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하우스서울 2018의 미니 인터뷰 두 번째는 서울시 교육청 건축 자문을 통해 ‘꿈을 담은 교실’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건축가 김승회(서울대학교 교수)를 만났습니다. 공공 영역에서 기여한 건축 프로젝트, 또 건축과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할 지, 또 건축의 근본적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보건소를 비롯해 공공 영역에서 여러 의료시설을 설계하셨는데, 최근 아프리카의 병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특히 의미가 깊을 듯해요.
공공의료시설은 시민의 건강과 행복에 가장 깊이 연관된 시설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학교와 더불어서요. 과거에 보건소, 의료시설을 하면서 공공보건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는데 그게 알려져서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 공공보건 병원 설계를 맡게 됐어요.
그곳 시민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열악한 병원들의 사정을 직접 보면서 그들이 유지 관리 하고 스스로 가꿔나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체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직접 아프리카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의사나 병원장에게 어려움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했는데 어떤 병원장은 막 울어요. 그 누구도 그런 질문을 안 했다면서요. 환자는 몰려오고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인력도 없고, 해결해 나갈 방법이 너무 없어서 답답하니까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큰 의사선생님이 막 울더라고요.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런 분들이 좀 더 좋은 여건에서 환자를 볼 수 있고, 환자들도 동네 가까운 좋은 시설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일을 한 게 보람되죠. 그것이 90년대 제가 개업했을 때, 품었던 이상과도 잘 부합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공간에서 어떤 것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건축은 삶의 형식이다(Architecture is life form)’라는 모토로 건축가의 삶을 살고 싶어요. 이것은 서양의 전통적인 ‘아키텍처’의 정의와는 상당히 다르거든요. 보통 아키텍처라고 하면 빌딩을 넘어선 이념을 갖고 있다고 정의하는데, ‘삶의 형식’이라고 하면 건축을 훨씬 더 바닥으로 끌어내린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아프리카든, 후암동이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형식이 있잖아요. 그것이 고스란히 건축 안에 잘 작동하는 것(work), 그게 가장 기본이고 시작인 것 같아요.
또 건축가이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빌딩 그 이상의 공간에 대한 야망도 있어요. 그 두 가지를 같이 이루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건축가로서 새로운 공간감, 새로운 물성에 대한 제안, 이런 것들이 삶의 형식(life form)과 부합이 되는 게 좋잖아요. 그 접점을 찾는 게 참 쉽지는 않아요. 늘 고민하면서 그 속에서 결과물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건축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이전보다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오픈하우스서울을 통해 건축물을 감상할 때,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일반인에게 제공되는 건축 이야기들이 상당히 파편적인 경우가 많아요. 앞서 말한 삶의 형식이라는 것은 사회와 개인의 관계잖아요. 건축도 역시 그런 관계를 보여주는 건데, 매체를 보면 그 관계에 대한 담론보다는 시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주를 이루어요. TV나 모니터를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가 장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 오는 클라이언트들도 관계에 대한 얘기는 없고,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 그와 비슷한 느낌을 해달라고 해서 오히려 힘든 경우가 있어요. 건축을 보실 때, 시각적인 이미지 외에 집이 길과 어떻게 만날까, 이 공간에서는 밖의 어떤 것들이 보일까, 밖에서는 이 집이 어떻게 보일까,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갈 때 어떤 것을 느낄지, 촉각은 어떠한지 등 그런 풍부한 것들을 많이 느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건축에서 중요한 게 뭐냐라고 한다면 촉각인 것 같아요. 건물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어요. 직접 가면 촉각이 느껴지거든요. 예를 들어, 음식이 존재감을 밝힐 수 있는 것은 온도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사진이나 TV로 사람들이 먹는 걸 봐도, 음식의 온도는 느끼지 못하잖아요. 건축에서는 그게 촉각이라고 생각해요. 사진으로는 보고 느낄 수 없는 것을 직접 가서 발바닥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는 촉각적 경험은 좋은 것 같아요. 그 이전에 건축은 관계의 예술이니까 왜, 어떤 관계가 이곳을 만들었는가를 보시면 좋겠어요.
