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들어와서 하신 첫 프로젝트가 양수리 두물머리주택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첫 프로젝트는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지금까지 주택을 계속하게 된 이유가 이 첫 집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군위 오지에서 태어났다고 했잖아요. 그 동네에서 상경해 성공하신 분이 저에게 집 설계를 의뢰하셨어요. 우리 누님 친구분이시고 우리 집안과 알고 계시니까, 요즘 땅값으로 치면 몇십억 되는 거대한 집을 서른 살 초반 젊은 건축가에게 맡긴 거예요.
제가 알고 있었던 게 별로 없더라고요. 건축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보니까 작은, 실제 치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게 맞을까? 틀릴까?’ 다시 공부했어요. 모든 것을 건축가 혼자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두물머리주택은 경사진 땅을 다루면서 지형을 살린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땅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셨는지요?
자연의 지형을 이용하고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가 유전적으로 그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 프랑스적인 사고를 했다면 르코르뷔지에처럼 필로티를 만들었겠죠.
그런데 유학 갔다 와서 처음에는 다들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들잖아요. 우리 강토를 바로 알려고 지방을 많이 다녔어요. 전통건축도 많이 보러 다니고 우리나라 땅의 색깔은 어떤지, 우리 식물은 어떤 게 있는지도 보고요. 전라도의 흙 색깔은 어떻고 경상도는 어떤지를 느끼고 배웠어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산 능선의 풍경에 따라 어느 지역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예요. 예를 들어 경북의 북부 지방은 가파른데, 남부는 조금 느려집니다. 지형뿐만 아니라 거기에 지어진 집들을 보게 됐어요.
그래서 두물머리주택은 어떻게 하면 우리 환경에 적합한 집을 만들고 제가 습득했던 것을 담을 수 있을까 고민 했던 작업이었어요.
경사지를 그대로 살리면서 풍경이 그 높이에 따라서 다르게 설정된 것이 흥미로웠어요.
그랬죠. 처음에 택지 개발을 하면서 대지가 기단처럼 만들어져 있었어요. 그 기단을 없애고 땅의 흐름과 선을 살리려고 의뢰인을 설득했고, 쌓아놓은 기단을 다시 없앴습니다. 아마 어릴 때부터 내재한 그런 풍경, 경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나 싶어요. 지형에 대한 해석과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후 연이어서 했던 작업이 모두 다 경사지였어요. 평지였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정말 힘들었죠.
경사지에 짓는 집에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고민한 것은 땅에 어떻게 강하게 반응할 것인가였어요. 예를 들어 르코르뷔지에의 경우 필로티로 집을 들어 버리잖아요. 지면은 지면이고 건축면은 따로 존재해요. 빌라 사보아나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는 원래 지형과 다르게 추상화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건축을 보면 대지의 지형 변화에 따라 지면의 높이 또한 바뀝니다. 마당과 외부 공간이 같이 읽히는 거죠.
경사지의 가장 단순한 장점이라면 투영된 대지 면적보다 땅이 넓어진다는 거예요. 투영면적은 작은데 경사지의 실제 표면적은 큰 거죠. 그게 물리적인 부분이고요. 우리나라 경사지의 장점은 땅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건축과 잘 어울리게 만들어 주면 훨씬 더 색깔 있는, 그 땅에만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건축가는 땅에 대한 조력자예요. 제가 뭘 하는 게 아니고 이 땅이 뭘 원하는지 읽어내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땅이 이야기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려고 해요. 땅에 답이 있고 제가 그에 대한 응답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반면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평지보다 경사지가 훨씬 더 성격이 강해요. 레벨을 맞춰서 만들어야 하니 설계는 분명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땅을 보면 도심에도 지형 기복이 심하잖아요, 평지로 만들어놔도 지형이 있습니다. 그 미세한 차이를 담는 것이 공간의 차이를 만들어요.
