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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작은집, OBBA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 T.S 엘리엇은 “집은 한 사람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이야기했다. 굳이 이러한 격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집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두가 알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집은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의 주거문화는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 매매 수단으로써 전락해 버리고 우리의 주거문화는 획일화된 유형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건축주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로써, 의미 없는 기준들에 스스로를 맞추어 살아가기 보다는 작지만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한 근원적인 질문들로부터 집을 짓기를 의뢰하였고, 프로젝트의 시작은 결혼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혼부부들에게 아파트나 다세대의 주거 유형 외에도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어떠한 대안이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이트는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 초입에 위치한다. 높고 가파른 지형의 이곳엔 낡고 오래된 판자촌과 낙후된 지역을 개선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그려진 벽화들이 오묘한 풍경을 자아내며 존재한다. 북측으로 6m도로와 서측으로 4m도로가 만나는 코너에 위치해 있으며 남측과 동측으로는 보행자를 위한 작은 골목길로 감싸진 그리고 대지의 가장 낮은 곳과 높은 곳의 레벨차가 4m가 나는 급경사의 조건에 위치하고있다.
가장 중점적으로 고민해야 했던 점은, 제한된 예산 내에서 구매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던 열악한 조건의 대지를 어떻게 읽고 접근할 것인가, 무채색의 판자촌과 형형색색의 벽화들이 혼재하고 있는 사이트의 조건 속에 하나의 풍경으로써 어떻게 함께 어우러질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한된 공사비 내에서 얼마나 작지만 풍부한 공간감을 이끌어 낼 것 인가였다.
최대한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서는 주택이 들어설 대지의 컨디션을 최대한 보존하고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또한 건축주가 제시한 최소한의 프로그램들과 함께, 별도의 주차공간이 필요 없다는 조건들을 고려하여 법적으로 주차장 면적을 확보하지 않아도 되는 최대 면적인 50㎡ 미만으로 규모를 제한하여 2층 규모로 계획하였다. 사방이 도로로 둘러 쌓인 대지의 조건상 대지의 레벨 차이를 이용하여 현관을 1,2층 중간에 위치시키도록 하였고, 효율적인 동선 및 프로그램의 특성을 고려하여 주로 시간을 보내는 거실과 주방은 충분한 채광과 조망을 위하여 2층으로 배치, 그리고 프라이빗한 실들과 화장실은 1층으로 계획하였다. 작지만 구석구석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하여 다락에 서재겸 영화감상이 가능한 공간을,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책장 겸 계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거실과 주방은 높이 차이를 두어 주방에서의 조리대가 거실에서의 좌식형 식탁의 역할을 겸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이제까지 우리의 주거문화는 자본논리에 의한 대규모 개발을 통해 획일화된 유형으로 점유되어왔고 그로 인해 오랜 도시의 흔적들 또한 사라져 왔다. 도심 속에 남아있는 다소 열악한 조건들의 소규모 필지들이 다양한 건축적 해법으로써 접근된다면, 우리의 주거 유형은 좀더 풍부해지며 또한 기존의 마을의 흔적을 지켜나갈 수 있지 않을까를 기대해본다.
글 OBBA 사진 신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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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집, SAAI건축
서울시 마을만들기 시범지역에 속한 부지에 지어진 연남동 어쩌다집은 9세대의 소규모 주거공간이 라운지, 동네 부엌, 수직골목의 공용공간으로 엮인 집이다. 건축가는 재료의 디테일보다는 공간 조직의 완성도에 집중해 주거 시장에서 보편화될 수 있는 1인 공동주거 유형을 제시하고자 했다.
건축주는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적당한 연대를 이루며 살기 위해 협동조합주택을 위해 리서치를 진행하고 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반응이 좋았지만 모인 사람들의 상황이 맞지 않아, 일반적인 개인투자를 통해 공유주택을 만들기로 했다. 설계과정은 더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공유주거 기획에 경험과 열정을 지닌 서울소셜스탠다드와 함께 리서치를 진행하고 여러 논의를 통해 법규가 허용하는 최대 바닥 면적을 확보하면서도 공간의 풍성함은 간직하고자 했다.
주변의 저층 주거와 어울리기 위해 집의 덩어리를 둘로 나누고 고즈넉한 동네 골목길을 연장하는 외부 계단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1인 가구 주거 형식을 공용공간(라운지, 동네부엌, 수직골목)과 함께 엮어내고자 했다.
2014년 8월 지인들과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30여 명이 모여 입주설명회를 가졌는데,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연남동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 가게와 사무실, 원룸과 셰어하우스, 복층주거가 골목과 마당, 라운지를 공유하는 집입니다. 모이고 공유하면 일상이 더 재미있고 풍요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어쩌다집’에 함께 살고 싶습니다.”라는 글로 입주자를 모집했다. 수익을 목적으로 집을 지은 것이 아니므로 임대료는 대지구입과 공사비를 위한 대출금의 이자를 갚을 수 있는 정도로 정했고, 각자 원하는 주거형식과 입주일을 기준으로 30, 40대의 디자이너, 편집자, 건축가, 한의사가 함께 살고 있다.
1층의 동네부엌은 어쩌다집 식구들과 이웃주민을 연결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도시형 장터 마르쉐 출점팀이 건강한 이탈리안 가정식과 카페 운영한다. 비가오면 계단에서 비를 맞고, 가게의 영업시간에는 외부계단을 통해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기로 약속되어있다. 우연히 함께 살게 된 식구들은 친구와 이웃들을 초대해 2015년 4월25일에 오픈하우스를 열고 풍요로운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1인가구가 모여 혼자 살지 않는 집이 된 것이다.
글 SAAI건축 사진 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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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사창, 가이드 이연경
번사창은 1884년(고종 21)에 건축된 기기국 무기고로, 1984년 해체, 보수공사 중 대들보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어 건물의 내력이 알려졌다.
조선 말기 군대의 근대화를 위해 근대화된 무기 제조와 군사훈련 제도를 마련하던 시기, 무기를 제작하던 기기국 소속의 검은 회색 벽돌로 벽을 쌓고 지붕은 맞배 지붕으로 올렸으며 문은 아치를 틀었다. 특히 건물에 붉은 벽돌로 견치형의 띠를 두르거나 측면문에 띠를 넣어 장식하였다. 벽돌과 목조 방식의 기붕이 결합한 독특한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다. ‘번사’(飜莎)라는 말의 뜻은 흙으로 만든 주형에 금속용액을 부어 주조하는 것을 말한다.
일제시대 세균실험실로 쓰이다가 광복 후 중앙방역연구소, 정부 수립 후에는 국립사회복지연구원으로 쓰이다가 1970년 한국은행 소유로 되어 있으며, 1982년 서울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최근 금융연수원 부지조시 중 번사창과 길이와 폭이 같은 ‘쌍둥이’ 건물 터가 발굴되어 관련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제공
참고문헌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 초판 2004., 5쇄 2009., 돌베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