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공간 2

영상ㅣ고안된 장식들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고안된 장식들 A Model of Sporadic Thoughts
 
 “건축가의 철학이 드러나는 집에서 살고 싶었어요. 요구사항은 많지 않아요. 우리는 작은집에서 살 준비가 되어있어요. 다행이도 음악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땅을 서울에서 구 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이장소가 세상의 모든 날카로운 것으로 부터 자유롭고 안전한 장소이길 바래요. 그래도 수압은 좀 신경 써주세요.”
 
틈틈이 노트에 써놓은 글 들을 엮어 단편집을 만드는 소설가의 마음으로 녹번동주택을 작업하고 있다.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모으고 작은 스케치들을 합쳐보는 과정만 있는, 부분이 부분 일 뿐 전체가 없는 그야말로 단편집이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에서 출발해 대지를 읽고 형태를 만드는 속박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내게는 실험이다.  냉철하고 치밀한 두뇌, 야망 가득한 눈빛은 잠시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
 
건축의 이미지
박공지붕, 네모난 창, 낮은 울타리, 그리고 나무 한 그루. 어릴 적 물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만약 내가 유치원 미술 시간에 그린 ‘집’의 드로잉이 남아 있다면, 분명 그 집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혹은 당신도 그렸을 법한 바로 그 집이었을 것이다. 빨간 지붕에 뻐꾸기창. 혹시라도 마당 한가운데 그린 나무의 가지가 잎이 없이 앙상하다면 평소 외로운 아이로 낙인찍혔을 바로 그 집. 그 이미지. 집의 이미지는 강렬하다. 건축을 공부하면서 내 머릿속에 각인된 집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애써 보기도 했었다. 그 이미지는 감옥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내가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기소침해지곤 했는데 그때마다 희대의 천재 건축가가 아닌 평범한 교육을 받은 보통의 인간임을 받아드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작은 발버둥에도 여지없이 똥이 되고야 마는 스케치와 모델들을 보면서 내가 똥을 그렸던가. 아닌데 집을 그렸는데. 그럼 역시 집 같지 않은 집은 똥이다. 완벽한 삼단논법이 완성되고 나서야 겨우 이 번뇌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는 4학년 3반
녹번동 주택은 우리 집의 이미지, 그 원형을 되짚어 본 작업이었다. 내 친구 정락이네 집에는 주물대문이 있었고 그 문을 열면 잘 정리된 조경수들과 함께 잔디마당이 펼쳐져 있었다. 큰 개들이 뒹굴었고 대문보다 더 큰 거실 창은 마당으로 열려 있었다. 이건 뭐랄까. 나에겐 판타지. 판타지의 전형. 어릴 적 내가 살던 우리 집은 아버지가 일하던 전방을 통해야만 갈 수 있었다. 전방에는 담배 냄새가 났고 시시껄렁한 양아치 삼촌들이 내 꼬추를 호심탐탐 노리고 있었기에 잽싸게 통과해야만 했다. 다시 외부로 나가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똘이(레쉬+삽살이) 집과 수돗가가 계단참에 있었고 차례로 작은 등나무 파고라와 녹슨 그네가 있던 우리 집. 진짜 집의 기억. 나는 창녕 영산 출신이지만 서울 녹번동에선 고향의 냄새가 났다.
대지의 두 면에 접한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좁은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작은 대문이 있지만 변하는 건 없다. 개의치 않고 또다시 좁은 길이 이어진다. 좁은 길은 계단을 지나면 축축한 바닥이 된다. 작업실 유리창에 손바닥 지문을 남기면서 2층까지 난 외부계단으로 올라가면 비로소 거실이 나오는 진짜 집의 이미지.
 
 맥락 안의 건축
오래된 토지를 상대할 때는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다리 꼬지 말 것이며 삿대질도 조심할 것. 오랜 세월 동안 덧붙여진 법규들이며 작은 오차들이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35m 이상의 막다른 골목길은 도로선을 후퇴하게 만든다거나,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을 옆집은 경계를 한참이나 넘어와 있다거나, 점점 높아진 도로의 레벨로 집이 아래로 내려가게 됐다거나 하는 작은 사건들 말이다. 이렇듯 시간은 경계를 뭉퉁하게 만든다. 담장에 기대 노각을 파는 노인, 벽과 도로경계선 사이를 마당 삼아 화단을 가꾸는 다가구 빌라, 주차금지 표지판을 대신하는 무거운 화분들, 뭉퉁한 경계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
 
담장 밖의 사람들
새로운 사람들이 경계에 날을 세우기 시작하면 크고 작은 틈들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녹번동 주택은 옆집이 넘어와 쓸 수가 없는 1m 폭의 틈이 생기고야 말았다. 나는 이 틈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내 것도 당신 것도 아닌 마당도 아닌 길도 아닌 이 틈은 옆집 건물의 모서리에서 정확히 한 뼘 떨어져 있다. 고양이도 지나갈라치면 뺨이 좌우로 댕겨지는 작은 틈이지만 옆집이 허물어 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막다른 골목을 연결해주는 동네 길이 될 것이다. 의뢰인에게 부디 이 틈을 마당에 편입하지 마시고 이대로 두시면 좋겠다고 간곡히 요청을 드렸다. 
녹번동 주택은 양쪽에 두 개의 인접 대지가 있는데 한쪽은 이미 침범을 한 상태이니 담장을 허물고 다시 세우기로 합의가 됐고 반대편 대지의 담장은 아슬아슬하게 경계면에 걸쳐져 있어 존치하고 새로운 담장을 덧씌우기로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옆집 담장의 높이라든가 재료 같은 것들이 여간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는데 옆집 담장의 안면이 집의 겉면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존의 낮은 담장을 여전히 뭉퉁한 경계로 남겨 두기로 했다. 기존 담장과 한 몸이 되는 두툼하고 낮은 담장을 만들어 담의 윗면을 이웃과 공유할 수 있도록. 