예를 들어, 도천 라일락집 같은 경우도 지형 변화에 따라 마당에 다양한 레벨을 만들어 주었어요. 훨씬 더 공간이 입체적이고 풍부하고 넓어 보이는 거죠. 위에서 아래로 본다든가, 아래채에서 위채를 본다든가 할 수 있어요. 아래채와 위채를 넣으면서 아래채를 낮추고 위채를 쓱 올리면 빛이 잘 들어오면서 개방감이 있어요. 물리적으로는 작지만, 실제 느끼는 공간은 훨씬 더 입체적으로 커 보이죠.
땅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담아낼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두물머리주택은 저에게도 기억에 남는 작업입니다. 현장에 방문했을 때 ‘이 공간이 너무나 편안하다’라고 각인이 된 집이었어요. 그걸 표현할 방법이 없었는데, 건축가 로랑 살로몽이 교수님에 대한 비평에서 쓴 ‘수학적 감성’, ‘신체가 기억하는 비례’라는 단어를 보고 나니 분명해지더라고요.
저 역시 제가 생각했던 것을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공간을 이렇게 만들면 이렇게 되는구나.’ 반대로 ‘아, 이러면 안 되는구나’ 하는 것도 많이 느꼈어요. 어제 지어진 집이 가르침이고 스승입니다.
백색을 쓴 이유도 처음에는 다른 재료를 쓸 만한 경험이 없었어요. 요즘 젊은 건축가들도 백색으로 많이 마감하죠. 르코르뷔지에도 젊은 시절에 백색 건축을 했어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조형성이 잘 드러나기도 하고, 또 하나는 그만큼 축적된 경험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건축은 쌓는다든가, 디테일이라든가, 모듈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기 전에, 건축이 행해야 할 치수, 고려해야 할 삶에 대한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거기까지 손이 못 닿았던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그런 걸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두물머리주택을 하고 나니 ‘백색이 폼은 나는데 우리 환경에는 안 맞는구나,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다음 프로젝트인 전주 자운당 주택을 하면서 재료를 분명히 써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우리 땅에 맞는 물성(material)이 무엇이고, 무엇이 어울릴 것인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명료했던 건 제가 알고 있던 지식과 경험했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던 것 같아요. 시리아니 선생이나 미셸 카강 선생에게 배운 비례나 감성적인 접근 그리고 내가 살아왔던 땅에 대한 경험을 총체적으로 집합한 게 그 첫 작업이 아닌가 싶어요.
이후 주택 작업은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1년에 한 채씩 꾸준히 집을 지으시면서 판교, 동백 등 다양한 주택 단지들을 접하셨을 텐데요. 교수님이 보시기에 주택 단지들에서 느꼈던 특성과 아쉬움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불행한 건 동백이든 판교든 전주든, 땅을 깎은 다음에 동일한 방법으로 확 눌러버리는 거예요. 지구 단위 계획을 만들어서 담장의 유무 같은 지침도 만들잖아요. 그럼 필지는 필지, 건물은 건물, 길은 길, 하천은 하천, 각각 개별적 개체로 읽히는 거예요. 하나로 통합이 되지 않는 거죠. 집, 도로, 개울, 상점이 다 따로 노는 부분을 고민해 줬으면 좋겠어요.
또 도시계획에서 땅을 만들 때는 모든 곳이 똑같습니다. 판교에서도 본 걸 전주에서도 봐요.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하는 게 참 안타까워요. 그래도 최근에 파주의 주택지는 지형을 조금 살리고 언덕 그대로 대지선을 땅에 맞춘다고 해요. 진화된 부분이 있더라고요. 지구 단위 도시계획은 안 바뀌는데 이런 부분이 바뀌고 있구나 싶어서 참 좋았습니다.
주택 단지들이 바뀌면서 거기에 대응하는 교수님의 설계도 바뀌었나요?
우리나라 주택 단지는 땅이 가지고 있는 큰 속성이 없어요. 70평에서 80평, 외곽으로 나가면 120평 정도 면적만 차이 날 뿐 똑같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필지를 잘랐을 때 땅의 성격이 없다는 거예요. 그곳에 어떤 건물이 지어지면 좋을지에 대해 탐구를 하고 필지를 배분했으면 좋겠어요.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신도시 계획을 했던 일산, 분당, 판교 등등 기존 주택 단지의 필지 나누기에 대한 피드백이 없다는 겁니다. 어떤 필지를 어떤 방법으로 나누고 길을 어떻게 내야 하는 건지 고민해야 하는데, 과거에 했던 것이 그냥 정답이 돼버려요. 주택이 인기 있으니까 전국적으로 전파가 됩니다.
