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House

명동성당

진행_김광현

2019년 10월 16일 2:00PM
서울 중구 명동길 74
예약금 10,000원 결제 후 참석 시 환불

* 10월 3일 오후2시부터 참가 신청 가능


오픈하우스 진행
김광현(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

서울 명동성당(현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선교사의 포교 이전 이승훈을 비롯한 신자들에 의해 조선천주교회가 창설된 곳이자 한국의 첫 순교자 김범우의 사택이 있던 언덕에 자리해 현재까지 한국 천주교의 구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1886년 조불 수호 통상 조약 이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누그러들자 주교 블랑이 언덕을 성당 부지로 매입하였고, 용산신학교와 약현성당을 설계하기도 한 유진 코스트(E. J. Coste 한국식 이름 고의선) 신부가 설계와 감독을 맡았다. 
붉은 벽돌조의 고딕 양식인 성당은 당시 국내에서 생산한 붉은색과 회색, 20여 가지 모양의 벽돌을 사용하였다. 양옥을 건축하는 시공기술자가 없어 벽돌공과 미장공, 목수 등은 중국에서 와서 시공했는데 1894년 청일전쟁으로 시공자들이 귀국하며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어 재정난 등으로 공사가 지체되는 사이 코스트 신부가 사망하고, 프와넬(V. L. Poisnel) 신부가 공사를 마무리하여 1898년 완공된다. 
본당은 십자형 평면구조로 일반적인 고딕 양식 성당이 석재로 계획되었던 것과 달리 벽돌을 사용했으며 동판 지붕을 얹었다. 코스트와 프와넬의 벽돌조 고딕 양식은 이후로도 한국 천주교 예배당의 주요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당시 단층 위주의 시내에서 언덕 위에 지어진 높이 47m 종탑을 가진 예배당은 서울 장안의 명물이 되어 ‘뾰족집’이란 별명으로 수많은 구경꾼을 모으기도 했다. 명동성당은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 운동의 주요 장소로 역할을 하며 종교를 초월해 국가 역사의 중요한 공간으로 거듭난다.

OHS 사진 문화재청
 
 

김광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공부했고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8년까지 42년간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건축의 공동성 (共同性, commonness)에 기초한 건축의장과 건축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했다.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대한건축학회 부회장, 한국건축학교육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젊은 건축가들을 가르치는 공동건축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주택-토지에 새겨진 주거』(1991) ,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2014) , 『건축 강의』(전 10권, 2018)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건축 형태의 원리』(1989) , 『루이스 칸: 학생과의 대화』(2001) , 『건축의장 강의』(2008) 등이 있다.

Map서울 중구 명동길 74
건축가진행_김광현
일시2019년 10월 16일 2:00PM
위치서울 중구 명동길 74
집합 장소성당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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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HOUSE 한국정교회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 조창한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한국 정교회 대교구의 본산이자 주교좌 성당이다. 산타클로스의 모티브가 된 미라의 대주교 니콜라스의 이름을 따왔으며, 나애심이 부른 ‘미사의 종’에서 ‘니콜라이 종소리’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는 성당이다. 한국의 첫 정교회는 고종황제가 1903년 주한러시아 공사관 직원에게 하사한 새문고개(현 경향신문 사옥자리)에 처음 터를 잡았다. 하지만 성당 신축 계획은 설계까지 마무리된 상태에서 러일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희미했던 교세는 6.25 참전국 그리스의 도움으로 생기를 되찾았고 정동 땅을 처분하여 아현동 마루(당시 아현형무소 소장 사택)에 자리 잡았다. 설계는 시작부터 수월치 않았다. 비잔틴식의 정교회 건물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정교회 예배 형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둥근 돔(dome)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다. 당시 정부청사인 중앙청과 서울역의 뚜렷한 돔도 그 공간감을 경험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풍부한 공간감을 위한 참고자료로 일본 동경의 러시아 정교회인 니콜라이 대성당(1891)과 미국 위스콘신 밀워키의 그리스정교회 성당(1961)을 표본 삼았다. 밀워키 성당은 거장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마지막 작품이고 그가 한 현대적 해석에 마음이 더 끌렸다. 교회는 한국형 정교회에 대한 첫 안을 반려했다. 처음 세워지는 한국의 정교회인 만큼 전통 비잔틴식이어야 한다는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총대주교청의 요청이었다. 그 뜻을 존중하여 안을 수정하고 총대주교가 동의하여 지금의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 되었다. 설계 과정에서는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납북된 정교회 김의환(金義煥) 신부의 아들인 김창식 영사의 조언이 컸다. 그는 아테네에서 신학을, 하버드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었다. 설계를 구현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은 있었다. 돔을 철골구조로 풀어내는 것은 수월했지만, 비잔틴 건축의 구성기법의 핵심인 펜덴티브(pendentive)를 제대로 실현할 수 없었다. 펜덴티브는 둥근 지붕을 사각형의 본체에 올려놓기 위한 중간 매개체로 비잔틴 건축의 핵심이다. 동경의 니콜라이 성당도 펜덴티브를 정통적으로 해석하지 않았고 대안을 택했다. 이는 오랫동안 후회스러운 선택이 되었다. 반원구 위 돔으로 이룬 중앙 집중의 공간을 체험할 기회가 점점 줄어가면서 아쉬움은 더해졌다. 요구 면적의 증가로 돔 밑 공간을 비워 놓지 못하고 주 공간과 구별된 입구 홀(narthex)을 제거하면서 그리스식 십자가의 중앙집중적 공간이 훼손되었다. 비잔틴 교회 건축은 둥근 지붕으로 공간을 이루는 건축이다. 그곳은 신성한 빛과 소리로 가득 채워진 장소로 사람과 신이 만나는 구별된 장소이다. 그 공간은 길과 목표가 뚜렷하게 보여 내가 하나님께로 다가감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온갖 성화(icon)도 한몫 거둔다. 결국, 이곳은 내가 이 땅의 주인으로 저 높은 곳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공간임을 알려주는 장소가 된다. 글 사진 조창한 조창한 조창한은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후 한국산업은행 주택기술실과 이천승 설계사무소에서 수련 후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며 국회의사당 우수작 당선, 정교회 대성당을 설계했다. 1972년부터 경희대학교에서 후학을 기르기 시작해 공대학장과 부총장을 지낸 뒤 현재는 경희대 명예교수로재직하고 있다.
OPENHOUSE 한국정교회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 조창한 10월 17일 10:30AM
OPENHOUSE 명동성당, 진행_김광현 10월 16일 2:00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