 
빛의 언어
나는 17살부터 자취를 시작했고 이후 15년간 반지하와 북향집을 전전하며 궁색한 생활을 하였는데 매번 이사를 할 때마다 자연광 한줄기의 영광을 포기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자취방에선 한줄기 정도의 빛의 영광은 누릴 수 있었는데, 하루 중 단 몇 분뿐이었지만 폭 3cm의 직선의 광선이 방안을 드리울 때면 웃통을 벗고 마른 몸 구석구석 비추는 일광욕 시간을 가졌다. 그제야 보이는 안 보이는 것들. 떠도는 먼지며 걸레받이 틈의 개미집들같이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던 것들의 존재들이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자연주의자들이 직선에 대한 혐오를 얘기해도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억오천만 킬로미터를 직선거리로 7분 만에 날라와 방구석 개미집까지 비추는 대자연의 언어, 그것이 파동이든 입자든 뭐든 간에 직선인 것이다.
 
온화한 덩어리
대지는 남서 방향에 넓은 변을 맞대고 있다. 오전에 동쪽에서 비추는 조광을 짧은 변에서 짧은 시간 받아들이고 남에서 서로 넘어가는 동안 긴 시간 일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태양을 바라보고 여러 개의 창문을 내 모든 공간에 온종일 빛이 집안 내부를 드리우는 것을 상상하니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직선이 마음에 걸린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배려 없는 속사포의 직설을 종일 듣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빛의 변화가 은유적이었으면 좋겠다. 직선의 그림자가 공간에 생채기를 내지 않고 온화한 빛의 덩어리가 잠시 머물다 가는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북쪽의 파사드는 기능 없이 독립적으로 서 있는 벽이다. 남쪽에서 쏟아지는 속사포의 빛을 머금었다가 집 내부로 옮겨주는 역할만 할 뿐 다른 기능은 없다. 파사드 안쪽 면에서 집은 속살을 온전히 다 보여준다. 커튼월 방식으로 시공된 깊이가 없는 얇은 유리 한 장으로 벽과 대면하고 있다.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니 커튼이 필요 없다. 마치 넓은 dry area를 둔 지하와도 같다. 벽에 부딪히고 산란한 빛은 파동은 사라지고 질량만 남아 집안에서 오랜 시간 머문다. 마치 새벽에 아내 몰래 끓여 먹은 라면 냄새가 아침에도 다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이것이 광활한 자연을 대하는 이 집의 자세이다.
 
밤의 표면과 장식된 빛
검은 밤이 찾아오고 하나둘 전등이 켜지면 치부는 비로소 드러난다. 자연광의 따뜻한 색온도로 모든 게 용서되는 낮이 지나고 울퉁불퉁하고 거친 벽체 위에 날 선 조명이 떨어지는 밤이 오면 은혜로운 낮에 숨어있던 실수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진실의 시간이다. 무자비한 상대에게 전부를 밝히는 실수를 하지 말자. 어두움이 묻은 밤의 벽면은, 표면은, 낮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물질이 다. 빛이 내려앉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공간을 하기 위한 빛이 아니라 필요한 지점마다 바닥에 내려앉는 불빛, 새어나오는 불빛, 좁고 깊은 천장의 슬라브 구멍에서 나와 바닥 일부를 비추는 불빛, 얕고 긴 틈에서 나오는 옅은 불빛.
‘선생님. 그런 조명은 어디서 파나요?’
마우스와 키보드를 내려놓고 우리는 기꺼이 목수가 되기로 하였다.
 
윤한진
 

설계 푸하하하프렌즈,윤한진,한승재,한양규,홍현석,조영호,박혜상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93.62 ㎡
건축면적 51.04 ㎡
연면적 110.6 ㎡
규모 지하1층, 지상2층
주차 1대
건폐율 54.52%
용적율 78.58%
구조 철근콘크리트
구조설계 터구조
시공 지음씨엠
기계,전기,소방설계 하나기연
설계기간 2019.08~ 2020.06
의뢰인 김수민,이석율

푸하하하프렌즈
윤한진 + 한승재 + 한양규

푸하하하프렌즈(FHHH Friends)는 한승재, 한양규, 윤한진 세 명의 친구로 구성된 건축설계사무소 이다. 2013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건축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2014년 김해건축대상, 2016년 서울시 건축상을 받았으며, 2017년 '한강여의나루 선착장 국제설계 공모' 4등 및 2019년 올해 초 '새로운 광화문 광장 조성 설계공모'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현재 6명의 긍정적인 직원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접하며 실무에 임하고 있다. 


