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Yourself

코스모 40

양수인, 임승모

양수인의 건축안
양수인의 건축안

코스모화학 공장 단지가 이전하면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건물인 폐수 처리 시설을 문화시설로 바꾸는 작업이다. 기존 폐공장 건물의 독특한 매력을 보전하면서 현행 법규에 맞는 안전한 건물을 설계하기 위해 새 건물은 기존 건물과 물리적인 접촉 없이, 폐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하나의 고리와 같은 형상을 취하고 있다.
재생건축을 현행법에 맞추려면 새 단열재와 내화페인트로 매력적인 흔적을 모두 지워야 한다. 이 모순에서 건축가의 상상은 시작된다. 옛 건물과 완벽하게 분리된다면 증축부분만 현행법을 충족하면 될 것 아닌가? 코스모 40은<신관>이 연속된 하나의 고리모양을 하며 40년간 사용되고 버려진 공장안으로 삽입된 건물이다. 이 고리는 주로 로비와 수직동선 역할을 하며 옛공장 공간의 새로운 사용을 지원한다.  <신관>은 3층에서만 공장안으로 삽입되는데,  옛공장의 기둥을 둘러싸고 새로이 형성된 기둥묶음에 의해 지지된다. <신관>이 구조적으로 완벽하게 독립된 증축으로 인정받음으로써 기존 공장은 현행법규 충족의 부담에서 벗어나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한 배경으로 남을 수 있다.

양수인 사진 신경섭

* 양수인의 건축적 제안이 1차로 구현된 이후 임승모가 2차 내부공간 디렉팅을 더하였다. 오픈하우스 프로그램 양수인, 임승모 공동 진행.

 

사진_더네이버
양수인
양수인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다. 건축, 참여적 예술, 디자인, 마케팅, 브랜딩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건물, 공공예술, 체험마케팅, 손바닥만한 전자기기, 단편영화까지 다양한 스케일과 매체로 작업한다. 다양한 매체를 통한 디자인 작업이 모두 직면한 과제를 의뢰인의 상황에 부합하는 형식으로 해결하는 과정으로서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행위라고 믿으며, 그 근저에는 어떤 ‘것’을 만듦으로써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공통적인 목표의식을 갖고 작업한다.
양수인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뉴욕 컬럼비아 건축대학원 졸업 후, 이례적으로 졸업과 동시에 컬럼비아 건축대학원 겸임교수 및 리빙아키텍처 연구소장으로 7년간 지냈다. 2011년 서울에 돌아와 삶것/Lifethings 라는 조직을 꾸려 활동하고 있다.


임승모 
SML(에스엠엘 건축사사무소) 대표/소장이며, SML 개소 이전부터 개인적인 관심을 실험하고 표현하기 위해 진행한 국내외 디자인 공모전에서 환경시설물, 가구, 조형물, 인테리어, 건축 등의 영역을 넘나들며 지속적으로 참여하여 약 20여회의 수상 경력이 있으며, Libertango 로는 2016 A’Design Award & competition(Italy)에서 Gold Prize와 2017 American Architecture Prize(USA)에서 Winner in Interior design을 수상했다. 2017년 SML을 개소하여 ‘형태는 가능 성을 따른다.(Form Follows Possibility.)’를 모토로 하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 Interior Design Magazine(USA)의 14 Emerging Designers에 선정됐고, 여의도 윤중초 단설유치원 및 체육관 현상설계(더코너즈와 공동작업) 제출작이 1등에 당선됐다. 창조건축과 매스스터디스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현재 서울시공공건축가, 서울시마을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Map인천시 서구 장고개로 231번길 9
건축가양수인, 임승모
위치인천시 서구 장고개로 231번길 9 (가좌동 556-36)
집합 장소신관건물 1층 로비 엘리베이터 앞
TOP LIST
OPENHOUSE 약현성당, E. 코스트 신부 사적 제252호로 지정된 중림동 약현성당은 1893년에 축성된 한국의 첫 벽돌조 서 양식 성당건축물이다. 명동성당의 축소판이자 시험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약현성당의평면 구성은 삼량식으로, 줄지어 늘어선 기둥의 아치와 천장에 의해 중심부(네이브)와 측량(아일)의 구분에 내부에서 뚜렷하지만 외부에서는 낮은 단층 지붕으로 되어 구분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정면 중앙에 돌출된 정방형 종탑 하부에 주출입구가 있으며 좌우 양축에 부출입구가 출되어 있다. 고딕적 요소가 극히 적은 바실리카식 벽돌조 건물이지만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축이자 본격적인 벽돌조 건물로 건축사적인 의의가 크며, 명동성당과 함께 아름다운 근대 성당으로 꼽히는 곳이다. 글, 사진 OHS  E. 코스트 신부 (Eugene Jean George Coste, 한국명 고의선) 1842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코스트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로 홍콩, 만주, 일본을 거쳐 1885년 처음 조선에 입국하였다. 코스트 신부가 입국한 이듬해인 1886년(고종 23) 조불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면서 신부들의 활동이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코스트 신부는 조선에 들어와 조선교구 당가부(경리와 건축 담당 부서)의 일을 맡았으며, 성서 등을 보급하고 여러 천주교 건물의 설계와 건축을 담당하였다. 코스트 신부의 주요 건축물은 명동 사도회관(1890), 약현성당(1892), 명동성당(1898), 원효로 예수성심성당(1902)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사제관, 수녀원, 고아원 등을 신축했고 모두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붉은 벽돌과 화강석을 사용했다. 대표작인 약현과 명동성당은 성당 건축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약현성당 http://www.yakhyeon.or.kr/
OPENHOUSE 코스모 40, 양수인, 임승모 코스모화학 공장 단지가 이전하면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건물인 폐수 처리 시설을 문화시설로 바꾸는 작업이다. 기존 폐공장 건물의 독특한 매력을 보전하면서 현행 법규에 맞는 안전한 건물을 설계하기 위해 새 건물은 기존 건물과 물리적인 접촉 없이, 폐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하나의 고리와 같은 형상을 취하고 있다. 재생건축을 현행법에 맞추려면 새 단열재와 내화페인트로 매력적인 흔적을 모두 지워야 한다. 이 모순에서 건축가의 상상은 시작된다. 옛 건물과 완벽하게 분리된다면 증축부분만 현행법을 충족하면 될 것 아닌가? 코스모 40은<신관>이 연속된 하나의 고리모양을 하며 40년간 사용되고 버려진 공장안으로 삽입된 건물이다. 이 고리는 주로 로비와 수직동선 역할을 하며 옛공장 공간의 새로운 사용을 지원한다.  <신관>은 3층에서만 공장안으로 삽입되는데,  옛공장의 기둥을 둘러싸고 새로이 형성된 기둥묶음에 의해 지지된다. <신관>이 구조적으로 완벽하게 독립된 증축으로 인정받음으로써 기존 공장은 현행법규 충족의 부담에서 벗어나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한 배경으로 남을 수 있다. 글 양수인 사진 신경섭 * 양수인의 건축적 제안이 1차로 구현된 이후 임승모가 2차 내부공간 디렉팅을 더하였다. 오픈하우스 프로그램 양수인, 임승모 공동 진행.  
OPENHOUSE 아트벙커 B39, 김광수 ‘아트벙커 B39’는 쓰레기 소각장이었다. 소각장이 들어설 때 이곳은 주변에 열병합발전소 및 공장시설들이 밀집해있던 변두리 지역이었지만 도시가 확장하여 아파트단지 등과 맞붙게 되면서 골칫덩어리가 되어 버린 곳이었다. 여러 갈등의 진원지였고 2010년 문을 닫았다. 그 후 주민들은 당연히 이 시설을 철거하고 공원이나 수영장과 같은 새 주민시설이 들어서기를 요구했지만 철거비용만 70억 원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부천시는 소각장을 재생하여 문화시설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의 소각장은 공간도 워낙 복잡하고 미로 같아서 잘 파악할 수도 없었지만, 나는 방문자들이 새로운 프로그램들과 함께 소각의 과정들도 잘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각의 과정 자체는 무척 선형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기존의 차량 동선들과는 상반되게, 동쪽에 새로운 동선을 만들었고, 쓰레기 반입실에서부터 벙커, 소각조, 재벙커, 유인송풍실 및 굴뚝까지 동선이 이어지도록 했다. 2층에서도 마찬가지의 동선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거대한 소각장에 비해 생뚱맞게 앞에 있는 관리동 건물까지를 열주로 엮어주며 진입 동선 레이어를 덧붙였다. 이 레이어는 대로변과 마주하며 소각장의 변신을 예고한다. 이 레이어를 제외한 모든 부분은 도색을 한 것 말고는 예전의 소각장 모습 그대로이다. 관리동은 진입 시 보게 되는 얼굴로서 나름 설계를 했었지만 심각한 구조보강비 문제로 차후 사업으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벙커 5층의 공간도 차후 사업으로 미루어졌다. 기존의 소각로는 설계지침에서 철거하게 되어있었으며, 나는 이 부분을 다양한 옥외행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중정으로 설정했다. 진입하다 보면 방풍실이 특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풍실 4면이 문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기존의 쓰레기 반입실이었던 멀티미디어홀(MMH)과 39m의 벙커를 하나의 공간으로 행사 진행할 때를 염두에 둔 것이다. 멀티미디어홀은 벙커를 거쳐 로비로도 이어지지만 자체적인 출입구를 가져 야간에도 별도 운영될 수 있게 했다. 설계하며 내내 ‘디 어더스’ 라는 영화를 생각했다. 이 영화는 어느 아이의 눈에 자꾸 보이는 귀신들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인데, 영화의 말미에 다름 아닌 이 아이가 귀신이었다는 반전이 이루어지는 그런 스토리이다. B39의 공간은 소각의 과정들을 경험하는 것과 함께 문화 및 교육 활동들이 일어나는데, 투어프로그램을 하며 기존 소각시설 내부로 들어가게 되면 일종의 반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문화시설이 쓰레기 소각장과 묘하게 동거하고 있는 느낌으로 설계했다. 쓰레기뿐만 아니라 음울한 모든 것들이 현대사회에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도록 사회 설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실 그 쓰레기와 음울한 이면의 일상이 우리의 도시이고 우리의 현실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글 김광수 사진 김용관 김광수 김광수는 studio_K_works 대표이며 집단공간 커튼홀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여러 장르의 전문가 및 대중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뉴미디어로 인한 사회성, 도시건축 환경의 변화를 주목하며 다양한 건축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방들의 가출’이라는 주제로 한국사회의 아파트와 방 문화현상을 조사 전시한 바 있으며(2004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핀란드 국립미술관(2007), 아트선재센터(2012),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2013), 독일 에데스 건축겔러리(2014),  문화역서울284(2012, 2016) 등에도 초대되어 전시했다. 주요 작업으로 광주시민회관 재조성사업, 연대앞 창작놀이센터, 분당주택, 판교케이브하우스, 철원 DMZ 철새평화타운, 부천아트벙커 B39 등이 있다.
