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건축, 포용과 조율의 커뮤니케이션

건축가 김정임 ④

뉴(NEW)사옥, 사진_신경섭
누디트 서울숲, 사진_신경섭
하우스 오프 레퓨즈, 사진_신경섭
하우스 오프 레퓨즈, 사진_신경섭
애월 펼쳐진 집 스케치
애월 펼쳐진 집, 사진_신경섭
양천 책쉼터, 사진_신경섭
본격적으로 프로젝트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요. (New)사옥은 빽빽한 논현동 건물 사이에서 뒤로 물러나 있고 선큰 위를 브리지처럼 지나가게 했어요. 왜 이런 접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금액 제안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해 진행한 프로젝트였는데, 두 개 안을 만들었어요. 하나는 영화사니까 뭔가 시사회 같은 것도 하고, 공적인 기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선큰가든을 조금 개방적인 형태로 만들어서 시사회나 기자회견을 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Public Space)으로 활용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의뢰인이 시사회는 보통 외부의 규모가 큰 시사회장을 빌려서 하니, 이곳은 구성원들만의 독립적인 생활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들만의 세상’ 같은 느낌으로 건물을 디자인했어요.
전면도로 폭이 4m밖에 안 되는데, 도로가 경사져 있어요. 그래서 높은 쪽에 1층 레벨을 두고 브리지로 진입하게 하고, 낮은 쪽에는 지하 선큰가든(Sunken Garden)을 두었어요. 낮은 쪽에 두다 보니 조금만 내려가면 지하가 될 수 있는 구조예요.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첫 번째는 이 건물이 위치한 좁은 도로에 여유 공간이 전혀 없고 전면도로의 폭이 좁다는 점을 고려했어요. 논현동은 이미 많이 개발된 상태라, 여유 공간이 전혀 없어요. 이 건물이 지어지고 나서 보행자들이 그 골목이 좋아졌다고 느끼길 바랐어요.
이를 위해 대지의 규모에 비해 꽤 큰 10m☓10m 정도의 선큰가든(Sunken Garden)을 만들었어요. 나무가 밑에서 자라오르면 보행로의 환경도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도로에서 건물의 1층 부분을 필로티(Piloti)로 처리해서 보행 공간을 조금 확장시키자는 목표가 있었어요.
두 번째로는 선큰가든을 브리지(Bridge)를 넘어가듯이 설계하고 싶었어요. 의뢰인도 자신들만의 공간을 원하셨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길보다는 브리지로 건너야만 갈 수 있는 느낌을 주고자 했어요. 그래서 로비에 이르기까지 계속 미묘하게 지형에 따라 올라가도록 설계했어요. 로비 공간에 들어가서는 살짝 바닥을 낮춰서, 앉았을 때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높이가 거의 맞도록 했어요. 작지만 레벨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저층부를 디자인하려고 했죠.
 
아무래도 영화사 사옥이니 사옥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요청이 있었을 것 같아요.
영화사 사옥으로서 어떤 아이덴티티를 만들어줄까 고민했는데, 이면도로변에 있어서 멀리서 건물의 전반적인 형태를 조망할 수 있는 대지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대표님께 이 건물을 형태적으로 접근해서 외장에 돈을 쓰기보다는, 눈높이(eye level)에서 좋은 느낌을 주는데 비용을 들이는 게 더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건물의 입면에는 알루미늄 아노다이징(aluminum anodizing)이라는 꽤 비싼 재료를 사용했어요.
3mm 통판을 사용했는데, 옛날 필름 색상 같은 브론즈(Bronze) 느낌이에요. 영화가 24 프레임(Frame)의 미학이듯, 네모난 창들을 오피스 공간에 내면서 프레임으로 구성했어요. 건물 전체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이도록요. 안에서 바깥 도시 풍경을 볼 때도 프레임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색상과 프레임으로 구성된 방식으로 영화라는 예술에 대해 인지하게끔 하고자 했죠.
 
오피스 브랜딩 프로젝트와 비교해, 건축까지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 사옥에서는 무엇을 고민하셨나요?
대형 오피스 공간을 다뤄본 것은 큰 도움이 됐어요. 뉴(NEW)사옥의 경우 강남의 큰 건물 한 개 층을 임대해서 사용하다가, 지하부터 꼭대기까지 자신들의 건물을 사용한다는 것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많이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임대 빌딩에서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다른 임대사 구성원들을 보게 되지만, 여기서는 회사 구성원들과 마주치게 돼요. 그라운드 레벨(Ground Level)부터 하늘 테라스(Terrace)까지 자신들만 쓴다는 장점을 십분 느낄 수 있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사옥이니까 연관 부서들끼리는 보이드(void) 공간에 면해서 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1층과 2층 사이, 3층과 4층 사이, 5층과 6층 사이 두 개 층마다 보이드를 두었어요. 7층은 일조권 때문에 뒤로 물러난(setback) 덕분에 테라스가 생겨서 사옥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이 되었어요. 각 층이 방화 구획으로 완전히 막히는 것이 아니라, 단면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많이 생각했어요.
건물이 독립된 오브젝트(Object)로 느껴지기보다는 주변 건물이나 환경과 어우러지기를 원해요. 그래서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시선이 입체적으로 교차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어요. 건물은 오똑하지만, 1층 회의실이 ㄱ자 배치로 되어 있어요. 건폐율을 그곳에 사용한 거죠. 논현동은 의외로 레벨 차가 많은 지역이라 뒷집의 지면이 높고 옹벽이 가든 쪽으로 드러나 있어요. 그 옹벽 앞에 1층짜리 회의실 매스(Mass)를 두어서, 그 위에 테라스를 사용할 수 있게 했어요. 그라운드 레벨부터 단을 이루며 올라가는 식으로 설계했죠. 사람들이 선큰가든 레벨에 섰을 때 에워싸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주변 건물과 전체적으로 관계를 엮고자 했어요.
1, 2층에서는 로비와 회의실, 선큰(Sunken)도 보여서 구성원들끼리 시선이 교차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어요. 그렇게 서로 관찰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내부 커뮤니티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오피스 공간의 접근 방식에서 다른 부분도 있으셨나요?
SK 같은 곳은 한 층이 매우 넓었지만, 뉴(NEW)사옥은 한 층이 그렇게 넓지 않아요. 내부가 약 11.5m에 12m 정도 되는 오피스 공간인데, 기둥 없이 구조를 해결하려고 구조적으로 많이 고려했어요. 오피스 공간은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는 게 가장 좋은 상태라고 생각해요. 사용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게 레이아웃을 할 수 있기 때문에요.
또, 이곳은 사선 제한이 있어서 층고를 높게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구조 자체가 인테리어 요소가 되도록 디자인했어요. 예를 들어 열린 천장(Open Ceiling)으로 했을 때 구조보가 콘크리트 루버(Concrete Louver)처럼 보이도록요.
 
누디트 서울숲은 또 다른 프로그램을 가진 프로젝트예요. 사옥과 임대 오피스 공간이 섞여 있는데요.
이곳은 네오밸류(Neo Value)라는 시행사가 의뢰인이었어요. 오피스 6개 층 중 3개 층을 시행사에서 사용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사옥처럼 여겨져, 임대 오피스와 달리 설계에서 신경쓸 게 많았던 기억이 있어요.
 
누디트 서울숲은 규모가 꽤 커 보이는데, 어떻게 진행하게 되셨나요?
회사 차원에서도 큰 규모였어요. 정확하진 않지만, 성수동의 지역적 특성을 살리는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같아요. 대형 설계사무소가 아니라 아틀리에(Atelier) 규모의 건축가 네 명을 지명해서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을 통해 저희가 선정되었어요.
먼저 성수동의 특성은 날것들이 그대로 충돌하여 섞여 있는 혼성적 매력에 있다고 보았어요. 하이브리드와 다양성의 공존을 키워드로 해서 계획을 진행하였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의 특징이 입면에 날것 그대로 표출되도록 했어요.

공모에서 요청했던 조건들과 소장님이 제안하셨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조건은 최대 볼륨을 확보하는 것이었어요. 지하 1층과 지상 1, 2, 3층은 근린생활시설(상가)로 계획하고, 4, 5층에는 지상 주차장을 넣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나머지 층은 임대 오피스로, 지하에는 주차장을 넣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사선 제한은 없었지만, 최고 높이 제한이 있었어요.
먼저 자주식 램프를 사용해 주차장을 진입하게 제안했어요. 땅이 약 500평이라 지하 자주식 주차장을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땅의 형태가 부정형이라 지하로 들어가는 램프를 만들기 어려웠어요. 자주식 램프는 사용자에게 훨씬 편리하고, 주차 처리 속도도 빠르지요. 하지만 저희도 실시 설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주차 램프의 길이를 확보하기 위해 구조를 특별하게 설계해야 했어요.
두 번째는 땅의 형태에 주목했어요. 모자 모양으로 생겨서 전면 길이가 넓다는 것은 큰 강점이에요. 그래서 네모나게 건물을 올리기보다 다른 접근을 했어요. 모자의 챙에 해당하는 부분은 대지 폭이 7m밖에 안 되어 3m 전면 공지를 제외하면 건물 폭을 3m밖에 못 짓는 상황이었지만, 전면을 최대한 활용하여 가로형 상가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상업적으로 유리하죠. 시행사는 개발 후 자체 브랜드를 통해 건물을 지속해서 운영하고 활성화하는 데 강점이 있는 곳이에요. 건폐율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전략이기도 했어요.
의뢰인이 사옥처럼 3개 층을 사용한다고 해서 지상 주차장에 대한 아이디어도 제안했어요. 평일에는 오피스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주말에는 성수동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비어있는 주차장에서 플리마켓(flea market)이나 다양한 이벤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제안했어요. 이를 위해 주차장 층과 오피스를 연결하여 3개 층 정도 근린생활시설(근생)을 설계했어요.
주차장으로 공간이 끊어지지 않도록, 오피스 공간 일부에 상업 공간을 넣어 상업 공간이 주차장을 통해 저층부 상업 공간까지 연결되도록 제안했어요. 이 구성은 실제로 구현되었고, 차별화되는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그 외 제안은 실제 안에서 구현되지 않아서 아쉬운 것도 있어요.
 
복합적인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고, 입면을 확장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디벨로퍼(Developer)가 주도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이 우리 같은 아틀리에와 잘 맞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어요. 시행사는 최대 이윤과 상업적 가치라는 기본 목표가 분명해요. 또한, 프로젝트 완료 시간과 공사비에 유연성이 없어요.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해 펀드(fund)로 진행되기 때문에 프로젝트 초기 계획에서 설정한 숫자는 변경할 수 없어요.
계획을 지키는 것은 맞지만, 코로나 등의 이유로 공사비가 상승하기도 했고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유연성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건축가로서 목표했던 것들을 일부 포기하며 맞출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 조직은 규모가 작은데 PF 사업은 명확한 마감(deadline)이 있고 그러다 보니 이런 규모의 PF 사업은 조직력이 있는 회사가 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에 테크캡슐의 영상 기록으로 소개된 '하우스 오브 레퓨즈(House of Refuge)'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프로젝트의 배경을 소개해 주세요.
‘애월 펼쳐진 집’이라는 제주도의 작은 스테이와 식당이 있는 건물을 진행했어요. 그 스테이에 하우스 오브 레퓨즈의 의뢰인들이 방문했는데, 뮤지션과 아티스트가 있는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송 캠프(Song Camp)'라는 것을 진행하더라고요. 아티스트들이 1~2 주 동안 스테이(Stay)에 머물며 작곡하는 프로그램이에요.
그분들은 제주도에서 다양한 예술적 활동을 할만한 빈 땅을 찾고 있었는데, 우연히 지금 구조물을 발견하신 거예요. 2000년에 골조만 만들어진 상태로 20년이 넘은 상태였죠. 처음 대지를 방문했을 때 굉장한 아우라를 느꼈어요. 일반적인 철근 콘크리트(RC) 슬래브와 기둥으로 이루어진 구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때가 묻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자연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 상황 자체가 굉장히 멋있었어요.
의뢰인들과 일을 시작하면서 예산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최소한의 면적만 마감하여 사용하는 방향으로 제안했어요. 그분들도 면적이 많이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공사비도 절약할 수 있겠다고 말씀드렸죠.

2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셨는데, 원래 용도를 아시나요?
2000년에 최초 허가는 목욕탕(스파)으로 받았어요. 지하에 목욕탕이 있었고, 1층과 2층이 있는 구조였어요. 2006년에 다른 분이 사서 일반 음식점으로 설계 변경 허가를 받았지만, 골조 그대로 방치되었어요. 의뢰인은 지하 공간을 콘서트나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1층에는 카페, 2층에는 식당을 넣을 가능성을 제시했어요. 나머지는 자유롭게 설계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을 때 건축가로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손볼 것인지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데,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가장 걱정했던 것은, 건물이 가진 오래된 시간의 흔적과 아우라의 훼손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였어요. 잘못 손대서 건물이 이상해질까 봐 끝까지 노심초사했죠. 기존에 묻어 있는 때를 어느 정도 벗겨내야 하는데, 그 수위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두 번째로는 이곳이 상업시설인 만큼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게 되는데, 저는 전시보다 콘서트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어요. 콘서트장은 사람들이 여러 시간대에 들어오지만, 대규모 인원이 일시에 나가게 되잖아요. 어떻게 대규모 인원이 원활하게 드나들 수 있게 할 것인가, 그 동선 처리가 중요한 문제였죠. 세 번째로는 건물의 이미지를 살리면서 부분적으로만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었어요. 처음에 이 건물에 왔을 때 골조(Construction Frame)가 먼저 보이는 상태였기 때문에, 마감할 때 골조를 둘러싸는 방식이 아니라 골조가 먼저 드러나고 사용 공간은 그 안에 삽입된 것처럼 보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형적으로는 건물을 최대한 손대지 않은 것처럼 방향을 잡았어요. 기존 공간이 지하층, 1층, 2층으로 단순히 쌓여 있었다면, 동선 처리를 하면서 중간중간에 보이드(Void) 공간을 만들어서 1층에 있는 사람이 지하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상상할 수 있도록 했어요. 예를 들어, 1층의 바에서 술을 마시면서 지하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우리는 오감을 사용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몸은 그곳에 없더라도 청각적으로 들리거나 시각적으로 보이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요소들을 잘 섞어놓는 것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두 군데에 보이드 공간을 만들어 설계했습니다.

기존의 골조(Structural Frame)만 있다고 하더라도, 그 형식 체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어떤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프레임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덮개(Envelope)를 씌워 내부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생각했어요. 일반적으로는 기둥이 있으면 그 기둥이 있는 지점에서 표면을 만드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프레임이 드러나야 해서, 기둥을 피해 가면서 공간을 설계했어요. 예를 들어, 카페 공간을 만들 때도 기둥이 드러나게 하고, 그 사이를 휘감으면서 설계했어요. 프레임을 독립적인 객체로 만들어 사람들이 볼 때 콘크리트 프레임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다음에 유리 표면을 느끼도록요.
 
구조와 표피를 분리하셨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두 개의 켜(Layer)를 분리해서 설계하려고 했어요. 프레임은 그대로 두고,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전략적으로 어디를 뚫을지 고민했어요. 이런 접근은 서울스퀘어(Seoul Square) 프로젝트 때부터 생각했던 부분이에요. 한번은 판교 가는 길에 새로운 도로가 생기면서 제가 있는 지점이 혼란스러워진 경험이 있어요. 사용 경로를 바꾸면 사람들이 공간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사람들이 이용하는 동선의 패턴을 바꾸면 공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우스 오브 레퓨즈에서도 마찬가지로, 건물로 접근하는 경로를 완전히 다르게 설계했어요. 주차장 위치도 바꾸고, 허가 도면상이지만 건물로 접근하는 경로를 새롭게 뒤집어 설계했죠. 공연장 접근 방식도 바꿨어요. 1층으로 들어와서 지하로 내려가는 대신, 진입구에서 바로 홀처럼 만들어 공연장으로 내려가도록 했어요. 건물을 이용하는 시퀀스(sequence)를 다르게 해보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편이에요.
 
시간의 흔적이 깊이를 만드는 공간을 다룰 때 어려운 부분도 있으실 듯합니다.
요즘에는 산업 유산을 리모델링해서 레트로 감성을 주는 공간들이 많아요. 그런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 참고했던 이미지가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가 설계한 스리랑카의 헤리턴스 칸달라마 호텔이었어요. 그 호텔은 콘크리트 구조물과 식물이 완전히 혼연일체가 된 곳이에요.
제주도 프로젝트도 6월에 방문했을 때 덩굴이 슬라브와 기둥을 감고 올라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 그 모습을 지키고 싶었지만, 장비와 공사팀이 들어오면서 어쩔 수 없이 걷어낼 수밖에 없었어요. 중앙부에 원래 있던 이상한 박공 형태의 입구 구조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중앙정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원래 슬래브가 약간 곡선형이어서, 그것을 대칭으로 만들어 뾰족한 타원(Pointed Oval) 형태로 철골 구조를 세웠어요. 그곳에 식물을 심어서 콘크리트 프레임과 식물이 혼연일체가 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제주도가 몇 개월이면 식물이 무성해지는 걸 알고 있거든요.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가 설계한 스리랑카의 호텔: 헤리턴스 칸달라마(Heritance Kandalama. 이 호텔은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며, 주변 환경과 건축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폐허에 자연을 끌어오신 거네요.
20년 넘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화가 그대로 진행된 구조물이었어요. 요즘 '리와일딩(Rewilding)'이라는 개념도 있지만, 그 구조물은 야생화가 다시 진행된 상태의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느낌을 줬어요. 그 느낌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2~3년 정도 지나면 저희가 원했던 이미지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애월 펼쳐진 집'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어요. 스테이지만 집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요. 출발점과 배경을 여쭤봐도 될까요?
생활하는 집이라기보다는 스테이(Stay) 개념이었어요. 바닷가와 마을이 만나는 경계에 있었죠. 처음 대지에 갔을 때 스케치한 것이 그대로 완성되어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죠.
땅이 독특한 부정형이었어요. 건물을 앉히면서 건물 자체의 형태보다 외부 공간을 바라보는 건물의 모습에 중점을 두었어요. 대지 오른쪽에 해수욕장이 있고, 왼쪽에는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용암 해안(Lava Coast)이 있었어요. 주로 해수욕장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이 이용할 것으로 보았고요. 시커먼 돌로 이루어진 해변은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한적하지만 아름다워서 그 바닷가를 바라볼 수 있는 외부 공간을 만들었어요. 또 뒤쪽에 있는 금성리 마을에서 이 집을 바라볼 때의 관계를 고려했어요.
그래서 건물을 앉히기보다는 세 개의 외부 공간을 먼저 배치하고, 땅의 경계선과 외부 공간 사이에 건물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도록 했어요. 이런 배치가 굉장히 적절해 보였어요. 해수욕장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그 공간이 환대하는 정원(Garden)이 되고, 용암 해변을 바라보는 쪽은 건물에 들어온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외부 공간이 되었어요. 금성리 마을 쪽에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앞마당 같은 외부 공간이 생겼어요.
이렇게 세 가지 성격의 외부 공간을 만들고, 그 주변에 건물을 배치했어요. 양천 책쉼터도 같은 전략을 사용했어요. 두 프로젝트 모두 설계할 때 매우 편안했어요. 완공 후 사람들이 아주 좋아해 주셨어요. 설계할 때 느꼈던 편안함이 그곳에 머무르는 분들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요.
 