푸하하하프렌즈
fhhhfriends.com
건축가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위치서울시 은평구 녹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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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영상 ㅣ 디파이사옥, 정재헌 오픈하우스서울×기린그림 소통 & 공간 브랜드 스페이스의 시대에 기업의 이미지가 담긴 공간의 메시지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성장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업 디파이의 비전을 공간에 담아내는 일이 첫 번째 과제였다. 젊은 CEO와 더 젊은 20대 사원들이 열정을 쏟아 꿈을 이뤄가는 곳, 디파이는 새로움을 열망하며 현재를 넘어서고 싶어 한다. 창조적인 이들의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커뮤니케이션. 이들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모든 사람과 소통하길 원한다. 시각과 청각, 촉감이 살아있는 소통의 공간, 누구나 편하게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디파이다.    연결과 경계 강남의 조용한 주거지역에 있는 디파이 사옥은 정면에는 고층 아파트가 장벽처럼 서 있고, 비슷한 규모의 건물들이 대지를 둘러싸고 있다. 곳곳에 들어선 근린생활시설 건물들이 주택가 거리에 새로운 활력을 만들고 있다. 디파이 사옥은 거리와 소통하면서도 안정감을 주기 위해 저층부는 열고, 인접 건물과는 두꺼운 벽으로 강한 경계를 만들었다. 대신 1층 라운지를 반 층 올리는 스플릿 플로어(split floor)로 계획하여 내부공간을 시각적으로 보호하면서 동시에 지하 공간으로 빛이 흘러가도록 했다. 중정으로 확장된 1층 라운지는 수직·수평의 동선과 내·외부의 시선이 한번에 관통하는 에너지가 넘치는 공간이다. 분주한 움직임이 이뤄지는 장소의 특성상 자칫 산만하기 쉽지만, 여유 있는 공간의 크기와 분리된 시선의 방향, 그리고 자연의 생기가 어우러져 만남과 휴식을 위한 장소로 잘 사용되고 있다.    보이드와 단면 인터넷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현실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늘 모니터 앞에 있는 일상에서 잠시 하늘을 보고 바람을 맞고, 계절과 날씨를 느낄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외부 환경이 누구보다 이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내부공간(solid)보다 외부공간(void)을 먼저 디자인했다. 하늘로 열린 중정을 안쪽에 배치하여 각 층의 내부공간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연결했다. 중정의 빛은 선큰 가든으로 이어진 빛의 벽을 타고 지하 공간으로 전해진다. 층고를 높이고, 최대한 개방감을 확보한 지하 공간에 흘러내리는 빛줄기는 때로는 강렬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공간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벽과 볼륨 3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중정은 빛과 자연이 움직이는 감성의 공간이다. 중정의 ‘벽’은 시선 차단의 목적보다는 오히려 정제된 풍경을 보고 즐길 수 있는 ‘창’으로 계획되었다. 사옥의 모든 공간에서 벽은 그 자체로 빛과 하늘이 연출하는 ‘미디어’로 시시각각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의도적으로 두껍게 디자인된 벽은 볼륨으로 느껴질 만큼 무겁고 단단하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입면이면서 동시에 내부에서 경험되는 또 다른 입면이 된다.   사람과 마음 체화된 마음 이론(theory of embodied mind)에서 사람의 마음은 몸과 몸을 감싸고 있는 공간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몸의 감각과 움직임이 영향을 받고, 이를 통해 생각과 감정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피스’의 기본 개념은 이제 ‘기능’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뀌었고, ‘몸’의 편리함에서 ‘마음’의 편안함으로 확장되고 있다. 오피스는 이제 업무공간이 아니라 ‘집’과 같은 따뜻한 생활공간이 되어야 한다.   글 정재헌 사진 윤준환 
FILM 영상ㅣ선유재, 이정훈 주택프로젝트 의뢰가 들어 올 때면 항상 긴장하곤 한다. 대략 백여 가지의 고려해야 할 복잡다단한 결정 사항뿐 아니라 그중 한 두 가지를 놓쳤을 때 겪게 되는 민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의뢰인의 까다로움이 더할 때는 건축가로서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을 맛보곤 한다. 하지만 주택이 건축의 백미라 불리는 것은 대지가 주는 지극한 아름다움과 이를 해석하는 건축가의 풍미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선유재는 대지가 품은 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시작했지만, 건축이 자연 속에 놓일 때 만들어내는 구축의 기쁨을 깨닫게 해 준 프로젝트이다.  개발행위 제한구역 내의 건축은 대지의 레벨을 함부로 변경하지 못한다. 기존 지형의 질서를 존중하되 새롭게 구축되는 볼륨은 자연의 지형 속에 부드럽게 편입되어야 한다. 전면에 펼쳐진 관악산 줄기는 청계산 자락과 연결되어 마치 산과 산을 연결하는 지점으로서 대지를 해석하게 한다. 대지가 산을 품은 것인지 산과 산이 대지를 품어낸 것인지 착각하게 할 만큼 대지의 위치는 절묘하기 그지없다. 전면과 측면에 흘러내리듯 형성된 암반 덩어리는 산의 지세가 지닌 강인함의 끝자락에 본 대지가 놓여 있음을 직감하게 하였다.  선과 선은 산과 산을 시각적으로 연결한다. 이는 다시 호를 형성하고 면을 구축한다. 전면의 볼륨은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이 만나는 중성적 공간을 구축하기 위하여 다시 선적으로 비틀린다. 즉 입면의 볼륨감을 삼차원적으로 구축함과 동시에 하지에 적절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일층의 튀어나온 매스로 생성된 테라스는 게스트룸에서 정원을 마주하는 적절한 외부 공간을 만들어주게 된다. 