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건축 설계에 관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쉬웠을 것 같아요.
보통 1학년 때는 제도 수업만 하는데, 갑자기 혼자 공모전에 참여했어요. 건축사협회 주관의 학생공모전으로 주제가 <신접살림을 위한 단독주택>이었어요. 설계를 잘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리던 가닥은 있고, 규모가 작아서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죠. 모형 없이 90x180 크기의 패널 1개 제출하는 것이었어요. 3월에 입학하여 4월에 공모안을 제출한 거니까 무모했죠.(웃음) 당시 배운 것이 나무 그리기뿐이었는데도요. 그래서 나무가 엄청 많은 집을 그렸어요.(웃음)
당시에는 스프레이 풀이 있다는 것도 몰라서 딱풀로 붙이다가 다 써버린 거에요. 마감 시간은 다가오고 해서 밥풀로 붙였어요.(웃음) 종이에 밥풀이 뚫고 나오고 아주 장관이었어요. 그렇게 5개 정도의 그림을 패널에 붙였어요. 그걸 들고 서초동 건축사협회 앞에 가보니 전국의 건축과 학생들이 인산인해였어요. 너무 놀랐죠. 그때 ‘시다(보조)’라는 개념을 처음 알았어요. 한 패널에 ‘시다’ 여럿이 붙어서 마무리하고 레터링 글자를 붙이고 있고, 옆에서 군복 입은 사람이 심각하게 무게 잡으며 지시하고 있고요. 저는 레터링도 모르니 글씨를 직접 써서 제출했는데, 내 패널이 시각적으로 얼마나 뒤떨어지는지 보게 되니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게다가 혼자 왔으니까요. 너무 창피해서 패널을 신문지와 테이프로 붙여서 가리고 접수 줄에 섰어요.
그런데 우리 학교 선배들이 저를 발견한 거예요. 제가 제출하는 거라고 하니 형 셋이 와서 구경했죠. 접수할 때 신문지는 뜯어서 제출하라고 하는데 너무 부끄러웠어요. 밥풀로 막 붙인 제 패널을 본 접수자가 어느 학교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더니, 내년엔 잘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심사위원도 아니고 접수하는 사람도 그렇게 이야기할 정도였으니.(웃음)
창피했지만, 1학년짜리가 작품을 내러 왔더라고 학교에 소문이 났어요. 졸업한 선배들 귀까지 들어가서, 어느 날 대학원 실로 저를 부르더라고요. 졸업한 선배들이 쭉 앉아서 “얘가 걔야?”하는데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그런데, 하는 말은 “너 용기도 대단하다”였어요. 이런 열정이 있는 후배라면 작업실을 만들 수 있겠다 해서 당시 200만 원을 주면서 작업실을 만들라고 했죠. 공모전은 떨어졌지만 작업실을 만들 후원금을 받게 된 거예요. 그 돈으로 제기시장 안의 작은 재봉 공장을 전세로 얻어, 건축과 3명을 더 모아 공부를 시작했어요. 한 달에 한 번 선배들이 리뷰도 해주고요.
그 계기로 건축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 거네요.
선배들과 많이 싸웠어요.(웃음) 싸움이라기보다는 건축에 대한 토의 혹은 논쟁이었어요. 2학년 1학기 때 주택설계를 했는데, 집이란 그런 게 아니라고 선배들에게 공격을 많이 받았죠.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 모여서 나름 심각했던 거죠. 아무래도 설계에 너무 소외된 지역에 있다 보니, 설계하겠다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밀도 있게 했어요.
그때 책도 많이 읽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피터 아이젠만이 쓴 책이었는데, 모르는 단어를 형광펜으로 그어보니 나중엔 눈이 부셔서 책을 볼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웃음) 당시 고대 철학과 다니던 중학교 동창에게 물어보니, 그 책에는 6개의 학문이 혼재되어 있다는 거예요. 기호학, 논리학, 언어학, 현상학, 구조주의 등… 그에 대한 기본 소양이 없으면 읽을 수 없대요. 이 책을 쓴 건축가는 그것에 대해 알기 때문에 책을 쓴 것이니, 건축가라면 철학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친구와 각 분야의 인문서들을 읽고 공부를 하기로 했어요. 그 친구의 도움으로 밀도 있게 공부하면서 피터 아이젠만의 글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론서들을 읽으며 나름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요.
설계에 관하여 동기들과 의견을 나누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대학원 형들과 많이 교류했어요. 그 와중에 피터 아이젠만의 논리적 싸움에 대한 배움이 있었고, 큰 힘이 되었어요. 누가 더 논리적일 수 있느냐의 게임으로 볼 때 중요한 지점이었어요. 저는 작업에서 공격당하는 처지이었고,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름의 사고체계를 만들기 시작했죠.
학교 수업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작업실을 통해 채워졌을 것 같아요. 책이나 정보는 어떤 방식으로 얻었나요?
앞서 말했던 철학과 친구의 도움이 컸어요. 그리고 잡지 아티클을 보면 인용문과 각주가 쭉 나오니, 그중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들을 골랐어요. 주말이면 교보에 가서 다양한 분야를 둘러보며 도움 될 것 같은 책들을 골랐고요. 그때 아내와 연애할 때인데, 우스갯소리로 만약 우리가 대학 때 헤어졌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데이트 비용을 무조건 책에 써서였을 것이라 말해요. 그 정도로 책을 많이 샀어요.
