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은 DDP,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DDP가 시민들에게 어떤 장소가 되었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두 번째 인터뷰는 유현준 건축가입니다.
DDP에 자주 가시는 편인가요?
자주 가요. 1층 숍에서 가방이나 시계같은 물건도 많이 사요. (웃음) 제가 평양냉면을 좋아하는데, 장충동에서 평양냉면을 먹고 태극당에서 모나카 먹고 동대문 DDP 물건을 사는 게 즐겨가는 코스예요. 심지어 밤에 동대문 시장 구경도 가요. 주차가 편하고 편안하고 깨끗해서 좋아요.
DDP가 들어섰을 때 첫 인상이 어땠나요?
저는 자하 하디드를 싫어하거든요. (웃음) 싫어하는 건축가였는데 완성된 다음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삼성물산에서 건물을 완성도 높게 지었어요. 조감도의 그 곡면이 보기 싫게 나올 거라고, 흉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제가 본 자하 하디드 건물 중 가장 완성도 있게 나온 것 같아요. 깜짝 놀랐어요.
조감도가 드러났을 때 많이 회자되었는데요. 초기 계획안에서 변경도 되었습니다. 완성된 것과 차이는 어떻게 보시나요?
조감도가 워낙 별로였어요. (웃음) 공모전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자하 하디드가 이런 퀄리티의 조감도를 내보내다니 싶었어요. 너무 신경을 안 쓴 것 같더라고요. 그런 안이 당선되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역시 곡면이 주는 건축물의 감동이 있잖아요. 또 금속 패널로 만든 곡면인 데다가 엄청나게 큰 스케일의 건축물이 주는 강렬함이 있어서 나름대로 풍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봐요. 주변 컨텍스트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어수선한 주변에 맞추기는 어렵죠.
그런 면에서 다음 100년을 위해서는 괜찮은 건물인 것 같아요. 서울에서 웬만한 건물을 다 부수고 재개발해도 DDP는 절대 부수지 못할 거예요. 워낙 고가로 지었기 때문에요. 유럽에서 만들어진 좋은 건물들은 다 큰 예산을 들여서 못 부수는 거잖아요. 우리는 그 정도로 공사비가 높은 건물을 만든 적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보존이 안 된거죠. DDP는 대한민국 역사상 단위면적당 공사비 금액이 가장 높은 건물이에요. 공을 들여서 만들었고 무엇보다 구조적으로 당대에 최첨단(cutting edge)의 컨디션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에 남을 만한 건물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또 제가 할 수 있는 디자인은 아니지만, 괜찮은 건물이라고 생각해요.
DDP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캔틸레버보가 크게 나와 있는 브릿지 밑 광장을 가장 좋아해요. 야외 공간인데, 비를 안 맞을 수 있는 지붕이 덮여있는 기분 좋은 공간이에요. 그 정도 스케일의 공간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잠수교밖에 없거든요. 어반 스케일의 처마가 있는 공간은 참 좋은 것 같아요. 서울시청 건물도 비슷한 콘셉트로 시작했으나 약하게 삐쭉 나와서 그 아래 공간을 느끼기가 힘들죠. DDP는 그 공간감이 굉장히 좋아요.
비정형 공간이 갖는 가치와 의미 혹은 건축적 의미와 함께 교수님이 생각하는 자하 하디드 건축의 한계에 관해 이야기 해주신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온돌 때문에 1층짜리 건물밖에 없었어요. 비 때문에 지붕이 경사가 져야 하고요. 1층짜리 건물에 지붕을 경사로 만드니까 건물 입면에 곡면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가게 돼요. 지붕이 입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물이죠.
그런 건물을 봐오다가 근대에 보일러가 들어오고 2층짜리 철근콘크리트 양옥을 짓고 고층화가 되면서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파사드(건물의 정면)’라는 것을 갖게 된 거죠. 벽으로 서 있는 건축을 2000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다가, 1970년대 들어서서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본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파트에 대해 ‘성냥갑 같다’는 반감을 가지는 이유가, 우리 유전자에 없던 건물이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다고 우리가 ‘벽의 건축’ 디자인을 잘하지도 못해요. 파사드를 가지는 건물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입면 설계라는 것을 해본 적도 없어요. 그런 것들을 지금 배워가는 단계라고 봐요.
비정형 건물을 통해 우리가 많이 놓친 부분들, 우리가 못 찾아낸 건물들, 추억들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초가집 지붕의 곡선이라든지 기와 지붕의 곡선, 처마 공간 등이 우리가 느껴온 전통 건축인데, 비정형 건축을 볼 때 예전에 익히 봐오던 가치를 비슷하게 나마 느낄 수가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을 것 같아요.
한계라고 한다면 자하 하디드는 디자인 프로세스 자체가 오브제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형태는 재미있게 나오는데 내부 공간은 상가 건물과 똑같아요. 밖에서 봤을 때의 감동이 내부에 가면 ‘내가 도대체 비정형 건물 안에 들어온 것인지, 금강쇼핑센터에 들어온 것인지’ 구별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이유는 내부와 외부의 교류가 없어서인데, 형태를 위한 형틀을 다 벽으로 불투명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DDP의 경우, 창문을 만들고 타공 철판으로 바깥쪽을 감싼 부분이 아주 최소한으로 있죠. 타공 철판 앞쪽에 가면 바깥 경치가 보이겠지만 조금만 측면에서 보면 다 벽으로 보여요. 그래서 자하 하디드가 언덕을 만들고 추억을 가져왔다고 한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어요. 내부에서 언덕이 하나도 안 보이거든요. 그것이 형태에 집착하는 건축의 한계인 거죠. 공모전 때 당선작을 비판하는 부분이기도 했고요. (웃음) 동대문의 역사성이 없다고도 비판하는데, 무슨 역사성이 있을까 싶지만. (웃음)
내외부의 공간 체험이 없다는 게 아쉬워요. 한옥은 처마가 있고 내가 안방에 앉아 있으면 툇마루도 있고 마당을 볼 수 있고 내부와 외부가 유기적으로 교차하고 중간층의 공간이 있잖아요. 이 건축에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어요. 덩어리만 있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