산을 면해 비틀린 이 층의 테라스는 하부의 주방에 일정한 그늘을 제공하며 상부의 마스터룸에서 외기를 맞을 수 있는 중성적 공간을 제공한다.  선과 선으로 연결된 비틀린 입면을 연결하면 이중 곡면이 생성된다. 이는 우리 전통건축에서 볼 수 있는 처마 선의 구조와 유사하다. STS 원형 파이프는 이를 자연스럽게 채우기 위한 직선 재료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스틸 파이프는 입면의 선형에 따라 배열하여 곡면을 형성하고 내부의 조명과 더불어 그 존재감을 과시한다. 면을 채우는 것은 면이 아니라 선들의 집합이며 이들 사이의 군집은 선의 다른 미학을 만들어낸다.  또한, 선유재는 단순히 외적 미학만이 아니라 패시브 기준의 성능을 가진 공간으로 계획하였다. 47mm 두께의 프리미엄 유리, 고단열, 고기밀, 그리고 폐열 회수 환기 시스템을 적용하여 외기로부터 독립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계단면의 상단에는 암막 전동 블라인드 및 전동환기창을 설치하여 내부의 기능과 온도에 따라 빛과 공기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정원 측을 향해 배치된 내부공간은 전면의 테라스와 연계를 통해 자연의 변화를 하나의 차경적 요소로 감상할 수 있게 의도하였다. 외부를 향해 뾰쪽하게 노출된 도로면 처마는 건축주가 가장 많은 공간은 머무르는 서재의 공간이다. 전면의 관악산의 지세와 관문 공원 너머 펼쳐지는 청계산은 이곳에서 비로소 하나의 선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글 이정훈(조호건축사사무소) 사진 신경섭
FILM 영상ㅣ고안된 장식들,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고안된 장식들 A Model of Sporadic Thoughts    “건축가의 철학이 드러나는 집에서 살고 싶었어요. 요구사항은 많지 않아요. 우리는 작은집에서 살 준비가 되어있어요. 다행이도 음악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땅을 서울에서 구 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이장소가 세상의 모든 날카로운 것으로 부터 자유롭고 안전한 장소이길 바래요. 그래도 수압은 좀 신경 써주세요.”   틈틈이 노트에 써놓은 글 들을 엮어 단편집을 만드는 소설가의 마음으로 녹번동주택을 작업하고 있다.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모으고 작은 스케치들을 합쳐보는 과정만 있는, 부분이 부분 일 뿐 전체가 없는 그야말로 단편집이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에서 출발해 대지를 읽고 형태를 만드는 속박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내게는 실험이다.  냉철하고 치밀한 두뇌, 야망 가득한 눈빛은 잠시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   건축의 이미지 박공지붕, 네모난 창, 낮은 울타리, 그리고 나무 한 그루. 어릴 적 물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만약 내가 유치원 미술 시간에 그린 ‘집’의 드로잉이 남아 있다면, 분명 그 집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혹은 당신도 그렸을 법한 바로 그 집이었을 것이다. 빨간 지붕에 뻐꾸기창. 혹시라도 마당 한가운데 그린 나무의 가지가 잎이 없이 앙상하다면 평소 외로운 아이로 낙인찍혔을 바로 그 집. 그 이미지. 집의 이미지는 강렬하다. 건축을 공부하면서 내 머릿속에 각인된 집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애써 보기도 했었다. 그 이미지는 감옥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내가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기소침해지곤 했는데 그때마다 희대의 천재 건축가가 아닌 평범한 교육을 받은 보통의 인간임을 받아드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작은 발버둥에도 여지없이 똥이 되고야 마는 스케치와 모델들을 보면서 내가 똥을 그렸던가. 아닌데 집을 그렸는데. 그럼 역시 집 같지 않은 집은 똥이다. 완벽한 삼단논법이 완성되고 나서야 겨우 이 번뇌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는 4학년 3반 녹번동 주택은 우리 집의 이미지, 그 원형을 되짚어 본 작업이었다. 내 친구 정락이네 집에는 주물대문이 있었고 그 문을 열면 잘 정리된 조경수들과 함께 잔디마당이 펼쳐져 있었다. 큰 개들이 뒹굴었고 대문보다 더 큰 거실 창은 마당으로 열려 있었다. 이건 뭐랄까. 나에겐 판타지. 판타지의 전형. 어릴 적 내가 살던 우리 집은 아버지가 일하던 전방을 통해야만 갈 수 있었다. 전방에는 담배 냄새가 났고 시시껄렁한 양아치 삼촌들이 내 꼬추를 호심탐탐 노리고 있었기에 잽싸게 통과해야만 했다. 다시 외부로 나가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똘이(레쉬+삽살이) 집과 수돗가가 계단참에 있었고 차례로 작은 등나무 파고라와 녹슨 그네가 있던 우리 집. 진짜 집의 기억. 나는 창녕 영산 출신이지만 서울 녹번동에선 고향의 냄새가 났다. 대지의 두 면에 접한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좁은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작은 대문이 있지만 변하는 건 없다. 개의치 않고 또다시 좁은 길이 이어진다. 좁은 길은 계단을 지나면 축축한 바닥이 된다. 작업실 유리창에 손바닥 지문을 남기면서 2층까지 난 외부계단으로 올라가면 비로소 거실이 나오는 진짜 집의 이미지.    맥락 안의 건축 오래된 토지를 상대할 때는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다리 꼬지 말 것이며 삿대질도 조심할 것. 오랜 세월 동안 덧붙여진 법규들이며 작은 오차들이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35m 이상의 막다른 골목길은 도로선을 후퇴하게 만든다거나,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을 옆집은 경계를 한참이나 넘어와 있다거나, 점점 높아진 도로의 레벨로 집이 아래로 내려가게 됐다거나 하는 작은 사건들 말이다. 이렇듯 시간은 경계를 뭉퉁하게 만든다. 담장에 기대 노각을 파는 노인, 벽과 도로경계선 사이를 마당 삼아 화단을 가꾸는 다가구 빌라, 주차금지 표지판을 대신하는 무거운 화분들, 뭉퉁한 경계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   담장 밖의 사람들 새로운 사람들이 경계에 날을 세우기 시작하면 크고 작은 틈들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녹번동 주택은 옆집이 넘어와 쓸 수가 없는 1m 폭의 틈이 생기고야 말았다. 