그 편안함이라는 게 대지에 개입하거나 대응하는 소장님의 태도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도심의 꽉 찬 용적률이나 건폐율로 게임을 하는 프로젝트와 달리 주변 상황을 반영하여 대응하는 건축을 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으셨나요?
우선 만드는 사람의 자아(ego)나 욕심 없이 진행된 프로젝트였어요. 자본의 힘을 최대화(Maximize)해서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없어요. 양천 책쉼터도 공공 프로젝트였고 공원이었기 때문에 비슷했어요. 애월 펼쳐진 집도 의뢰인이 400평까지 지을 수 있는 땅이었지만, 150평만 지으면 된다고 하셨어요. 용적률을 다 사용하지 않았고, 상업적 의도가 없는 프로젝트였어요. 이런 점들이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아요.
 
건축 프로세스에서는 어떤 차이점이 있었을까요?
일을 하면 할수록 전문가 서비스에 대해 생각해요. ‘돈 값’을 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일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아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좋은 서비스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애월 펼쳐진 집이나 하우스 오브 레퓨즈, 두 프로젝트 모두 의뢰인 쪽에서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았고, 소통이 잘 되었어요. 의뢰인과 생각이 일치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마음이 편했어요. 소설로 치자면 갈등 구조 없이 좋은 사람만 나오는 드라마나 소설 같은 느낌이었어요. 어쩌면 이게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양천 책쉼터도 공원의 나무를 배려 하거나,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벽을 따라가게 한 점이 인상적이에요. 건물이 배경이 되어 이용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만드는 방식은 소장님의 건축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양천 책쉼터에서 그 생각이 더 강화된 것 같아요. 스스로 깨닫게 된 부분도 있었고요. 그곳은 공원이기 때문에 대지 경계가 없는 사이트였어요. 건물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에 대해 도시공원녹지과분들과 공원을 한 바퀴 돌며 결정했어요. 책쉼터는 처음에 숲속 도서관(Forest Library)이라는 이름이었는데, 도서관은 어른들뿐만 아니라 어린이들도 많이 오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기존 야외 음악당을 개조한 어린이 놀이터 옆에 배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어요. 마침 다른 곳에 비해 나무가 많이 없었고, 어린나무가 많아서 이식하기 좋다고 하셨어요.
보통 도시 안에서 설계할 때는 대지 경계, 건폐율, 용적률 같은 제약 조건으로 형태가 많이 결정되는데, 이곳은 그런 제약이 없어서 출발점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했어요. 수형이 예쁜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그 나무를 그 자리에 두고 싶었어요. 어린나무들 외에 큰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었는데, 이 나무들도 이식하기 쉽지 않아서 그 자리에 두기로 했어요.
공사비가 여유롭지 않아서 기존 어린이 놀이터와 유아들을 위한 잔디밭의 선형을 유지하면서 건물을 배치하려고 했어요. 건물을 네모나게 배치하면 잔디밭의 선형을 침범하게 되니까, 부대 토목 공사(Auxiliary Civil Engineering Work)와 포장 공사(Paving Work)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최소화하려고요. 건물에서 요구하는 사용성과도 잘 맞아떨어졌어요. 복잡한 기능이 필요했다면 어려웠겠지만, 쉼터라서 형태 안에서 해결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다른 땅에서도 기회가 될 때 취해볼 수 있는 방법론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큰 규모의 사업에서 작은 규모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다루시면서 건축이 사용자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 건축의 역할에 관한 생각을 여쭤보고 싶어요.
저도 일을 하면서 다양한 답을 찾아가고 있어요. 건축을 목적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없을 것 같은데, 저는 확실히 건축은 수단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서 역할을 한다고요. 기본적으로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정의가 있듯이, 저는 '깃들다'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우리의 삶이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죠. 요즘은 건축이 인간만을 위한 구조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래전에 강의할 때, 학생들과 함께 왕수(Wang Shu)의 건축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항저우에 왕수(Wang Shu)의 유명한 히스토리 뮤지엄(History Museum)이 있어요. 도시의 중심에 있고, 주변에 공원이 있긴 하지만 유리 마천루 건물들도 꽤 있는 지역이에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새 소리가 엄청나게 들리는 거였어요.
주변에 유리 건물들이 있는데, 왕수의 건물에서는 새들이 입면에서 날아오르더라고요. 옛날 벽돌과 기왓장 같은 것으로 만들어져서 공극이 많고, 표면이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해요. 그래서 새들이 그 건물 표면에 앉았다가 날아가고 다시 앉고 하면서 건물에 붙어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나 이탈리아(Italy)에서는 새들이 못 앉게 뾰족한 것을 심어놓잖아요, 오염되니까요. 왕수의 건물은 그렇지 않아서 인상적이었어요.
모더니즘 건축은 유리나 콘크리트로 마감되어 매끈한 표면을 가진 건물이 많아요. 이런 건물들은 새들이 부딪혀 죽는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이 깃들어 살 수 없게 해요. 덩굴 같은 식물도 잘 붙지 못해요. 인간만이 사는 건 너무 우울한 삶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식물이든 동물이든 다른 생명체들이 깃들어 함께 살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건축을 하고 싶어요. 도시 안에서는 사실 힘들지만, 건축을 하면서 점점 더 그런 것에 신경을 쓰게 돼요. 결국 건축은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가 깃들어 사는 공간인 거죠.
 
여성 건축가와 남성 건축가가 사용하는 디자인 언어가 다른데, 건축 비평에서 그 부분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고 표현하신 적이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용어를 개발했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워요. 지금은 많이 언급되는 용어이지만 대략 15년 전에도 '관계(relationship)', '역학(dynamics)', '태도'와 같은 용어들을 사용했던 것 같아요. 요즘 저는 '홀리스틱(holistic)'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우리말로는 정확히 번역하기 어려워요. 이 단어는 여러 감각을 활용하여 주변과 어우러진 총체적인 환경을 의미해요.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고, 저도 그 영향권 안에서 이런 용어들을 더 사용하게 된 것 같아요.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여성 건축가들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더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나 홀로 독야청청하는 건축이 아니라, 도시나 마을, 개별 건물 단위 안에서 건축을 구성하는 요소 간의 관계나 타자와의 관계성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건축하는 경향이 있어요.
 
외국에서는 상당히 활발하지만, 아직 한국 건축계에서 젠더 이슈는 시작도 못한 것 같아요. 다른 것보다 관점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그렇죠. 20여 년 전 KBS 1FM 클래식 방송에서 18세기 여성 조경가 거트루드 지킬(1843-1932)을 소개하는 걸 들었어요. 그 분이 등장하기 전 서양, 그러니까 유럽의 조경가는 모두 남성이었고 정원의 이슈는 수종과 수형이었다고 해요. 나무의 종류와 형태요. 프렌치 가든(French Garden)처럼 원예사들이 나무를 뾰족하게 깎는 것이 주된 방식이었죠. 거트루드 지킬은 정원의 이슈를 색채와 질감으로 바꾸었다고 해요. 이후로 지금까지 잉글리시 가든(English Garden)도 색채와 질감을 다루게 되었대요. 그분의 이야기가 제 마음에 확 와닿았어요. 1890년대에 활동하셨던 분인데, 여성의 시각에서 환경을 만드는 키워드를 완전히 바꾼 거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나 건축 환경은 역사적으로 남성들이 주로 만들어왔어요. 최근에 와서야 여성들의 참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거죠. 만약 처음부터 여성들이 50% 정도의 비율로 참여했다면, 우리의 도시는 완전히 달라졌을 거로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여성으로서 기존 건축가가 해왔던 것과 다른 관점으로 도시와 건축을 바라보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어요. 저도 거트루드 지킬처럼 기존에 다뤄지지 않았던 새로운 키워드를 다뤄보고 싶은 거예요. 매일매일 당면한 일들을 처리하며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그런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죠.
 
앞서 건축이라는 서비스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소장님의 경우 대형 자본이거나 기업 의뢰인이 많았습니다. 소장님만의 설득 기술이나 전략이 있으신가요?
예전과 생각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프레젠테이션의 기본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이 되려면, 상대방이 제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시뮬레이션해보고, 그들의 관점에서 많이 생각해 봐요. 건축가로서 제 입장뿐만 아니라, 의뢰인의 입장에서 이 프로젝트에서 무엇을 원할지를 많이 고민해요.
저는 이 과정을 영화감독과 많이 비교해요. 성공적이지 못한 프레젠테이션의 대부분은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영화는 촬영 분량이 어마어마하잖아요. 몇백 시간의 분량을 1시간 반이나 2시간으로 압축해야 하죠. 그래서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이 따로 있는 것처럼 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듣는 사람 처지에서는 힘들고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영화감독처럼 관객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요.
보통 작업할 때 투시도나 도면을 많이 만들지만, 그것을 모두 보여주려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요. 적절하게 덜어낼 줄 아는 것, 즉 더하기보다는 빼기를 잘하는 것이 프레젠테이션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건축가는 기본적으로 공공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사회적 가치나 공간의 중요성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좋은 건축은 공용 공간이 좋은 곳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공간의 중요한 가치가 사업의 이익과 부딪힐 때는 이 부분이 굉장히 어려워져요.
그 부분은 예전에 최문규 교수님의 세미나를 들으면서 많이 배웠어요. 공공 건축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하니까, 얼마든지 그런 이야기를 해도 되죠. 하지만 민간 건축을 할 때 그걸 내세우면 의뢰인 대부분은 "저 사람이 내 돈으로 자기만족을 위한 것을 하려는 건가?"라는 반응을 보여요. 그건 용납되기 어렵죠. 그래서 최문규 교수님은 “똑똑한 건축가들은 그런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사이사이에 숨겨 놓는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설득의 포인트를 찾는 것이 중요해요.
상업적인 건물의 경우, 이 건물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좋은 인상을 받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오게 되고, 그것이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말씀드려요. 결국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건물이 상업적 가치도 높아지는 거잖아요.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이 건물이 어떤 자세와 태도로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요.
사람들이 안팎으로 이 건물을 활발하게 많이 사용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밖에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오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동선 처리 등을 할 때 이런 점을 많이 고려해요.
 
소장님에게 공간 안이나 도시에서 교류가 중요한 테마이네요.
그렇죠. 사람들의 많은 움직임을 받아주고, 그 안에 머물게 하는 배경 같은 존재가 건축인 것 같아요. 저에게는 그래요.
 
초반에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경험해서인지 규모가 다른 프로젝트들을 유연하게 다루시는 것 같아요.
크고 작은 스케일을 오가는 것이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건축이 가구가 되거나, 가구가 건축이 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죠. 큰 건물이나 복잡한 건물을 구상할 때는 마치 교향곡(Symphony)을 작곡할 때처럼 재료나 요소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나, 피아노 솔로곡(Piano Solo)이 가지는 미학적 아름다움이 있듯이 작은 건물을 다루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생각할 거리가 있어요.
큰 프로젝트를 구상할 때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처럼 신이 나요. 여러 컨설턴트를 조율하면서 진행할 때, 복잡한 것을 조율해 맞출 때의 느낌이 있어요. 며칠 밤을 새워 전략을 세웠을 때 의뢰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 큰 희열을 느껴요. 프레젠테이션(PT)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얻는 기쁨은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이죠.
 
저는 건축가에게서 드러나는 비례(Proportion)와 스케일(Scale)에 관심이 많아요. 거기에서 개별 건축가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소장님이 선호하시는 공간감이나 공간이 궁금해요.
저도 비례와 스케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세계적인 건축가도 큰 규모의 건물을 설계할 때 스케일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거든요.
제가 선호하는 공간감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입체적이고 활동적인(Energetic) 공간이에요. 단면상에서 시선과 동선이 교차하는 입체적인 공간을 좋아하고, 그런 공간을 구현하려고 해요. 자유로운 동선도 선호해요. 건축가가 의도한 대로만 경험하거나, 정해준 길로만 걸어가야 하는 공간은 좋아하지 않아요. 사용자가 공간 안에서 선택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제가 설계한 건물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기뻐요. 작더라도 자유롭고 입체적이고 선택권이 많은 느낌을 주는 공간을 선호하죠. 우리 사무실도 가운데 원형 오브제(Object)의 회의실이 있는데, 그 벽을 따라 이쪽저쪽으로 자유롭게 다니는 게 좋아요.
또 하나는 자연과 더불어 혼자 고즈넉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에요. 제가 설계한 건물 사용자들에게도 그런 순간을 가질 수 있는 지점(Spot)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해요. 저도 그런 공간을 좋아하고요.
 
 
사무실 경영 역시 쉽지 않은 부분이죠. 최근 흑백 요리사 프로그램 덕분에 파인다이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요. 한 유튜브 채널에서 파인다이닝의 재무제표를 분석하며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는데 수익률은 5%도 나지 않는 이상한 구조라며 그저 응원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는 영상을 보았어요. 지금 아틀리에 건축이 바로 저 영역에 있구나 싶었죠. 숫자로 해결이 안 되는 영역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현금 흐름(cash flow)만 맞으면 계약 후에는 마음이 편해요. 어떤 프로젝트는 돈을 벌게 해주고, 어떤 건 마이너스가 되지만 의미를 찾을 수 있죠.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그런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모든 걸 잘할 수 없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항상 낼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전체적인 균형만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개별적으로 관리하려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올해 33년 차 건축가로서, 아틀리에 사무소를 운영하는 오너로서, 지금 치열하게 현장에서 버티고 있는 젊은 건축가들에게 지속 가능한 힘에 대해 해주실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사실 동료죠. 저도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작가 같은 직업이 부럽기도 해요. 혼자 노트북 하나 들고 세계를 떠돌며 일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 생활을 돌아보면, 저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힘의 원천이 되더라고요.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부담되면서도, 직원들 덕분에 힘을 내게 되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동료들이 무언가를 해놓아서 그 순간을 넘기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건축사무소 운영이 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건축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팀워크(teamwork)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매우 중요한 능력이에요.
저도 늘 고민하고,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사무실 운영이에요. 일을 수주하고 디자인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사무실 조직을 운영하고, 이 조직을 즐겁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은 건축가뿐만 아니라 모든 경영자가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상처를 받기도 해요. 영원한 숙제인 것 같아요. 그 숙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만이 지속 가능한 건축 설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외국 건축가들을 봐도 결국 그 조직을 잘 만들어 놓았을 때, 나이 들어서까지 성공적으로 건축을 할 수 있는 거죠.
 
건축계에서 소장님의 위치가 흥미롭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조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부터 일상의 영역에 이르는 작은 프로젝트까지 가로지르며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그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독특한 커리어(career)인 것 같아요.
특별히 경쟁력 있게 잘하는 것보다는 스펙트럼이 넓다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운도 좋았던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하면 그게 파생돼서 연결되는 게 흥미로웠어요. 자연스럽게 스펙트럼이 넓어졌어요. 경험상 제 삶이나 회사의 일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저 역시 건축가 김정임 소장님의 건축과 생각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으면 편히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의뢰를 받아 일하는 직업인으로서 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앞서 건축은 물질의 재배치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것이 건축에 대한 제 나름의 정의인데, 저는 건축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아름다움에 대해 앞으로 더 생각해 보려고 해요.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라는 미학자가 '아름다움은 배치의 문제'라고 말하거든요. 그 말은 1%를 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99%를 위한 공동체적이고 집단적인 가능성에 대한 아름다움이에요.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작업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아름다움과 예술도 그것을 예술로 보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요. 현대 예술로 오면서 그 개념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건축에서도 공공 프로젝트를 하면서 공공성에서의 아름다움에 대해 더 고민해 보고 싶어요. 건축을 하다 보면 95%까지는 만들 수 있지만, 나머지 5%를 위해서는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저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고,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구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건축에서 아름다움이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그 아름다움은 일부 계층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용자가 누릴 수 있는 건축적, 도시적 아름다움이어야 해요. 이를 구현하는 방법과 비용 문제까지 앞으로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고 싶어요.
 