예를 들어 세종문화회관은 계단을 통해 2층에서 접근해 들어가잖아요. 사실 다른 목적 때문에 그렇게 지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마치 그것이 원형인 것처럼 받아들여요. 할 수 없이 그렇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죠.
도시계획에서도 필지 나누기와 같은 부분이 조금 변화되었으면 좋겠어요. 개별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고, 크기도 다양했으면 좋겠죠. 판교가 대표적인데, 설계할 때마다 항상 어려웠어요. 땅이 꼭 한 평 모자라요. 동백주택을 설계할 때도 한 30cm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죠. 신도시 주택 단지에 설계할 때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이에요.
또 하나는 공개 공지와 같은 규정으로 토지 낭비가 심합니다. 어떤 토지는 도로율이 너무 높아요. 도로율이 높다 보니 집이 같이 어울리지 못하고 땅을 도로로 다 잘라버렸어요. 그러니 단지에 깊이가 없어요.
주택에서 늘 진입부에 깊이감 있는 공간을 만드시는데요. 동네와 접점을 만드는 ‘이웃 만들기’라는 표현도 쓰셨습니다. 집의 진입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늘 이웃의 중요성, 동네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아파트에 살다 보니까 잘 모르지만, 사실 집에 접근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집으로 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정작 집에 들어가면 집의 모습은 없어져요. 그리고 보이는 건 이웃이죠. 동네가 중요한 것은 내가 왔다 갔다 하면서 어떤 방법으로 집에 가느냐, 어떤 풍경을 보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리조트도 똑같을 거예요. 경험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해요.
아파트처럼 문을 열자마자 바로 집이 나오는 게 아니라 깊이 있는 집을 만드는 것, 과정적 공간 다음에 전이가 일어나고 집 안에 들어가면 심리적으로 아주 편안할 거라는 거죠. 어떻게 하면 한 장면에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공간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인가. 길을 바로 가는 게 아니고 길게 가도록 만들어 주는 거죠.
두물머리주택부터 시작해 여러 주택을 진행하면서 중간 영역도 진화한 것 같습니다. 두물머리 주택은 집 안에서의 이동 경로나 시점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내외부 공간의 관계가 더 선명해 보입니다. 집의 전이 공간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보기에 서양에서 집은 어떤 의미에서 빌라 사보아처럼 오브제 중심적이에요. 우리나라의 전통건축은 집의 형상이 없습니다. 한옥에서 존재하는 건 비어 있는 것들이에요. 서양화와 동양화의 가장 다른 면이라면, 서양은 오일로, 동양화는 잉크로 그린다는 점이에요. 흰색을 칠하려면 비워놔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중간 영역이 동양화의 그림처럼 근경과 중경, 원경을 표현할 때 그 사이의 비어 있는 흰색과 같다고 생각해요.
집 양쪽에 비어 있는 공간 그 자체는 집의 중심이 됩니다. 집 안으로도 통합돼서 느껴지고 외부에서도 통합되어서 아주 풍요롭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에요. 과거에 집을 지을 때는 사람들이 실내 면적에 대해 배고파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밥을 먹고 나서 배가 조금 부른 상태랄까요. 그런 표현이 좀 우습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아파트 발코니를 확장했잖아요. 몇 평형이라는 관념이 있어서 넓은 게 좋은 거였죠.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테라스 하우스가 더 선호된다고 해요. 아파트도 변하는 거죠. 인식의 변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실내 면적보다는 다양한 외부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한 거라고 이야기해요. 요즘은 그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단독주택에서 다양한 변화가 나오지 않을까 싶고 내부도 외부도 아닌 중간 영역이 집을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동시에 집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시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초기 작업부터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사용자에 대한 배려와 애정 같아요. 하나하나 배려하고 친절하게 고려된 치수라든가 공간을 상상하는 거예요. 그 사람의 키에 대한 친절과 배려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용자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나이 들었을 때는 어떨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거죠.
