이 그런 종이의 단면들을 세라믹으로 구워내는 것이었는데, 전시가 끝난 후에 지인을 통해 어렵게 연락을 하고 만나 머리를 맞대고 마감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빛에 의해 종이의 단면들이 아름답게 보이려면 가로 결로 배치하는 것이 최적이었으나, 우리나라는 미세먼지와 황사 같은 이 물질들이 건물에 쌓여 비가 오고 나면, 흉한 자욱들을 만들 수 있기에 세로 결로 변경하여 빗물에 의해 먼지가 씻겨 내려갈 수 있도록 계획하고 그 빗 물들의 배수 계획을 각 층마다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3개 층 중 맨 마지막 층에는 진정한 "어른들을 위한 만화방"을 만들고자 조그만 바를 만들어, 위스키 한 잔과 만화책으로 우리를 순수의 시절로 회귀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으로 공간 설계를 마감하게 되었다.
글 김종유 사진 강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