진행 임진영 정리 윤솔희, 송주하 사진 텍스처온텍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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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HOUSE 디스이즈네버댓 오피스 빌딩 성수, 윤한진+한승재+한양규(푸하하하프렌즈) 10월 26일 10:00AM
SPECIAL 건축, 포용과 조율의 커뮤니케이션, 건축가 김정임 ④ 본격적으로 프로젝트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요. 뉴(New)사옥은 빽빽한 논현동 건물 사이에서 뒤로 물러나 있고 선큰 위를 브리지처럼 지나가게 했어요. 왜 이런 접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금액 제안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해 진행한 프로젝트였는데, 두 개 안을 만들었어요. 하나는 영화사니까 뭔가 시사회 같은 것도 하고, 공적인 기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선큰가든을 조금 개방적인 형태로 만들어서 시사회나 기자회견을 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Public Space)으로 활용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의뢰인이 시사회는 보통 외부의 규모가 큰 시사회장을 빌려서 하니, 이곳은 구성원들만의 독립적인 생활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들만의 세상’ 같은 느낌으로 건물을 디자인했어요. 전면도로 폭이 4m밖에 안 되는데, 도로가 경사져 있어요. 그래서 높은 쪽에 1층 레벨을 두고 브리지로 진입하게 하고, 낮은 쪽에는 지하 선큰가든(Sunken Garden)을 두었어요. 낮은 쪽에 두다 보니 조금만 내려가면 지하가 될 수 있는 구조예요.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첫 번째는 이 건물이 위치한 좁은 도로에 여유 공간이 전혀 없고 전면도로의 폭이 좁다는 점을 고려했어요. 논현동은 이미 많이 개발된 상태라, 여유 공간이 전혀 없어요. 이 건물이 지어지고 나서 보행자들이 그 골목이 좋아졌다고 느끼길 바랐어요. 이를 위해 대지의 규모에 비해 꽤 큰 10m☓10m 정도의 선큰가든(Sunken Garden)을 만들었어요. 나무가 밑에서 자라오르면 보행로의 환경도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도로에서 건물의 1층 부분을 필로티(Piloti)로 처리해서 보행 공간을 조금 확장시키자는 목표가 있었어요. 두 번째로는 선큰가든을 브리지(Bridge)를 넘어가듯이 설계하고 싶었어요. 의뢰인도 자신들만의 공간을 원하셨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길보다는 브리지로 건너야만 갈 수 있는 느낌을 주고자 했어요. 그래서 로비에 이르기까지 계속 미묘하게 지형에 따라 올라가도록 설계했어요. 로비 공간에 들어가서는 살짝 바닥을 낮춰서, 앉았을 때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높이가 거의 맞도록 했어요. 작지만 레벨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저층부를 디자인하려고 했죠.   아무래도 영화사 사옥이니 사옥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요청이 있었을 것 같아요. 영화사 사옥으로서 어떤 아이덴티티를 만들어줄까 고민했는데, 이면도로변에 있어서 멀리서 건물의 전반적인 형태를 조망할 수 있는 대지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대표님께 이 건물을 형태적으로 접근해서 외장에 돈을 쓰기보다는, 눈높이(eye level)에서 좋은 느낌을 주는데 비용을 들이는 게 더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건물의 입면에는 알루미늄 아노다이징(aluminum anodizing)이라는 꽤 비싼 재료를 사용했어요. 3mm 통판을 사용했는데, 옛날 필름 색상 같은 브론즈(Bronze) 느낌이에요. 영화가 24 프레임(Frame)의 미학이듯, 네모난 창들을 오피스 공간에 내면서 프레임으로 구성했어요. 건물 전체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이도록요. 안에서 바깥 도시 풍경을 볼 때도 프레임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색상과 프레임으로 구성된 방식으로 영화라는 예술에 대해 인지하게끔 하고자 했죠.   오피스 브랜딩 프로젝트와 비교해, 건축까지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 사옥에서는 무엇을 고민하셨나요? 대형 오피스 공간을 다뤄본 것은 큰 도움이 됐어요. 뉴(NEW)사옥의 경우 강남의 큰 건물 한 개 층을 임대해서 사용하다가, 지하부터 꼭대기까지 자신들의 건물을 사용한다는 것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많이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임대 빌딩에서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다른 임대사 구성원들을 보게 되지만, 여기서는 회사 구성원들과 마주치게 돼요. 그라운드 레벨(Ground Level)부터 하늘 테라스(Terrace)까지 자신들만 쓴다는 장점을 십분 느낄 수 있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사옥이니까 연관 부서들끼리는 보이드(void) 공간에 면해서 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1층과 2층 사이, 3층과 4층 사이, 5층과 6층 사이 두 개 층마다 보이드를 두었어요. 7층은 일조권 때문에 뒤로 물러난(setback) 덕분에 테라스가 생겨서 사옥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이 되었어요. 각 층이 방화 구획으로 완전히 막히는 것이 아니라, 단면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많이 생각했어요. 건물이 독립된 오브젝트(Object)로 느껴지기보다는 주변 건물이나 환경과 어우러지기를 원해요. 그래서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시선이 입체적으로 교차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어요. 건물은 오똑하지만, 1층 회의실이 ㄱ자 배치로 되어 있어요. 건폐율을 그곳에 사용한 거죠. 논현동은 의외로 레벨 차가 많은 지역이라 뒷집의 지면이 높고 옹벽이 가든 쪽으로 드러나 있어요. 그 옹벽 앞에 1층짜리 회의실 매스(Mass)를 두어서, 그 위에 테라스를 사용할 수 있게 했어요. 그라운드 레벨부터 단을 이루며 올라가는 식으로 설계했죠. 사람들이 선큰가든 레벨에 섰을 때 에워싸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주변 건물과 전체적으로 관계를 엮고자 했어요. 1, 2층에서는 로비와 회의실, 선큰(Sunken)도 보여서 구성원들끼리 시선이 교차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어요. 그렇게 서로 관찰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내부 커뮤니티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오피스 공간의 접근 방식에서 다른 부분도 있으셨나요? SK 같은 곳은 한 층이 매우 넓었지만, 뉴(NEW)사옥은 한 층이 그렇게 넓지 않아요. 내부가 약 11.5m에 12m 정도 되는 오피스 공간인데, 기둥 없이 구조를 해결하려고 구조적으로 많이 고려했어요. 오피스 공간은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는 게 가장 좋은 상태라고 생각해요. 사용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게 레이아웃을 할 수 있기 때문에요. 또, 이곳은 사선 제한이 있어서 층고를 높게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구조 자체가 인테리어 요소가 되도록 디자인했어요. 예를 들어 열린 천장(Open Ceiling)으로 했을 때 구조보가 콘크리트 루버(Concrete Louver)처럼 보이도록요.   누디트 서울숲은 또 다른 프로그램을 가진 프로젝트예요. 사옥과 임대 오피스 공간이 섞여 있는데요. 이곳은 네오밸류(Neo Value)라는 시행사가 의뢰인이었어요. 오피스 6개 층 중 3개 층을 시행사에서 사용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사옥처럼 여겨져, 임대 오피스와 달리 설계에서 신경쓸 게 많았던 기억이 있어요.   누디트 서울숲은 규모가 꽤 커 보이는데, 어떻게 진행하게 되셨나요? 회사 차원에서도 큰 규모였어요. 정확하진 않지만, 성수동의 지역적 특성을 살리는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같아요. 대형 설계사무소가 아니라 아틀리에(Atelier) 규모의 건축가 네 명을 지명해서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을 통해 저희가 선정되었어요. 먼저 성수동의 특성은 날것들이 그대로 충돌하여 섞여 있는 혼성적 매력에 있다고 보았어요. 하이브리드와 다양성의 공존을 키워드로 해서 계획을 진행하였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의 특징이 입면에 날것 그대로 표출되도록 했어요. 공모에서 요청했던 조건들과 소장님이 제안하셨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조건은 최대 볼륨을 확보하는 것이었어요. 지하 1층과 지상 1, 2, 3층은 근린생활시설(상가)로 계획하고, 4, 5층에는 지상 주차장을 넣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나머지 층은 임대 오피스로, 지하에는 주차장을 넣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사선 제한은 없었지만, 최고 높이 제한이 있었어요. 먼저 자주식 램프를 사용해 주차장을 진입하게 제안했어요. 땅이 약 500평이라 지하 자주식 주차장을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땅의 형태가 부정형이라 지하로 들어가는 램프를 만들기 어려웠어요. 자주식 램프는 사용자에게 훨씬 편리하고, 주차 처리 속도도 빠르지요. 하지만 저희도 실시 설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주차 램프의 길이를 확보하기 위해 구조를 특별하게 설계해야 했어요. 두 번째는 땅의 형태에 주목했어요. 모자 모양으로 생겨서 전면 길이가 넓다는 것은 큰 강점이에요. 그래서 네모나게 건물을 올리기보다 다른 접근을 했어요. 모자의 챙에 해당하는 부분은 대지 폭이 7m밖에 안 되어 3m 전면 공지를 제외하면 건물 폭을 3m밖에 못 짓는 상황이었지만, 전면을 최대한 활용하여 가로형 상가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상업적으로 유리하죠. 시행사는 개발 후 자체 브랜드를 통해 건물을 지속해서 운영하고 활성화하는 데 강점이 있는 곳이에요. 건폐율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전략이기도 했어요. 의뢰인이 사옥처럼 3개 층을 사용한다고 해서 지상 주차장에 대한 아이디어도 제안했어요. 평일에는 오피스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주말에는 성수동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비어있는 주차장에서 플리마켓(flea market)이나 다양한 이벤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제안했어요. 이를 위해 주차장 층과 오피스를 연결하여 3개 층 정도 근린생활시설(근생)을 설계했어요. 주차장으로 공간이 끊어지지 않도록, 오피스 공간 일부에 상업 공간을 넣어 상업 공간이 주차장을 통해 저층부 상업 공간까지 연결되도록 제안했어요. 이 구성은 실제로 구현되었고, 차별화되는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그 외 제안은 실제 안에서 구현되지 않아서 아쉬운 것도 있어요.   복합적인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고, 입면을 확장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디벨로퍼(Developer)가 주도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이 우리 같은 아틀리에와 잘 맞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어요. 시행사는 최대 이윤과 상업적 가치라는 기본 목표가 분명해요. 또한, 프로젝트 완료 시간과 공사비에 유연성이 없어요.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해 펀드(fund)로 진행되기 때문에 프로젝트 초기 계획에서 설정한 숫자는 변경할 수 없어요. 계획을 지키는 것은 맞지만, 코로나 등의 이유로 공사비가 상승하기도 했고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유연성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건축가로서 목표했던 것들을 일부 포기하며 맞출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 조직은 규모가 작은데 PF 사업은 명확한 마감(deadline)이 있고 그러다 보니 이런 규모의 PF 사업은 조직력이 있는 회사가 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에 테크캡슐의 영상 기록으로 소개된 '하우스 오브 레퓨즈(House of Refuge)'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프로젝트의 배경을 소개해 주세요. ‘애월 펼쳐진 집’이라는 제주도의 작은 스테이와 식당이 있는 건물을 진행했어요. 그 스테이에 하우스 오브 레퓨즈의 의뢰인들이 방문했는데, 뮤지션과 아티스트가 있는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송 캠프(Song Camp)'라는 것을 진행하더라고요. 아티스트들이 1~2 주 동안 스테이(Stay)에 머물며 작곡하는 프로그램이에요. 그분들은 제주도에서 다양한 예술적 활동을 할만한 빈 땅을 찾고 있었는데, 우연히 지금 구조물을 발견하신 거예요. 2000년에 골조만 만들어진 상태로 20년이 넘은 상태였죠. 처음 대지를 방문했을 때 굉장한 아우라를 느꼈어요. 일반적인 철근 콘크리트(RC) 슬래브와 기둥으로 이루어진 구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때가 묻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자연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 상황 자체가 굉장히 멋있었어요. 의뢰인들과 일을 시작하면서 예산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최소한의 면적만 마감하여 사용하는 방향으로 제안했어요. 그분들도 면적이 많이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공사비도 절약할 수 있겠다고 말씀드렸죠. 2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셨는데, 원래 용도를 아시나요? 2000년에 최초 허가는 목욕탕(스파)으로 받았어요. 지하에 목욕탕이 있었고, 1층과 2층이 있는 구조였어요. 2006년에 다른 분이 사서 일반 음식점으로 설계 변경 허가를 받았지만, 골조 그대로 방치되었어요. 의뢰인은 지하 공간을 콘서트나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1층에는 카페, 2층에는 식당을 넣을 가능성을 제시했어요. 나머지는 자유롭게 설계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을 때 건축가로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손볼 것인지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데,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가장 걱정했던 것은, 건물이 가진 오래된 시간의 흔적과 아우라의 훼손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였어요. 잘못 손대서 건물이 이상해질까 봐 끝까지 노심초사했죠. 기존에 묻어 있는 때를 어느 정도 벗겨내야 하는데, 그 수위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두 번째로는 이곳이 상업시설인 만큼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게 되는데, 저는 전시보다 콘서트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어요. 콘서트장은 사람들이 여러 시간대에 들어오지만, 대규모 인원이 일시에 나가게 되잖아요. 어떻게 대규모 인원이 원활하게 드나들 수 있게 할 것인가, 그 동선 처리가 중요한 문제였죠. 세 번째로는 건물의 이미지를 살리면서 부분적으로만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었어요. 처음에 이 건물에 왔을 때 골조(Construction Frame)가 먼저 보이는 상태였기 때문에, 마감할 때 골조를 둘러싸는 방식이 아니라 골조가 먼저 드러나고 사용 공간은 그 안에 삽입된 것처럼 보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형적으로는 건물을 최대한 손대지 않은 것처럼 방향을 잡았어요. 기존 공간이 지하층, 1층, 2층으로 단순히 쌓여 있었다면, 동선 처리를 하면서 중간중간에 보이드(Void) 공간을 만들어서 1층에 있는 사람이 지하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상상할 수 있도록 했어요. 예를 들어, 1층의 바에서 술을 마시면서 지하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우리는 오감을 사용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몸은 그곳에 없더라도 청각적으로 들리거나 시각적으로 보이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요소들을 잘 섞어놓는 것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두 군데에 보이드 공간을 만들어 설계했습니다. 기존의 골조(Structural Frame)만 있다고 하더라도, 그 형식 체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어떤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프레임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덮개(Envelope)를 씌워 내부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생각했어요. 일반적으로는 기둥이 있으면 그 기둥이 있는 지점에서 표면을 만드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프레임이 드러나야 해서, 기둥을 피해 가면서 공간을 설계했어요. 예를 들어, 카페 공간을 만들 때도 기둥이 드러나게 하고, 그 사이를 휘감으면서 설계했어요. 프레임을 독립적인 객체로 만들어 사람들이 볼 때 콘크리트 프레임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다음에 유리 표면을 느끼도록요.   구조와 표피를 분리하셨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두 개의 켜(Layer)를 분리해서 설계하려고 했어요. 프레임은 그대로 두고,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전략적으로 어디를 뚫을지 고민했어요. 이런 접근은 서울스퀘어(Seoul Square) 프로젝트 때부터 생각했던 부분이에요. 한번은 판교 가는 길에 새로운 도로가 생기면서 제가 있는 지점이 혼란스러워진 경험이 있어요. 사용 경로를 바꾸면 사람들이 공간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사람들이 이용하는 동선의 패턴을 바꾸면 공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우스 오브 레퓨즈에서도 마찬가지로, 건물로 접근하는 경로를 완전히 다르게 설계했어요. 주차장 위치도 바꾸고, 허가 도면상이지만 건물로 접근하는 경로를 새롭게 뒤집어 설계했죠. 공연장 접근 방식도 바꿨어요. 1층으로 들어와서 지하로 내려가는 대신, 진입구에서 바로 홀처럼 만들어 공연장으로 내려가도록 했어요. 건물을 이용하는 시퀀스(sequence)를 다르게 해보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편이에요.   시간의 흔적이 깊이를 만드는 공간을 다룰 때 어려운 부분도 있으실 듯합니다. 요즘에는 산업 유산을 리모델링해서 레트로 감성을 주는 공간들이 많아요. 그런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 참고했던 이미지가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가 설계한 스리랑카의 헤리턴스 칸달라마 호텔이었어요. 그 호텔은 콘크리트 구조물과 식물이 완전히 혼연일체가 된 곳이에요. 제주도 프로젝트도 6월에 방문했을 때 덩굴이 슬라브와 기둥을 감고 올라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 그 모습을 지키고 싶었지만, 장비와 공사팀이 들어오면서 어쩔 수 없이 걷어낼 수밖에 없었어요. 중앙부에 원래 있던 이상한 박공 형태의 입구 구조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중앙정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원래 슬래브가 약간 곡선형이어서, 그것을 대칭으로 만들어 뾰족한 타원(Pointed Oval) 형태로 철골 구조를 세웠어요. 그곳에 식물을 심어서 콘크리트 프레임과 식물이 혼연일체가 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제주도가 몇 개월이면 식물이 무성해지는 걸 알고 있거든요.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가 설계한 스리랑카의 호텔: 헤리턴스 칸달라마(Heritance Kandalama. 이 호텔은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며, 주변 환경과 건축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폐허에 자연을 끌어오신 거네요. 20년 넘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화가 그대로 진행된 구조물이었어요. 요즘 '리와일딩(Rewilding)'이라는 개념도 있지만, 그 구조물은 야생화가 다시 진행된 상태의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느낌을 줬어요. 그 느낌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2~3년 정도 지나면 저희가 원했던 이미지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애월 펼쳐진 집'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어요. 스테이지만 집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요. 출발점과 배경을 여쭤봐도 될까요? 생활하는 집이라기보다는 스테이(Stay) 개념이었어요. 바닷가와 마을이 만나는 경계에 있었죠. 처음 대지에 갔을 때 스케치한 것이 그대로 완성되어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죠. 땅이 독특한 부정형이었어요. 건물을 앉히면서 건물 자체의 형태보다 외부 공간을 바라보는 건물의 모습에 중점을 두었어요. 대지 오른쪽에 해수욕장이 있고, 왼쪽에는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용암 해안(Lava Coast)이 있었어요. 주로 해수욕장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이 이용할 것으로 보았고요. 시커먼 돌로 이루어진 해변은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한적하지만 아름다워서 그 바닷가를 바라볼 수 있는 외부 공간을 만들었어요. 또 뒤쪽에 있는 금성리 마을에서 이 집을 바라볼 때의 관계를 고려했어요. 그래서 건물을 앉히기보다는 세 개의 외부 공간을 먼저 배치하고, 땅의 경계선과 외부 공간 사이에 건물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도록 했어요. 이런 배치가 굉장히 적절해 보였어요. 해수욕장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그 공간이 환대하는 정원(Garden)이 되고, 용암 해변을 바라보는 쪽은 건물에 들어온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외부 공간이 되었어요. 