저는 기능적인 것보다 디테일을 하나하나 손수 만들어가는 편인 것 같아요. 알바 알토의 집이 그렇거든요. 알바 알토의 집은 그냥 보면 너무 평범한데, 가만히 뜯어서 보면 ‘아, 어떻게 이렇게 지었나?’ 싶습니다. 폼 잡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집을 짓기 때문에 그런 배려가 더 크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나라도 사실 여름에 몹시 덥고 겨울에는 무진장 춥습니다. 그러면 그에 대해 어떤 배려를 해줄 것인지, 볕도 들어오면서 환기도 되면서, 어떤 생활을 할 것인지, 물의 그 시원한 느낌은 어떻게 만들어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죠. 그런 고민이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경력이 쌓이면서 깊어지는 것 같아요.
교수님이 설계한 공간에서 복도와 계단은 의미심장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그 사이를 경험하게 하는 장치가 항상 있어요. 복도와 계단을 어떻게 고려해 쓰시는지요.
거창하게 말하면 건축은 4차원의 작업인 것 같아요. 만약 시간성이 표현되지 않는다면 건축은 고정되어 버릴 거예요. 결국, 어떻게 체험하느냐의 그 시간, 내가 걸어가는 시간과 움직임 속에서 공간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하는 작업에서는 대문과 같은 공간을 풍요롭게 만들어요. 전이 공간을 어떻게 느끼게 할까, 어떻게 비를 안 맞게 할까, 마당에 들어간 뒤 현관에 갈 때는 어떤 전이를 일어나게 할까를 생각해요.
말씀하신 계단과 복도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전이가 가장 강력한 부분이 현관인 것 같아요. 서양에서는 신발을 안 벗습니다. 우리나라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행위가 일어나고 많은 수납공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그런 공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강한 전이가 일어나죠. 계단이라는 건 몸의 중력을 이기는 것이에요. 다리에 힘이 드는 거죠.
전이는 사람을 상쾌하게 만들어 줍니다. 전이를 경험하고 나면 기대치가 올라가서 그다음 공간에서도 쉽고 편하게 지내게 돼요. 저는 집의 계단을 만들 때 천정이 낮지 않으면서 어떻게 단수를 줄일까 고민합니다. 일상에서 단수가 많으면 불편해지거든요.
복도의 경우, 지나갈 때 풍경의 변화가 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움직이면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집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전이되는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 현대 건축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고, 그것이 곧 우리나라 전통건축이 가지고 있었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설계한 집은 모두 홑집이라고 하셨어요. 왜 홑집을 만들고자 하셨는지요?
일단 겹집이면 통풍이 힘들고 햇볕을 잘 받으려면 집이 길어야 해요. 우리나라 전통주거에서 겨울에 햇볕을 잘 받으려면 집을 길게 만드는 환경적인 이유가 있는 것과 같아요. 두 번째로, 우리나라 전통주거는 대부분 홑집이에요. 한옥을 보면 비어 있는 것들을 담기 위해 집채가 외곽으로 나오고 마당을 안에 품고 있어서 그것을 경험하게 합니다. 외부 환경에 대해 내향적이고 거주성을 높이려면 집이 마당으로 열려 있어야 해서 자연스럽게 선형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기다란 집을 환경에 따라서 접으면 컨트롤이 잘 됩니다.
집을 만들면서 크게 느꼈던 우리나라 집에 매력이 있다는 거예요. 창덕궁 연경당에 가보면 집이 아주 얇아요. 앞에서 뒤를 볼 때의 그 투과성은 굉장히 강력한 것 같아요. 거꾸로 이야기하면 르코르뷔지에가 썼던 투명성과 우리나라 전통건축의 투명성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르코르뷔지에와 같은 근대 건축가들이 사용했던 투명성은 물질에 의한 투명성인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건축은 ‘불투명성에 의한 투명성’의 표현입니다. 채와 채 사이가 대각선으로 열린다든가 하는 것이죠. 불투명 속에서 투명성을 표현하기 때문에 깊이가 있고 훨씬 더 편합니다.