나는 이 틈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내 것도 당신 것도 아닌 마당도 아닌 길도 아닌 이 틈은 옆집 건물의 모서리에서 정확히 한 뼘 떨어져 있다. 고양이도 지나갈라치면 뺨이 좌우로 댕겨지는 작은 틈이지만 옆집이 허물어 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막다른 골목을 연결해주는 동네 길이 될 것이다. 의뢰인에게 부디 이 틈을 마당에 편입하지 마시고 이대로 두시면 좋겠다고 간곡히 요청을 드렸다.  녹번동 주택은 양쪽에 두 개의 인접 대지가 있는데 한쪽은 이미 침범을 한 상태이니 담장을 허물고 다시 세우기로 합의가 됐고 반대편 대지의 담장은 아슬아슬하게 경계면에 걸쳐져 있어 존치하고 새로운 담장을 덧씌우기로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옆집 담장의 높이라든가 재료 같은 것들이 여간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는데 옆집 담장의 안면이 집의 겉면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존의 낮은 담장을 여전히 뭉퉁한 경계로 남겨 두기로 했다. 기존 담장과 한 몸이 되는 두툼하고 낮은 담장을 만들어 담의 윗면을 이웃과 공유할 수 있도록.    빛의 언어 나는 17살부터 자취를 시작했고 이후 15년간 반지하와 북향집을 전전하며 궁색한 생활을 하였는데 매번 이사를 할 때마다 자연광 한줄기의 영광을 포기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자취방에선 한줄기 정도의 빛의 영광은 누릴 수 있었는데, 하루 중 단 몇 분뿐이었지만 폭 3cm의 직선의 광선이 방안을 드리울 때면 웃통을 벗고 마른 몸 구석구석 비추는 일광욕 시간을 가졌다. 그제야 보이는 안 보이는 것들. 떠도는 먼지며 걸레받이 틈의 개미집들같이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던 것들의 존재들이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자연주의자들이 직선에 대한 혐오를 얘기해도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억오천만 킬로미터를 직선거리로 7분 만에 날라와 방구석 개미집까지 비추는 대자연의 언어, 그것이 파동이든 입자든 뭐든 간에 직선인 것이다.   온화한 덩어리 대지는 남서 방향에 넓은 변을 맞대고 있다. 오전에 동쪽에서 비추는 조광을 짧은 변에서 짧은 시간 받아들이고 남에서 서로 넘어가는 동안 긴 시간 일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태양을 바라보고 여러 개의 창문을 내 모든 공간에 온종일 빛이 집안 내부를 드리우는 것을 상상하니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직선이 마음에 걸린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배려 없는 속사포의 직설을 종일 듣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빛의 변화가 은유적이었으면 좋겠다. 직선의 그림자가 공간에 생채기를 내지 않고 온화한 빛의 덩어리가 잠시 머물다 가는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북쪽의 파사드는 기능 없이 독립적으로 서 있는 벽이다. 남쪽에서 쏟아지는 속사포의 빛을 머금었다가 집 내부로 옮겨주는 역할만 할 뿐 다른 기능은 없다. 파사드 안쪽 면에서 집은 속살을 온전히 다 보여준다. 커튼월 방식으로 시공된 깊이가 없는 얇은 유리 한 장으로 벽과 대면하고 있다.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니 커튼이 필요 없다. 마치 넓은 dry area를 둔 지하와도 같다. 벽에 부딪히고 산란한 빛은 파동은 사라지고 질량만 남아 집안에서 오랜 시간 머문다. 마치 새벽에 아내 몰래 끓여 먹은 라면 냄새가 아침에도 다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이것이 광활한 자연을 대하는 이 집의 자세이다.   밤의 표면과 장식된 빛 검은 밤이 찾아오고 하나둘 전등이 켜지면 치부는 비로소 드러난다. 자연광의 따뜻한 색온도로 모든 게 용서되는 낮이 지나고 울퉁불퉁하고 거친 벽체 위에 날 선 조명이 떨어지는 밤이 오면 은혜로운 낮에 숨어있던 실수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진실의 시간이다. 무자비한 상대에게 전부를 밝히는 실수를 하지 말자. 어두움이 묻은 밤의 벽면은, 표면은, 낮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물질이 다. 빛이 내려앉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공간을 하기 위한 빛이 아니라 필요한 지점마다 바닥에 내려앉는 불빛, 새어나오는 불빛, 좁고 깊은 천장의 슬라브 구멍에서 나와 바닥 일부를 비추는 불빛, 얕고 긴 틈에서 나오는 옅은 불빛. ‘선생님. 그런 조명은 어디서 파나요?’ 마우스와 키보드를 내려놓고 우리는 기꺼이 목수가 되기로 하였다.   글 윤한진  
FILM 영상 ㅣ 수졸당 (守拙堂), 승효상 1986년 5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수근 선생께서 남기신 말씀으로 나는 공간설계사무소를 3년간 이끈 적이 있다. 선생이 부재에도 선생의 건축을 계속할 수 있다며 분투하였지만 늘 허무할 수밖에 없었고 끝내 선생이 남기신 울타리에서 나오고 만 때가 1989년 말이었다. 15년간 선생의 문하에서 익힌 건축의 방법은 너무도 내게 익숙한 것이었어도 그걸 확인해줄 이가 없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내 건축을 찾겠다고 독립한 나는 내 건축을 전혀 몰랐고 심지어 나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만큼 15년은 김수근건축에 철저히 동화되어 내 신체가 되기까지 한 족쇄였지 않았을까?  내 건축을 찾기까지 아득한 방황과 결렬한 자아 부정 등의 과정을 통해 신음하듯 뱉은 게 ‘빈자의 미학’이라는 용어였다. 선언이라고 해도 된다. 그때까지 내 모든 지난날들을 용광로에 넣어 녹여 겨우 추출한 단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작업한 게 수졸당이다.   그 이후로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물론 대단히 많은 작업을 그사이에 마쳤으며 여전히 건축의 현장에 머물러 있는 나에게 그간의 세월은 실패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과도하게 말하면 내가 작업한 건축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여 기억하는 것조차 힘들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작업이 이 수졸당이다. 