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빌딩은 20년 전 건축을 전공하기 시작하며 찾고 싶었던 <나의 건축>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그 동안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질문을 받으면 당연히 건축이라고 이야기했고, 어떤 건축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직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이 20년의 시간은 내게 작은 답을 주었다. 그 결과물이 우연한 빌딩이다.
건축을 하며 함께 해왔던 공간 그리기는 내게 스타일을 선물했다. 여러 공간을 답사하며 필기용 펜으로 그려왔던 일러스트는 이제 진부한 유행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십 년 가까이 꾸준히 해왔던 그림 그리기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그림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리는 과정에서 오감을 자극받고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던 시간들이 더욱 소중하다.
우연한 빌딩은 법규와 도시 맥락, 주변인들의 욕망에 따라 지어지는 모든 건물들의 생성 과정을 그대로 따른다. 그리고 디자인의 마지막 단계에서 꽤 괜찮은 안이 나왔다고 판단되었을 때 나의 그림 그리는 방식으로 그 최종안을 바라봤다. 건물은 그렇게 나온 그림을 다시 3차원화 시켜 완성했다.
근사한 의미가 결국 살아남는다. 억지로라도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이유다. 우연한 빌딩에 굳이 의미를 붙이자면 물리적인 공간을 개인의 경험으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전통적 투시도법에 따르지 않도록 소실점이 해체되고 그로 인하여 탄생한 자유로운 형태의 건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너무 어렵고 잘난 체 하는 말이다. 우연한 빌딩은 그저 나의 스타일대로 콘크리트라는 재료로 그림을 그려본 작업이다.
오영욱
ogisa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이다. 건축가, 일러스트레이터, 여행작가 등 여러 직업을 갖고 있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스페인 ELISAVA 디자인 스쿨에서 수학했으며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청혼> 등의 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