제가 요즘 그런 접근을 하고 있어요. 채가 있고 채 뒤로 돌아간다든가 하는 접근이 우리 건축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고 그것이 투명성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꾸준히 주택 작업을 해오면서 주거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도 느끼실 것 같아요.
제가 첫 집을 한 지 20년이 넘도록 매년 집을 설계하고 있어요. 흥미로운 것은, 제가 실험하면서 업데이트하고 바뀌는 것도 있지만 의뢰인들이 요구하는 것도 바뀐다는 것입니다. 사실 요즘 의뢰인들은 제가 한 작업이 좋아서 찾아오는 분들이 99.9% 예요. 그분들이 먼저 작업을 보고 경험하고 오는 거죠.
또 집이 변화하고 있어요. 방이나 거실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보조 공간(servant space)이 커집니다. 루이스 칸이 주 공간(served space)과 보조 공간(servant space)을 구분하잖아요. 방과 거실이 작동하기 위해서 보조해야 하는 공간이 생기는 거죠.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은 방이 줄어들고 현관과 화장실, 드레싱룸, 창고, 부엌과 같은 주 기능을 위한 보조 공간이 커지는 것입니다. 집이 편안하려면 우리나라 아파트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술관의 경우 전용 면적을 줄이고 공용 면적을 늘리듯이 말이죠. 두 번째는 같은 이유로 면적에 대한 갈증은 사라진 것 같아요. “우리는 몇 자에 몇 자 방이야, 몇 평형이야.” 하는 게 없어졌어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거죠.
또 기본적인 구성을 살펴보면, 거실이 많이 축소되고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부엌이 굉장히 커지고 바깥으로 나와서 아일랜드 부엌에 식탁을 놓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집에서 음식을 할 때 서양 집과 다른 점이 있어요. 서양의 경우, 장을 본 뒤 부엌에서 바로 요리를 합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내놓는 시간이 30분이면 돼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몇 년이 걸립니다. 몇 년 된 묵은지와 장을 다 보관해야 하고 김치 같은 저장 음식이 많잖아요. 그리고 한식 요리는 재료를 다 자른 다음에 요리하니까 준비 시간이 오래 걸려요. 즉, 저장 음식이 많고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서양 집의 주방보다 훨씬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팬트리와 다용도실도 필요하고요. 그 부분이 큰 차이인 것 같아요. 그래서 주방 공간에 공을 들이는 것을 아주 좋아해요. 아파트에 살다가 주택으로 오면 가장 크게 바뀌는 것이 큰 주방의 큰 식탁에서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것이라고 해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하더라고요.
반대로 우리가 삶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나 집에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주택에서 중요한 부분이 배려도 있지만, 건축적인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 있어요. 요즘 편리하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기능적이고 편리한 집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아파트를 연상할 것 같아요. 인간이 손을 안 움직여도 작동되는 곳이죠.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손 하나만 까딱해도 불이 저절로 켜지는 곳이 과연 집일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가끔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주택과 지금 한국에서 만들어진 주택이 큰 차이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로마에 가보니까 별 차이가 없더라고요. 2천 년 전 집에도 제가 살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삶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이 달나라에 가서 살지 않는 한 지구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문화가 급변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편리함 너머에 있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으로 편리함을 억제한다는 뜻에서 아파트의 대척점에 있는 ‘비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편리함을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거죠. 결혼하지 않는 것을 요즘 ‘비혼’이라고 말하듯이,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택하는 것을 ‘비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집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계절을 느끼고, 바람을 느끼고, 환경을 경험하고, 땅 냄새를 맡고, 공기를 맡는 것이 영구적으로 변치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주상복합을 좋아하는 분들이나 바쁜 삶을 사는 분들은 또 아파트에 사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분명히 다를 거라고 봐요. 단독주택의 ‘비편함’이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에요. 젊고 바쁜 맞벌이 부부들은 편리한 곳에 살아야 하겠죠. 다만 단독주택을 즐기겠다면 ‘비편함’이 있는 집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진행 임진영
사진 이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