내가 지금 얼마만큼 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하며, 그럴 정도로 수졸당은 내 건축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 1993년에 완공되어 28년간 삶의 때를 묻힌 수졸당이 처음으로 대청소를 하여 원형을 다시 찾았다. 그 사이에 지가가 어마어마하게 올라 주변은 죄다 상업용의 시설로 변했지만, 이 집의 주인인 유홍준 교수는 그 세찬 상업주의에 저항하였고 이제는 이른바 ‘현대의 유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믿기로는 앞으로도 오랜 세월을 이 땅 위에 서서 우리가 살았던 기억을 이으며 전하게 된다. 수졸당은 그래서 이미 역사며 문화의 한 부분일 거다.   아랫글은 수졸당을 지은 직후인 1993년에 쓴 것이다.    오랜 도시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수없이 많은 건축물이 이 땅을 빼곡히 메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건축이 여전히 세계의 건축과 괴리를 느끼게 하고 있음과 한국문화의 중심에서도 멀리 있음을 고백해야 하는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다른 몇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난 수십 년 간 우리 사회 구조를 지배한 잘못된 정치행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더불어 균형 잡히지 못한 부의 축적에만 몰두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가치가 왜곡된 그런 사회에서 빚어지는 건축의 모습은, 더 높이 만, 더 크게만, 더욱 위엄 있게 만 보이기 위한 것들에 더욱 큰 관심을 두게 하였고, 그 결과 그 속에서의 삶의 의미는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갑자기 축적된 부가 헛된 장식과 구호에 쏟아 부어진 결과, 거리를 메운 건축은 찬란하되 껍데기뿐이었고 화려하되 졸부의 헛된 욕망을 나타내는데 만 골몰하였음에 우리의 삶은 자꾸만 일그러지고 또한 박제될 그러한 위험에 처해 있음도 아울러 직시해야 한다.  우리네 조선의 선비들이 빚은 도시와 건축은 어떻게 저토록 높은 격조와 품위를 가졌었나. 그것의 바탕은, 물질보다는 정신에, 욕정보다는 이성에 더욱 큰 가치를 둔 청빈의 정신이었을 터이며, 그의 위에선 선비정신은 조선 500년을 지탱케 하며 우리의 뿌리가 되어 있음을 다시 기억해 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자기의 땅보다는 남의 것을 더 채워주려 하고, 더 작은 땅을 점유하려 하며 그것도 남과 같이 쓰기를 원하는 그런 염치와 절제의 건축을, 사회와 고립된 높은 벽체로 싸인 그림 같은 집이 아니라 이웃과 연결된 보다 낮은 그런 집을, 육신이 편안하기보다는 정신이 맑기를 원하며 육체를 왜소화시키는 기능적인 집보다는 오히려 반 기능적이어서 삶 자체가 진솔해지는 그런 공간을, 우리로 하여금 사유케 하고 스스로를 반추시키는 배경이 되는 그런 지적 벽면을, 이제 우리의 도시에 다시 세워야 함을 믿는다. 이 아름다운 산하와 반만년 역사를 이은 우리네 삶의 모습이, 저런 못난 건축 속에서 그 질을 보장받을 수 없다.  세기말을 앞둔 지금, 그러한 일그러진 편린과 대립해야 하는 우리의 정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그것은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까닭이 된다. 보잘것없는 집'이라는 뜻의 이 집은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를 위한 집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유 교수는 한국 미술사에 남다른 식견을 가진 미술평론가이며, 또 그는 민중의 삶에 애착을 가진 지성이다. 그는 나에게 설계를 의뢰하기까지 여러 번 망설였다고 한다.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 대한 불신 등이 그러한 망설임의 대부분이었는데 이를테면 비싼 것, 편하지 않은 것 등이 그것이다. 유 교수는 이러한 것이 선입 관념일 수 있음을 알고 나에게 이런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며 설계를 의뢰하였으며 동시에 나의 건축적 의지에 결코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고, 이 약속은 끝까지 지켜졌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제가치가 우선된 토지, 주거 정책으로 인하여 크게 잘못된 주택관을 가지게 되었는데 주택을 사용에 대한 관념보다 소유개념을 더욱 중시한다는 것으로 그 결과 집 속의 공간이나 그 속에서의 삶보다는 집을 구성하는 벽체와 지붕의 모양 등에 더욱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얻어진 주거형식이라는 것이 주어진 필지에 높은 담을 쌓고 자기를 보호받기 위해 그 담 위에 철조망을 또 두르고 그 속에 아파트처럼 기능적인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은 부분은 `저 푸른 초원'을 즐기기 위해 잔디 깔고 나무 심는 그러한 것인데, 이러한 집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이웃이 있을 턱이 없고, 가족의 아이덴티티가 있을 수 없으며, 더불어 개인의 프라이버시 또한 오히려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와지붕 시대 이후의 참다운 주거문화를 실현해 본 적이 없으며 오로지 주택이 가족 신분에 대한 상징으로서 여겨져 온 결과 껍데기만 있는 졸부의 주거문화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집 장사와 개발업자들에게 상당 부분 있지만, 그렇다 하여 건축가들의 책임 또한 면하기 어렵다.  내가 이 집을 설계하면서 가진 의문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다시 도시주택의 전형을 만들 수 없을 것인가. 주택은 도시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나. 주택에서 삶의 형태와 공간의 형태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주택은 기능적이어야 하나. 이 시대는 어떤 주거형식을 요구하는가. 이 집이 완성되면서 이러한 의문문이 얼마만큼 그 해답을 구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성취한 몇몇은 요즘 나의 건축을 송두리째 지배하고 있는 빈자의 미학에 대한 구체적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였고, 그 성취는 대부분 유 교수가 전적으로 건축가를 신뢰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며 그와 설계와 시공 기간 중 내내 나눈 여러 이야기가 오래 기억될 것이다. 1993.  글 승효상  사진 김잔듸
