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연결된 도심 종교 공간의 유형 만들기
도심 속 종교 시설의 모습_원불교는 생활불교, 대중불교를 표방하며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 않는 교리를 지니고 있다. 원불교 역삼교당은 압구정교당과 대치교당의 통합 교당으로 건립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종교건축이 들어서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여길만한 역삼역의 번화한 유흥가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일상생활과 밀착된 종교를 제창하는 원불교의 정신과 일치하는 시도였다.
본 프로젝트의 대지는 주변으로 각종 주점과 식당, 오피스텔, 모텔이 즐비한 전형적인 도심 상업가로로서 온갖 간판물과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거리다. 원불교 역삼교당 ‘원 스페이스’는 2002년도에 건축된 5층 규모의 근린생활시설을 대수선하여 종교 시설로 변형하는 프로젝트이다.
자연스럽게 프로젝트는 ‘도심 속 종교 시설은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의뢰인인 원불교 역삼교당이 가장 중요하게 요구했던 과제였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종교로서 원불교 교당이 주변 도시 맥락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한편으로 내부에 영적 수련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과업으로 설정하였다.
일상과 연결된 영적 공간_다소 모순된 두 가지 공간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에 5층짜리 단조로운 적층 구조의 빌딩은 용이한 조건은 아니었다. 한정된 높이의 층고와 단절된 층간 구조의 반복이라는 물리적 조건 아래, 지역사회에 열려 있으면서도 개인적이고 내면에 집중하는 종교 시설의 역할을 하는 장소로 재탄생 시켜야 했다. 이를 위해 개방된 공간 구조를 통해 교화에 집중하며 사회로 열린 저층부와 법회와 명상을 위한 상층부를 분리하여 다루었다.
원불교 역삼교당은 지역사회와의 밀접한 소통을 위해 자유롭게 휴식을 위해 드나들 수 있는 문턱 낮은 종교건축이 되기를 바랐다. 1층에는 젊은 세대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임차인(tenant) 선정에 공을 들였으며, 건축적으로 기존의 폐쇄적인 식당 외관을 내부가 투명하게 발산할 수 있도록 전면 투명유리로 변경하였다. 일반적으로 주변 건물들이 주차공간으로 요긴하게 쓰는 전면부 공지는 주차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조경 공간과 오픈스페이스로 전환하였다. 2층은 지역사회에 개방된 전시나 이벤트가 열리는 라운지 공간을 두고 보이드 공간을 통해 1층과 시각적으로 연계되도록 하였다.
상층부는 종교 공간 본연의 법회와 명상을 위한 공간을 집중적으로 배치하였다. 4층의 소법당은 도심 속 오아시스와 같은 공간으로 평일의 인근 직장인들이 휴게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선, 명상, 요가 등을 수련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전면에 슬라이딩 한지문을 설치하였으며, 내부는 복잡한 도시 풍경과 거리를 조절하기 위해 테라스 켜를 두었다. 내부의 바닥은 툇마루를 120mm 정도 들어 올려서 목재 마루로 마감하고 좌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기존 건물의 층고는 3.3m에 불과하고 천장을 가로지르는 보 춤은 700mm로 작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원불교당의 대법당으로 활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5층은 옥상을 철거하고 일조사선에 의한 높이 제한과 구조적 성능을 만족하는 범위에서 층고를 6.2m로 증가시켰다. 대법당은 종교 공간으로 영적 환경을 갖추기 위해 자연채광을 섬세하게 조절하여야 했다. 외벽의 창은 최소로 하고, 절제된 빛이 스며들 수 있도록 천장의 고측창과 상징적인 원형창만을 두었다. 일원상은 원불교의 중요한 상징적 표현으로서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이다. 건물 전체의 디자인에서 원형의 테마는 특히 강조되어 활용하였다. 빛이 흘러내리는 전면의 벽체는 의도적으로 거친 뿜칠로 마감하여 빛이 질감으로 감각될 수 있게 하였다.
유연한 공간 환경을 지닌 교당_대법당은 지역사회에 개방하여 결혼식, 공연장, 회의, 강연, 세미나장의 기능을 두루 만족할 수 있도록 공간 환경의 유연한 변화가 가능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법회를 진행할 때에도 순서에 따라 음향, 조명, 영상이 치밀하게 조절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대법당 외벽의 지름 3.6m짜리 일원창과 불전 상부의 고측창, 측면창에는 전동 블라인드를 설치하여 상황에 따라 개폐를 조절하고, 천장 조명의 디밍 조절 장치를 통해 실내 공간의 분위기를 변화시킬 수 있게 하였다. 전체 시스템은 프로그램되어 사전에 설정된 값으로 자동 조절된다. 법회 의식 중에 간단한 조작으로 조명, 음향, 채광이 입정, 헌공, 분향, 설교 등 순서에 맞게 환경이 조절되는 ‘스마트 교당’을 구현했다. 참나무를 주재료로 하여 법당 바닥 마감, 불전, 의자, 봉헌함 등 인테리어 가구 디자인까지 함께 디자인하여 공간이 종교적 엄숙함을 띌 수 있도록 하였다.
단정한 질서의 풍경_건물의 전체 외벽을 두르고 있는 텍스타일 파사드는 종교 공간으로서 내부와 도시와의 관계 설정을 위해 선택한 재료이다. 흰색 텍스타일 파사드는 2mX2m 크기의 정사각형 모듈이 전면을 균등한 그리드로 분할되도록 계획하였다. 이는 온갖 기호와 색채로 혼잡한 역삼동 주변 경관 속에서 종교건축으로서 단정하게 절제된 질서의 표정을 드러내려는 의도를 지닌다. 동시에 텍스타일의 재료적 특성으로 인해, 종교건축이 으레 그러하듯이 폐쇄적인 외관을 형성하지 않고, 은은하게 빛이 새어 나와 원불교 교당이 도시와 단절되지 않게 연결해주기 위한 재료 선택이었다. 일원상은 텍스타일 그리드의 중앙에 놓였다. 하지만, 텍스타일 파사드 뒤로 원형창을 두어 낮에는 외벽의 일원상이 도드라지고, 야간에는 내부 조명에 의해 내부의 원형이 상징으로 드러나도록 하여 건물의 표정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도록 했다.
임대용 근린생활시설로 건축된 건물을 다중이 이용하는 종교 공간으로 변형하기 위해서는 건물의 안전을 고려한 검토가 엄밀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기초 검토를 위한 공시체 테스트, 기울기 테스트 등을 통해 기존 구조를 점검하였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구조 보강이 선행되었다. 다수의 인원이 동시에 이용하는 시설의 특성을 반영해서 1층의 임대공간을 일부 할애하여 적절한 스케일로 원불교 교당의 이미지를 상징할 수 있는 로비를 디자인하고, 기존 엘리베이터의 협소한 대기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계단실 골조를 철거하고 재타설하는 난도 높은 공정을 거쳐서 완성하였다.
원불교당이 도심의 상업가로 한복판으로 들어가 지역사회의 일상생활과 밀착한 종교 공간을 만들어 내어 사회에 열린 공간을 내어주려 한다. ‘원 스페이스’ 프로젝트는 이 관점을 발주처와 건축가가 공유하여 완성되었다. 건축적으로 수직적인 적층 구조의 어반 빌딩 타입을 활용한 종교 시설 만들기라는 새로운 도전으로서 의미가 깊은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원불교의 바람과 같이 생활 속의 수행이 함께하는 열린 종교 공간으로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글 홍지학, 조윤희
사진 텍스처온텍스처
구보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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