OPENHOUSE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김택빈, 장용순, 이상구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는 종묘 앞 광장에서부터 을지로까지 500m 구간의 세운상가 공공공간을 재정비하고 설계하는 작업이다. 2015년 5월 ‘현대적 토속, 또는 포스트 포디즘적 삶의 방식의 복원’이란 제목으로 국제 공모전에 당선되어, 2017년 10월에 완공되었다. 세운상가 앞 초록띠 공원을 경사 광장으로 설계해서 다양한 이벤트가 일어날 수 있게 했다. 경사지 하부에는 다목적홀과 조선 시대 중부 관아터 유적이 있다. 7m 높이의 데크 중간에 데크를 새로 설치해서 상부 데크, 중간 데크, 지상층이 엘리베이터와 계단과 브리지를 통해서 서로 유기적이고 3차원적으로 그물망처럼 연결되면서, 기존 도시 조직과 연결되기를 바랐다. 데크 위에 플랫폼 셀을 설치해서 안내, 홍보, 세미나실, 전시, 창업 지원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유연하게 배치해 장인들의 사회가 되도록 하였다. 옛길의 흔적을 살리고, 역사의 흔적과 시간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기존 세운상가의 거대한 조직으로 침투해서 조직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끊어졌던 청계천 브리지를 다시 연결하고, 계단식 스탠드를 설치해 도시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청계천과 연결되는 계단으로 도시의 남북 축과 동서 축을 연결했다. 글 사진 장용순   이스케이프 건축 홈페이지 https://www.escape-arch.com   김택빈 이스케이프 건축사사무소 대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장용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파리 8 대학 생드니 박사 졸업 프랑스 국립 건축사 (DPLG) 이상구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OPENHOUSE 평화문화진지, 유종수 + 김빈 아파트와 벙커 평화문화진지(대전차방호시설)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이동 경로상의 군사적 요충지였던 곳에 지어진 군사 시설이다. 1968년 착공해 1970년에 준공된 시설로 1층에는 방호시설, 2, 3, 4층에는 3개층의 아파트로 구성되었고, 초기에는 군인주택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군사시설임을 감추기 위해 주거공간으로 방호시설을 위장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전시의 방어시설과 평시의 주거공간. 상반된 성격의 공간으로 전시에 유효한 시설과 평시에 필요한 시설이 하나의 구조물로 건립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현황 대지현황은 동쪽으로 수락산과 중랑천을, 서쪽으로 도봉산을 면하고 있다. 남쪽으로 2009년에 개장한 창포원이 위치해 있고, 북쪽으로 최근 조성된 동북권체육공원이 있다. 서쪽에 위치한 지하철 1,7호선 도봉산역과 동쪽의 마들로를 통해 접근 가능하며, 마들로가 의정부까지 연장되었고, 이 신설 도로 공사로 인해 기존 건물의 동측 일부가 철거되었다. 5개의 벙커를 5개의 중정으로 방호시설은 총 5개의 동으로, 각 동은 내부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총 길이는 동서방향으로 약 250미터에 이른다. 각 동은 가로40미터X세로14미터의 규모로 ㄷ자 형태의 대전차 작전공간(전차 위장 공간과 장병의 사격 공간)과 나머지의 지원시설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의 큰 방향은 ㄷ자의 작전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비워내고 전면에 새로운 공간을 신설하여 중정을 가지는 ㅁ자의 건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중정 부분은 군사시설로서의 작전공간과 문화시설로서의 창작공간 사이에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과거에는 병사들의 휴식 및 업무 공간이었고 앞으로는 입주 예술작가와 방문객의 작업공간과 휴식공간으로 쓰이게 되는 공간이다. 기존 시설과 신축 시설의 사이에 위치하여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내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각 동 사이에는 편의시설인 화장실, 기계실 등을 배치하여 부족한 서비스 공간을 확보했다. 지붕에 조성된 옥상 휴게공간이 1동부터 5동까지 연결되고, 건물의 내부 공간이 2동과 3동 사이의 지하 연결통로(공사중 발견됨)를 통해 연속되어 5개동이 하나로 연결되는 250미터 길이의 단일 건축물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5동의 지붕에서 신설도로의 보행로로 연결되는 계단을 계획하고, 내부에는 신설도로 하부를 통해 중랑천으로 연결되는 지하통로(군사시설)가 신설되어 결과적으로 중랑천부터 서쪽의 1동까지 동선이 내외부로 연결되었다. ㄷ자의 기존 시설부분은 전시, 강의 등 다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고, 신축되는 시설의 1동에는 지원시설인 사무실, 관리실이 배치되고, 2~4동에는 예술작가를 위한 공방이, 5동에는 레스토랑이 배치되었다. 5동의 전면에는 높이 20미터의 전망대가 신설되어 주변의 공원과 자연환경을 조망하며 휴식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지점, 공간적으로 남북의 공원(창포원-체육공원)과 동서의 자연(수락산-중랑천-도봉산)을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한 방호시설이 그 시간적, 공간적 의미를 계속 쌓아 나가기를 기대한다. 글 코어건축사사무소 사진 황효철, 이완기 코어건축사사무소 코어건축사사무소(CoRe architects)는 구축방식, 프로그램, 재료의 실험, 변화하는 사회 구조에 대응하는 유형 찾기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통해 건축과 도시, 인테리어, 인프라시설 등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 세종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고, 2016 김수근프리뷰상, 신진건축사대상, 2018 서울시건축상, 건축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속초 상상가, 신설동 한옥 리모델링, 평화문화진지 등이 있으며, 서진특수학교, SH은평센터, 낙산성곽 하늘정원 전망대, 서울광장 겨울스케이트장 등의 현상설계에 당선되어 진행 중에 있다. 설계 유종수, 김빈 설계담당 강희라, 박윤정, 조아란, 최영래 대지면적 49,830㎡ 건축면적 1,871.55㎡ 연면적 1,875.12㎡ 규모 지상2층 높이 20m 주차 11대 건폐율 3.76% 용적률 3.76% 구조 철근콘크리트, 철골 외부마감 고열처리목재패널, 콘크리트폴리싱 내부마감 콘크리트폴리싱, 석고보드위 도장 구조설계 SDM구조기술사사무소 기계설계 청림설비기술사사무소 전기설계 ㈜극동문화전기설계 시공 씨엠글로벌건설㈜ 설계기간 2015.10.15.~2016.11.23. 시공기간 2016.12.14.~2017.11.06.  