FILM 영상 ㅣ 전봇대집 (The Pole House), 조윤희, 홍지학 낡은 동네 풍경 구출하기 전봇대와 집 최첨단의 기반시설로 깨끗하게 정비되는 아파트 단지가 보편적 주거 개발 해법으로 활용되는 요즘 도시에서 골목의 한 켠을 지키는 전봇대는 오래된 동네의 상징이다.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영위하기 위해 온갖 전력, 통신 케이블을 공중에서 분배하기 위한 지지대의 기능을 하면서, 동네의 풍경에 가장 큰 인상을 남기는 사물이기도 하다.  서계동에서 1971년 완공한 2층 건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 건물 모퉁이에서 덕지덕지 얽힌 케이블들을 힘겹게 받치고 있던 전봇대가 집에 대한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은 건물을 ‘전봇대집’이라고 이름 짓고, 자칫 동네 경관의 방해자로 인식될 수 있는 전봇대의 존재를 긍정하고, 이를 우리 건물의 일부분으로 읽기 위해 노력했다.  오래된 시간을 드러내기 기존의 낡은 건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면서 부각하려 했던 부분은 50년 전에 축조하며 쌓인 흔적들을 다시 수면 위로 불러오는 것이다. 골목과 단절되어 폐쇄적인 모습을 띠던 저층부의 벽들은 주요 구조 부위만 남겨두고 최대한 덜어내어서 가볍고 투명한 공간을 길 위에 드러내고자 했다. 기존 기둥에 오랜 세월 덧붙어 있던 불필요한 장식물들을 떼어내고, 벽돌 쌓기로 둘러싸인 기둥의 거친 면을 투명한 유리 벽 너머로 노출하고, 별도의 조명으로 그 질감이 건물 디자인의 일부가 되도록 의도했다. 그리고 유리 벽으로 감싼 거친 기둥과 골목길 사이에 새로운 시간이 덧대었는데, 흰색으로 도장한 철판으로 긴 화단을 두고 조경이 부족한 골목길에 녹색공간을 더해주었다.  구축에 담긴 시간의 디자인 전봇대집의 2층은 방 네 칸과 주방 겸 거실을 지닌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집을 사무실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고치면서 기존의 집이 지니고 있던 기억을 사무실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전용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방을 나누는 벽체의 표피(skin)를 걷어내고 조적벽을 드러내어, 기존의 방 구획이 자연스럽게 사무실의 워크스테이션들이 차지하는 영역으로 사용될 수 있게 했다. 동시에 이 벽들이 구조적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던 벽체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조적벽과 슬라브가 만나는 상부를 덜어내어 빛과 소리가 흘러나오도록 하였다. 건물이 축조된 과거의 내러티브를 공간화하면서, 동시에 벽들로 인해 잘게 나누어져서 공간이 협소해 보일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디자인 선택이었다.  기존 주택으로 쓰였던 건물은 외부를 향하는 창이 부족해 실내가 다소 어두웠다.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계단실 코어벽 상부에 천창을 내어 빛이 부드럽게 사무공간에 흐를 수 있도록 했다. 이 천창은 기존 슬라브를 부분적으로 절개하여 만들 수 있었는데, 이때 자연스럽게 드러난 철근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도록 했다. 이를 통해 건물이 지닌 시간을 디자인의 주요한 요소로 전용한다는 전봇대집 전체의 디자인 방향과 맥락이 유지되도록 하였다.  즉흥성의 건축 서계동 전봇대집은 컴퓨터 위의 도면과 모델링을 통해 모든 것이 치밀하게 계획되어 시공된 건물이라기보다는 현장에서의 즉흥적인 마주침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디자인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킨 결과물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오랜 시간의 속살을 긍정하고 우리의 전봇대집 디자인 정체성으로 읽힐 수 있도록 노력했다.  서계동 전봇대집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장의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낡은 건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방법을 탐구하는 프로젝트였고, 이 작은 도시적 개입이 어둡게 잊혀가는 작은 동네의 골목을 새롭게 밝히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글 구보건축 사진 텍스처온텍스처
FILM 영상 ㅣ Face-Lift Sangdo, 이승택, 임미정 대지 위치와 주변의 변화 상도동은 지난 10년 동안 재개발로 약 10,000세대의 아파트가 공급되었다. 상도 더샾, 상도 두산 위브, 상도 노빌리티, 상도 롯데캐슬 등으로 둘러싸인 지역의 안쪽에는 고립된 듯한 오래된 빌라촌이 존재한다. 빌라촌은 재개발 호재에서 비켜나 연립, 다가구 등 신축 건물과 노후화된 건물이 질서 없이 혼재되어 있다. 이 건물의 대지는 상도역과 장승배기역 사이 만양로를 따라 북쪽으로 진입하는 그 빌라촌의 초입에 위치한다.  주변의 아파트 단지로 인해 주거 공급률은 높아진 반면 대상지 주변의 오래된 건물들에 대한 주거 임대율은 낮아졌다. 아파트 거주민들을 위한 근린생활시설(상업시설)에 대한 수요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나 필지의 크기가 작아 사업성이 높지 않아 보였다. 협소한 대지면적 (62㎡)으로 신축할 경우 도로 산입, 주차와 사선을 고려하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면적 대비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30년을 다가구 주택으로 활용하며 임대 수익이 발생했던 건물에 대한 용도 변화가 요구되었다. 더불어 재개발의 남겨진 영역에 임대의 목적으로 난개발된 주변 풍경은 더는 집합체적 가치로서 문맥의 의미를 제공하지 않았다. ‘Face-Lift 상도’는 이러한 배경을 가진 옛 건물의 리모델링(대수선)에 대한 방향성을 제안한다. 