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OPENHOUSE
원효로 예수성심성당과 옛 용산신학교, E. 코스트 신부
* 9월 16일 오후 2시부터 참가 신청 가능
* 이 프로그램은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연계한 스페셜 프로그램입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티켓 혹은 방문 스탬프를 소지하셔야 입장 가능합니다.(입장 시 현장 확인)
* 프로그램 신청 시 오픈하우스 웹사이트 회원가입이 필수(가입 시 휴대폰 본인 인증)이며 신청한 본인만 참여 가능합니다. 참가비는 무료이나 노쇼 방지를 위해 예약금 결제 후 참석 시 반환합니다. 자세한 방법은 How to를 참고해주세요.
2019년 9월 21일 (토) 13:00
2019년 9월 22일 (일) 13:00
프로그램 예상 시간 : 1시간 내외
프로그램 진행
김정신(단국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현재 성심기념관과 성심여고의 부속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원래 용산신학교와 신학교 부속성당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1885년 원주 부엉골에서 개교한 예수성심신학교(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의 전신)가 1887년 용산 원효로에 이전한 후 신학교 교사동은 1892년부터(현재 남아있는 성심기념관은 1911년 건축), 예수성심성당(신학교 부속 성당)은 1902년에 세워졌으며, 이 성당 출입구 안쪽 상부에 있는 명문에는 김대건 신부의 이니셜 A. K. 및 그의 생존기간(1821-46)이 로마자로 표기되어 있다.
신학교 부속성당인 예수성심성당(사적 제 521호)은 1902년에 세워졌으며, 프랑스인 코스트(E. Coste) 신부가 설계·감독 했다. 언덕을 이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남쪽 언덕 아래는 3층이고 수녀원 쪽은 2층이 된다. 주로 이용하는 출입구가 중앙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있어 비대칭의 모습을 이루었다. 건물의 내부는 제단과 예배석만 있는 단순한 교회형식이지만, 뾰족아치로 된 창문이나 지붕위의 작은 뾰족탑은 전체적으로 약식화된 고딕풍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이 성당은 신학교 부속 성당(chapel)이기 때문에 일반 교구성당과는 평면형식이 다르다. 정면 입구에 배랑(narthex)이 없으며, 출입구는 제단 쪽 양 측면에 나있고 제의실이 제단 반대측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신자석 바닥도 원래는 제대를 향해서가 아니라 중앙축을 향해 좌우에서 아레나(arena) 형식으로 단을 지어 내렸다. 지금은 평평한 마룻바닥으로 바뀌었고, 제의실은 벽을 터서 신자석으로 쓰이고 있다. 대신 한동안 제의실이 좌측 외부에 부가되어 복도로 연결되었으나, 보수・복원공사를 통해 철거되고 1층방(과거 신부방)을 제의실로 사용하고 있다.
정면의 지붕은 가파른 맛배지붕이며, 후면의 앱스(apse)는 5각으로 꺾여있다. 규모에 비해 다소 육중한 버트레스가 각 베이마다 설치되어 있고 버트레스 꼭데기에는 피나클로 장식하였다. 규모와 폭에 비해상대적으로 높은 천장, 제대부의 천장 구성, 간결하면서도 정교한 디테일 등 고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건축당시 제단 뒷벽 5개의 아치창에는 중세풍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한국전쟁 시멸실되었고, 1985년 故 이남규에 의해 제단 뒷벽 5개의 아치창의 달드베르와 양 출입구 상부의
엔티크글라스 원형창이 설치되었다. 성심학원의 오랜 숙원이었던 스테인드그라스 창의 보수복원 사업은 2013년 달드베르의 제단 창이 보수되었고, 나머지 양 측면 및 남측 창은 2015년 스위스출생의 마르크 수사(Fr. Marc)와 헤이리 유리재 공방에 의해 제작 설치되었다.
글 : 김정신
옛 용산신학교
최초의 신학교였던 베론 신학당(1855년)은 1866년 폐쇄당하고, 여주 부엉골 신학교가 현재 신학교 부지로 옮겨와 1887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가 세워졌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가톨릭 신학교 건물로 의미가 깊다. 용산신학교 건물은 1911년에 완공되어 1942년까지 대신학교 교사로 사용되었다. 이 건물은 외부가 조지아 양식으로 장식된 2층 붉은 벽돌 구조로 사적 제520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1956년부터 성심수녀회 수녀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해 현재 성심수녀회 관구 사무실과 성심기념관 및 역사 자료실로 사용하고 있다. 옛 용산신학교 건물의 설계자가 코스트 신부로 알려져 있으나 코스트 선종(1896)과 건물의 완공 시기(1911)가 큰 차이가 있는 등, 여러 정황상 코스트 설계로 보기 어렵다는 학계 주장이 있다.