금성리 마을 쪽에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앞마당 같은 외부 공간이 생겼어요. 이렇게 세 가지 성격의 외부 공간을 만들고, 그 주변에 건물을 배치했어요. 양천 책쉼터도 같은 전략을 사용했어요. 두 프로젝트 모두 설계할 때 매우 편안했어요. 완공 후 사람들이 아주 좋아해 주셨어요. 설계할 때 느꼈던 편안함이 그곳에 머무르는 분들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요.   그 편안함이라는 게 대지에 개입하거나 대응하는 소장님의 태도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도심의 꽉 찬 용적률이나 건폐율로 게임을 하는 프로젝트와 달리 주변 상황을 반영하여 대응하는 건축을 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으셨나요? 우선 만드는 사람의 자아(ego)나 욕심 없이 진행된 프로젝트였어요. 자본의 힘을 최대화(Maximize)해서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없어요. 양천 책쉼터도 공공 프로젝트였고 공원이었기 때문에 비슷했어요. 애월 펼쳐진 집도 의뢰인이 400평까지 지을 수 있는 땅이었지만, 150평만 지으면 된다고 하셨어요. 용적률을 다 사용하지 않았고, 상업적 의도가 없는 프로젝트였어요. 이런 점들이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아요.   건축 프로세스에서는 어떤 차이점이 있었을까요? 일을 하면 할수록 전문가 서비스에 대해 생각해요. ‘돈 값’을 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일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아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좋은 서비스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애월 펼쳐진 집이나 하우스 오브 레퓨즈, 두 프로젝트 모두 의뢰인 쪽에서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았고, 소통이 잘 되었어요. 의뢰인과 생각이 일치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마음이 편했어요. 소설로 치자면 갈등 구조 없이 좋은 사람만 나오는 드라마나 소설 같은 느낌이었어요. 어쩌면 이게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양천 책쉼터도 공원의 나무를 배려 하거나,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벽을 따라가게 한 점이 인상적이에요. 건물이 배경이 되어 이용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만드는 방식은 소장님의 건축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양천 책쉼터에서 그 생각이 더 강화된 것 같아요. 스스로 깨닫게 된 부분도 있었고요. 그곳은 공원이기 때문에 대지 경계가 없는 사이트였어요. 건물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에 대해 도시공원녹지과분들과 공원을 한 바퀴 돌며 결정했어요. 책쉼터는 처음에 숲속 도서관(Forest Library)이라는 이름이었는데, 도서관은 어른들뿐만 아니라 어린이들도 많이 오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기존 야외 음악당을 개조한 어린이 놀이터 옆에 배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어요. 마침 다른 곳에 비해 나무가 많이 없었고, 어린나무가 많아서 이식하기 좋다고 하셨어요. 보통 도시 안에서 설계할 때는 대지 경계, 건폐율, 용적률 같은 제약 조건으로 형태가 많이 결정되는데, 이곳은 그런 제약이 없어서 출발점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했어요. 수형이 예쁜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그 나무를 그 자리에 두고 싶었어요. 어린나무들 외에 큰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었는데, 이 나무들도 이식하기 쉽지 않아서 그 자리에 두기로 했어요. 공사비가 여유롭지 않아서 기존 어린이 놀이터와 유아들을 위한 잔디밭의 선형을 유지하면서 건물을 배치하려고 했어요. 건물을 네모나게 배치하면 잔디밭의 선형을 침범하게 되니까, 부대 토목 공사(Auxiliary Civil Engineering Work)와 포장 공사(Paving Work)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최소화하려고요. 건물에서 요구하는 사용성과도 잘 맞아떨어졌어요. 복잡한 기능이 필요했다면 어려웠겠지만, 쉼터라서 형태 안에서 해결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다른 땅에서도 기회가 될 때 취해볼 수 있는 방법론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큰 규모의 사업에서 작은 규모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다루시면서 건축이 사용자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 건축의 역할에 관한 생각을 여쭤보고 싶어요. 저도 일을 하면서 다양한 답을 찾아가고 있어요. 건축을 목적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없을 것 같은데, 저는 확실히 건축은 수단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서 역할을 한다고요. 기본적으로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정의가 있듯이, 저는 '깃들다'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우리의 삶이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죠. 요즘은 건축이 인간만을 위한 구조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래전에 강의할 때, 학생들과 함께 왕수(Wang Shu)의 건축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항저우에 왕수(Wang Shu)의 유명한 히스토리 뮤지엄(History Museum)이 있어요. 도시의 중심에 있고, 주변에 공원이 있긴 하지만 유리 마천루 건물들도 꽤 있는 지역이에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새 소리가 엄청나게 들리는 거였어요. 주변에 유리 건물들이 있는데, 왕수의 건물에서는 새들이 입면에서 날아오르더라고요. 옛날 벽돌과 기왓장 같은 것으로 만들어져서 공극이 많고, 표면이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해요. 그래서 새들이 그 건물 표면에 앉았다가 날아가고 다시 앉고 하면서 건물에 붙어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나 이탈리아(Italy)에서는 새들이 못 앉게 뾰족한 것을 심어놓잖아요, 오염되니까요. 왕수의 건물은 그렇지 않아서 인상적이었어요. 모더니즘 건축은 유리나 콘크리트로 마감되어 매끈한 표면을 가진 건물이 많아요. 이런 건물들은 새들이 부딪혀 죽는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이 깃들어 살 수 없게 해요. 덩굴 같은 식물도 잘 붙지 못해요. 인간만이 사는 건 너무 우울한 삶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식물이든 동물이든 다른 생명체들이 깃들어 함께 살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건축을 하고 싶어요. 도시 안에서는 사실 힘들지만, 건축을 하면서 점점 더 그런 것에 신경을 쓰게 돼요. 결국 건축은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가 깃들어 사는 공간인 거죠.   여성 건축가와 남성 건축가가 사용하는 디자인 언어가 다른데, 건축 비평에서 그 부분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고 표현하신 적이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용어를 개발했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워요. 지금은 많이 언급되는 용어이지만 대략 15년 전에도 '관계(relationship)', '역학(dynamics)', '태도'와 같은 용어들을 사용했던 것 같아요. 요즘 저는 '홀리스틱(holistic)'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우리말로는 정확히 번역하기 어려워요. 이 단어는 여러 감각을 활용하여 주변과 어우러진 총체적인 환경을 의미해요.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고, 저도 그 영향권 안에서 이런 용어들을 더 사용하게 된 것 같아요.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여성 건축가들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더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나 홀로 독야청청하는 건축이 아니라, 도시나 마을, 개별 건물 단위 안에서 건축을 구성하는 요소 간의 관계나 타자와의 관계성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건축하는 경향이 있어요.   외국에서는 상당히 활발하지만, 아직 한국 건축계에서 젠더 이슈는 시작도 못한 것 같아요. 다른 것보다 관점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그렇죠. 20여 년 전 KBS 1FM 클래식 방송에서 18세기 여성 조경가 거트루드 지킬(1843-1932)을 소개하는 걸 들었어요. 그 분이 등장하기 전 서양, 그러니까 유럽의 조경가는 모두 남성이었고 정원의 이슈는 수종과 수형이었다고 해요. 나무의 종류와 형태요. 프렌치 가든(French Garden)처럼 원예사들이 나무를 뾰족하게 깎는 것이 주된 방식이었죠. 거트루드 지킬은 정원의 이슈를 색채와 질감으로 바꾸었다고 해요. 이후로 지금까지 잉글리시 가든(English Garden)도 색채와 질감을 다루게 되었대요. 그분의 이야기가 제 마음에 확 와닿았어요. 1890년대에 활동하셨던 분인데, 여성의 시각에서 환경을 만드는 키워드를 완전히 바꾼 거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나 건축 환경은 역사적으로 남성들이 주로 만들어왔어요. 최근에 와서야 여성들의 참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거죠. 만약 처음부터 여성들이 50% 정도의 비율로 참여했다면, 우리의 도시는 완전히 달라졌을 거로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여성으로서 기존 건축가가 해왔던 것과 다른 관점으로 도시와 건축을 바라보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어요. 저도 거트루드 지킬처럼 기존에 다뤄지지 않았던 새로운 키워드를 다뤄보고 싶은 거예요. 매일매일 당면한 일들을 처리하며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그런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죠.   앞서 건축이라는 서비스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소장님의 경우 대형 자본이거나 기업 의뢰인이 많았습니다. 소장님만의 설득 기술이나 전략이 있으신가요? 예전과 생각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프레젠테이션의 기본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이 되려면, 상대방이 제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시뮬레이션해보고, 그들의 관점에서 많이 생각해 봐요. 건축가로서 제 입장뿐만 아니라, 의뢰인의 입장에서 이 프로젝트에서 무엇을 원할지를 많이 고민해요. 저는 이 과정을 영화감독과 많이 비교해요. 성공적이지 못한 프레젠테이션의 대부분은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영화는 촬영 분량이 어마어마하잖아요. 몇백 시간의 분량을 1시간 반이나 2시간으로 압축해야 하죠. 그래서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이 따로 있는 것처럼 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듣는 사람 처지에서는 힘들고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영화감독처럼 관객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요. 보통 작업할 때 투시도나 도면을 많이 만들지만, 그것을 모두 보여주려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요. 적절하게 덜어낼 줄 아는 것, 즉 더하기보다는 빼기를 잘하는 것이 프레젠테이션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건축가는 기본적으로 공공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사회적 가치나 공간의 중요성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좋은 건축은 공용 공간이 좋은 곳’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공간의 중요한 가치가 사업의 이익과 부딪힐 때는 이 부분이 굉장히 어려워져요. 그 부분은 예전에 최문규 교수님의 세미나를 들으면서 많이 배웠어요. 공공 건축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하니까, 얼마든지 그런 이야기를 해도 되죠. 하지만 민간 건축을 할 때 그걸 내세우면 의뢰인 대부분은 "저 사람이 내 돈으로 자기만족을 위한 것을 하려는 건가?"라는 반응을 보여요. 그건 용납되기 어렵죠. 그래서 최문규 교수님은 “똑똑한 건축가들은 그런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사이사이에 숨겨 놓는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설득의 포인트를 찾는 것이 중요해요. 상업적인 건물의 경우, 이 건물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좋은 인상을 받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오게 되고, 그것이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말씀드려요. 결국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건물이 상업적 가치도 높아지는 거잖아요.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이 건물이 어떤 자세와 태도로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요. 사람들이 안팎으로 이 건물을 활발하게 많이 사용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밖에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오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동선 처리 등을 할 때 이런 점을 많이 고려해요.   소장님에게 공간 안이나 도시에서 교류가 중요한 테마이네요. 그렇죠. 사람들의 많은 움직임을 받아주고, 그 안에 머물게 하는 배경 같은 존재가 건축인 것 같아요. 저에게는 그래요.   초반에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경험해서인지 규모가 다른 프로젝트들을 유연하게 다루시는 것 같아요. 크고 작은 스케일을 오가는 것이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건축이 가구가 되거나, 가구가 건축이 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죠. 큰 건물이나 복잡한 건물을 구상할 때는 마치 교향곡(Symphony)을 작곡할 때처럼 재료나 요소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나, 피아노 솔로곡(Piano Solo)이 가지는 미학적 아름다움이 있듯이 작은 건물을 다루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생각할 거리가 있어요. 큰 프로젝트를 구상할 때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처럼 신이 나요. 여러 컨설턴트를 조율하면서 진행할 때, 복잡한 것을 조율해 맞출 때의 느낌이 있어요. 며칠 밤을 새워 전략을 세웠을 때 의뢰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 큰 희열을 느껴요. 프레젠테이션(PT)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얻는 기쁨은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이죠.   저는 건축가에게서 드러나는 비례(Proportion)와 스케일(Scale)에 관심이 많아요. 거기에서 개별 건축가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소장님이 선호하시는 공간감이나 공간이 궁금해요. 저도 비례와 스케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세계적인 건축가도 큰 규모의 건물을 설계할 때 스케일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거든요. 제가 선호하는 공간감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입체적이고 활동적인(Energetic) 공간이에요. 단면상에서 시선과 동선이 교차하는 입체적인 공간을 좋아하고, 그런 공간을 구현하려고 해요. 자유로운 동선도 선호해요. 건축가가 의도한 대로만 경험하거나, 정해준 길로만 걸어가야 하는 공간은 좋아하지 않아요. 사용자가 공간 안에서 선택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제가 설계한 건물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기뻐요. 작더라도 자유롭고 입체적이고 선택권이 많은 느낌을 주는 공간을 선호하죠. 우리 사무실도 가운데 원형 오브제(Object)의 회의실이 있는데, 그 벽을 따라 이쪽저쪽으로 자유롭게 다니는 게 좋아요. 또 하나는 자연과 더불어 혼자 고즈넉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에요. 제가 설계한 건물 사용자들에게도 그런 순간을 가질 수 있는 지점(Spot)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해요. 저도 그런 공간을 좋아하고요.     사무실 경영 역시 쉽지 않은 부분이죠. 최근 흑백 요리사 프로그램 덕분에 파인다이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요. 한 유튜브 채널에서 파인다이닝의 재무제표를 분석하며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는데 수익률은 5%도 나지 않는 이상한 구조라며 그저 응원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는 영상을 보았어요. 지금 아틀리에 건축이 바로 저 영역에 있구나 싶었죠. 숫자로 해결이 안 되는 영역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현금 흐름(cash flow)만 맞으면 계약 후에는 마음이 편해요. 어떤 프로젝트는 돈을 벌게 해주고, 어떤 건 마이너스가 되지만 의미를 찾을 수 있죠.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그런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모든 걸 잘할 수 없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항상 낼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전체적인 균형만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개별적으로 관리하려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올해 33년 차 건축가로서, 아틀리에 사무소를 운영하는 오너로서, 지금 치열하게 현장에서 버티고 있는 젊은 건축가들에게 지속 가능한 힘에 대해 해주실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사실 동료죠. 저도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작가 같은 직업이 부럽기도 해요. 혼자 노트북 하나 들고 세계를 떠돌며 일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 생활을 돌아보면, 저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힘의 원천이 되더라고요.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부담되면서도, 직원들 덕분에 힘을 내게 되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동료들이 무언가를 해놓아서 그 순간을 넘기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건축사무소 운영이 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건축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팀워크(teamwork)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매우 중요한 능력이에요. 저도 늘 고민하고,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사무실 운영이에요. 일을 수주하고 디자인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사무실 조직을 운영하고, 이 조직을 즐겁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은 건축가뿐만 아니라 모든 경영자가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상처를 받기도 해요. 영원한 숙제인 것 같아요. 그 숙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만이 지속 가능한 건축 설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외국 건축가들을 봐도 결국 그 조직을 잘 만들어 놓았을 때, 나이 들어서까지 성공적으로 건축을 할 수 있는 거죠.   건축계에서 소장님의 위치가 흥미롭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조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부터 일상의 영역에 이르는 작은 프로젝트까지 가로지르며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그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독특한 커리어(career)인 것 같아요. 특별히 경쟁력 있게 잘하는 것보다는 스펙트럼이 넓다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운도 좋았던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하면 그게 파생돼서 연결되는 게 흥미로웠어요. 자연스럽게 스펙트럼이 넓어졌어요. 경험상 제 삶이나 회사의 일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저 역시 건축가 김정임 소장님의 건축과 생각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으면 편히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의뢰를 받아 일하는 직업인으로서 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앞서 건축은 물질의 재배치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것이 건축에 대한 제 나름의 정의인데, 저는 건축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아름다움에 대해 앞으로 더 생각해 보려고 해요.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라는 미학자가 '아름다움은 배치의 문제'라고 말하거든요. 그 말은 1%를 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99%를 위한 공동체적이고 집단적인 가능성에 대한 아름다움이에요.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작업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아름다움과 예술도 그것을 예술로 보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요. 현대 예술로 오면서 그 개념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건축에서도 공공 프로젝트를 하면서 공공성에서의 아름다움에 대해 더 고민해 보고 싶어요. 건축을 하다 보면 95%까지는 만들 수 있지만, 나머지 5%를 위해서는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저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고,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구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건축에서 아름다움이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그 아름다움은 일부 계층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용자가 누릴 수 있는 건축적, 도시적 아름다움이어야 해요. 이를 구현하는 방법과 비용 문제까지 앞으로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고 싶어요.   진행 임진영 정리 윤솔희, 송주하 사진 텍스처온텍스처  