용도의 변경과 대수선의 범위 자동차 산업에서 많이 쓰이는 ‘Face-Lift’라는 용어는 신차 출시 이후 풀 체인지(혹은 또 다른 신차개발)까지의 기간 동안 소비자의 관심을 다시 받아 상품성을 올리기 위해 내•외부에서 행해지는 디자인 변화를 통칭한다. 생산 라인을 바꾸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작게는 램프(Lamp), 범퍼(Bumper) 등의 교체부터 크게는 엔진 및 변속기를 비롯한 실내디자인의 변경까지 포함한다.  ‘Face-Lift 상도’는 1인 기업이 건물을 사용하게 되면서 주변 주거의 맥락과 다른 건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외부 계단 동선, 주 출입구 위치, 내•외부 벽체와 공간의 크기 및 내외부 마감과 건축적 요소 등 다양한 범위에서 전방위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웹툰 작가이기도 한 건축주는 스토리의 기획, 출판, 전시 및 홍보 등 일련의 과정들을 층별로 실행할 수 있는 1인 출판사를 계획했다. 건폐율은 거의 다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구조 보강을 통해 1개 층 정도를 수직 증축하면 필요한 면적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임대 수익을 위한 최대 면적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필요한 면적을 채워나가는 접근이 가능했기에 건물의 규모는 기존 주거지가 갖는 익숙한 스케일과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방, 거실 및 화장실의 위치와 크기 등 주거의 평면 구성은 근린생활과 다르고 층별 건축 면적이 10평 정도로 작은 공간임에도, 자유로운 공간 활용을 위해 기존의 공간은 철거되고 새롭게 구성되어야 했다. 계단을 지지하는 내력벽과 기존 세대별 현관이 연결되는 부위는 ‘형식적 구조’를 유지하면서 오프닝을 내어, 수직적으로 다른 프로그램을 연결할 때 사용되는 전이 공간으로 치환되었다.  기존 다가구 건물의 주 진입은 외부였던 계단실의 참에 설치된 유리문이었다. 도로에서 여유 공간 없이 강제하듯 바로 진입했기 때문에 새롭게 변화될 공간의 프로그램상 동선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이에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주 출입구를 옮기고 계단을 내부화하였다. 그 계단실을 따라 기존 옥상층을 내부로 연장하여 증축하고 물탱크실을 철거하면서 그 층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옥상 정원을 만들 수 있었다.  대부분 변형된 것에 반하여 또렷하게 옛 건물의 흔적을 남긴 요소가 있다. 기존 건물의 바닥을 철거할 때 모아둔 난방 배관 주위 자갈을 재사용한 것이다. 건물 전체의 각 층 바닥 무근 마감에 재활용하여 골재 면이 노출된 콘크리트 폴리싱으로 오래된 재료의 질감을 유지하였다. 구조의 보강과 공간의 사용성 최근 많이 이루어지는 대수선(리모델링)의 공간적 요소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만들어진 빈티지 미장면과 철재 기둥(Steel column)과 빔(Beam)의 철골 보강 조합이다. 최근 강화된 내진구조 설계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오래된 건물의 내력벽을 수정할 경우, 가장 보편적으로 철골로 프레임을 형성하여 구조적 성능을 향상하기 위한 것이자, 일종의 소비되는 멋이다. 그러나 최하층의 상황이 프레임의 하중을 전달하는 기초 부분 보강을 위해 장비가 들어서서 작업하기 어려울 정도이고, 좁은 바닥 면적과 낮은 층고로 인해 기둥과 보에 의한 공간 손실도 아쉬운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Face-Lift 상도’는 철골 대신 철근콘크리트 벽체 구조 보강을 통해 내부 사용 공간을 최대치로 확보하고 내진구조를 동시에 만족하였고, 더불어 대수선의 클리셰(cliché)로 대변되는 철골 부재의 요소를 의도적으로 감추었다. 프로그램의 기획과 층별 조닝 1층은 독립서점(+외부공간), 2층은 갤러리, 3층은 작가의 작업실, 4층은 공유 주방(+옥상 정원)이며 1인 출판사로서 기획부터 홍보, 출판 그리고 그 판매까지 생산과 소비의 전 과정이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1층과 4층의 외부공간은 층별 행사 및 활동을 지원하고 프로그램이 외부로 확장 연계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주 출입과 분리되어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고 팝업 스토어나 이벤트를 위한 대기 공간이 되기도 하며 간단한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얇은 마당들이다.  간유리와 샷시로 막혀 있던 계단실은 채광과 풍경을 위해 또한 사람들의 움직임과 머무름을 최대한 도시로 표출하기 위해 투명유리로 교체하였다. 변화된 내부 공간에 따른 새로운 입면은 층별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머무름을 최대한 노출할 수 있는 도시의 스토어프론트(storefront)가 된다. 새로운 입면과 가능성 기존 건물에는 ‘정면’ 즉, 얼굴이 없었다. 분명 도로와 접해 있으나 도로에서의 인상이 없었다. 반지하에 있던 주거 세대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담으로 창문을 가렸고 2층과 3층은 마주하는 건물을 피하듯 작은 창을 가졌고 계단실은 불투명했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삼각형 포인트 장식을 가진 유리문이 곧 대문이자 출입구이며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던 불편한 장소였다. 붉은색 벽돌은 주변의 건물들이 문맥 없이 외부 마감을 뽐내는 동안 연관성을 잃었다. 입구를 북측으로 옮기면서 반 층 내려가는 전이 공간을 형성하고 이를 2층의 갤러리까지 수직으로 연결하면서 좁고 높고 깊은 주 출입구로 건물의 인상을 바꿨다. 1980~90년대 적벽돌 치장마감은 단열 보강과 더불어 완전히 다른 두 재료, 거친 천연석과 알루미늄으로 가리고 계단 형태의 반복적 기하학과 더불어 새로운 입면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알루미늄 클래딩은 매끈한 질감의 가벼운 기단부를 형성하면서 혹두기 천연석의 거친 질감으로 무게감을 더한 상층부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글 stpmj 사진 배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