글 : 김정신
사진 : 문화재청, 성심수녀회, 김정신 제공
Special TOUR
[투어] 아침 산책, 사직동에서 만난 국제 교류 공간 1
* 9월 16일 오후 2시부터 참가 신청 가능
* 이 프로그램은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연계한 스페셜 프로그램입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티켓 혹은 방문 스탬프를 소지하셔야 입장 가능합니다. (입장 시 현장 확인)
* 프로그램 신청 시 오픈하우스홈페이지 회원가입이 필수(가입 시 휴대폰 본인 인증)이며 신청한 본인만 참여 가능합니다. 참가비는 무료이나 노쇼 방지를 위해 예약금 결제 후 참석 시 반환합니다. 자세한 방법은 How to를 참고해주세요.
* 스페셜 투어 ‘아침 산책’에서는 따뜻한 커피를 제공합니다.
2019년 9월 22일(일) 10:00
코스
캐나다 의료선교사 맨스필드 주택(서대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선교교육원) → 감리교협성신학교 선교사 사택(감리교신학대학교 역사박물관) → 독립문 - 딜쿠샤 - 사직동 선교사주택 → 홍난파 가옥(독일 선교사 주택) → 경교장 → 돈의문박물관마을
집결지 :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 정문
프로그램 예상 시간 : 2시간 이내
프로그램 진행
이연경(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연구원)
도성으로 나가는 마포로와 의주로가 위치한 돈의문 일대는 조선 시대부터 교통의 요지이자 국제적 성격이 강한 곳이었다. 1900년 서대문정거장 설치 이후에는 서양인들이 이 일대의 땅을 매입해 영사관을 비롯해 종교 교육 시설로 사용하였다. 일제 강점 이후 일부는 일본인들이 차지했지만, 여전히 그 성격은 남아 다수의 종교, 교육 시설들이 존재하였다. 사직동부터 연희동에 이르는 서울의 서쪽 일대에는 배화여학교, 감리교협성신학교, 구세군성경대학, 한국인 성서훈련원, 피어선 성경학교, 이화여자전문학교, 연희전문학교 등 기독교 학교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이 중 배화여학교, 감리교협성신학교, 이화여자전문학교, 연희전문학교는 여전히 남아 대학 및 고등학교로 사용 중이다. 또한, 사직동 선교사 사택, 충정로 캐나다 의료선교사 맨스필드 주택, 감리교 신학대학 내 선교사주택 등 서양인 선교사들의 사택을 비롯하여 홍난파 가옥과 딜쿠샤 등 서양인들이 살던 주택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번 스페셜 투어는 20세기 전반 서대문 일대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건축물과 장소를 통해 근대 국제 교류의 중심지인 사직동을 탐색한다.
글 : 이연경
사진 : 문화재청, 이연경 제공
Special TOUR
[투어] 아침 산책, 대한제국의 외교 장소와 건축물
* 9월 16일 오후 2시부터 참가 신청 가능
* 이 프로그램은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연계한 스페셜 프로그램입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티켓 혹은 방문 스탬프를 소지하셔야 입장 가능합니다.(입장 시 현장 확인)
* 프로그램 신청 시 오픈하우스 웹사이트 회원가입이 필수(가입 시 휴대폰 본인 인증)이며 신청한 본인만 참여 가능합니다. 참가비는 무료이나 노쇼 방지를 위해 예약금 결제 후 참석 시 반환합니다. 자세한 방법은 How to를 참고해주세요.
* 스페셜 투어 ‘아침 산책’에서는 따뜻한 커피를 제공합니다.