OPENHOUSE 문화비축기지, 허서구, 백상진, 김경도 하나의 장소, 하나의 공간이 시대와 사건을 연결한다. 40년, 그리 길지도 않다. 그런데도 장소는 나름 작지 않은 시대 사건들과 이야기로 연결된다. 1973년 중동전쟁으로부터 야기된 1차 오일쇼크는 세계 경제를 강타한다. 3개월 만에 원윳값이 3배로 폭등한다. 매봉산 남측사면에도 암반을 뚫어 석유비축기지가 구축된다. 40만 배럴의 유류를 비축한다.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1급 보안 시설로서 철망과 초소들로 경계가 이루어진다. 2002 한일 월드컵 상암 경기장이 바로 앞에 건설된다. 장소는 지근거리의 위험물 저장시설로서 안전의 이유로 폐쇄된다. 고유의 기능이 폐쇄되고 2014년까지 버스 주차장, 월드컵대교 현장사무실 등으로 점유된다. 기억 유류 비축량 약 40만 배럴, 다섯 개의 오일탱크를 통해 그 물리적 체적이 가늠된다. 그 당시 서울시민들이 한 달간 사용할 비축량이라 하는데 현재 나라 전체의 하루 소모량이 220만 배럴이 넘는다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 정도의 비축량이 그토록 소중해서 꼭꼭 숨겨놓았던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대 상황, 장소를 통해 앞 세대의 생각들을 경청한다. 장소가 생겨나고 존재해왔던 그 이야기를 공감하고 기억하는 것을 진정성이라 이해한다. 기억들이 기록들로 각화(刻畵)된 계획 대지. 내재한 수많은 시어(詩語)를 찾아내고 읽어내어 재조합한다. 우리 시대의 나지막한 웅변으로 서사 시킨다. 발굴 장소가 만들어지던 그 시대 그 상황을 재현해낸다. 장비와 인력들을 소환해내어 현재의 기술과 인력들이 겹치는 상상을 한다. 문화비축기지 구축 과정은 발굴 과정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발굴을 통해 새로이 들어설 계획의 방향이 정당화된다. 찾아냄이 시작이며 나타나게 함이 종결이다. 문화비축기지 구축 과정은 석유비축기지 구축 과정의 역순서대로 진행된다. 되메워진 차폐 지형을 걷어내고 작업로의 암반 지형을 노출한다. 전면의 차폐옹벽 개폐 및 변형 여부를 결정한다. 오일탱크 각각에 대한 활용 방법 및 존치 형식을 결정한다. 오일탱크 보호 축대벽의 활용 방식을 결정한다. 축대벽 후면의 암벽보강 및 정리 후 진입로 암벽을 최종 마무리한다.  시설계획의 핵심요소 암반절개지, 콘크리트 축대벽, 오일탱크는 문화비축기지 시설계획의 핵심요소인 동시에 완성 요소다. 각각의 탱크들이 세 가지 핵심요소들의 조합과 프로그램을 수용하면서 별도의 수식이 필요하지 않는다. 토사가 걷힌 암반절개지의 순수 형상은 시설계획의 출발점이다. 영역을 한정하는 경계인 동시에 시설물의 배경이 되는 풍경이다. 콘크리트 축대벽은 탱크 외주부를 보호하고 전면 차폐벽과 결합한다. 스스로 조형물이 되면서 안과 밖을 가르는 영역이 된다. 하나의 독립 용기로 존재하면서 다양한 공간 개념으로 추상화된다. 오일탱크 사용에 있어 탱크 자체를 보강하거나 구조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을 공통 원칙으로 한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부식됨을 인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계획단지 내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후성 강판(코르텐) 등이 사용되지 않는다. 산화 과정을 모방하지 않는다. 하나의 몸짓들 각각의 탱크에 표현되는 디자인 몸짓은 선명하고 절제된 하나이길 원한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명확하길 원한다. 그래서 영역 전체의 어떤 이야기가 되길 원한다. 불요한 디자인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다. 몇 번 탱크가 가장 애착이 가는가 하는 질문을 곧잘 받는다. 중요한 것은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라고 답한다. 전체가 더 중요하다고 답한다.   1번 탱크는 이동되어 6번 탱크의 내부 탱크가 되며 같은 크기의 유리 탱크로 치환된다. 2번 탱크는 이동되어 6번 탱크의 외부 탱크가 되며 바닥판이 결합하여 공연장을 구성한다. 3번 탱크는 원형 그대로 존치한다. 4번 탱크는 탱크의 내부공간을 사용한다. 기획전시장이 된다. 5번 탱크는 탱크의 외부공간을 사용한다. 상설전시장이 된다. 6번 탱크는 1, 2번 탱크가 겹쳐진 공간이다. 탱크 내부를 건축화시킨 공간이다.   글 허서구  사진 남궁선, 박세원   
OPENHOUSE 태양의 집, 김중업 태양의 집은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9,570㎡ 규모의 철근콘크리트조 쇼핑센터다. 1979년 김중업이 설계해 1982년 준공했다.  이곳은 영등포구 신길동 대로변 모퉁이에 있다. 김중업은 이 건물을 부담 없이 들어가 구경할 생각이 드는 곳이 되길 바라며 설계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선 모습일지 모르나 상품이 보는 이의 감정을 윽박지르는 서울 거리에 이런 집이 기다려진 지 오래다”라고 건축가로서의 소회를 밝혔다.  이 건물에는 원형 모티브, 램프, 곡면의 사용 등 다양한 김중업의 건축 언어가 종합적으로 병치 되어 있다. 현재 ‘썬프라자’라는 이름으로 슈퍼마켓 등 상업 시설이 입점해 있다. 글 MMCA(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김태동(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중업건축박물관 제공
SPECIAL Interview, 건축가 조병수 ④ 이번 건축가특집에서 기린그림의 영상으로 소개되는 건축물에 대해서도 여쭤볼게요. 꺾인 지붕 집의 경우는 ㅁ자집, 땅집 이후로 지붕에 변주가 일어나는 집을 만드셨는데요. 지붕에 변화를 주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지붕이란 기분 좋은 공간이죠. 앉아있으면 여유롭고요. 다만 지상층이 좋은데 굳이 힘들여서 지붕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으니 많이 이용하지 않는 편이기는 하죠. 꺾인 집의 경우, 땅을 처음 보러 갔을 때 경사가 너무 심했어요. 거의 45도 이상이었던 것 같아 놀랐죠. 어렵게 올라가야 하는데 위로 가도 평지가 없어요. 어딘가는 파서 넣어야 하는데 그러면 박스를 넣었을 때 묻히게 되죠. 그래서 지붕을 꺾으면서 넣게 되었어요. 그렇게 되면 마당을 하나도 못 갖는 집이 돼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지붕을 제2의 마당으로 활용하자고 했어요. 집 옆으로 돌아 올라와서 지붕에 앉아 차를 마신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고추를 말린다든지, 그런 기능을 할 수 있게 했죠. 밑에서 볼 때와 3m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느낌이 또 매우 달라요. 위로 올라가서 여유롭게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활용한 거죠. 지붕은 경사 따라 자연스럽게 꺾여 올라갔는데, 약 10년 전에 만든 ‘이외수 문학관’도 유사한 이유로 경사를 따라 꺾여 있죠.   꺾인 집은 내부에서도 단 차이가 있는데 지붕과 연관이 있나요? 만들고 보니 땅속으로 반 정도가 매입된 상태인데, 뒤쪽으로 환기, 채광이 안 되잖아요. 작지만 중정을 하나 뚫어서 주방 쪽으로 공기가 통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바람이 밑에서 불어오면 전면 창을 통해 올라가서 뚫린 공간으로 돌 수 있게 환기를 유도한 거죠. 또 지붕에 앉을 때 꺾인 곳은 기대앉을 수 있지만, 평평한 바닥에 앉는 건 불편하잖아요. 그곳을 웅덩이처럼 파서 내 몸이 그 안으로 편하게 내려가 앉도록 했죠. 거제도 지평집에서처럼 내 몸이 조금 내려가서 앉았을 때 훨씬 포근하게 느끼고, 보는 각도도 지평선에 더 가까워지는 거죠. 조경을 더 멀리 조망할 수 있게 두 개의 공간을 밑으로 내리게 되었어요. 밑으로 내린 마당 하나는 주방 위의 독립된 실링이 되어서 아래층의 공간감을 정의해주고, 그 아래로 식탁도 두어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어요. 또 하나는 안방 바닥을 내려앉게 해서 침대에 누웠을 때 지평선 높이로 보이게끔 유도하게 된 거죠. 작은 높이 변화를 통해서 전체를 조망하거나 편안하고 풍요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집을 만들고자 했어요.     지평집은 예약이 몇 개월 이상 밀릴 정도로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펜션과 같은 숙박 시설에 일상과 다른 체험을 하러 오는데, 그곳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경험은 어떤 것일까요? 제주도에 가보면 3, 4층짜리 모텔들이 마구잡이로 지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곤 해요. 최소한 바다 쪽으로는 건물이 없으면 너무 좋겠는데 말이죠. 거제도의 지평집 땅은 돌아서 위로 올라가는 땅이 아니라 내려가는 땅이었어요. 그 땅을 통해서 바다가 보이는데, 건물을 지으면 너무 안 좋아지는 거죠. 방치된 상태의 조경과 땅의 흐름이 너무나 좋고 아름다운데, 우리가 또 망가트려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망가트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서 건축주가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땅집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 이후 작업한 명상집 등을 바탕으로 응용문제 푸는 기분으로 해보자 했죠. ‘과연 될까?’ 생각했는데 적당한 경사가 있었어요. 기존 지형의 높이를 조심스럽게 단면도로 그려서 그곳에 계속적으로 설계해봤죠. 그래서 지평집 단면도를 보시면 점선으로 그려져 있는 게 기존의 지형인데, 우리가 새로 설계한 것과 거의 비슷하게 가요. 그러면서 식사하는 공간, 오피스 위에 있는 공간들과 아래 있는 공간에 레벨 차이를 좀 두었죠. 땅의 뒤편에서 볼 때는 땅과 거의 하나처럼 붙어가게 하고, 뒤에 있는 공간도 낮춰서 튀어나오지 않게 해주고, 카페 내부바닥 자체도 40~50cm 낮춰서 내 몸의 위치가 지평선에 조금 더 가깝게 했어요. 그래서 지평선과 수평선이 만나는데, 앞에 있는 집들의 지붕이 살짝 떠서 그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그런 관계를 만들고자 했죠.   처음에는 6개 건물을 똑바로 배치했어요. 뭔가 거북하게 올라온 건물은 아니었지만, 주변이 유기적이다 보니 그걸 따라서 기하학적인 형태로 네 채와 두 채로 나누었죠. 바다를 향해서 옆의 경사를 따라가게 되었고, 그렇게 건물들이 꺾이면서 그 사이로 빛이 들어가고 환기, 채광이 되게 했어요. 