SPECIAL 건축, 포용과 조율의 커뮤니케이션, 건축가 김정임 ③ 오피스 프로젝트는 소장님의 포트폴리오에서 한 카테고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독립 후 첫 프로젝트가 삼성전자 오피스 공간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였는데, 어떻게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나요? 제일기획 프로젝트 때문에 일을 수주하게 된 걸로 알고 있어요. 오피스 프로젝트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입해서 직접 의사결정자들과 만나고, 프레젠테이션도 자주 해야 해요. 처음부터 일반적인 오피스 인테리어(Office Interior)가 아니라 기업 철학(Corporate Philosophy)이나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가 녹아든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마케팅했어요. 그 때문에 대표님들과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진행해야 해서 공력이 많이 들어요. 패브릭이나 팬트레이(Pen tray) 폭으로도 컴플레인이 있을 수 있어서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한두 프로젝트를 하고 나면 진이 빠져서 한동안은 돌아보지 않게 되죠.   제일기획 프로젝트는 아이아크(IAAC)에서 있을 때 맡아 독립하면서 일을 진행하신 건가요? 회사에 들어온 일을 맡았다기보다 제가 수주를 해서 진행했어요. 저의 사업 분야 같은 것이었죠. 어떻게 보면 그걸 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 거죠. 독립해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저의 성향과도 잘 맞고, 일도 재미있고, 설계비도 괜찮았기 때문에 건축과 오피스 플래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기를 원했어요. 일이 시작되면서는 브랜디드 오피스(Branded Office)로 진행했어요. 그래서 삼성전자의 경우 기업 로고(Logo)의 앵글(Angle), 형태, 색상 같은 것을 가지고 그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스토리 라인(Story Line)을 엮어주고 그것으로 디자인을 진행했어요.   초기 오피스 플래닝 영역은 가구 배치나 가구 디자인 영역에 가까웠는데요. 구글로 대표되는 재미(Fun)있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나 가구의 효율적인 배치, 활용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 것 같아요. 2010년 네이버 사옥 그린팩토리가 등장하면서 스토리텔링이 강화되었고요. 당시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차별화했는지 궁금합니다. 삼성전자 브랜디드 오피스 디자인은 2012년 겨울부터 2013년에 걸쳐서 했는데, 해외 사례를 많이 참조했어요. 겐슬러 리포트(Gensler Report)나 외국 회사들의 사례를 공부하며 스토리를 풀어나가야 했어요. 칼럼들을 보고 오피스 트렌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공부하면서 디자인을 시작했죠. 지금은 스토리텔링에 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지만, 그때는 한창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스퀘어 프로젝트에서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기 때문에 시작했는데, 로비 공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리서치할 때 곧 환승센터가 생긴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서, 환승센터가 생기면 차량 속도가 느려지고 횡단보도로 사람들이 광장과 연결되어 움직일 거로 생각했어요. 그 움직임의 에너지가 서울스퀘어의 로비와 서울역 광장(Plaza)을 연결하면서 연장된다고 보고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시작했어요. 예전 대우빌딩이 굉장히 엄격하고(Rigid) 남성적이며 권위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여성적이고 부드럽고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이미지로 바꾸고자 했어요. 그래서 곡선이라는 요소를 도입했죠. 또 서울스퀘어는 폭이 100m인데, 새로 신축하려면 10층 이상부터 폭이 50m를 넘지 못하도록 법이 바뀌었어요. 중앙우체국 같은 디자인이 나오게 된 배경이죠. 마케팅 포인트는 건물 3개쯤 합쳐진 정도로 한 층 바닥이 넓다는 장점이었어요. 보통 큰 회사들이 몇 개 층을 임대하는데, 층으로 나뉘면 소통이 어렵기 때문이에요. 기존 엘리베이터 코어가 3개로 나뉘어 있는데, 3개 건물의 발이 내려와 있는 도시의 광장 같은 것으로 해석했어요. 로비 천장을 하늘처럼 깊이(Depth)가 있는 공간을 표현해 보고 싶어서 구조 라인을 활용해 삼각형 패턴(Triangle Pattern)을 만들었어요. 이 패턴을 곳곳에 응용해서 벽면에 루버(Louver)로 디자인하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보면 이게 다 연결된 패턴이라는 느낌을 주게끔 공간을 스토리로 풀어갔어요.   제일기획 프로젝트에서도 처음에 로비 공모 설계를 할 때 약간의 스토리텔링을 했어요. '빙산의 일각(Tip of the Iceberg)'이 콘셉트였어요. 제일기획의 웹사이트를 보니 '아이디어 엔지니어링(Idea Engineering)'이라는 말을 강조하더라고요. 하나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엔지니어링하는 기술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신들의 본체는 위에서 일하는 공간이고, 이 로비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했어요. 로비에 빙산의 일각(Tip of the Iceberg)을 노출해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거죠. 당선된 이후에는 의뢰인의 요구가 바뀌어서 '천 개의 창'이라는 콘셉트로 다시 디자인했어요. 제일기획의 영문명이 'Cheil Communications'이니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직원 개개인이 대중과 소통하는 하나의 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천 개'라는 숫자는 들루즈(Deleuze)의 '천 개의 고원'에서 상징적으로 가져왔죠. 그래서 로비에 창이 많이 모여 있는 벽(Wall)을 만들고, 그들의 컬러 팔레트(Color Palette)에 빛이 흐르는 콘셉트를 제안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아이디어 생태계’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오피스를 디자인했어요. 이렇게 스토리와 공간을 엮어나가는 게 재미있었어요.   삼성전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는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다양한 구성원들이 상호작용하며 일하는 방식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당시 국제적인 오피스 트렌드는 집중과 소통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었어요. 예전에는 회사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책상에서 일하고, 위에서 시키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성실한 직원의 모습이었죠.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집단지성이 강조되기 시작했어요. 2010년대 초반에 이런 인식이 막 시작되었고, 협업과 소통을 통해 공동의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조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수직적인 조직이 아닌 수평적인 조직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 나올 때였죠. 우리는 이를 지원하기 위한 공간과 의사결정 방식을 고민했어요. 예전에는 부장이 가장 많은 알고, 그다음이 차장, 과장이었어요. 평사원은 시키는 일만 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평사원이 부장보다 더 많이 아는 분야도 있어요. 이를 클라우드처럼 접속해 함께 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죠. 지금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신선한 개념이었어요. 그래서 이런 조직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고민하며 공간을 설계했어요.   이후 SK D&D에서는 더 적극적인 오피스 플래닝이 진행된 것 같습니다. 개방형 오피스를 시작으로 제일기획, 삼성, 그리고 SK D&D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당시 한 기업에 예약 좌석제를 제안했는데, 책상을 없애면 애사심이 줄어들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2018년에 SK D&D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그분들이 이미 자율좌석제 개념을 알고 있었고, 이를 도입하는 데 긍정적이었어요. 그래서 사용 공간을 절약할 수 있었어요. 사흘 정도 현장을 관찰하고 조사했는데, SK D&D는 전문가들이 모인 조직이라 아침에는 사무실이 꽉 차 있다가 점심 이후에는 절반 이상 자리를 비우더라고요. 이를 활용해 부동산 임대료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모든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없고, 60%나 80%만 준비해도 된다는 데이터를 조사해(Survey) 제시했어요. 카페, 오픈 미팅 등 공용공간 비중을 늘려 다 왔을 때는 어디에든 앉을 수 있게 하고요. 건축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하는 일이지만, 오피스 플래닝 프로젝트는 의뢰가 오면 그때그때 재미있게 해보면서, 회사의 공간을 만들고, 조직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한 인터뷰에서 오피스 공간을 설명하며 덴마크 건축가 얀 겔(Jan Gehl)의 소프트 바운더리(soft boundary)에 대해서 언급하셨어요. 건축뿐만 아니라 오피스 공간에서도 공간 흐름에서 중간 영역을 만드는 걸 고민하신 것 같아요. 우면동 삼성 디자인 센터 때 많이 제안했던 것도 소프트 바운더리에 대한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피스 플래닝은 집중과 소통이 중요해요. 보통 오피스는 집중해서 일하는 워크스테이션(workstation) 공간과 공식 소통을 위한 회의실, 그 두 개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집단지성을 기대하려면 사람들이 친해지는 게 상당히 중요하죠. 회사의 자산에 암묵적 지식이라는 게 있어요. 서류나 회의록에 남겨진 게 아니라, 선배가 후배에게 "이렇게 일하면 더 좋아"라고 알려주는 것들이에요. 문제는 이게 관리가 안 되는 자산인 거예요. 결국 구성원들끼리 친해져야 돼요. 커피 한잔 마시면서 "너 요새 무슨 일 하니?", "이런 일을 하고 있어요”라고 하면 “그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좋아", 이런 소통이 업무 효율에 중요하다는 거죠. 예전엔 이런 부분이 관리자 레벨(Level)의 관리 대상이 아니었지만, 이제 직원들이 조금 더 우연한 만남을 자주 갖게 하고, 서로 자주 만나게 해서 그런 지식이 많이 교환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업무 공간 사이사이에 중간 영역이 있으면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잠깐 간식을 먹고, 회의도 할 수 있어요. 칸막이 오피스가 오픈오피스(open office)로 변하고, 아일랜드와 같은 중간 영역들이 중간중간에 배치되면서 일하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거예요. 우리 회사에 어떤 고민이 있는지, 경영상의 문제나 가능성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거죠. 예전에는 밀실에서 임원들끼리만 나누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일반 직원들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회사를 이해하고 내가 그 안에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돼요. 반면, 개방형 오피스는 소음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질 수 있어요. 이를 위해 자기만의 공간으로 잠깐 들어가 집중 업무를 하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어요. 옛날과 개념이 달라진 거죠. 저희도 기본적으로는 오픈오피스를 구성하고, 계속 업무 환경을 개발해 나갔어요. 가장 최근 프로젝트인 SK케미칼(Chemical) 같은 경우에는 오픈오피스지만 중간중간 작은 기능실 덩어리를 배치하여 시선을 차단해 줘서 조금 아늑한 느낌을 느낄 수 있게 했어요. 시선을 다 트는 것으로 시각적인 스트레스를 줄 수 있기 때문에요. 청각적으로는 열려 있죠. 코로나를 겪으면서 1인 집중실과 2~3인 정도가 모여서 할 수 있는 작은 회의실이나 화상 회의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어요. 요즘 줌 미팅을 많이 하니까 2인용 미팅실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시대가 변하면서 오피스에 대한 요구도 그때그때 수용하면서 많이 개발되었어요.   중간 영역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저희가 개발한 개념은 많이 언급하는 사사분면(quadrant)과 관련이 있어요. 'I'와 'We', 'Own'과 'Share‘가 키워드죠. 과거에는 “내('I')가 'Own'하는 내 워크스테이션”과 “우리('We')가 'Share'하는 회의실”, 이 두 가지 공간만으로 구성되어 있었죠. 하지만 이제 오피스를 하나의 생활 공간으로 보고, 이 4사분면을 잘 채워주는 균형 잡힌 디자인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해요.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요소를 채워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어요. 직원들 간의 세미나나 학습 프로그램도 지속해서 개발하고 있어요. 겐슬러 리포트에서 본 것처럼, 포커스(Focus) 업무 공간, 소셜라이즈(Socialize) 공간,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공간 등을 컬러 코드(Color Code)로 구분해 적절한 비율로 배치해요. 오피스 내에서 학습(Learn)이라는 주제가 매우 중요해서 학습(Learning) 공간도 포함되어 있어요. 이러한 공간들을 잘 조합하여 두 가지 큰 공간 사이에 중간 영역들을 만들어주고,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 콘셉트를 잡아 제안했어요.   오피스 브랜드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셨는데, 이 과정에서 무엇을 고민하셨나요? 물론 모든 분이 그렇지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인테리어를 감각적인 영역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 어떤 색을 칠할지 고민하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것들이 취향과 기호의 문제가 되어버리면 의사결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의사결정자가 "나는 핑크색이 싫은데"라고 말하면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인테리어를 접근하는 태도에 대해 고민하게 돼요. 지금도 의뢰가 들어올 때, 취향과 감각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공간이라면, 저는 거절해요. 저보다 훨씬 잘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저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간적으로 풀어내는 것에 집중해요. 단순히 공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문제를 느끼고 그 방향을 새롭게 혁신하고 싶거나, 새로운 업무수행 방식을 공간에 적용하고 싶어 하는 경우, 공간 전문가로서 그 아이디어를 공간에 구현하는 데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어 놓았어요. 일을 할 때는 이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고 최소 4개월 정도는 작업해야 한다고 설명하죠. 고객분들도 이 프로세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셔야 한다고요. 그런 조건으로 많은 일을 진행해 왔어요. 그 과정을 논리적인 프로세스로 만들어서 설득되면, 말미에 결정되는 취향과 감각의 문제는 의뢰인의 의견을 많이 수용할 수 있다고 봐요.   제일기획이나 삼성전자 프로젝트도 흥미롭지만, SK D&D에서 특히 선명한 색깔이 드러난 것 같아요. 어떤 제안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프레젠테이션에서 키워드를 제시했어요. 먼저 회사가 가진 키워드가 있어요. 디벨로퍼(developer)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발견해 내는 사람이라고 해요. 밸류 크리에이터(value creator) 같은 역할이죠. 또 조직 자체가 수평적이에요. 다른 회사에서 전문적 지식을 가진 분들이 이직해서 일하는 성격이 많더라고요. 당시엔 부동산뿐만 아니라 에너지 분야도 개발하고 있었어요. 굉장히 자율적이고 독립적이었죠. 처음부터 의뢰인은 자신들이 디벨로퍼이니 D&D 오피스 공간이 오피스 모델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만드는 거예요. 워크라이프(work-life)가 바뀌고 근무 환경과 업무 공간의 기능이 변하고, 개인도 변하는 상황을 고려했어요. 그래서 '오피스 얼라이브(Office Alive)'라는 개념을 정리해 제안했어요. 큰 공간으로 옮기면서 의뢰인이 고민했던 부분도 있어요. 잘 지어진 건물이었지만 중정이 있고, N동과 S동으로 나뉜 구조였어요. 각 공간에 문이 있어서 출입할 때 태그를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고요. 대표이사님은 ’중정이 무슨 한탄강도 아닌데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했어요.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어요. 3층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었는데, 직원이 더 늘어날 예정이라 4층 일부도 빌려 둔 상태였고요. 그 상황에서 자율적인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셔서 이걸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에 관해 고민했어요. 특히 건물에 방문했을 때 중정이라는 공간이 너무 적막했어요. 좀 더 활력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했죠. 입체적인 공간을 좋아하니 어떻게 하면 그런 공간을 만들어줄까 싶어서 소통하는 공간으로, 구성원 개인의 취향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제안했어요. 그게 오피스 얼라이브(Office Alive)였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간을 바꾸셨나요? 먼저 평면을 재배치하고 다양성을 구현하는 작업을 했어요. 1, 2층은 공용 공간이고, 3층부터 D&D 오피스, 그 위는 SK 가스 사업 부문이 썼었죠. 전체 도면을 살펴보니, 1, 2층과 4층의 화장실 위치가 달라서 2층에 있는 샤프트에서 배관 라인을 가져오면 화장실 위치를 바꿀 수 있었어요. 엘리베이터 코어에 화장실을 붙이고 원래 화장실이  있던 'ㅁ'자의 단변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공간(Attracter)을 두자고 생각했죠.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상황에 관한 판단으로 해법을 제시한 거죠. 우리가 중간 영역이라고 부르는 것들이에요. 의뢰인은 복도까지 활용해서 협업의 공간으로 만들 것을 요구했어요. 복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방에서 방으로 이동한다는 개념을 제안하고 기존 복도를 소통과 교류의 공간을 만들었어요. 우리가 중간 영역이라고 부르는 것들이에요.   자율 좌석제도 도입해서 시간제로 예약해 사용할 수 있게 했어요. 예상 구성원 210명 대비 83%를 확보하고, 예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핫데스크(Hot-desk)를 포함, 총 234석을 두어 추가적인 인원 변동에 대응할 수 있었죠. 디지털 환경이 발달해서 QR 코드를 찍어서 좌석을 쉽게 예약할 수 있는 앱도 개발되었고요. 공간이 예약 방식으로 바뀌면 내일 할 일을 생각하게 돼요. 자기 주도적으로 될 수 있죠 의뢰인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혼자 있고 싶은 걸 받아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기존의 규격화된 공간이 아니라 다이버스 모멘트(Diverse Moment)를 수용하는 공간을 제안했어요. 예약 좌석제의 지원시설들도 필요해요. 락커(Locker)나, 옷을 걸 수 있는 수납장(Closet) 같은 것들요.   자율 좌석제(Free Seating) 하는 김에 다양한 좌석을 만들고 업무에 맞게 골라서 쓰게 하는 게 더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옮겨 다니는 이유를 더 부여해 주자고요. 그 사람들의 업무를 분석해서 6가지 업무 모드(Work Mode)를 도출했어요. 개인이 혼자 집중해서 하는 것, 팀이 간단한 협의를 해가면서 같이 집중 업무를 하는 것, 만남과 회의를 하는 것, 협업과 미팅(Meeting), 일과 휴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 임원의 경우 새로운 영감을 받는 것 등등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기존 화장실이 있던 공용부에 계단식 좌석을 만들었어요. 의자를 놓으면 강사 자리를 중심으로 몇십 명이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게 했어요. 말 그대로 라운드 어바웃(Round About)을 만들어준 거예요. 기존 건물에서 너무 튀지 않도록 중정의 재료(Material)나 분위기를 일부 유지해서 한 건물이라는 느낌을 주고자 했어요. 그러고 나니 공간에 활력(Vitality)이 생겼어요. 사람들이 협업하면서 움직임이 많이 보였어요. 나중에 인원이 많아졌는데도 3층만 사용해 2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후 SK 가스와 SK케미칼 프로젝트까지 연속적으로 진행하면서 나름대로 논리의 틀을 짜서 설득해 나갔어요. SK의 최창원 부회장님이 SK 경제연구소를 같이 운영하시는데, 인문학적 소양이 높으셔서 이런 이야기들을 좋아하셨어요.   