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2019년 6월
2017년 11월, 대지 답사와 의뢰인 인터뷰 및 1차 실측을 진행하였다. 2018년 1월, 조재량 대목이 프로젝트팀에 합류하여 의뢰인 인터뷰를 추가로 진행하였다. 그의 자문을 통하여 청파동 주택뿐만 아니라 일식 및 한식 목조주택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이어 지연순 실장이 공사 관리 및 현장 실시설계 협력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노경 작가와 양은혜 선생이 시공 과정의 주요한 장면과 이야기를 각각 사진과 글로 기록하였다. 2018년 6월, 리모델링 기본 계획을 마무리하고 1차 철거 및 추가 실측을 진행하였다. 이때, 정화조 및 각종 배관 등 오래된 설비 교체 공사를 병행하였다. 2018년 7월, 조재량 대목이 작업한 포항 구룡포 마을의 일식 가옥 복원 사례를 답사하였다. 같은 달, 경기대 안창모 교수가 현장에 방문하여 한국 일식 가옥의 일반적 특징부터 청파동 주택이 가지는 여러 가지 의의를 자문하였다. 2018년 7월, 한 달 넘게 지속된 부분 해체 작업을 마치고 3개월간의 추가 실측 및 실시설계 작업을 진행하였다. 2018년 10월, 비계 등 가설 공사를 시작으로 기와나 일부 마감재 등을 해체하며 집 전체의 뒤틀린 구조를 교정하는 드잡이 작업과 함께 썩거나 내구성이 떨어진 목재를 교체하거나 보강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공사는 2019년 6월 대부분 완료되었으며, 이후 2019년 말까지 잔손보기 등을 진행하였다.
한반도화양절충식 주택
본 주택의 원형은 193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화양절충(和洋折衷, 일본식과 서양식의 절충)의 건축양식이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의 풍토에 일부 순화되어 지어진 건축물이다. 전통 일식 목조 가옥에 서구 주택 양식을 일부 반영한 문화주택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지만, 문화주택이라고 할 만큼 서구화된 주택 유형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대부분 일본식의 전통 건축 방식을 따르되, 응접실과 실내 테라스와 같이 서구 양식을 일부 수용하고, 벽과 바닥에 아라이다시(콩자갈 물씻기) 대신 서구식 타일 등의 재료를 사용한 절충 양식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특히 본 주택은 일식과 양식의 절충 양식에 그치지 않고 구들방처럼 한국 기후에 적응한 주거 문화가 발견되는 보기 드문 사례의 건축물이다. 따라서 이 건축의 유형은 단순 화양절충된 일식 가옥이라기보다는, 한반도 화양절충식 주택으로 불리는 것이 적합하다.
본 주택은 1930년 건설업체 호리우치구미(堀內組)의 경성 부지점장이었던 일본인 야마자키 카츠사부로(山崎勝三郞)가 아오바초(靑葉町, 지금의 청파동) 3정목 114번지에 지은 주택으로, 8개 필지로 분할된 114번지 내에 저택 외에도 회사 관련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약 90년 된 본 주택은 해방되고 미군정청에 의해 적산(敵産, 적의 재산)으로 인수되었고, 현 소유자의 부친이 1960년대에 매입하여 2018년 초까지 소유자의 자매 중 한 분이 거주하였다. 거주 과정에서 난방 및 단열처럼 최소한의 현실적 생활 여건 조성을 위해 집을 일부 변형하였지만, 전반적으로 소유자의 가족이 직접 거주하며 잘 가꾸어온 근대문화적 보존 가치가 큰 주택이다.