그 당시 해외의 건축 흐름을 파악할 수 있던 매체가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무조건 책을 많이 읽고 판단하자는 주의에요. 작가의 관점을 보는 편이에요. 사람과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거기에 동화되게 돼요. 책도 집중해서 보면 그에 대한 지적 보상을 스스로 만들게 되면서 그편이 되요. 제가 생각하는 독서의 위험성이란 다 읽고 나면 추종의 위험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보고, ‘내 생각은 이래’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독서습관에는 그런 경향이 별로 없어요. 읽고 정리하는 것이 무슨 공부겠어요. 내 생각은 어떻고, 네 생각과 차이는 어떻고 가 중요하지. 한국 사람들은 정보를 모으는 것에 대해 강박적이지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거든요.
피터 아이젠만의 책은 어떤 면에 매료되었나요?
피터 아이젠만의 책을 읽고 나서, 그처럼 사고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모든 건축의 원리는 1부터 100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의 피터 아이젠만은 벽돌 한 장도 이게 왜 여기에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내가 그리는 1cm의 선으로 인해 큰 재화와 노동력이 낭비되거나 비상식적인 상황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부분이 조심스러웠어요. 피터 아이젠만이 말하는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이란 공공성에 관한 부분이라기보다는, 건축가의 시점에서 미학적인 이유만으로 만들어내는 무책임함에 대한 경고였어요. 그렇기에 설계 전체나 부분에 대해서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곧 건축가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게 피터 아이젠만의 논조였죠.
하우스 텐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보자면 집이 설계되는 모든 과정에 이유가 구문처럼 분석되어 있었어요. 왜 창이 이곳에 뚫려야 하고, 슬래브가 어디까지 나고 등등….당시 그 책이 지적으로 보였고, 저에게 엄청나게 큰 영향을 주었어요. 그러나 여기 사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는 없더라고요. 그 사람이 겪어야 할 불편함보다는 건축가의 책임에 대해서만 언급되고, 그 두 영역을 전혀 다른 카테고리로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그것에 영향을 받고, 심취했었죠.
그런데 피터 아이젠만도 건축 실무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본인의 이론으로 학계에서는 승부수를 던질 수 있었지만, 실제 영역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변하기 시작해요. 다른 사람들은 잘 인지하지 못했지만, 저처럼 그를 맹신하던 사람은 그 변화를 단번에 알 수 있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피터 아이젠만이 엑스트라 콘텍스트(Extra context)라는 키워드를 들고나오더라고요. 계속 똑같은 것이 반복되고 있을 때 생뚱맞음이 들어오면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며 이야기로 돌아온다는 거예요. 글쓰기의 방법론 중 하나로 건축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스스로를 합리화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가 변절자로 보이기 시작했죠.(웃음)
그걸 인지하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가요?
1994년 정도였던 것 같아요. 너무 실망스러워서 피터 아이젠만이게 편지를 쓰려고까지 했어요. 그런데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으니.(웃음)
아무튼, 그 뒤로 ‘랭귀지(language)’가 가진 함정에 대해 주의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는 매너리즘이고, 하나는 변절이에요. 피터 아이젠만의 경우 자기 언어를 이론적으로 설득시키기 위해 논리(logic)를 이야기하지만, 나중에는 논리를 제외한 모든 게 다 있더라고요.(웃음) 반면 프랭크 게리나 자하 하디드는 변절의 문제에서 벗어나 있어요. 매너리즘이지만 사람들은 그 매너리즘으로 인한 브랜드를 사고 싶어 하죠. 물론 모든 환경을 하나의 언어로 푼다는 것은 여전히 의구심이 들지만요. 어쨌건 건축 언어에 대해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끼게 되었어요.
말씀하신 ‘랭귀지’라는 것은 건축에서 어휘로 이해해야 할까요? 아니면 사고체계의 근원적 방향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첫 번째가 강해요. ‘랭귀지’란 곧 사람들이 지각하게 되는 현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맞겠어요. 저 역시 사고하는 방식 체계와 결과물은 다르지만, 매 프로젝트마다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고체계를 랭귀지라 한다면 저도 강한 랭귀지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표현되는 현상에 관한 것으로 보자면 작업 안에서 각각 카테고리가 있어요. 이 프로젝트는 ‘어떤 카테고리로 일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각 작업이 다른 성향으로 가게 돼요.
피터 아이젠만을 계기로 무언가를 추종하기보다는 다양한 정보들을 펼쳐두고 공통적인 속성들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죠.
자기 생각으로 소화하고 말하는 게 중요하겠어요.
지금의 사회 현상도 그래요. 정보는 많아요. 진짜 뉴스도 많고 가짜 뉴스도 많아요. 그런데 결국 본인의 판단이 가장 중요해요. 어디에 기준을 두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조선일보 혹은 딴지일보가 하는 말을 100% 진실이라고 믿고 살 것인가죠. 자기 세상을 어떻게 규정하고 살든, 중요한 것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넓은 스펙트럼에서 각자의 논조를 파악하고 공통 사실만을 사실(fact)로 보고 나머지는 주장으로 파악하는 것, 그리고 내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앞서 말했듯이, 책을 읽고 나서 저자에게 동요되어 버리거나 자신만의 의견을 갖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저는 아침마다 한 시간 정도를 브라우징하는 데에 쓰는데, 모든 종류의 뉴스 채널을 모아서 간략히 보고 나서 그러죠. “에잇, 거지 같은!(웃음)” OHS
진행 임진영
녹취 및 정리 우경희
사진 이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