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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대공원 꿈마루, 조성룡, 최춘웅
1970년대에 지어진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는 건축가 나상진의 설계로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구성된 건물이다. 네 개의 굵은 콘크리트 쌍기둥 뼈대가 지붕을 떠받히고 있는 구조로 12x24m의 큰 지붕, 수평으로 길게 뻗어나간 상판 구조로 구성된 강렬한 조형성을 갖고 있다. 37년간 방치되던 건물이 철거 직전 건축가 조성룡의 자문으로 리노베이션이 결정되면서, 1970년과 2011년이라는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하는 건축물로 다시 태어났다. 건축가 조성룡과 최춘웅은 기존 건축물의 강렬한 골조를 살리고, 그 사이 덧대어진 부분을 덜어내었으며, 새로 신축하는 부분은 붉은 벽돌, 내후성 강판, 철판, 유리, 목재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할 수 있는 재료를 선택해 기존 방식과 구분되도록 했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두 시대가 공존하고 건축물 자체가 시간의 박물관이 된 건축물이다. 이번 오픈하우스서울 프로그램에서는 건축가 조성룡의 건
축 설명을 따라 건축물을 둘러볼 뿐만 아니라, 2층 피크닉 공원에서 건축가 조성룡의 강의도 함께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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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질병관리본부(현 서울혁신파크), 유현준
1912년 조선총독부 경무국 위상과에 설치된 세균실에서 시작한 질병관리본부는 해방 후 모범보건소와 중앙보건소 등의 조직변화를 거쳐 1963년 국립보건원으로 조직이 통합되었다. 삼청동에 자리하던 국립보건원이 1960년부터 일부 시설을 당시 논밭이었던 녹번동으로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질병관리본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본관은 1962년 12월에 신축, 1963년에 국립보건원, 국립방역연구소, 국립화학연구소, 국립생약시험소 4개 기관이 국립보건원으로 통합하면서 이곳에 입주했으며,본관은 1991년에 철거되었다. 1987년에 현재 본관건물이 마무리되고 이후 폐수처리장, 실험동 등이 여럿 신축되었다. 각 동의 조성연대를 보면, 1동 1989년 준공, 22동, 22-1동 1971년 준공, 4동 1962년 준공, 5동 1972년 준공, 7동 1986년 준공, 16동 1971년 준공, 동물사 및 동물실험실, 곤충사육실, 우편취급국 등 40년에 걸쳐 많은 건물들이 신축되고 철거되면서 질병관리본부는 1960-80년대 건축물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물로 구성되었으며, 2010년 말 충북 오송으로 질병관리본부 시설이 옮기기 시작하면서 본래의 쓰임을 다하게 되었다.
1층 면적 500평에 달하는 본관건물은 건축가 유현준의 설계로 리노베이션되어 청년허브,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의료장비창고, 생물 실험동, 시약창고 등이 옛 모습을 간직한 이곳은 서울혁신파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활용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김재경
OPENSTUDIO
판교 계수나무집, 조남호
건축주 부부 장인화, 박지현씨는 더운 여름날 사무실을 찾았다. 두 사람 모두 미술전공에 건축에 대한 관심이 많아 첫 만남에서부터 우리는 집 이야기 보다는 건축 이야기로 시작했다. 건축주와 건축가 사이에 건축이라고 하는 공유의 언어가 있고, 그 언어를 통해서 이야기 하는 상황, 마치 3인칭 시점에서 집을 이야기하는 상황이었다. 건축주는 35평에서 50평 면적에서 프로그램까지 꽤 넓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었고, 당연히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도 구체적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설계 과정은 요구사항의 단순한 수행이 아니고,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하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판교는 담을 둘 수 없는 지구단위계획으로 인해 패쇄적인 덩어리들의 집합체 같다. 이 집의 시작은 커뮤니티를 조장하는 마을과 집 사이에 공유 공간을 두는 일이 되었다. 담을 대신하는 적정 높이의 가벽 뒤에 사랑방과 가로 사이를 적절히 이어주는 테라스를 두었다. 가벽은 사랑방의 남측창이 도로와 바로 면하는 것을 가려주고, 테라스에 올라서면 길을 지나는 사람과 눈인사를 나눌 수 있다. 측면 정원 역시 공유의 가치를 담고 있다. 건축주와 우리는 이 정원이 사유화되기보다는 마을길에서 시각적으로 공유하는 공간으로 계획했다. 여기에 심겨지는 나무도 개인정원 스케일이 아닌 가로스케일로 고려하자는 의견이 반영됐다.