건축가없는 건축으로 남기
본 주택의 리모델링 후 용도에 대한 의뢰인의 의견은 건물을 잘 보존할 수 있는 방식의 상업공간이었다. 의뢰인은 아버지와의 유년 시절 기억이 있는 집을 과도하게 변형하길 원하지 않았지만, 불편한 방식을 감수하는 전통의 보존은 반대하였다. 우리는 우선 일식과 한식, 서양식의 우열 없이, 준공 당시의 건축적 특징이나, 다양한 양식의 보기 드문 혼종적 경향, 그리고 사소하나 거주 과정에서 소중한 기억의 단초가 될 만한 것들은 보존하거나 복원하였다. 각 시대의 생활상이 반영된 변용된 건축적 장치들은 최초 건축 당시의 원형과 변형된 당시와 원인, 그리고 현재 시점의 시대적 요구를 함께 고려하여 리모델링하였다. 우리는 이 주택의 리모델링이 어떤 건축가의 주관이 드러나는 작업이 되지 않기를 원했다. 이 집이 지어진 시기부터 리모델링을 진행하는 현재까지 적응 변형되어온 매 시기처럼, 건축가의 리모델링 작업 역시 이 집이 지금 이 시대에 적응하여 지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시대성을 부여하고, 나머지 기존 가치는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의재료로 원형 찾기, 원형의 재료로 현재 찾기
리모델링 공사에서 구조의 뒤틀림과 부분적 침하를 교정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그 구조적 문제를 야기한 저층부 구조재의 무리한 변형을 바로잡아야 했다. 저층부 구조재의 삭제 또는 변형은 다다미를 없애고 연탄 구들을 만들며 발생하였다. 구들 난방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두껍고 무거운 바닥층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목재 보는 잘리고, 일부 목재 기둥은 조적 기둥으로 대체되어 구조가 침하되기 시작된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1, 2층 모든 기둥 위치의 바닥 레벨을 측정하여 침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지점의 레벨을 기준 삼아 모든 기둥을 침하된 만큼 들어 올리고, 기둥 자리가 띄워진 만큼의 틈에는 새로운 목재를 덧대거나 교체하여 보강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목재의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부재별 필요한 목재의 성질에 맞춰 새롭게 교체하고, 교체가 어려운 것은 금속 판재를 이용하여 부분적으로 보강하였다.
구조 보강 다음으로 내외부 벽체의 복원 작업을 진행하였다. 외벽의 단면 재료 구성은 안에서 밖의 순서로, ‘여러 겹의 회벽(또는 사벽), 가축 털을 넣고 이긴 회반죽, 황토 미장, 지푸라기를 넣고 이긴 황토, 목재 살대, 지푸라기를 넣고 이긴 황토, 와이어메쉬에 모르타르 미장, 모르타르 떼붙임, 황색 도장’으로 되어있다. 잘 남겨진 부분은 유지하고, 목구조 드잡이 과정에서 탈락하였거나 금이 가고 들뜬 부분은 부분 철거하거나 와이어메쉬에 모르타르 미장된 면을 벽면에 잘 고정해 추가 탈락이 방지되도록 조치하고 그 위에 원래의 방식으로 모르타르 미장 및 떼붙임을 하였다. 모든 내부 목재 칠은 옻칠을 기본으로 하되 준공 당시 원형의 나무색을 찾는 방식으로 여러 번의 테스트를 거쳐 카슈칠 등을 적절히 활용하여 진행하였다. 일식 주택의 실내에서 가장 중심적인 부분인 도코노마 영역은 나무 마감이나, 주변 목재 장식 등 대부분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일본식 주택의 유형으로 보기 어려운 북측 응접실과 남측 실내 테라스 중 응접실은 대부분의 원재료를 다시 활용하여 원형 복원하였고, 실내 테라스는 주요 부재 중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신설하여 리모델링 복원하였다. 본 주택의 실내 테라스는 서양식과 일식이 공존하는 곳으로 본채에서 일부분 외부로 돌출되어 일본 전통 가옥과 비교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정원을 향유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전통 일본식 공간이 아니었기에 구축 방식에서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 목재 대부분은 흰개미와 누수의 영향으로 썩어 있었고, 2층 발코니 바닥이기도 한 동판 지붕과 하부 구조는 하중 지지나 우수처리에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당시 의도했던 목구조의 형식이나 서까래 끝의 장식 등을 새로운 목재로 재현하면서도 건물 벽체와 경사 지붕이 만나는 부분이나 발코니 하중이 생기는 부분, 그리고 처마 끝의 물 처리 등의 방식을 개선하여 복원하였다.