최근 여러 사옥에서 오피스 공간의 아이덴티티(Office Identity)가 인테리어 영역에서 건축 영역으로 확장된 걸 느끼고 있어요.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한 테크노플렉스(Technoplex)나 니켄세케이의 HD현대 사옥, 마곡지구에 있는 여러 R&D 사옥의 경우, 층간 구분 없이 열린 대규모 중심부가 등장하고 있어요. 층과 층 사이에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가 발생한다는 의미기도 하고, 층을 넘어서 강렬한 시각적, 공간적 확장을 경험하게 되어요. 노먼 포스터의 공간은 가보지 못했지만, 공간을 받아들이는 태도, 일하는 방식, 조직 문화가 영국과 다를 수 있어요. 사회가 바뀌면서 공간은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맞아요. 지금 세대들은 옛날처럼 일하지 않아요. 기존 오피스를 바꾸는 데도 여러 이슈가 있었어요. 예약 좌석제 같은 경우 임대 면적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경영진들이 구성원들에게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공간이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로 전달하는 거죠. 공간을 바꾸는 것은 좋은 인재를 채용하는 데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되기도 해요.   공간 구성뿐만 아니라 소프트한 장치(Soft Features)까지 많이 고려하고 계시는데요. 건축가로서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심리적인 요소까지 고려해서, 오피스 내의 위계나 조직 변화 등을 많이 고려하고 있어요. 앞서 말했듯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그런 과정을 진행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었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요구(Needs)뿐만 아니라 숨겨진 이야기들까지 고려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것이 흥미로워요.   사용자 리서치가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것을 다이내믹스(Dynamics)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단순히 공간적이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작동하는 다이내믹스죠. 어떤 경우, 의뢰인 쪽에서 공간의 분리와 위계를 원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섞어주고 싶어요. 그래서 단면상에서 섞이지 않는 듯하면서 섞이는 공간 콘셉트(Concept)로 디자인하기도 했어요. 초기부터 드러나지 않더라도 공간적으로 차별이나 차이를 섞어낼 수 있는 중간 영역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용자도 인지하지 못하는 애매모호한 부분들이죠. 일반인들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우리는 공간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게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요. 그리고 사회에 있는 갈등을 공간적으로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구성원의 인터뷰와 설문조사가 흥미로워요. 그 조직을 파악할 수 있는 강력한 방식인 것 같아요. 권위를 와해시키거나 반목과 질시를 덜 느끼게 하는 장치가 존재하지 않을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중간 영역에서 작용하지 않을까 기대하죠. 중간 영역과 모호한 부분들을 만들어주면 그곳에서 다양한 행위가 발생해요. 소프트 바운더리(Soft Boundary)는 이런 부분이에요. 공간 속에서 그런 걸 만들어주려고 많이 노력해 왔어요.   SK 가스 프로젝트에서는 디자인이 좀 더 강조된 것 같아요. 오픈오피스(Open Office)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에요. 보안이 중요하고 연구직이 많은 조직이라면, 그 조직 문화에 맞는 오피스를 만드는 게 중요하죠. 누구나 개방형 오피스를 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는데, SK 가스가 그런 경우였어요. *B2C가 아닌 *B2B 사업이에요. 가스 시설은 국가 보안시설 같아서 조직도 굉장히 엄격(Rigid)하더라고요. 자율 좌석제를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대표님은 층과 층을 오가는 자율 좌석제는 하지 않겠다고 하셨죠. 그래서 층마다 거의 비슷하게 설계되었고, 마지막 한 층만 조금 다른 프로그램이 들어갔어요. 보안이나 조직의 보수적인 성격이 중요한 경우에는 조직의 성격에 맞춰서 진행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SK 가스 프로젝트는 디자인적인 요소가 더 많이 반영되었어요. '우리가 무엇을 디자인할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의뢰인이 기존 구조를 뚫고 계단을 만들고 싶어 하셔서 계단 디자인에 큰 노력을 기울였어요. 부재 사이즈(Member Size)를 줄이기 위해 영국제 강재를 수입해서 사용했는데, 30% 정도 줄일 수 있었어요. 계단과 천장 디자인(Ceiling Design)에 많은 투자를 했어요. *"B2C"는"Business to Consumer"의 약자로, 기업이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 *"B2B"는"Business to Business"의 약자로, 기업이 다른 기업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   미적 완성도가 중요해진 프로젝트였네요. 오피스 플래닝을 반복하면서 고민도 있으셨나요? 개인적인 고민은 하나의 영역을 깊게 파면 경쟁력이 생길 것 같긴 한데, 저는 성향상 다양한 일을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 노인 요양시설, 오피스, 주택, 근린생활시설 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요. 직원들도 흥미롭다고 해요. 우리의 큰 장점이라고요. 대신 힘들다고 하죠. 매번 다른 일을 하고, 법규도 달라지니까요. 많은 설계회사가 다양한 일을 하지만, 우리는 노인 시설과 오피스 같은 조금 특별한 시설을 다루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완전히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되지 못하는 게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어떡하겠어요. 제가 그런 사람인 걸요.   여러 오피스를 진행하시면서 오피스 공간에 관한 생각도 깊어지셨을 것 같아요. 오피스 공간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지 정리된 생각이 있을까요? 오피스에서 중요한 것은 사용자 관점에서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라로 생각해요. 잘못하면 공급자 마인드로 접근하기 쉽거든요.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그 공간에 있는 특정한 한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해요.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이 그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때 어떤 공간이 있으면 좋을지를 더 많이 생각해요.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에요. 우면 디자인 센터 프로젝트를 할 때, 여러 디자이너나 임원분들을 만났어요. 그때 그분들이 일상은 너무 고달프지만, 로비 공간에 들어가면 근사하게 펼쳐져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또 매주 수요일마다 임원 회의를 위해 시제품을 준비해야 했는데, 극도의 긴장감이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울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했어요. 그 마음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런 공간을 꼭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임원들과의 대화가 아니라,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그분들의 고충을 이해하면서 그런 것을 받아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요. 집 안에서도 화장실, 방, 거실 등 다양한 공간이 있듯이, 업무 공간에도 우리의 상황이나 감정을 받아줄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경영진으로서는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있고, 비용과 직결되기 때문에 저도 쉽게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해요. 그런 여지(margin)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죠. 디자이너들은 경영자로부터 일을 받지만, 실제로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구성원들의 생활을 파악하고 잘 받아줄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 좋은 설계가 아닐지 생각해요.   소장님에게 사무실은 단지 일하는 공간이 아니네요. 그렇죠. 사는 공간이죠. 학교도 사무실도 우리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살아가는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요소를 받아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꿈담(Dream Talk) 프로젝트 이야기를 해볼게요. 초등학교 공간을 개선한 꿈담 프로젝트는 워낙 의미 있는 프로젝트인데요. 2017년부터 시작해 많은 건축가가 교육 공간의 한계를 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꿈담 프로젝트에 어떻게 참여하셨는지, 당시 고민했던 부분이 궁금해요. 학교 공간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제 아이들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참관 수업을 갔는데, 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처음 방문한 거잖아요. 가보니 거의 바뀐 게 없더라고요. 조금 더 깔끔해지고 교실의 밀도가 낮아진 정도였고, 큰 변화는 없었어요. 그동안 학교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건축가로서 그동안 뭘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서 오피스(office) 일을 하다 보니 학교와 오피스가 굉장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명이 함께 생산적인 지적 활동을 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집과는 다르잖아요. 학교를 개선하는 데 오피스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개소를 한 후 2013년쯤 교육청 공모전을 참여했어요. 점수표가 나중에 공개됐는데, 교육청에서 나오신 분이 우리 안에 대해 항목별로 ’양양양양‘을 주셨어요. 장벽이 높구나 싶었죠. 우리 새로운 공간을 제안했지만, 그분들은 관리 입장에서 본 것 같아요. 그러다 서울대 강의 중 김승회 교수님과 이야기하다가 서울시 교육청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셔서 너무 좋다고 했어요. 교육청에서 연락이 와서 20명 정도 건축가를 모아서 꿈담 프로젝트 총괄 역할을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엄청나게 일이 많았어요. 설계비는 수의계약 범위인 2천만 원 안에서 감리까지 하는 조건이라 책임감 있게 잘 해주실 분들을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첫 해 장영철, 신호섭 소장님 등 쟁쟁하신 분들을 모았어요. 설계비도 적은데 프로젝트를 잘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집이나 회사에 가까운 학교를 매칭시켜야겠다고 생각했죠.   학교에서 특별히 요청한 사항이 있었나요? 처음에는 학교에서 필요한 공간에 대한 요구사항이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분들도 이런 일이 처음이라 뭘 요구해야 할지 모르셨어요. 3월에 시작해서 6월 말까지 완료해야 했고, 조달청 발주 기간을 빼고 여름방학 동안 공사를 진행하려면 시간이 촉박했어요. 그래서 각 학교의 물리적 현황을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각자가 디자인한 내용을 공유하기로 했어요. 저는 학교라는 시설이 건축가의 예술혼을 불태우면서 자신만의 유니크(Unique)한 걸 만드는 시설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범용적으로 좋은 것을 개발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제공하기 위해, 디자인 아이디어를 공유하자고 제안했더니, 모두 동의했어요. 매달 서너 번 정도 모여 각자가 맡은 학교의 특수 상황이나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유했어요. 첫해에는 교육청 담당자와 학교, 건축가 사이에 많은 문제가 있었고 그걸 다 조정해야 했죠.   교육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간에 어떻게 담아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주로 1~2학년 교실을 대상으로 토탈디자인 개념으로 진행했어요. 교육청에서 준 지침이었고, 장학사님이 오셔서 요즘 초등학교 수업이 이렇게 진행된다고 설명해 주셨어요. 공간은 똑같았지만, 수업의 내용은 매우 바뀌었더라고요. 그냥 교실에 앉아서 수업받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기어다니고, 만들고, 몸으로 표현하고, 다양한 수업들이 진행되어서 그게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줬어요. 당시 선생님들도 건축가를 만난 게 처음이라, 기능적인 요구들만 있었어요. 라커룸이 너무 작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제가 맡았던 학교 같은 경우는 교실 배식을 하는데, 배식차(meal cart)가 복도에 굴러다니고 있어서 위험해 보였어요. 그걸 해결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어요. 그래서 교육 콘텐츠나 교육 방식이 바뀐 것에 대한 영감과 학교에서의 실질적인 요구를 종합해서, 건축가가 창의적으로 첫 해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건축가들끼리 공유했던 키워드들은 무엇이었나요? 각자 현장에 대응하는 방식이겠지만, 교육 공간에 대해서 제안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학교라는 공간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정서적, 신체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에요. 그런데 획일적인 공간밖에 없고, 관찰당하는 구조예요. 그때 사용자 참여 디자인(User Participatory Design)이라는 게 처음 나왔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림 그리기를 시켰더니, 비밀의 방 같은 것도 그리고 침대를 그리는 예도 있었어요. 아이들이 그 나이에 4~5시간을 앉아 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까 생각했어요. 어느 정도 숨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거죠. 선생님들도 그런 고충을 이야기했어요. 예를 들어 빠른 아이와 느린 아이들이 있는데 빨리 끝낸 아이들을 그 자리에 얌전히 앉혀두는 게 너무 힘들다는 거예요. 그럴 때 저기 가 있으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보려면 볼 수도 있고 아이들 입장에서도 적절히 차폐된 공간을 원했어요. 그런 중간 영역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했어요.   또 이상한 건 가장 뛰기 좋게 생긴 복도를 만들어놓고 뛰지 말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걸 깨주고 싶은 느낌이 있었어요. 교실과 복도 사이에 배식대를 만들기도 했어요. 작은 부분이지만,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공간을 사용하면서 교실 안과 밖이 사실은 딱딱한 경계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이런 게 소프트 바운더리(Soft Boundary)였죠.   말씀하신 것처럼 학교에서는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과 사회 분위기상 책임 소재에 대한 강박도 큽니다. 교육 공간이 관리 공간으로 인식되는 부분에서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그 부분이 가장 어려웠어요. 어떤 프로젝트는 부분 철거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었지만, 총괄하는 건축가로서 일하는 3년 동안 관계자분들을 교육하러 다녔어요. 교육청, 교장, 일반 교사 연수 등에 가서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했어요. 이제는 공급자 위주가 아니라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관리나 안전 문제가 정말로 그래야 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에 관성으로 받아들이는 건지, 정말 안전하지 않은 건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죠. 물론 안전은 중요해요. 요즘 학부모 민원도 많으니까 충분히 이해하죠. 하지만 안전은 사회 전체적으로 안전해져야 해요. 다른 사회 안전도보다 학교 공간의 안전도가 높으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어요.   교육과 디자인을 병행하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첫해에는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어요. 다음 해부터는 새로운 건축가분들이 오셨어요. 처음엔 20개였는데 그다음 해에 40여 프로젝트가, 그다음 해는 90여 개가 됐어요. 교장 선생님, 담당 교육청 직원, 건축가를 모아놓고 큰 강당에서 1차 연도의 시행착오도 이야기하고 어떻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할지 계속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요. 그게 발전해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Green Smart Future School)라는 개념이 생겼어요. 그 용어가 생기기 전에 시범 사업을 제가 맡았고, 그 결과물이 이후 사례로 활용되었어요. 교육 공간을 새롭게 만드는 데 나름 앞서 나가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앞서 사무 공간과 교육 공간을 비슷하다고 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에요. 사무 공간에서 개선하려는 부분과 교육 공간에서 바꾸고자 하는 부분이 맞닿아 있는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유사점은 조직이 사용하는 공간이라는 거예요. 사람들이 모여서 지적 활동을 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공간의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어요. 그래서 조직 내 개인이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어요. 그 개인들을 들여다보고 드러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아요. 인터뷰나 설문조사를 통해 사용자 의견을 수집했어요. 아이들, 선생님, 그리고 경우에 따라 학부모 설문조사까지 진행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림을 그려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고, 그들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했어요.   첫해 폭발적이었다고 하셨는데, ’꿈담 프로젝트’를 통해 크게 변화한 부분도 있었나요? 프로젝트가 끝나고 교육청 공무원들과 함께 힘들게 20개 학교를 다 돌았어요. 그때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교실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것이었어요. 선생님들의 표정도 좋아지셨죠. 처음에는 "우리가 수업하려면 이런 공간이 필요해요"라고 말씀을 못 하셨지만, 공간이 바뀌고 나니 “여기서 이런 수업을 하면 좋겠네"라는 아이디어가 생긴다는 거예요. 학부모님들도 와서 너무 좋아하시고, 학교 참여율도 굉장히 높아졌다고 해요. 어떻게 보면 교육의 3주체라고 하는 학생, 학부모, 교육자(선생님)들이 아이들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함께 대화하는 계기가 된 게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교육 공간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게 정말 중요하죠.   소장님의 대표 프로젝트인 원효초등학교도 인상적이에요. 세 번째 해에 한 프로젝트였어요. 꿈담 프로젝트로 알게 된 교장 선생님인데, 개방적이고 아이디어를 잘 받아들이시는 분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과감한 아이디어를 제안했어요. 교육청 공무원분들은 지금도 저를 만나면 원효초 이야기를 해요. 공간의 패러다임(paradigm) 자체를 바꾼 너무 좋은 사례라고요.   무엇을 바꾸고자 하셨나요? 그 공간의 특수성이 있었어요. 본동이 있고 1학년 교실이 별동에 지하 1층과 2층에 나뉘어 있었어요. 1층은 영어 회화 교실 같은 공동 공간으로 쓰였고, 지하 2층에는 돌봄 교실이 있었어요. 3개의 교실이 있었고요. 복도가 통과 동선이 아니어서 1학년들만 쓰는 공간이었죠. 선생님이 "저희도 다락방 같은 걸 만들고 싶어요"라고 하셔서 마지막 교실의 복도 앞을 그렇게 만들어도 좋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이 공간을 다른 반 아이들도 공유하면 좋겠다 싶었죠. 또 교실 안에 책걸상을 놓고도 여유 공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두 아이디어를 합쳐서 교실을 뒤로 밀어 보자고 했어요. 그리고 전체를 하나의 러닝 클러스터(Learning Cluster)라는 개념으로 제안한 거죠. 아이들이 개별적으로 놀던 걸 모여서 같이 놀게 하고, 다락방을 고려했던 곳을 넓혀서 2층짜리 작은 도서관 같은 걸 만들어줄 수 있겠더라고요. 개별 교실을 나열해서 통합 러닝 존(Learning Zone)으로 변환하고, 전체 러닝 존의 입구에만 문을 달아서 하나의 클러스터로 만들자고 했어요. 공유할 수 있게요. 이렇게 되면 모든 문을 열 수 있어요. 선생님들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이 공간에서는 만약 한 선생님이 구연동화를 하시면 그 반뿐만 아니라 다른 반 아이들도 함께할 수 있어요. 또 다른 선생님이 미술을 잘 하시면 모여서 미술 수업을 하고 다른 선생님은 보조역할을 할 수 있어요. 일종의 공유 경제인 거죠. 지붕을 만들어 공간적인 영역을 만들어주고, 바닥에는 패턴을 넣어서 바닥 놀이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책상도 디자인했어요. 2층은 상황이 달라서 똑같은 설계를 적용하고 싶지 않았어요. 교실이 2개 있는데, 복도와 가운데 공간을 같이 이용하게 해서 마무리했죠. 두 교실의 사이를 공유하게 만들어서 코너가 'ㄱ'자로 열리게 했어요. 여기에도 계단을 올라가서 벽을 막아 다락같이 만들어주고, 슬라이딩(sliding)으로 열 수 있게 벽을 만들었어요. 