땅 사이가 벌어지면서 빛이 새어 나온다면 건물 자체가 아름답지 않더라도 특별함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마당도 시골집 마당의 느낌처럼 땅의 생긴 모양대로 충돌하면서 생기는 자투리 공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방문객들이 이런 모습과 경험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기지(GIZI)_Art Base>는 박서보 화백의 작업실이자 뮤지엄이 함께 있는 곳입니다. 주변의 복잡한 환경에 대해 어떻게 보호하면서 열린 공간을 만드느냐가 핵심이었는데요. 기지 프로젝트가 위치한 곳은 반듯하고 언덕도 적당하고 참 좋은 땅이었어요. 반면에 그 땅에서 주변을 바라본 느낌은 주거단지 대부분이 그렇듯이 연립주택들이 난립해서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거꾸로 프라이빗의 문제도 있었어요. 우리가 짓고 들어가야 할 집은 자연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 어느 정도는 닫혀야 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죠. 동시에 3세대가 거주할 공간, 스튜디오와 전시 공간이 다양하게 들어가야 하는 복잡한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래서 그걸 하나로 묶으면서도 바람이나 빛이 통하고 주변에 거슬리지 않는 어떤 상자를 만들어내고자 알루미늄 메탈을 접고 타공을 해서 해결했던 거죠.   알루미늄 메탈의 틈을 통해서 빛과 바람은 통하고 시각적인 보호를 하도록 의도하신 건가요? 기지에서 사용한 알루미늄은 익스팬디드 메탈(expanded metal)이 아니에요. 여기서는 다른 방식을 써보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이곳의 중요한 기능이 주거고, 밖에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안쪽의 보조프레임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걸 만들어내야 했죠. 그래서 종이를 접으면 더 단단해지듯이, 알루미늄판을 접어서 테스트를 해봤어요. 굉장히 단단해져서, 위아래 두 지점만 고정해도 될 정도로 보강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높은 곳은 거의 6m까지도 가능해, 밖에서도 심플하고 안에서도 심플하고 수직 보강제가 하나도 안 들어가게 해결되었어요. 눈높이에서만 잘 보이게 하고자 했던 건데, 이곳에 맞는 걸 찾아낸 케이스죠.                             하이라이트는 완전히 열리는 2층의 코너 창입니다. 어떤 경험을 주고자 하셨나요? 기지에는 여러 기능이 요구됐는데, 그중 하나가 손님맞이 공간이었어요. 박서보 선생님의 손님들이 많이 오시기 때문에 그분들을 접대하고, 그림도 보여드리고, 앉아서 편하게 말씀도 나누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특히 세계적인 박물관장님들이나 출판사 관계자 등 외국에서 손님이 많이 오시는데, 열려 있는 한국적인 마당의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옥에서도 문이나 창을 열면 외부와 하나가 되는 공간이 있죠. 열렸을 때와 닫혔을 때의 느낌이 굉장히 다른데, 전체가 열렸을 때는 그야말로 시원하게 외부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 수 있으므로 그렇게 하고자 했어요. 특히 동남측 코너에서는 유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양쪽으로 열려서 트이게 만들고자 했어요. 박서보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창이고 공간이 되었죠.   이번에 소개된 운중동 주택은 기존과 다른 어휘도 보입니다. 특별히 표현하고자 하는 게 있으셨나요? 운중동 주택은 프로그램이 복잡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주변의 조건이 상당히 달랐어요. 남서 측 방향으로는 전망이 좋고 남쪽은 비교적 괜찮은데, 옆으로는 건물들에 의해 거의 다 막혀있는 구조였어요. 또 집이 도로에 바짝 붙어야 해서 올려다보이는 상황이었고요. 그런 부분이 배타적이면 안 되니까 박스가 아무리 좋더라도 배타적이지 않게끔 변화를 준거죠. 아래 박스와 뒤 박스를 일부 휘게 하고 그 사이로 빛이 들어가게 해서 하루의 변화를 주택 안에서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그리고 안에서 사각형으로 창을 내기보다는 프레임으로 만들어 안쪽은 조금 가려주고 트여주는 방법이 시도되었고, 그것이 형태적으로 나오게 된 것 같아요.   많은 비평가가 소장님의 건축을 ‘유기성과 추상성의 만남’이라고 표현합니다. 서로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주제를 어떤 식으로 접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유기성이라는 건 기하학적인 형태가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선과 흐름, 바람이나 구름의 흐름이라든지 지형의 흐름처럼 아주 부드러운 부분을 의미하는 거고요.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자연인 거죠. 추상성은 실제로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럴 것이라고 가정하는 거죠. 사각을 그리면 사각형이 되고 직선을 그리면 수평선이 되고 직선을 세워서 그리면 수직선이 되는 것들을 추상성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그곳에 사각형 공간을 콘크리트로 만들었는데, 그 안에 들어가서 자연을 관찰할 때 구름이 좀 더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거나, 바람이 내 몸을 통과해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든지, 그런 경험을 더 잘 인지할 수 있게 하려는 거죠. 추상적인 것을 통해서 유기적인 것들을 경험하는 것, 딱딱한 선을 통해서 부드러운 것이 적극적으로 우리 몸에 인지될 수 있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 같은 거겠죠.   또 다른 키워드는 ‘땅의 건축’입니다. 여러 프로젝트에서 지형은 중요한 출발점으로 언급되는데요. ‘땅의 건축’은 땅과의 관계에 대한 건축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땅집을 지어놓고 꺼진 공간에 들어가서 보니 하늘이 잘 보이더라, 나무가 더 잘 보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움직임, 반딧불의 움직임이 더 잘 인지되더라는 거죠. 꼭 땅만의 건축은 아니고 땅을 통해서 하늘도 보이고 자연도 보이고 우리 자신을 좀 더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건축이 아닐까 하는 거죠. 그에 관한 관심은 땅이 좋다는 데서 시작한 것 같아요. 땅이 좋다는 건 땅에 앉는 느낌이 좋다는 거죠. 땅에 웅덩이를 파고 앉으면 느낌이 색다르면서 포근할 수 있다, 땅을 많이 훼손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부터 출발하는 것 같아요. 어릴 때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시골에서 놀았던 기억을 통해서 받았던 인상, 흙냄새, 빗소리 등이 강하게 남아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고요. 또 땅은 하늘처럼 태연하고 아름답지 않지만, 만물을 소생시키는 어머니 같은 것, 나 자신의 존재감은 없지만, 남들을 존재하게 해주는 참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하늘보다 더 강하고 힘이 있는 것이라는 도덕경의 글, 노자 사상도 저에게 영향을 줬어요.   단순한 구축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경험과 인식’에 대해 비평가들은 ‘거침 속의 세련됨, 세련됨 속의 무심함’으로 표현합니다. 그 부분이 소장님께서 말씀하시는 ‘막의 미학’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평소 한국 고유의 특성으로 막사발의 예를 자주 드셨는데, ‘막의 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이것이 소장님의 건축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막’의 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건 막사발로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막사발을 공부하다 보니 빠른 속도로, 즉흥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것이 한국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지형과 날씨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적당히 만들어서 잘 적응하고 써야 하는 건축의 흐름을 보더라도 말이죠. 중국으로부터 전형적이고 대칭적인(symmetrical) 건축이 들어와서 불국사 같은 게 지어졌다면, 이후 시대가 지나면서 지형에 적응해가죠. 막사발도 그 자체가 대칭적이거나 완벽한 형태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어떤 재질감이나 손의 흐름, 만드는 속도에 적당히 적응해서 우리가 만졌을 때는 따뜻하게 다가오는 미학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죠. 막사발뿐 아니라 민화라든지 춤이라든지, 음식이나 술,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막'자가 들어간 게 많아요. '막'자가 없더라도 버무려내는,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깊은 맛 같은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거고요. 그렇다고 해서 막의 미학이나 의미를 건축에 직접적으로 도입하려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가끔 생각은 해보죠. 그런 것들이 적용돼서 나타날 수 있는 어떤 편안함이나 아름다움은 없을까? 아니면 이미 그렇게 되었던 것들은 없을까? 그러면서 고건축도 바라보게 되죠. 기둥을 편안하게 받히는 주춧돌처럼요. 까치호랑이 같은 경우도 그렇고, 막 생긴 것들을 ‘못난이’라는 귀여운 애칭으로 불렀던 것처럼 해학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한국 문화에 그런 따뜻하고 좋은 면이 있는 것 같은데, 현대 미학이나 현대 건축, 서양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게 아닌가. 이런 좋은 점들을 부각시키고 더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우리나라 고건축 특히 민간에서 만드는 한옥이나 도자기 같은 미학에서는 많이 적용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에서 배우면 어떨까. 