리모델링 당시 1층 내부의 바닥은 총 15개의 재료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최초 건축 당시에는 방 한 칸만 아궁이가 있는 구들 난방 방식이었고, 그 외에 복도는 목재 마루, 나머지는 모두 다다미방이었다. 그중 다다미는 거주자에 의해 철거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연탄을 이용한 구들 난방 방식의 시스템이 사용되었으며, 다시 그 위에 기름보일러를 이용한 동파이프 난방 배관을 위한 재료층이 있었다. 이러한 바닥 마감 및 난방 방식의 변천 과정을 나중에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벽체 단면의 흔적을 남기고 최초 건축 시 조성되었던 6첩 또는 8첩 직사각형 다다미의 형상을 이용하여 새로운 목재 판재로 마감을 교체하였다. 단열의 측면과 외관의 정비를 위해 각종 창호 프레임과 입면 구성을 최초 원형을 존중하여 일부 수정하였고, 지붕과 반자, 그리고 층 간의 차음 및 단열을 보강하였다. 창살이나 기존 2mm 유리, 문손잡이, 잠금쇠 등 기존의 완성도 있는 건축적 하드웨어나 재료는 수리하거나 세척하여 다시 사용하고, 소실된 것들은 원형과 유사한 형태로 현실적 사용에 맞게 새롭게 설계 및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글 정이삭 사진 노경
에이코랩 건축사사무소
에이코랩은 2013년에 설립해, 'DMZ 평화공원 마스터플랜 연구', '철원 선전마을 아티스트 레지던시', '연평도 도서관', '원주 유기동물 보호센터', ‘연남동 적벽돌 집’, ‘노란 평상’, ‘용적률 게임’, ‘반지하 다중주택’, ‘층마다 창신동’ 등 다양한 공공 연구나 사회적 건축설계 작업 및 전시를 진행하였다. 현재는 도시재생 관련 혹은 참여형 설계와 같은 공적 성격의 프로젝트를 진행함과 동시에, 단독주택에서 다세대 및 소형 아파트에 이르는 다양한 주거 프로젝트와, 공모전을 통한 행정, 문화, 체육 등 다양한 기능 및 규모의 사회적 건축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한, '서울은미술관', '한강예술공원', '경기아트페스타', 'MMCA 예술버스쉼터' 등 다수의 공공미술 및 야외 설치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두산아트센터, 문화역서울284 등에 에이코랩의 작업이 전시되었다.
에이코랩은 건축이 단순히 건물이나 설계를 뜻하지 않으며, 생각이자 태도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건축설계 이외의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의 외연을 탐구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시대 건축의 역할을 고민한다. 에이코랩은 ‘나머지성(Rest-ism)’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이 세계와 삶의 가장자리,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고 경시하는 나머지 기술과 형상 속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의식의 집합이 존재함을 믿으며, 한반도 건축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그것을 작업에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acolab.co.kr
정이삭
정이삭은 에이코랩 창립자이며 공동 대표 건축가이다. 현재 동양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학사)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학과(석사)를 졸업하였다. 서울도시건축연구소(UA-SA), 동우건축, 이앤오건축사사무소, 유타건축사사무소 등에서 건축 및 공공 연구 실무를 하였고, 해병대 시설과에서 설계 장교로서 공공 행정업무 및 군 시설 설계 및 감독 업무를 하였으며, SAMUSO(아트선재센터)에서 미술 기획 실무를 하였다.
2013년에 에이코랩을 개소하여 다양한 공공 건축, 연구, 전시, 공연 등의 폭넓은 작업을 해오고 있다. 2016년 제15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한국관 큐레이터 및 작가로 참여했고, 2016년 베이징 디자인위크 한국관 큐레이터이며, 2017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생산도시 협력큐레이터로 '서울 어패럴'을 기획하였고, 2020년 원주시립미술관 건립 기획 미술 프로젝트'CAMP 2020'의 총감독을 역임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문화예술 명예 교사이며, 저서로는 『예술이 말하는 도시미시사』 등이 있고,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공공디자인대상을 수상하였다.
홍진표
홍진표는 에이코랩의 공동 대표 건축가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아뜰리에17 건축사사무소와 황두진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하였다. 아뜰리에17에서 단독주택에서부터 뮤지컬 전용 공연장, 지구단위계획 수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과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으며, 황두진 건축에서는 한식 목구조 및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경험하였다.
그는 2018년에 도트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여 다수의 공모전에서 당선 및 입선을 하였고, 2021년에 에이코랩에 합류하였다. 축소된 스케일의 설계 작업을 통해 1:1의 크기로 구축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으며, 설계 작업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보다 나은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