문을 닫으면 칠판이 되고, 접이식(folding)으로 열리고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해요. 선생님과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어요.   공간이 바뀐 후 반응은 어땠나요? 준공 후 막 방문했을 때 마침 중간 놀이 시간이었어요. 경계가 없으니까, 아이들이 막 뛰어다니면서 노는데, 그 시끄러움이 말도 못 했어요. 너무 시끄러워서 걱정했죠. 그런데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이 너무 행복해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한 선생님은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를 하고 계셨어요. 준공 후 3개월 후에 방문했더니 그 선생님이 저를 붙잡고 정말 고맙다고 하셨어요. 교사 생활 30여 년 동안 이렇게 아이들이 행복해하고 발표도 잘하는 경우가 없었다고요. 기존 학교 구조도 이렇게 바꿀 수 있구나 하면서 좋은 사례가 되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오피스나 꿈담 프로젝트는 오래 머무는 공간이에요. 이런 일상의 공간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오랜 시간 머무는 공간이니까 다양함이 있어야 하고, 공간의 균형과 기능적인 공간의 조화가 필요하죠. 그리고 유연한 공간 - 공간에 여지를 주고, 중간 영역을 만들어야 해요. 앞으로는 손가락장갑 같은 공간이 아니라 손모아장갑 같은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곤 해요. 현대 사회가 빠르게 변하니까 프로그램에 너무 딱 맞는 공간을 만드는 게 맞나 싶어요. 그러면 공간의 수명이 짧아지는 것 같아요. 구성원들이 보내는 시간을 생각하면서도 조직이 사용하는 공간의 성격도 가져야 해요. 그래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중심 공간이 중요하고, 가능하면 입체적이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중심 공간을 만들고자 해요. 구성원들이 약속 없이도 만날 수 있는 도시의 광장 같은 공간이 필요해요. 마곡하늬중학교의 공간도 그런 역할을 해요. 아이들이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사생대회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죠. 하늬중학교 준공식 때 큰 계단 공간에 손님들을 앉히고, 복도로 둘러싸인 실내광장에서 행사를 했어요. 마지막에 아이들이 소망을 적은 종이학을 위에서 날리는 장면이 감동적이었어요. 종이학들이 날아오는 걸 보면서, 제가 생각했던 입체적인 공간이 구현된 게 정말 좋았어요. 이 공간은 제가 좋아하는 헤르만 헤스버거(Herman Hertzberger)의 아폴로 스쿨(Apollo School)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그곳은 로비 같기도 하고, 행사가 열리기도 하며, 아이들이 여러 층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원효초나 동답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같은 공간 안에서도 서로 다른 눈높이에서 눈을 맞출 수 있는 게 중요해요. 입체적 사고(3D Thinking)란 여러 각도에서 대상을 보는 거죠. 몸으로 체화된 게 사고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런 공간에서 경험을 쌓길 바라요. 요즘 아파트처럼 평면적인 공간에서는 입체적 사고를 하기 어려우니, 이런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죠.   경계 없는 공간, 중간 영역은 오피스, 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그램에 필요한 공간이 아닐까 싶네요. 지금 사회는 제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사회보다 많이 나뉘어 있어요. 질시, 반목, 갈등도 많아요. 도시 공간도 그래요. 어렸을 때는 한 동네에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불편한 사람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자랐어요. 그래서 그에 대한 이해도가 있었던 거죠. 지금은 '시설 사회'(Institutional Society)라고 하잖아요. 다 경계를 지어서 가둬놓기 때문에 이해도가 없고, 그래서 무서워해요. 경계를 없앨 수는 없지만, 그 경계가 경직된 게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거로 생각해요. 그런 것들은 몸으로 경험했을 때 인식이 생긴다고 믿어요. 그래서 그런 경험을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하게 하고 싶어요.   원효초의 경우 복도 바깥에 수납공간을 만들어서 학급 도서를 공유하게 하는 것도 그런 경험의 일환이에요. 해마다 예산이 나오면, 똑같은 책 3권을 살 예산으로 다른 책 3권을 사서 공유해요. 그러면 아이들이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공유할수록 적은 돈으로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공유의 장점을 알게 해주면, 아이들이 커서도 거부감 없이 좋은 공유 아이디어를 많이 낼 거예요. 그런 걸 해줄 수 있는 게 건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건축가는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제안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진행 임진영 정리 윤솔희, 송주하 사진 텍스처온텍스처 인터뷰 ④ 로 이어집니다.  
SPECIAL 건축, 포용과 조율의 커뮤니케이션, 건축가 김정임 ② 앞서 건축을 신화화하지 않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했는데요. 유걸 선생님 사무실에서 더 공감할 수 있으셨을 듯합니다. 유걸 선생님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당시 유걸 선생님은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의 설계 감리로 오셨고, 서울에 오피스텔을 얻어 사무실로 사용하셨어요. 유 선생님의 첫 직원이 제 선배여서 미국에서 오신 분이라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때 우리는 도면에 연필심을 갈아서 바탕칠(빽칠)을 하던 때였어요. 콘크리트 단면을 그리면 회색 톤이 필요했는데, 손으로 도면을 그리던 시절이라 도면을 뒤집어 칠했죠. 연필심 가루를 휴지에 털어 마스킹 테이프(Masking Tape)로 감아 그걸로 음영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선배가 사무실에 레트라셋(Letraset)이라는 도구가 있다고 자랑했어요. 레터링(Lettering)도 손으로 쓰지 않고 판막이로 작업한다고요. 또, 미국에서 도트 마스킹 테이프(dot masking tape)를 가져와 도면에 붙여서 작업도 한다고 해서 구경하러 갔죠.   신문물이었네요. 삼청동 사무실에서 유걸 선생님을 만났는데, 텍사스 농장주처럼 보였어요(웃음). 저는 대학원생이었는데 유걸 선생님과 꽤 오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은 학생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셔서 좋은 분이라는 인상이 남았어요. 이후 졸업 논문을 쓰던 중, 그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던 후배가 직원을 뽑는다고 알려줘서 지원하게 되었어요. 인터뷰 후에 함께 일하게 되었죠.   유걸 선생님은 건축도 인상적이지만, 한국 상황에서는 보기 드문 어른이시죠. 정말 신사(Gentleman)셨어요. 항상 존댓말을 사용하시고, 저를 "김정임 씨"라고 불러주셨어요. 사무실에는 직급이 없었고,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평적인 체제로 일했어요. 연차가 많은 분들도 서로 "씨"라고 부르며 일했죠. 사무실에서는 그래픽 스탠다드(graphic standard) 같은 자료를 늘 펴놓고 이야기했어요. 제 눈에도 업그레이드된 사무실 같았어요. 모형을 만들 때는 손잡이(Handrail) 같은 것은 1대 1로 만들게 하셨어요. 그때 보고 배운 덕분인지, 지금도 손으로 1대 1로 그려보거나 만들어보게 하거든요. 그런 문화는 한국 사무실에서 보기 드문 것이어서 정말 좋았어요.   유걸 선생님 사무실에서 첫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었나요? 첫 프로젝트는 밀알학교였던 것 같아요. 밀알학교는 1차 납품이 된 상태였는데, 아트리움(atrium) 부분이 해결되지 않았어요. 아트리움은 평면과 단면 모두 사선형이라 모든 축열의 철골 부재(steel member) 단면 형상이 다 달랐어요. 제가 맡아서 그 부분을 구조 사무실과 의논해서 해결했어요.   밀알학교 아트리움의 경우는 전체 유리로 된 밝고 개방된 공간인데요. 이종건 교수님은 비판적인 비평을 하기도 하셨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굉장히 과감한 공간이었어요. 실무를 담당하실 때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아트리움(Atrium) 공간의 경우 큰 공간의 방향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어요. 처음 그 공간을 봤을 때, 특수학교라는 특성을 살려서 주된 이동 동선을 램프(Ramp)로 처리한 것이 매우 매력적이었어요. 당시에는 실제 구현된 대형 아트리움을 보기 어려운 시절이기도 했고 형태적으로 적절한 사선을 사용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공간에 사선을 하나 놓는 순간, 거기서부터 풀려나가기 시작한다고요. 그러니까 직교 좌표 체계에 이질적인 것 - 사선이나 곡선이 투입됐을 때, 거기서부터 어떤 생각이나 스토리가 풀려간다는 말이었어요. 지금도 맞는 얘기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공간을 설계할 때 안무가처럼 생각한다고 하셨는데, 저도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인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설계할 때는 공간보다 시간적인 것을 더 많이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계절이나 해가 떠서 질 때까지의 그림자 길이 등을 많이 생각하게 돼요. ‘애월 펼쳐진 집'을 설계할 때도,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이 쉬러 나와서 바다를 바라보는 상상을 했어요. 어떤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고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고, 그 총합이 건물이 되는 거죠. 공간에 대한 상상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유걸 선생님이 만들어내는 사선의 움직임에 대해 영향을 받으셨지만, 실제로 독립해서 만드신 건축물은 정갈한 비례를 보여주고 있어요. 유걸 선생님의 영향과 자신의 관심사가 어떻게 정리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좋아하는 공간은 보이드(Void; 빈 공간)와 같은 입체적인 공간이에요. 크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이렇게도 갈 수 있고 저렇게도 갈 수 있는 동선과 시선이 교차하는 공간에 있을 때 살짝 흥분도 되고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작은 공간을 설계할 때도 정해진 동선을 만드는 것을 피하는 편이에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좋아하죠. 공간적으로 열려 있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데, 자유롭게 내 의지로 선택해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또 선생님이 설계하신 공간은 빛으로 충만한 공간인데, 저는 어둑한 공간도 좋아해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는 공간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내가 있는 곳이 어둑한데 밖이 밝은 공간감도 굉장히 좋아해요. 그림자에 관심이 많죠. 그런 점에서 선생님과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건물의 입면에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든지,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면서 그림자가 길어지는 계절을 좋아해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예요. 태양 고도가 옆으로 들어와 그림자가 길어지는데, 여름의 햇빛 그림자는 진하지만 가을이 되면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빛깔이 옅어져요. 그런 그림자와 빛의 변화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좋아해요.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죠. 선생님은 명료하고 가감 없이 표현하시는데, 저는 명료함에 매력을 느끼지만, 성격은 애매모호한 편이에요. 모든 것이 명료하고 확실한 것보다는 불확실성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설계를 하면서 마감(Deadline)이 있고 그에 맞춰 프로세스(Process)를 진행하려면 어느 시점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사실 불명료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직원들과 의사소통을 많이 해요. 저도 계속 변화하는 존재이고 생각도 변화하기 때문에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하고자 하는 것을 끝까지 시도해 보는 것이 회사(서로 아키텍츠)와 저의 방식이에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유걸 선생님 사무실을 잠깐 닫으신 시기가 있었어요. 1997년에 사무실에 일이 거의 없어 닫아야겠다고 하셨어요. 미안하다고 하셨죠. 서혜림 선생님이 연락해 주셔서 1997년 9월부터 1999년 5월까지 일했어요. 그러다 신혼 때 잠깐 쉬고 있는데, 유걸 선생님이 미국에서 전화하셨어요. 밀레니엄 커뮤니티 센터(Millennium Community Center)라는 일산의 큰 교회 프로젝트가 있다고요. 선생님이 서울에 직접 나올 수 없으니, 스케치를 팩스(Fax)로 보내주면 제가 CAD로 그리고 모형을 만들어 교회와 협의했어요. 그렇게 권문성 교수님 사무실에 책상을 하나 얻어 시작한 게 1999년 아이아크(IARC)의 전신이었죠.   아이아크에서 일하며 유걸 선생님에게 받은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실무를 하다 보면 유걸 선생님이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흡수하게 되잖아요. 생각해 보면 그때는 오히려 독립해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없었어요. 실장으로 일하다 아이아크에서 처음 파트너 제안을 받았을 때도 '해보지, 뭐. 나한테 그런 역량이 있을까?'라는 의심을 품고 시작했어요. 박인수 소장님이 처음에 대표가 되셨고, 다음에 제가 파트너가 되었고 하태석 씨가 와서 새 파트너가 되었죠. 어느 날 젊은 의뢰인이 협의하고 갔는데, 전화로 회의 때 말하지 못한 불만을 얘기했어요. 유걸 선생님께 전달했더니 웃으시면서 앞으로 김정임 씨가 그분을 만나라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의뢰인을 따로 만나고 독립적으로 일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카이스트 프로젝트도 어느 날 선생님이 제안한 방향과 제가 다르게 얘기했는데, 선생님이 혼자 알아서 해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죠.   자신의 건축에 대한 확신이 들기 시작한 것 같네요. 배제대학교에 건물을 지을 때 두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해야 했는데, 선생님이 교회를 맡고 제가 유아교육센터(하워드 관)를 기획 설계해서 공모전에 당선되었어요. 그 두 건물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건축은 선생님과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물론 땅의 형상도 달랐지만, 선생님의 교회는 정문에서 들어가면 경사진 언덕의 중심에 자리했어요. 교회의 용적(Volume)이 작았기 때문에, 선생님은 캠퍼스 안에서 중심 시설로 커 보이게 하려는 전략을 취하셨어요. 유아교육센터는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건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들어가고 위에는 유아교육학과 강의실이 있었어요. 대지는 테니스장에 있던 곳이었는데, 서향이고 뒤에 작은 야산이 있었어요. 그래서 캠퍼스 안에서 뒷산의 실루엣이 가려지지 않도록, 건물을 납작 엎드린 형태로 설계했는데, 선생님과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또 다른 계기는 유엔 빌리지에 빌라(Villa)를 짓는 프로젝트였어요. 선생님은 오브제 같은 건물을 설계했어요. 빌라 시장은 선분양이 잘 안 되는데 개발사에서 선분양을 시도했다가 잘 안되어서 그 땅을 잘 아는 아이아크에 다시 설계를 의뢰했어요. 다만 유걸 선생님이 설계하지 않는 조건이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대단하신 분이죠. 본인이 하시겠다고 할 수도 있는데 유 선생님은 저에게 설계를 맡기셨어요. 쿨하게 설계 두 번 하고 설계비 두 번 받으니 좋다 하셨죠.   라테라스 한남(La Terrasse Hannam)인가요? 맞아요. 저는 그때 오브제로서의 건축이 아닌 땅과 하나로 어우러진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내가 이런 걸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의사결정자인 부회장님이 여성이라 저에게 힘이 많이 실렸던 것 같아요. 임원들이나 현장 소장이 저를 꼭 회의에 오라고 했어요. 제가 있으면 대화가 잘 풀렸거든요. 여성 의뢰인이 많아져야 여성 건축가가 더 잘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성 의뢰인과 일을 많이 해봤는데, 확실히 대화가 달라요.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가요? 기본적으로 쓰는 용어가 다른 것 같아요.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대화해도 서로 잘 알아듣고, 그 흐름이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대화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요. 남성 의뢰인과 대화할 때는 프레젠테이션 구성을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정리해요. 반면, 여성 의뢰인과는 다양한 이야기를 섞어가며 대화해요. 회의가 길어질 수 있지만 분위기가 좋고 잘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아크 사무실의 파트너 시스템은 당시 한국에서는 드문 사례였어요. 개별 건축가의 크레딧을 표기하고 기회를 준다는 게 인상적이었죠. 파트너 체제는 어떠셨나요? 당시에는 그런 예가 별로 없었죠. 다른 건축가분들도 그런 시스템 만들고 싶어서 물어오신 적도 있어요. 선생님은 권위적이지 않고 열린 분위기를 만들어주셨어요. 비판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었고 회의가 끝나면 털어버릴 수 있었죠. 파트너 시스템은 돈과 크레딧이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재정은 한 주머니로 관리하고, 수주 시 인센티브(Incentive)를 주는 방식이었어요. 크레딧은 명확하게 하셨죠. 대형 사무실에서 본인이 디자인하지 않은 프로젝트인데도 대표이사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비판하셨어요. 건축가는 자신의 설계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 시스템이라고 하셨죠. 선생님은 항상 아이아크(IARC)라는 이름보다 ’유걸‘ 또는 ’김정임‘이라는 건축가의 이름이 가장 전면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셨죠. 매우 앞선 생각이라고 느꼈어요. 칭찬이든 비판이든 개인이 직접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어요.   건축가로서 자신의 이름이 전면에 나오는 것이 동기부여가 되었나요? 어떤 점에서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어요. 지금도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려면 의뢰인을 직접 만나게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의뢰인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 할만하다 싶은 사람에게 맡기죠. 그래서 김인철 소장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1~2년 차 직원이었던 저에게 의뢰인을 직접 만나게 하셨다는 것이요. 그리고 저 나름대로 파트너에 대한 경쟁심도 있고 더 좋은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당연히 있었고요. 그런 식으로 운영되면 건강한 시스템이 되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파트너 시스템은 경영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해요.   아이아크에서 처음 크레딧을 달았던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나요? 배재대 유아교육센터인 하워드 관을 먼저하고 서울스퀘어를 하게 됐어요. 서울스퀘어는 지명공모전에 참여했는데, 정림건축과 컨소시엄으로 참여했어요. 제가 디자인 총괄이었고 선생님은 그 일에 완전히 빠지셨어요. 그때 제가 서른여섯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신기해요. 겁도 없이 해보겠다고 했어요. 다행히 정림 건축에서 실무적으로 든든하게 받쳐 주셔서 디자인 총괄을 하면서 인허가도 같이 뛰어다녔어요.   소장님에게 서울스퀘어는 상징적인 프로젝트이기도 해요. 보통 젊은 건축가들은 작은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규모를 키워가는 방식으로 성장하잖아요. 그런데 소장님은 서울스퀘어라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금융사나 시행사처럼 거대 자본의 의뢰인을 상대로 하는 프로젝트라서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차이를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공공의 일이냐 민간의 일이냐는 분류는 있지만, 프로젝트 규모로 일을 나누는 생각은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어요. 큰 것도 할 수 있고 작은 것도 할 수 있죠. 사실 뭘 몰라서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 의뢰인도 개인이나 학교 관계자, 장로님을 만나는 정도였어요.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해본 것도 유아교육센터가 처음이었고요.   서울스퀘어 설계 공모에서 당선된 이후, 일주일에 두 번씩 프레젠테이션했어요. 스케줄이 정말 빠듯했어요. 9월에 당선되었고, 그다음 해 3월부터 착공을 시작해야 했어요. 규모가 큰 프로젝트인데 그 안에 인허가까지 모두 받아야 했죠. 그런데 대수선 인허가가 틀어졌어요. 3월에 착공을 시작했는데, 계획이 바뀌면서 4월 25일에 발주처가 대회의실에서 대수선 포기 선언을 했어요. 대수선은 허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수선으로 전환한 거죠. 수선 범위 안에서는 미관지구라서 외관도 바꾸면 안 되고, 슬라브(Slab)를 뚫는 것도 안 되고, 마감재만 바꾸는 식으로 진행했어요. 구조 보강과 내진 설계를 하고, 기계 설비 등을 모두 바꾸어서 프라임 빌딩(Prime Building)을 목표로 했던 계획을 A급 임대 빌딩으로 전환하면서 프로젝트를 다시 설정했어요.   그때 너무 속상했어요. 