2019년 9월 28일 (토) 09:30
2019년 9월 29일 (일) 09:30
답사 코스 : 석조전 → 정관헌 → 중명전 → 환구단 정문 →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집결지 : 덕수궁 정문 (대한문)
프로그램 예상 시간 : 2시간 이내
프로그램 진행
우동선(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원장, 건축과 교수)
1897년에 성립한 대한제국은 정궁을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삼았다. 경운궁은 그 후 10년간 한국사의 물줄기를 가르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조선왕조는 대한제국으로 거듭나면서 중화를 중심으로 한 중세적인 책봉 조공체계로부터 근대적인 만국공법의 세계로 나가고자 하였다. 근대국가로 변모하기 위해서 대한제국은 열강들과 치열하게 외교전을 펼쳐야만 하였고,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한 조약들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대한제국이 열강과 대등한 사회와 문화를 갖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하였다. 군사, 교육, 산업 등 모든 면에서 개혁이 필요했다. 고종 황제의 경운궁에는 이렇게 근대를 향한 꿈과 좌절이 배어있는 셈이다.
황궁인 경운궁은 서구열강의 공사관들이 즐비한 정동의 한복판에 자리하였고, 궁궐 안에는 서양인들을 만나기 위한 서양식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대한제국은 구본신참을 국시로 삼았기에 고대의 전통을 추구하면서도 서양식 근대에도 눈을 돌렸다. 석조전, 정관헌, 중명전, 환구단 등과 같은 대한제국기의 대표적 건축물들을 통해서, 비서구 사회의 근대가 갖는 근대성을 살펴보면서 이 시기의 사람들이 꿈과 좌절을 논하고 싶다.
글 : 우동선
사진 : 문화재청 제공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원장으로 건축과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건축사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한제국기와 메이지 시대, 응우옌 왕조 등 근대기 비서구 사회의 건축과 도시의 변화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관련 보고서와 논문을 지속해서 발표하였다. 2019년에는 제정 러시아 출신의 「사바틴과 한국 근대기의 건축 영향 관계 연구」의 연구책임을 맡고 있다.
Special TOUR
[투어] 아침 산책, 정동에서 만난 국제 교류 공간
* 9월 16일 오후 2시부터 참가 신청 가능
* 이 프로그램은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연계한 스페셜 프로그램입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티켓 혹은 방문 스탬프를 소지하셔야 입장 가능합니다. (입장 시 현장 확인)
* 프로그램 신청 시 오픈하우스홈페이지 회원가입이 필수(가입 시 휴대폰 본인 인증)이며 신청한 본인만 참여 가능합니다. 참가비는 무료이나 노쇼 방지를 위해 예약금 결제 후 참석 시 반환합니다. 자세한 방법은 How to를 참고해주세요.
* 스페셜 투어 ‘아침산책’에서는 따뜻한 커피를 제공합니다.
2019년 9월 28일 (토) 10:00
2019년 9월 29일 (일) 10:00
답사 코스 (당일 변동가능) : 옛 러시아공사관 → 프랑스공사관 터(창덕여중) →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 신아기념관 → 정동교회 → 중명전 → 배재학당 역사관 → 경성재판소(서울시립미술관) → 독일공사관 터(서울시의회 의원회관) → 도시건축전시관
집결지 : 덕수궁 정문 (대한문)
프로그램 예상 시간 : 2시간 이내
프로그램 진행
안창모(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서규덕(강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정동은 개항과 함께 한국사의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1883년 외국인의 경성 거주가 허락되면서 미국공사관(1883)을 시작으로 영국(1884), 독일(1886), 프랑스(1889) 등의 공사관이 각각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후 서양인들이 영미공사관 부근 알렌의 집을 중심으로 모여 살고, 1902년 손탁호텔이 들어서면서 정동은 서양 근대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황제의 주거처도 정동이 된다. 정동 한복판의 경운궁(현 덕수궁)을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삼고 서양세력을 등에 업어 일본에 대응하는 전략을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정동은 제일방송국과 법원이 들어서지만, 서양인 집단 주거지 성격은 그대로 유지되며 선교사들의 종교, 교육, 사회사업의 장까지 확장된다.
정동은 특히 미국 감리교 선교사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정동제일교회에 이어 한국 최초 근대식 중등학교인 배재학당, 정동병원,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 여성 전용 병원인 보구여관 등을 설립하였다. 영국공사관 근처에 영국 국교인 성공회가 자리 잡고, 구세군회관 등이 설립되기도 한다. 정동은 외교의 각축장이자, 선교사들의 선교, 교육기지로서 다양한 근대 역사의 면면을 품고 있는 곳이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아침 산책을 통해 고요한 정동 거리를 걸으며 국제 교류 공간으로서 내력을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글 : OHS
사진 : 문화재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