약간 거친 상태로 덜 끝마쳤어도 편안함이 있는 상태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무조건 완벽하게, 모든 게 매끈해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 떨치고, 때에 따라 비틀어줘야 할 경우 너무 강박관념을 가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면 그 공간이 과연 나쁜 공간이기만 할지, 때에 따라선 그 또한 흥미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을지, 그런 부분에 꾸준히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는 편이고요. 하지만 건축이라는 게 만드는 과정이나 법규 등에서 그런 부분을 많이 허용하지는 않죠. 그런 생각을 반문하는 정도로 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도시 재생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데요. 지난 전시를 통해 광화문과 옛 중앙청에 대한 제안도 새롭게 화두를 던지셨고요. 최근에 도시 재생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건축가가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재생에 대한 소장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건 재생 프로젝트라서가 아니라, 기존 건물을 허물지 않고 쓰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였어요. 물질을 절약하는 것 이전에, 땅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구축물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활용함으로써 굉장히 흥미로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도시 재생의 의미는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기존에 있던 걸 보전함으로써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이라든지, 주변과의 관계를 훨씬 친근감 있게,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요소에 있는 것 같고요. 무엇보다도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이 멋있게 잘 지어지고 있지만, 막 지어도 오래된 건물이 대부분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나이를 먹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 않나 싶죠. 재료가 주는 편안함도 있고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들 기억도 있고요. 1960~70년대의 역사적 콘텍스트(context) 속에서의 우리를 일깨워주거나 흥미롭게 해주죠. 어떤 재료를 쓰더라도 새 재료가 주지 못하는 감흥이 있어요. 제가 보는 가장 큰 가치는 편안함인 것 같아요. 주변과의 관계도 있고 재료가 주는 느낌이나 그 자체일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있었던 건물을 수리해서 들어갈 때의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번에 케네스 프램튼의 <현대건축:비판적 역사> 5쇄에 드디어 한국 건축에 대한 챕터가 등장합니다. 한국 건축에서는 고 김수근, 건축가 조민석과 함께 조병수 소장님이 언급되었는데요. 그 연장선에서 한국 건축에서 한국성은 이미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본질에 대한 질문을 탐구하고 건축을 통해 해석하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계의 건축 지형 속에서 한국 건축이 어떻게 포지셔닝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소장님의 생각과 소감도 궁금합니다. 케네스 프램튼의 역사책에 나온다는 것 자체는 자랑스럽고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아직 한국 건축이 국제적으로, 미학적으로 논리화되어있지 않아서 그 사람들은 ‘이게 뭐지?’ 긴가민가한 정도죠. 일본 건축의 ‘와비사비’처럼 확실하게 이해되는 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 같아요. 그것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 생각에 국제적으로 인간이 다뤄온 미학 중 중요한 하나의 장르가 빠져있는 것 같아요. 자연에 순응하면서 생기는 편안함과 해학, 그러면서 해결해나가는 미학적인 부분은 분명 거론되지 않았죠. 이제 주목할만한 시점이 온 것 같아요. 외국에서도 ‘한국, 뭐지? 뭐가 있는 거야? 중국과 일본과 다른 게 뭔가가 있나?’하며 주목하기 시작한 거죠. 때문에 우리 스스로 이걸 국제적 기준에서 잘 정리하고, 비판할 건 비판하고 그와 유사한 건 유사한 대로 설명하면서,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요. 이번에 나온 책에는 그런 부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다거나 의미가 부여되지 못해 아쉽지만, 이런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정도는 소개가 되고 있으니, 우리의 미학을 조금 더 정리해서 좋은 건축, 좋은 미학적 개념으로 발전되고 잘 받아들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건축가로서의 삶도 여쭤볼게요. 하루 중 여유로운 시간은 언제이신가요?                                                                       저는 새벽형이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조용히 작업을 정리해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 있고요. 두 번째로는 저녁 7시에 집에 가거나 누군가를 만나 와인 한잔하건, 이야기를 나누건 편안해지는 시간이 있죠. 저녁 일곱 시에 사무실을 떠나면 일은 잊어버리는 편이거든요. 고민을 많이 안 하는 편이라 그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는 그야말로 온전히 먹고 쉬고 사람들을 만나서 담소하기 때문에 행복한 시간이죠.   즐겨 하는 취미가 있으신가요? 저는 태생적으로 아날로그형인 것 같아요. 젊었을 때부터 골동품 시장 다니는 걸 좋아했고 음악도 긁어서 나는 LP 소리가 신기하고 좋았고, 그런 것들이 가지는 맛이 좋아 아날로그적인 취미를 많이 가진 것 같아요. 그리고 하루 중 최소 한 시간 정도는 걷죠. 부지런히 땀 흘리며 걸으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요. 걷는 것 자체가 싫을 때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행복감을 주는 것 같아요. 건강을 유지해주고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취미는 일하는 것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과 연관성이 있죠. OHS   소장님이 머무르시거나 지내시는 곳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산길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설악산에 거의 2주에 한 번씩은 가는 것 같아요. 주로 가는 짧은 코스는 2~3시간 만에 올라갔다 내려갈 수 있어요. 세계 어디에 가도 그런 좋은 코스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몬태나에도 오래 살았고 유럽에도 살아봤지만 정말 아름답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곳이죠. 지금처럼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하늘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이럴 때 산에 가면 물이 철철 넘쳐흐르거든요. 깨끗하게 땀도 씻겨 내려가고 신선한 공기의 느낌이 너무 좋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태풍과 태풍 사이, 지금인 것 같아요. 곡성이라는 작은 도시에도 자주 갔어요. 논밭 버드나무 우거져있는 들길에 개울물이 철철 넘쳐 흐르거든요. 정말 풍요롭고 더위도 꺾이기 시작하면서 잘 익은 찐 옥수수들도 있고요. 평범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지만, 코로나를 겪고 다른 곳에 가서 보면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건지 새삼 알게 되죠.   소장님께 건축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건축은 놀잇거리예요. 아무리 휴가를 가서 즐거운 일을 해도, 설계만큼 흥미롭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떠한 즐거운 일도 설계 다음으로 즐거워요. 그렇다면 저는 이걸 놀잇거리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진행 임진영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