아이아크가 이름을 걸고 하는데, 이렇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인테리어 콘셉트(Concept)와 전체 방향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자청했어요. 의뢰인들에게 "일단 수선 설계는 진행하고,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시면 프라임 빌딩의 이미지를 만들어갈 방법을 연구해 프레젠테이션하겠습니다."라고 했죠. 의뢰인들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어요.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하겠다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허락받은 날이 6월 13일이었어요.   그때는 구체적인 디자인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건축법상 인허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떻게 접근할지를 설명했어요. 원래는 서울스퀘어 앞 대지 경계선까지 약 1.2m 정도의 폭이 남는데, 거기에 이중 표피(Double Skin)를 만드는 계획이었어요. 그 안에 블라인드(Blind)를 사선으로 설치하여 픽셀(Pixel)처럼 표현하는 거죠. '서울 캔버스(Canvas)'라는 개념으로 설계 공모할 때부터 있었어요. 처음에 1m x 1m x 1m 큐브의 대각선으로 블라인드를 설치해서, 이 블라인드가 펴졌다 접혔다 하면서 빛을 가리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때는 큰 픽셀의 크리스마스트리도 만들 수 있는 개념이었어요. 그걸 실행할 수 없게 되어서, 이를 미디어 아트(Media art)로 전환하고 건물 전체에 아트워크(Artwork)를 적용하기로 했어요. 스위스 취리히의 '카우 컬처(Cow Culture)'라는 페스티벌을 참고했어요. 이 페스티벌은 도시의 활기를 보여주기 위해 매년 열리는 행사예요. 반제품 소 조각을 시에서 신청자들에게 나눠주고, 신청자들이 각자 창의적으로 꾸미는 방식이었어요. 이런 사례를 통해 도시 전체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아트워크(Artwork)를 활용한 로비 디자인(conceptual lobby design) 3개를 개념적으로 디자인해서 보여줬어요. 결과적으로 기립박수를 받았어요. 그날은 잊혀지지 않아요. 6월 13일 해가 질 무렵, 창문을 열고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꼈던 성취감과 희열은 지금까지도 저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그런 성취감은 일상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일이 아니고서는요. 그날은 정말 저에게 화양연화 같은 날이었어요.   그때쯤 의뢰인들은 저와 함께 서울시장, 부시장, 중구청장을 만나고, 대표님, 이사님, 정림의 실장님과 함께 똘똘 뭉쳐 다녔어요.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엄청나게 쌓였어요. 인테리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주처에서 "건축가가 하자는 대로 다 해라"라고 하셨고, 한미글로벌(Hanmi Global)의 CM(Construction Management) 단장님이신 양대룡 단장님은 저에게 "대표님은 디자인만 하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산이 정해져 있었고, 공사비를 내고 견적을 낼 시간도 없었어요. 디자인을 바로바로 해야 했고, 예산과 기간은 CM에서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해주셨어요. 의뢰인이 저에게 거의 모든 전권을 일임해 주셨던 것 같아요. 발주처에서 사람을 쓸 줄 알았던 거죠. 그리고 저는 프로젝트 성공에 대한 부담감을 이겨내며 최선을 다해 일을 해냈어요. 고생도 많이 했고, 성장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부동산시장은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건축적 가치를 이해시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떤 언어로 설득했을지 궁금했어요. 서울스퀘어의 의뢰인은 대학에서 미술사(Art History)를 전공하신 분이었어요. 그분이 오히려 예술적인 것을 요구했어요. 로비 인테리어에 대해서도 트렌디한(Trendy) 것은 금방 질린다고 하셨죠. 그렇다고 디자인이 너무 고리타분해도 안 된다고 하셨어요. 10년 뒤에도 괜찮은 디자인을 해달라고 하셨어요. 해본 적이 없는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밤잠을 설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해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나았을 수도 있어요. 로비의 경우 재료를 디테일하게 쓰지는 못했지만, 공간의 구조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했어요. 그런 경험들이 저에게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프로젝트의 무게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전체 사업비가 1조에 가깝습니다. 그만큼 큰 사업을 진두지휘해서 이끌어가는 게 수월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협의해야 할 주체도 많고요. 그 과정에서 얻으신 것과 겪은 어려움과 같은 경험이 궁금해요. 건축가는 코디네이터(coordinate) 하는 일이 반 이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재미를 느낀 게 일산 밀레니엄 커뮤니티 센터예요. 6년 차에 PM(Project Manager)을 맡았는데, 그때도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미국에 있는 구조 엔지니어와 구조를 협업했는데, 교포인 고창범 씨였어요. 선생님도 저도 "왜 못하겠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제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모르면 물어보는 거예요. 그때 복잡한 일을 코디네이트 하는 것이 재밌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기저기서 얘기를 듣고 물어보면서 조정하는 과정에서 많이 신이 났어요. 서울스퀘어 프로젝트를 할 때도요. 소방부터 토목까지 다양한 분야의 컨설턴트(Consultant)가 많았는데, 그걸 진두지휘하며 조율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한 선배가 나중에 "너는 대기업에 가서 큰 프로젝트를 하면 더 잘 맞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대신 큰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할 때는 디자인 완성도를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죠. 그렇죠. 하지만 저는 그런 일을 재미있어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서울스퀘어가 그렇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의뢰인이 저를 신뢰해 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때 의뢰인과 정말 좋은 경험을 많이 했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미국에서 온 회사라서 전문가를 쓰는 방법을 알았던 것 같아요. 일단 신뢰를 해주고 책임을 확실히 맡기는(assign responsibility) 거죠. 책임을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게 좋다는 걸 아셨던 것 같아요. 그러면 제가 밤잠을 못 자면서 고민하게 되는 거예요. 참 신기했어요. 그래서 좋은 의뢰인과 일한 경험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하고 나면 두려울 게 없으셨겠네요. 네, 이후 그런 규모의 프로젝트는 없었고 서로아키텍츠를 오픈한 다음 삼성전자 우면 R&D 디자인 센터를 설계할 때도 규모는 컸어요. 우리가 조율한 건 건축이 아니라 인테리어 쪽이긴 했지만, 그때도 협의 주체는 많았죠. 설계사인 삼우(Samoo Architects & Engineers)를 포함해서 삼우 CM(Construction Management), 삼성물산 등 엄청 많은 사람과 조율했어요.   아이아크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서울스퀘어 외에 소장님에게 의미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명동 성당 공모전 설계예요. 유걸 선생님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다른 의미로, 선생님께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었겠죠. 명동 성당이 높은 곳에 있어서, 선생님이 데크(deck)를 놓는 아이디어를 내셨어요. 그리고 그 레벨에서 데크 위까지 올라가는 방법을 제가 제안했어요. 그런 것들을 서로 토론하면서 어떤 게 좋을지 고민했죠. 약간 선생님과 경쟁하는 느낌으로 늘 일했던 것 같아요.   밀레니움 커뮤니티 센터나 구미동 빌라, 방일하우스라고 불렸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그 프로젝트는 선생님이 큰 방향을 잡아주셨고, 그다음부터는 제가 주도해서 했어요. 그때도 의뢰인을 직접 만났던 기억이 나요. 젊은 개발자(developer)였는데, 여러 오피스 프로젝트의 초석이 그때 만들어진 것 같아요. 한번은 의뢰인과 가구를 구매해야 했는데, 의뢰인에게 제안했어요. 제가 가구를 고르면, 그 가구점을 통해 직접 구매하라고 했죠. 저는 시간에 대한 보수만 받겠다고 했어요. 그때 가구를 보러 다니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때 저는 그냥 실장이었는데, 오리지널(Original) 가구를 직접 고르고 사고 싶었거든요. 가구점, 인사동, 남대문시장 등을 다니며 앤틱(antique) 가구 등을 사서 현장에 날랐어요.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죠. 커튼부터 가구까지 혼자서 다 했어요.   인테리어의 중요한 부분을 경험하신 거네요. 맞아요.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물어물어 패브릭(fabric) 하시는 분을 소개받고 협의하면서 약 1억 정도의 예산으로 꾸몄는데, 해본 적 없는 저에게 맡긴 의뢰인도 재미있고 저도 웃겼죠. 서울스퀘어 프로젝트 이후 제일기획에서 저를 지명해서 로비 디자인(Lobby Design)을 했어요. 처음에는 로비로 시작했는데, 일정상 오피스를 먼저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이지만 해보겠다고 했어요. 겁도 없이 아이아크에서 하던 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는데, 임원에게 엄청나게 혼났어요. 제일기획에서는 프레젠테이션을 얼마나 잘하겠어요. 2주 줄 테니 다시 해오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면에서 지적받으셨나요? 렌더링(Rendering)도 거칠고 PT의 포맷(Format)도 문제였어요. 제일기획은 그런 프레젠테이션을 하지 않거든요. 제일기획 직원 한 명이 주말에 와서 레이아웃(Layout)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줬어요. 그때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프레젠테이션은 어떠해야 하는지 배웠어요.   중요한 경험이네요. 소장님이 하셨던 많은 프로젝트가 기업이나 금융(financing) 분야 의뢰인을 상대하는 일이었으니까요. 경제적 가치가 우선인 의뢰인들에게 건축 언어를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든 부분이잖아요. 맞아요, 상대하는 법을 배웠죠. 제일기획에 계신 분에게서 몇 가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배웠어요. 테이블(table)은 읽으라고 넣는 게 아니다. 한쪽에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고 테이블의 중요한 점만 요약해서 텍스트로 작성하는 것을 배웠어요. 이후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과 일할 때 그들의 문화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분들은 시간이 1분 1초가 아까운 분들이거든요. 프레젠테이션도 굉장히 요약해서 하고, 마지막 페이지에 의사결정 페이지(decision page)를 반드시 넣어서 "우리가 A, B, C, D에 대한 의사결정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하죠.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의 최전선에 계신 분들에게 배우신 거네요. 삼단 논법(three-step logic) 같은 것, 모든 것은 3, 3, 3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래서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많은 분으로부터 그런 것을 전수받았죠. 저희가 기업과 일할 때 디자인 프로세스 중 하나로 인터뷰를 꼭 해요. 반드시 임원과 1대1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인터뷰 내용은 의뢰한 회사에도 주지 않아요. 자기 회사에 대해 비판 의견도 있어서 절대 비밀로 하죠. 그분들과의 대화 속에서 회사 운영이나 여러 가지를 많이 배웠어요.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참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고요.   독립 후 오피스 프로젝트들이 이어졌는데, 물론 건축적인 해결도 필요하지만, 이 오피스 프로그램은 인테리어 기반이잖아요. 앞서 구미동 빌라에서 가구나 패브릭을 다뤄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요. 직접 발로 뛰며 경험한 것들은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케일의 변주도 큰데 그걸 어떻게 다루었을지 궁금해요. 그냥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것 같아요. 패브릭(fabric)도 만져보고 의자의 역사도 공부하고, 그러다 보니 업계에 계신 분들도 만나게 되었어요. 그 분야에는 여성이 많잖아요. 건축계에는 남자들이 많아서 수다 떨 사람이 없었는데, 그런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약간 교집합 같은 느낌이었어요. 아쉬운 건 내부 공간이 너무 중요한데, 건축에서는 인테리어를 낮춰보는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당시엔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건축가가 해선 안 되는 일 같은 느낌으로요. 그런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너무 중요하고, 또 재미있었어요.   그때는 인테리어를 장식으로 보는 경향이 많았죠. 그래서 사실 두 가지 갈등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인테리어로 시작하는 것이 저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 사람은 여자니까 인테리어 잘하지"라는 식으로 인식될 수 있어서, 저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반대로, 아이아크(IAAC)에서 그런 일들을 하면서 이게 나의 강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어요.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건축가들이 인테리어를 많이 하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서울스퀘어(Seoul Square) 프로젝트를 할 때 건축 프레젠테이션과 인테리어 프레젠테이션을 하잖아요. 건축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우리는 이런 논리를 가지고 이렇게 하고, 이런 법규나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한다"라고 의사결정자들을 금방 설득하죠. 그런데 인테리어에서는 "이러면 어떨까요? 저러면 어떨까요?"라는 식으로 제안할 때가 많아요. 그러면 의사결정자들이 고민하면서 감각과 취향의 문제로 들어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논리적으로 설득하면 의사결정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건축가들이 인테리어를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제가 원하는 것을 설득하고 나면 나머지 취향의 문제로 들어가도 오히려 상관이 없어요. 그런 경우에는 의뢰인이 좋은 대로 선택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건축가들이 하면 마감재의 문제뿐만 아니라 공간의 구조를 바꾸고,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고, 사용 패턴(Pattern)을 바꾸는 문제로 접근할 수 있어요. 저는 그런 부분에 더 흥미가 있었죠. 그때는 약간 전략적 사고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인테리어'라고 하지 말고 '오피스 플래닝(Office Planning)'이라는 서비스 이름을 짓자고 했어요. 이건 새로운 서비스라서 고객들이 예산을 깎지 않더라고요.   좋은 전략이네요.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돈이 많은 의뢰자인데 기업이 오피스에 돈을 투자할 때는 주로 돈을 많이 벌었을 때예요. 그래서 그들은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죠. 이 비용은 감가상각(Depreciation)으로 5년 동안 분산된 비용으로 생각하니까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적어요. 예를 들어 건축 설계 단가(Design Fee)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하는 건 시장의 단가를 대충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오피스 인테리어도 대충 얼마인지 감이 있으니까요. 비교 견적서도 받죠. 그런데 오피스 플래닝의 경우에는 비교 견적서가 없어요. 그래서 괜찮은 사업 모델이라고 판단했어요. 건축가도 이런 일을 하면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을 제일기획 프로젝트를 할 때부터 갖고 있었죠.   간혹 건축가가 인테리어를 할 때 놓치는 부분이 있어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건축을 다룰 때 놓치는 부분도 있거든요. 종종 그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람의 몸에 대한 이해가 어렵거나 당장 공간이나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소장님의 작업에서는 균형감이 느껴져요. 그런 경험이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해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여성이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집안일을 다 하잖아요. 공간을 직접 사용하고 청소를 하니까요. 유지 관리가 잘 되려면 어떤 점을 신경 써야 하는지 알게 돼요. 설계에 100% 반영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기준으로 판단해요. 어떤 경우에는 디자인이 우선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유지 관리가 더 중요해요. 나중에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잘 사용하려면, 디자인이 덜 예쁘더라도 그런 선택을 하죠. 건축을 준공까지 가는 과정에서 판단의 구석구석에 제 생활 감각이 녹아있다고 생각해요. 건축가가 생활의 감각이 체화되어 있어야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외부에 대해 적극적으로 열었을 때 건물이 사랑받는다고 말씀하셨어요. 건물 사용자의 입장뿐만 아니라 도시적인 측면에서도 말씀을 하신 것 같아서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건물이 사랑받아야 오래 살아남는다고 생각해요. 오래 살아남는 건물은 친환경적 건축이죠. 멋진 건축물이라서 오래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사용하기 좋고 관리가 잘 되는 건물이 오래 살아남는 거예요. 관리가 잘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 건물을 사랑해야 가능하고, 관리하기 쉽다는 면도 있죠. 사랑받는 건물이란 어떤 건물일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건물을 지었을 때 주변이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지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만 좋은 게 아니라, 그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멀리서 보는 사람들, 동네 사람들에게도 좋은 건물이 되어야 사랑받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직원들에게도 항상 그걸 잊지 말고, 우리가 어떤 포인트를 만들어줄 수 있을지 생각하자고 이야기해요.   생활에 대한 감각이라는 표현도 너무 좋습니다. 유걸 선생님의 영향이 있을 거예요. 선생님은 늘 집의 중심이 부엌이라고 하셨어요. 삼청동 시절에 선생님이 타일 패턴(Tile Pattern)을 디자인하셨던 게 기억나요. 코너에 욕조를 넣고 두 단 정도 올라가게 했는데, 타일이 복잡하게 시공됐어요. 선생님이 그 타일 패턴을 직접 디자인하시고 도면을 그리셨죠. 선생님은 집에서 가장 자랑할 곳이 화장실과 부엌이라고 하셨어요. 가장 비싼 기구가 들어가니까 그 공간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고요.   2012년에 서로아키텍츠를 설립하셨어요. 독립을 결정하게 된 어떤 계기나 동기가 있으셨나요? 유걸 선생님은 저에게 부모님 같은 큰 우산이었어요. 늘 거기에 기대고 뒷배가 확실히 있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스스로 '나가서 혼자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나?'라고 자문해 봤어요. 그게 없이도 나 혼자 할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나갈 때는 '몇 년 해보다가 아니면 말지'라는 심정이었어요. 아무도 나에게 일을 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제게 특별한 배경이나 훌륭한 네트워크가 없었거든요. 아이아크는 좋은 직원들 풀(Pool)이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었죠. 여기서 파트너로 나이 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독립을 안 해본 걸 후회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지인이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했던 일보다 안 했던 일에 대해 후회를 많이 한다는 책의 한 구절을 이야기해 주시더라고요. 결국 ‘한번 나가서 해보고 아니면 말지 뭐’ 이런 생각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선생님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셨어요.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고요. 3개월만 쉬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하셨는데, 쉬는 동안 한 사무실을 보는 순간 여기다 싶었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독립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독립하면서 제일기획을 함께 했던 친구가 함께하고 싶다고 해서 독립했는데, 5개의 제안서를 작업했어요. 가장 될 것 같던 제안은 안 되고 가장 안 될 것 같던 삼성 프로젝트가 성사되면서 사업이 시작되었어요.     진행 임진영 정리 윤솔희, 송주하 사진 텍스처온텍스처 인터뷰 ③ 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