계수나무집은 중목구조와 경골목구조로 구성된 하이브리드 공간이다. 경골목구조 외벽과 더불어 중목구조로 이루어진 1층은 기둥과 보가 구조를 담당하기 때문에 벽은 자유롭다. 즉, 채워질 수도 있고 비워질 수도 있어서 긴 세월 뒤 벽의 위치를 바꾸는 평면의 변화가 가능하다. 1층은 창고 같은 공간이다. 주방과 식당, 거실이 구획 없이 통합되어 있으며, 화장실조차 분리되어 보이지 않도록 실린더 형태로, 주방도 커다란 아일랜드 하나로 통합해 벽으로부터 독립시켰다. 소파나 식탁의 위치는 고정적이지 않다. 지금도 가끔 방문할 때마다 위치가 바뀌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가구의 배치에 따라 공간의 쓰임과 느낌이 달라진다. 건축주의 의지대로 구성할 수 있으나, 소유하지 않는 공간이다.
건축주는 잠자는 시간 전후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생활이 일층에서 이루어진다. 잠시 눕거나 차를 마시기 위한 공간, 손님을 위해 사랑방을 두었다. 두 폭의 미닫이문이 거실과의 분리와 통합을 가능하게 한다. 2층은 1층과 명확하게 대비되는 기능적인 공간이다. 안방과 드레스룸, 욕실, 미래의 아이를 위한 방, 심지어는 층간 오픈공간도 마치 실(室)처럼 복도를 중심으로 구획된 공간이다.
계수나무집 에너지 절감을 위한 전통 기술의 지혜를 활용했다. 실린더를 포함해 1,2 층간 오픈된 공간은 2층의 다른 부분과 벽이나 유리로 막혀 있어 층간 에너지 관리에 유리하다. 오픈 공간의 최상부에 석빙고의 원리를 이용한 에어포켓을 두었다. 더운 공기가 모여있는 에어포켓은 열다이오드 현상으로 하부의 낮은 온도를 안정시킨다. 상부의 천창은 조금씩 더운 공기를 배출해낸다.
글 솔토지빈건축 조남호
사진 윤준환
OpenHouse
<1950-70년대, 초기 아파트를 만나다> 서울의 개발과 도심 아파트의 생존, 가이드 정다은
프로그램 1ㅣ서울의 개발과 도심 아파트의 생존
동대문아파트 - 삼일아파트 - 세운상가 아파트 답사
* 아파트 단지는 공동 주거 영역입니다. 단지 내 공동 영역에 대한 답사가 이루어지며, 사적 영역에는 접근이 어렵습니다. 답사 시 개별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이동과 답사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주거 유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파트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지금의아파트와 또 어떻게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아파트의 사회적 의미에서 도시에서 차지하는 의미까지, 아파트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한 요즘, 오픈하우스의 두번째 프로그램은 1950-70년대에 지어진 초기 아파트를 만나본다.
미쿠니아파트, 유림아파트(충정아파트)는 일제시대 이 땅에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다. 현재 남아있는 충정아파트는 콘크리트로 지은 4층 규모의 중정형 아파트로, 일종의 관사로 지어졌다. 본격적인 아파트가 등장한 것은 1960년대의 일인데, 당시 1950년대는 전후 복구가 중요한 시기로, 국민주택, 외인주택, 상가주택 등 다양한 주택 유형이 연구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좌식과 입식, 장동대의 유무를 두고 논의를 할 만큼 새로운 생활양식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기이기도 하고, 외국 주택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던 때다.
우리나라 기술로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는 종암아파트이며, 1960년대에는 마포아파트가 조성되었으며, 동대문아파트, 정릉아파트와 같은 작은 규모의 아파트도 조성되었다. 삼각지, 회현아파트, 유엔빌리지와 외인아파트가 등장했으며 최초의 노출콘크리트로 눈길을 끈 힐탑아파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대단지 아파트 시대로 진입하면서 홍제동 아파트, 화곡동 아파트가 조성되었다.