SPECIAL Interview, 건축가 조병수 ③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프로젝트는 ㅁ자집일 것 같아요. 단순한 구조, 박스를 활용한 공간 구현의 출발점이 됐다고 볼 수 있는데요.  ㅁ자집은 방수 방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집이에요. 또 제가 쓸 건물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과감하게, 홀가분하게 평소 생각을 적용해볼 수 있었죠. 방수를 하지 않으면서 심플하게 지붕을 마무리할 수 있었고 한옥에서 쓰인 목재 기둥을 사용하면서 실험적인 부분도 있었어요. 만약 방수면을 처리하게 되면 끝으로 물이 스며들기 때문에 파라펫 벽을 올려야 하거든요. 형태적으로 복잡해지는 거죠. 없어도 될 것들이 군더더기처럼 붙으니 자꾸 다른 식으로 건물을 만들게 돼요. 이 경우 파라펫을 안 올려도 콘크리트 단면 자체로 간단하게 끝나니 충분히 담백한 맛이 나죠. 방수를 처리하는 방법을 통해 지붕 단면을 심플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걸 통해서 방수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렇게 단순한 박스 시리즈가 생겨났죠. 나중에 제주도 명상집도 하게 되고 아름솔유치원, 이외수 선생님 문학관도 같은 방식으로 하게 되면서 새로운 캐릭터가 생겨나게 된 거예요. 땅집, 틸트 루프 하우스, 최근에 한 지평집까지 다 같은 방식이죠.   말씀하신 것처럼 본인의 집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가능했을 듯합니다. 지붕에 방수하지 않고 20cm 두께로 타설하겠다고 했을 때 어느 의뢰인이 용납했을까 싶어요. 그렇죠. 실험하려고 했다면 용납을 안 했겠죠. 저의 집이라 하더라도 시공사에서조차 용납을 못 해서 본인들이 직접 방수액을 타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 집은 실험하는 거니까 그냥 해보자 했어요. 콘크리트 타설 때 피니셔를 통해 표면 장력으로 시멘트를 끌어올리는 식으로 방수를 해서 성공했어요. 새로운 방수 방법을 개발하게 된 거죠.   동생이신 씨앤오건설의 조영묵 대표님이 시공에 참여해서 설득이 가능했던 부분도 있을까요? 안 그래도 동생이 콘크리트 타설하는 날 전화가 왔어요. ‘이거 크랙이 가기 때문에 분명히 물이 샐 것입니다. 방수액을 좀 타서 하겠습니다’라고 해서 타지 말라고 했어요. 크랙은 콘크리트 타설 후 4시간 안에 발생하기 때문에 4시간 후에 쇠흙손으로 문질러서 마감해주면 크랙이 안 갈 것이라고 믿는다, 한번 해보자고 강력하게 주장을 했죠. 자료를 찾아보면서 크랙이 가는 시간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시도해도 물이 새지 않을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물론 시공자는 물이 샐 거라고 생각하고 콘크리트가 굳자마자 올라가서 담수 테스트를 했어요. 옆을 막아놓고 물을 부어서 ‘물아 새라, 물아 새라’ 했는데 새지 않으니 놀란 거죠.(웃음) 지금 20년이 넘었는데 전혀 안 새요. 이제는 콘크리트 방수 중에 가장 완벽한 방수는 방수를 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데 동의를 하죠.   덕분에 완벽하게 떨어지는 상자의 원형이 만들어졌는데 그 외에도 유리를 끼우는 방식이나 다른 디테일에서도 상당히 과감한 방식을 시도했어요. 구상한 바를 실험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확신을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래서 공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공자들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다 안된다고 했거든요. 보통 천창을 만들면 스틸로 프레임을 짜고 실리콘으로 메꾸는데, 늘 물이 새요. 그 스틸 프레임 없이 그냥 유리만 얹자고 제안하니까, 다 터지고 문제가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공부하기로는 콘크리트도 돌을 갈아서 만든 거고 유리도 돌 속에 있는 석영으로 만든 건데, 비슷한 성격의 성분이라고 본 거죠. 철이 열을 받으면 늘어나잖아요. 스틸 프레임의 경우 팽창지수가 훨씬 높기 때문에 하자가 날 수 있지만, 유리를 콘크리트에 바로 끼우고 실리콘 처리하면 하자가 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천창은 어떤 스틸로 해도 문제가 생기지만, 수축팽창지수가 거의 비슷한 콘크리트와 유리는 하자가 거의 없죠.  시각적으로 봤을 때도 제3의 재료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유리와 콘크리트가 아주 담백하게 대비되어요. 또 유리를 여러 겹으로 쌓아서 빛을 받았을 때 빛이 엣지에 비치게 하고자 했죠. 물론 ㅁ자집에서는 시공사가 꺾어서 빛이 새어 나오지 않게 만들어져 있기는 해요. 이후 두 상자집부터는 빛이 완전히 새어 나오게 만들었어요.  항상 의문스러웠던 부분이었어요. 유리라는 게 참 아름다운데 왜 프레임에 끼는 순간 그 아름다움이 사라질까 생각해봤죠. 유리의 엣지가 같이 보이는 게 중요했어요. 빛이 유리에 닿았을 때 옆으로 타고 가서 엣지에서 빛이 나오는데, 틀이 끼워져있으면 엣지의 반사가 덜 되는 거죠. 그런 부분을 생각해볼 때, 같은 표면에 붙고 제3의 재료가 들어가지 않을 때 하자도 적고 시각적으로도 깨끗한 경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시도한 거죠.   결국, 재료와 구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가능한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경험만 가지고 밀어붙이는 것으로는 부족할 수 있는 거죠. 특히 설계자와 시공자의 차이점이라면, 시공자들은 시공의 편리성을 더 잘 이해하고 있지만, 설계자는 그 근본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구조라든지, 두 재료가 만났을 때 어떻게 되는지 말이죠. 그런 후에 그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서 만들지는 시공자가 더 잘 알겠죠.   한옥의 고재를 써서 기둥을 대신하셨는데 불규칙하게 배치하면서 공간이 더 흥미롭게 전개되는 듯해요. 저는 불규칙함이라는 말씀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기둥은 나중에 2층 증축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지만, 보 없이 한 번의 콘크리트 타설로 끝내보자는 의도였어요. 보 없이 20cm 두께의 콘크리트로 타설했을 때 지탱할 수 있는 거리는 5~ 6m가 최대거든요. 어느 부분에서 재더라도 5~6m 내에 들어오게끔 하다 보니까 나온 배열이죠. 그러니까 완전히 불규칙은 아니고 숨겨진 규칙이 있는 거죠.   고재가 갖는 특성 때문에 묘하게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한국적인 공간의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 있어요.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이 10개의 기둥은 ㅁ자집 설계 전에 가지고 있었어요. 지나가다가 고재 쌓아놓은 걸 봤는데 그 질감이라든지 듬직함이라든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사 놨던 거예요. 다만 목재는 콘크리트와 상반된 재료인데, 콘크리트는 반영구적인 재료라면 목재는 습기를 먹었을 때나 건조해졌을 때 수축 팽창이 일어나고 변화하는 재료죠. 그래서 두 가지를 같이 접목해서 구조로 쓰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때도 어느 정도 계산을 한 거죠. 나무가 옆으로는 많이 줄어드는데 위, 아래는 거의 줄지 않거든요. 그래서 5~7mm 정도 줄어드는 걸 예측하고 시공자와 협의했어요. 그런데 눈에 띄지 않지만 대략 이 정도 크기 지붕의 콘크리트는 크립(creep)이라고 해서 1~2cm 정도 서서히 주저앉아요. 그 변화가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면 크랙이 발생하지 않고 목재가 줄어드는 길이와 비슷하게 맞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유리로 가운데 중정을 만들고 바깥쪽에 나무를 기둥으로 세웠는데 유리를 통해서 보이는 투박한 목재 기둥의 느낌이 좋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자신의 집을 지을 때 졸업 논문 때 그렸던 박스 형태가 등장한 것은 오래 생각한 건축 원형과 맞닿는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경험과 인식’이라는 주제를 본인의 집을 통해 실현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설계하실 때 염두에 두신 건가요? 그랬던 것 같아요. 왜냐면 성북동에 있을 때 제 책상 옆에 포스트잇이 7~8장이 붙어 있었는데 항상 ㅁ 자에 사람이 누워있는 그림이었거든요. 훨씬 더 작은 공간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최소한의 공간이면서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ㅁ자집은 원래 땅속으로 묻고자 했어요. 그때 지금 씨앤오건설의 조영묵 씨가 담당이었는데, ‘예산도 없는데 묻으시면 안 됩니다. 물이 들어가서 파손되고 습기가 차고 방수가 어려워요’라고 했어요. 미국을 오가면서 대학에서 가르치던 때라 시간이 없어서 마지막 날, ‘알겠다 그러면 땅속에서 끌어올려 위에다 올려서 짓자, 그렇지만 밖으로 창은 거의 내지 말자’하고 지었죠. 졸업 논문 프로젝트의 원형에 가까우려면 땅에 묻혀 있어야 해요. 그마저 형태가 없고 경험만 있는 공간이었는데 그래서 땅집을 다시 하게 된 거죠. 또 제가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니까 이왕이면 위에는 집을 지었으니 이곳은 윤동주의 시와 정신을 기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땅집을 시낭송회하고 포럼이나 토론회를 하는 공간으로 쓰게 되었어요. 어쨌건 졸업 논문의 원형에 가까운 건 땅집이죠. 졸업 논문은 교수님들이 굉장히 좋아하셨는데 그 당시에 했던 작품 자체는 실패작이라는 평을 받았어요.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죠. 꼭 땅에 묻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었고, 시각적인 비례에 얽매이지 않는 경험, 체험이 중요한 공간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거였는데 그중 하나가 땅집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최근의 거제도 지평집까지 그와 유사한 박스 시리즈가 비슷한 맥락에서 이어지고요.   흥미롭게도 저는 땅집에 갔을 때 평안하면서도 아직 닫히지 않은 무덤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매우 고요한 공간인데 왜 죽음을 떠올렸을까 싶었죠. 소장님이 젊은 시절 그렸던 해골 그림도 연상되었고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짓고 나서 몇 년 후 이나미 교수님이 저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질문을 이어 나가다 보니 땅에 대해 처음 생각했던 건 언제일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무덤 팠던 구멍에 대해 생각도 하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끄집어낸 적이 있었죠. 땅집을 짓겠다 하고 웅덩이를 파놨는데, 한번은 저녁 늦은 시간에 현장에 도착한 적이 있어요. 웅덩이 밑으로 내려가서 본 여름의 하늘이 너무 좋았죠. 나무가 바람에 움직이는데 하늘이 보이고 반딧불이 날아다녔죠. 땅속으로 약 2m 남짓 내려갔는데, ‘내려와서 보는 나무숲은 땅 위에 서서 볼 때와 완전히 다르구나’, ‘자연을 좀 더 특별하게 경험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포근하고 훨씬 더 낭만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사우스케이프 프로젝트 할 때는 나무를 옮기느라 뽑은 자리가 언덕 위에 파여 있더라고요. 그 안에 들어가서 앉았는데 굉장히 느낌이 좋은 거예요. 언젠가 이런 공간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죠.   지금 다시 ㅁ자집을 바꾸셨는데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는지, 무엇을 구현하고 싶으셨는지요? 막 ㅁ자집을 지을 당시, 공사 중에 봤을 때 굉장히 좋았어요. 그런데 단열재도 붙이고 유리도 붙이고 마감재도 붙이고 다 해놓고 나니까 실망스럽더라고요. 군더더기가 많이 붙은 거 같고요. 그렇지만 단열도 해야 하고 바람도 막아야 하니 한 18년 동안 그렇게 살았죠. 그런데, 집이 오래되어 수선하려고 보니 공사 당시가 기억났어요. 그러면 집을 해체해 놓고 한 일 년 정도 써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전시도 계획하고 있고요. 결국, 내부로 막혀 있지 않다면 건축이 아니고 조형물이 되는 거겠죠? 어떻게 보면 비와 바람은 막아주고 그늘도 만들어 주니까 건축물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고요. 지금 이 상태로 새로운 걸 찾아보고 탐구할 수 있는 부분이 뭘지 생각해보면서, 부분적으로 커튼이나 등도 설치해서 어떤 제3의 건축공간, 환경적 조각(sculpture)과 건축 사이의 공간을 실험해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자연에 대한 경험으로 귀결되는 것일까요? 오히려 ‘이게 뭐지?’라는 반문을 통해서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방에 앉아있을 때도 그렇고요. 공간이 크면 클수록 좋겠지만 작은 공간에 앉았을 때도 공간감이 확고하고 좋은 공간과 그렇지 못한 공간의 차이가 뭘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거고요. 결국은 편안함이나 행복일 것 같은데 그것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것들, 그 속에 자연도 포함되겠죠. 바람이 살랑 불면 ‘아, 아주 미세한 바람인데 편안하고 좋구나’, 소나기가 쏟아지면 ‘비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이게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구나!’, 그렇게 나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고 느끼는지 보고, 그다음 나 자신에 대해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 그런 여유로움을 주는 것이 건축이 할 수 있는 좋은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카메라타 뮤직 스튜디오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공간입니다. 단순한 박스가 등장한 곳이기도 하고요. 처음 설계하실 때 의도가 궁금해요. 카메라타를 설계할 당시 저는 미국 몬태나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요. 그 지역에서 농부들이 지었던 건물들, 솔직하고 담백한 공간들에 관심이 있었어요. 특히 창고 같은 경우엔 큰 볼륨으로 지어지는데, 몇 개의 재료로 잘 지은 것들이 많았죠. 창이 많지 않은 창고에 들어갔을 때의 차분함이나 썰렁함이 참 좋았어요. 그래서 음악감상실을 설계할 때 그런 창고 같은 공간에서 조용히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제안하게 됐죠. 물론 창고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오래전에 본 아주 심플한 성당 건물도 있었어요. 오스트리아 콘스탄츠(Konstanz) 호숫가에 있는 성당인데, 길고 좁고 높은 비례감이 참 좋아서 그 건물을 연상해서 제안했죠. 황인용 선생님은 소금 창고를 떠올리셨어요. 어릴 때 인천 앞바다의 염전에서 소금 창고에 숨어 들어가 있을 때의 조용함과 빛이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아름다움을 연상하셨죠. 그런 공간에서 음악을 들으면 좋겠다고 동의해주셨어요. 거의 비슷한 시기에 ㅁ자 집도 지어졌어요. 아주 심플하게 그려서 쉽게 시공할 수 있는 건축, 그러면서도 그 안의 경험은 풍요로운 건축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그게 결국 친환경적인 건축이 아닐까 생각했었죠.   카메라타의 경우는 음악 감상을 위해 공간 안에서 소리의 경험을 많이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기다란 박스의 건물을 설계해놓고 보니 앞뒤의 거리가 꽤 길어졌어요. 벽의 폭이 좁으니까 반사된 음이 다시 반사되어서 갈 때까지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죠. 앞에 앉은 사람이 바로 듣는 소리와 돌아 들어오는 소리의 시차 때문에 에코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게 되죠. 물론 흡음재를 사서 쓸 만큼 여유가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었어요. 어느 정도의 에코가 발생할지 일단은 지어놓고 봐가면서 흡음을 보강해가자고 설명해 드렸어요. 약간의 울림소리는 울림통 역할을 해줄 수도 있으니까요. 어쨌거나 흡음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천장판 구조재를 톱으로 켜서 칼집을 냈어요. 그렇게 천장판에 높고 낮게 결을 만들면서 고음, 저음을 고루고루 흡수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한 면을 흡음판으로 만들어 준 셈이 되었고요. 목재를 부분적으로 썼고 또 사람들이 앉으면 몸 자체가 흡음재 역할을 할 거라고 봤어요. 다만, 반사돼서 도는 음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난반사를 시키게끔 벽체는 일반 합판 거푸집을 쓰지 않고 거친 질감을 냈죠. 그 지역의 오래된 제재소에 아직도 큰 줄 톱을 가지고 있는 곳이 있었는데, 거푸집 목재를 줄톱으로 자르면 줄 자국이 출렁거리면서 그 자국이 수평으로 나게 돼요. 그걸 의도적으로 더 많이 나게 했어요. 또 남북으로 들어오는 빛이 낮에는 높은 각도에서 들어와 줄톱에 의해 콘크리트 질감이 생동감 있게 살아나도록 의도했죠.   내부 공간의 간결함을 만들기 위해 메자닌 부분은 와이어를 강하게 당기는 식으로 매달았습니다. 단순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구조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연구하고 적용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직원들에게도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20여 년간 해온 건물을 보려면 구조를 보라고 해요. 건물 디자인이 특별한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그 안의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자 했던 경우가 꽤 있다고 말하죠. 구조라는 것은 구조사무실에서 해결하는 게 아니고, 건축가가 확실하게 어떻게 하라는 제안을 주고 왜 그런지, 어떻게 해결할 건지 같이 풀어나갈 때 좋은 건물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림만 그려서 넘겨선 안 되고, 구조를 철저하게 생각해서 넘겨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카메라타의 경우에도 내부를 심플하게 하려면 기둥이 많이 나오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위의 메자닌으로 올라갈 때 계단이 생기면 산만하고 사람들 발소리도 들릴 것 같아서 콘크리트 벽을 하나 놓고 그 뒤로 다 숨겼죠. 주방시설, 계단, 화장실이라든지, 소음이 발생할만한 것들을 다 뒤로 숨겨주고 그 안의 공간은 순수한, 그야말로 비어있는 사과 상자 같은 공간을 만들었어요. 일부는 동쪽으로 나지막하게 들어가는 공간을 깔아 넣었고, DJ 실도 안쪽으로 밀어서 넣었어요. 네모난 보이드 공간 자체는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죠.   박스를 시도하는 이유에 대해서 한 비평가는 ‘본질적인 공간의 경이로움을 탐구한다’라는 비평을 하기도 했는데요. 박스 시리즈를 통해서 담고 싶으셨던 아이디어는 무엇이었나요? 처음 시작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단순한 것이 좋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고요. 자연이나 지형, 여러 건물이 있거나 하는 조건들로 주변은 항상 복잡하니까, 건물은 더 단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죠. 헤이리 마을도 이미 복잡해지기 시작했었고 여러 건축가가 들어와서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내게 될 테니까요.   그 이후로 두 개의 상자, 세 개의 상자로 만든 집이나 상자 안에 상자가 들어간 집 등 여러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상자를 좀 더 띄우기도 하고 빗기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좀 더 상자와 상자 간의 관계성, 자연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관계성이라고 하면 둘 사이의 관계도 있을 테고, 둘과 주변과의 관계도 있을 테고, 두 개의 사이 공간도 있겠죠. 사적인 사이 공간도 있고 개방적으로 연결되는 곳도 있고요. ㄱ과 ㄴ의 관계 아니면 너와 나의 관계, 그런 관계성을 많이 생각하면서 만들어나갔어요.   고려제강 수영공장인 <F1963>은 공장을 리노베이션한 프로젝트로 철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는 프로젝트입니다. 규모도 컸고요. 어떤 주제로 접근하셨나요? F1963보다 2년 정도 앞서 키스 와이어 콤플렉스가 지어졌어요. 키스 와이어센터 쪽은 수련원, 기숙사, 오피스 공간이 같이 들어가 있고, 키스 와이어 뮤지엄이 지어졌고요. F1963은 공장건물을 공공에 개방해 상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쓸 수 있게 개조한 프로젝트에요. 2차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진행되었죠. 처음 설계 의뢰를 받고 가보니 언덕이 있더라고요. 항상 부산에 가면 특별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 그때도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그게 무얼까를 생각해봤는데 일단은 날씨가 더 온화하고 포근해요. 그리고 산과 비슷한 가파른 지형과 바다가 만나는 도시인 것 같아요.  그런데 키스 와이어 센터가 놓일 대지에 갔더니, 그 뒤로 고속도로가 뚫리고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아름다운 지형과 산이 다 뭉개지고 잘려나가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약 3,000평 정도의 공간을 넣어야 하는데, 기대어 놓기에는 언덕의 크기가 너무 작은 거예요. 