1968년 반포아파트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아파트 붐이 일어나게 되는데, 1970년대에는 최초로 중앙난방을 도입한 한강맨션과 공공공간에 대한 고민을처음 반영해 ㅁ자 배치를 만들고 처음으로 조경계획을 한 잠실 아파트 등이 등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초기의 아파트는 전통과 현대의 생활양식 변화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뿐만 아니라, 주거 공간에 대한 전문가들의 고민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특히 단지형 아파트의 경우, 단지 내에서 공공시설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공용시설들이 계획되기도 했으며, 단지 내 가로에 대한 고민이 반영되기도 했다.
공동주택의 초기 모습이 담긴 1950-70년대 아파트 답사를 통해 초기 공동주택의 이상과 현실, 아파트 공간을 재발견해본다.
진행 정다은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와 서울건축학교를 졸업하고 건축사사무소 어싸일럼, 매스스터디스에서 실무를 쌓았다. 서울시립대 대학원 건축학과 석사과정 중인 정다은 씨는 30년 이상 지난 한국의 근현대건축에 대한 관심으로 리서치를 계속해나가고 있다.
OPENSTUDIO
<1950-70년대, 초기 아파트를 만나다> 한강과 아파트 단지, 가이드 정다은
프로그램 2ㅣ한강과 아파트 단지
한강맨션 - 이촌시범 중산아파트 - 여의도 시범아파트 답사
* 아파트 단지는 공동 주거 영역입니다. 단지 내 공동 영역에 대한 답사가 이루어지며, 사적 영역에는 접근이 어렵습니다. 답사 시 개별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이동과 답사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주거 유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파트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지금의아파트와 또 어떻게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아파트의 사회적 의미에서 도시에서 차지하는 의미까지, 아파트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한 요즘, 오픈하우스의 두번째 프로그램은 1950-70년대에 지어진 초기 아파트를 만나본다.
미쿠니아파트, 유림아파트(충정아파트)는 일제시대 이 땅에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다. 현재 남아있는 충정아파트는 콘크리트로 지은 4층 규모의 중정형 아파트로, 일종의 관사로 지어졌다. 본격적인 아파트가 등장한 것은 1960년대의 일인데, 당시 1950년대는 전후 복구가 중요한 시기로, 국민주택, 외인주택, 상가주택 등 다양한 주택 유형이 연구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좌식과 입식, 장동대의 유무를 두고 논의를 할 만큼 새로운 생활양식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기이기도 하고, 외국 주택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던 때다.
우리나라 기술로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는 종암아파트이며, 1960년대에는 마포아파트가 조성되었으며, 동대문아파트, 정릉아파트와 같은 작은 규모의 아파트도 조성되었다. 삼각지, 회현아파트, 유엔빌리지와 외인아파트가 등장했으며 최초의 노출콘크리트로 눈길을 끈 힐탑아파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대단지 아파트 시대로 진입하면서 홍제동 아파트, 화곡동 아파트가 조성되었다.
1968년 반포아파트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아파트 붐이 일어나게 되는데, 1970년대에는 최초로 중앙난방을 도입한 한강맨션과 공공공간에 대한 고민을처음 반영해 ㅁ자 배치를 만들고 처음으로 조경계획을 한 잠실 아파트 등이 등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초기의 아파트는 전통과 현대의 생활양식 변화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뿐만 아니라, 주거 공간에 대한 전문가들의 고민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특히 단지형 아파트의 경우, 단지 내에서 공공시설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공용시설들이 계획되기도 했으며, 단지 내 가로에 대한 고민이 반영되기도 했다.
공동주택의 초기 모습이 담긴 1950-70년대 아파트 답사를 통해 초기 공동주택의 이상과 현실, 아파트 공간을 재발견해본다.
진행 정다은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와 서울건축학교를 졸업하고 건축사사무소 어싸일럼, 매스스터디스에서 실무를 쌓았다. 서울시립대 대학원 건축학과 석사과정 중인 정다은 씨는 30년 이상 지난 한국의 근현대건축에 대한 관심으로 리서치를 계속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