언덕을 다 없애고 앉혀야 하는 정도의 크기인 거죠. 법규상 고층(high rise)으로 세울 수 없는 지역이었고요. 그래서 지형을 망가트리지 않고 그나마 보존을 하고자 했어요. 자생적으로 조성된 대나무와 뒤편의 좋은 소나무 군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 그리고 박스로 풀어낼 때처럼 몇 개의 박스가 어떻게 배열될지, 자연스럽게 흐르는 지형이 박스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죠. 물론 모두 박스는 아니지만요. 가서 보시면 건물 모양도 모양이지만 그보다는 땅의 흐름과 건물의 흐름이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 땅의 흐름을 좀 더 경험하게 만드는 공간이 된 것 같아요. 뮤지엄으로 들어가면 와이어로 지지가 되는 램프를 타고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밖으로 나오면 언덕의 윗부분까지 도달해서 자연스럽게 언덕을 타고 내려가게 되죠.   키스 와이어 뮤지엄과 센터가 신축이라면, F1963 프로젝트는 리노베이션으로 진행되었는데요. 뮤지엄 의뢰를 하셨을 때 그곳에서 공장을 보게 되었죠. 허름하지만 나름의 성격이 있어서 언젠가 이걸 개조해서 뮤지엄을 하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처음에는 회장님이나 담당자 분들이 그게 무슨 말인지 긴가민가하셨겠죠. 요즘은 재생 건축이 많아졌지만, 벌써 10여 년 전이었고 허름한 공장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것만 생각하고 계실 때였으니까요. 리노베이션을 몇 번 제안하고 기록으로라도 남기려고 사진을 찍곤 했었죠. 그러다가 공장건물이 없어지기 전에 그 공장에서 부산 비엔날레의 일부가 열리게 되었고 작가들이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그렇다면 일반인들이 좋아할 수 있겠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고쳐보자고 했고, 현재의 방향으로 진행되었어요.   공장건물을 리노베이션할 때 주의 깊게 다루었던 부분이 무엇이었을까요? 첫 번째는 기존에 있는 걸 가능한 한 그대로 활용하고자 했어요. 그래서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연관되는데 쓰레기를 하나도 만들지 않는다, 여기 있는 건 다 100% 재활용한다고 생각했어요. 거친 바닥도 그냥 두거나 꼭 제거하거나, 잘라내야 하면 그걸로 가구를 만든다든지, 다른 곳의 바닥재로 쓰든지 재활용하고자 했죠. 그런데 건축법이 까다롭다 보니까 기초를 상당히 보강해야 했어요. 그곳이 옛날에 진흙 바닥이어서 지반이 약한 데에다가, 흙을 다져서 만든 공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구조 엔지니어 측에서는 구조를 많이 보강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때문에, 건물을 거의 새로 지어야 경제성이 있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30년간 쓰면서 지금 있는 구조도 많이 다져졌기 때문에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구조 측에 제기했고, 한국의 구조 엔지니어들은 이 흙의 토질 자체가 안 좋으니 새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어요. 그래서 외국의 사례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외국 엔지니어의 의견을 검토해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솔루션과 방법을 제시했어요. 파일을 박지 않고 기존 구조 위에다가 엮어서 보강하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처리를 했죠. 중요한 구조적인 보강을 했고 그러면서 기둥에도 있는 듯 없는 듯 추가된 기둥들이 있어요. 또 공장 여러 개를 계속 붙여가며 지었기 때문에 내부는 빛도 안 들고 환기도 안 되고 동선도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게 되어 있었어요. 일반 건물로 쓰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죠. 그래서 가운데를 잘라내서 중정을 만드는 것으로 제안했어요. 처음엔 좀 더 깊게 파서 땅에 내려가 있는 포근한 느낌을 받도록 제안했죠. 이 건물이 앉혀지기까지의 땅의 본질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편의상 설계 과정에서 조금씩 줄어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현재는 의자 높이 정도(45cm 정도)로 되어 있죠. 도서관 부분만 1.2m 정도로 깊게 파여서, 내려가면 공간감이 있고 포근한 느낌이 들어요. 어쨌건 건물이 구조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라든지 문제점, 가능성에서 출발하고자 했어요.   트윈 트리(TT)의 경우는 기존 작업과 달리 수직 타워입니다. 또 그 위치가 광화문이자 동십자각 맞은편에 있는 중요한 자리이잖아요. 여러 가지로 어려운 땅인데, 상당히 유기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사과 상자를 주장하던 바쁜 시기에 다른 손으로는 트윈 트리의 유기적인 곡면 건물을 구상하게 되었어요. 물론 거기에도 두 개의 박스를 앉혀 봤었죠. 그런데 차가 돌아가는 길이라 어떻게 해도 투박하게 튀어나오게 돼요. 특히 코너에 있다 보니 경복궁 쪽에서 바라다볼 때 어느 각도에서건 모서리 부분이 아주 날카롭고 느낌이 좋지 않았어요. 박스라는 걸 고집할 게 아니라 땅의 흐름을 더 보자고 생각하고 운전해서도 가보고, 걸어도 봤어요. 경복궁 쪽에서 바라볼 때 강한 모서리 선이 나오는 것보다는 부드러움이 있으면 좋겠다고 싶었어요. 그래서 흐름을 따라 앉히게 된 게 지금의 곡면이 나온 거예요. 땅 자체가 사각이 아니라 찌그러져 있어요. 그 형태를 따라서 뒤로는 90도 직선형을 따르고, 앞은 라운드 형태를 따르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형태예요. 사과 상자가 만들어질 때 널빤지를 가져다 잘라서 로직에 의해 쉽기 쉽게 만들었듯이, 이곳도 주어져 있는 요건에서의 로직 자체는 분명했던 것 같아요. 사과 상자에서는 판재라면 여기서는 약간 휘어져 있는 형태, 뒤는 조금 더 반듯한 형태죠. 그러면서 두 건물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그 두 건물 사이로 광화문으로부터 피맛길 쪽으로 이어지고, 또 피맛길 쪽에서 걸어 나올 때는 동십자각을 통해서 경복궁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두 개의 타워가 선다면 어차피 곡면으로 만들어지니 그 사이공간에 더 드라마틱한 경험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게 설계의 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수직 타워, 임대용 건물은 기준층이 반복되기 때문에 변화를 주기가 어렵고 경험 측면에서도 한정적일 수 있죠. 건축가로서 어떻게 다른 경험을 주고자 하셨나요? 때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어떤 경우는 땅이 특별한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그 땅으로부터 좋은 기운이나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흐름을 받아들이고 싶은 경우가 있을 테고요. 트윈 트리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그걸 받아들이는 방법으로써 틈새에 중간 공간을 두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게 했어요. 그냥 바로 땅 위에 세운 게 아니고 틈을 만들어서 두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만들고자 했던 거죠. 그렇지만 항상 그렇게 하는 건 아니에요. 어떤 경우는 건물이 약간 떠오르면서 주변에서 들어오게 한다든지, 위에서 쓰는 공간의 마당이나 플랫폼이 필요하다면 조금 띄우고 밑에는 흐름을 허용해준다든지,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것 같고요. 평면이 반복되어 올라갈 때 건축가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쓰죠. 특히, 1980년대 이후로는 휴먼 스케일의 건물을 만들고자 매스를 분절해서 적층한다거나, 그 사이에 녹색층을 둔다든지 사람들이 모여드는 사회적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기능적으로 둔다든지 하는 거죠. 어떤 건물이 도로에서 너무 가까워, 보는 각도에 따라서 위압적이라면 셋 백 시키면서 리듬으로 분절하는 방법도 있을 테고, 때에 따라서는 중간을 열어서 바람이 통하고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있겠죠. 땅이 가지는 조건이 첫 번째로 영향을 미칠 것 같고, 두 번째로는 기능적인 측면, 즉 어떤 것이 필요한지, 유용한지 프로그램상 사용자 측면인 거죠. 그리고 법규적인 해석과 비용들이 세 번째로 작용하는 게 될 것 같아요.   트윈 트리는 보기에 3차원 곡면처럼 보이지만 모두 2D로 분할해 해결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DDP처럼 두 방향으로 휘어진 3차 곡면은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죠. 이 건물은 처음 모델링 했을 때 유기적인 면을 수평적으로 분할했어요. 각 층을 6개로 분할해서 수직으로 서 있는 면으로 이어지죠. 그러니까 2차 곡면이 적층해 연결됨으로써 3차 곡면이 되도록 만든 최초의 건물일 것 같아요. 오브아럽(Ove Arup)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왜냐면, 창문 프레임 단면상에서 어느 부분은 유리가 안에 들어가고 어느 부분은 밖에 들어간다면 단열이 안 될 거라고요. 결국, 구조적으로 연결을 시키면서도 단열이 해결되는 방안을 찾았어요. 그렇게 해결한 유일한 건물이라서, 오브아럽에 초청받아 강의도 했어요. 어쨌건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했어요. 명확한 논리를 가지고 만들고자 한 것도 있었고요. 그렇게 2차 곡면의 유리를 마감하게 됐는데, 85% 정도는 평유리에요. 15%만 가지고 곡면을 만들었고, 곡면도 반경(radius)이 50cm짜리부터 2m까지 변화되는 5종류만 만들어서 그걸 조합함으로써 면을 만들었죠. OHS   진행 임진영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 인터뷰 ④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