서울시 교육청의 건축 자문을 통해 교육 시설 개선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오셨습니다. 학생들을 위한 공간을 변화시키면서 의미가 크셨을 것같아요
지난 2년 반 동안 열심히 해왔고 좋은 결과를 만든 것 같습니다. 신문이나 TV에서도 많이 나오고 소개도 됐는데, 지난 달로 그 프로젝트가 끝나서 이제 정리를 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성공적으로 된 것 같아서 오랜만에 공공의 일을 하면서 만족스럽게 끝난 것 같아요. 체계가 완전히 잡혔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 돌아갈 것 같습니다.
공공 프로젝트는 공공기관에 건축에 대한 이해를 얻는 것부터 어려움이 많은데요. 초반에 건축의 가치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은 부분일 것같습니다.
초반에는 힘들었죠. 교육청 관련 공무원들이 초반에는 저를 보고 ‘저 사람, 뭐야?’ 하는 분위기였는데, 다행히 교육감 님이 건축에 대해서는 김승회 교수가 교육감이라고 생각하라며 힘을 실어 주셨어요. 한편으로는 교육청의 경우 시설 담당이 완전 비주류예요. 교육청은 교사가 중심이잖아요. 공무원들에게 이건 중요한 일이고 당신들에게도 좋은 일이다라고 설득했어요. 그래서 성과가 나오는 걸 보니까 다들 힘이 됐죠. 결과도 좋고 생각보다 잘 따라준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여러 일들은 생기겠지만, 짧은 기간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 변했어요. 여전히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크게 보면 변해가고 있고 대세는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교육청 프로젝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역시 꿈을 담은 교실(꿈담교실)실이죠. 초등학교 교실인데 원래는 중학교 몇 개, 고등학교 몇 개 정도 고치자는 내용으로 입안되어 왔어요.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 1학년, 2학년만 하자고 했어요. 왜냐하면 초등학교 쪽 장학사들과 이야기 하다 보니, 유치원이라는 좋은 공간에 있다가 그보다 열악한 학교로 오면 아이들이 더 힘들어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힘든 게 1학년 교실이었죠. 또 1, 2학년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많이 변했기 때문에, 기존의 교실로 교육을 하기는 너무 어렵다고 했어요. 그래서 모든 예산을 거기에 몰았어요. 그건 잘 한 것 같아요. 중요한 건 그래프가 아래를 향하느냐, 위를 향하느냐인데, 어쨌든 더 나은 방향으로 전체적인 흐름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경영위치의 이 ‘소율’ 건축물을 합리적이고 최적화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명하셨는데요. 건축의 합리적인 시스템이 갖는 가치에 대해 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건축이 개인의 특성을 분명히 닮는다고 생각해요. 건축가의 성격이나 취향이 암암리에 담길 수밖에 없거든요. 가치관도 그렇고요. 동시에 건축주의 입장도 담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언어나 윤리는 매우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언어나 글자가 필요한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요. 왜냐하면 우리 삶이 굉장히 다른 것 같지만, 또 서로 공유하는 것도 많고 공통적인 게 참 많다고 생각해요. 건축은 특이성도 내세워야 하겠지만 동시에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것을 기반으로 만들 때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누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설계할 때 보편적인 체계나 관점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져요. 어떻게 빌딩이 합리적으로 도시와 관계를 맺는가를 주로 봐요. 예를 들어, 이곳 경영위치 건물의 경우 1층이 개방적이잖아요. 합리적인 이유예요. 1층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보이고 만나는 곳이니까요. 그리고 주변과 적절한 높이를 가져야 하죠. 주변이랑 어울려야 하잖아요. 혼자 우뚝 있으면 주변에 그림자가 지고 불편해지겠죠. 할 수 있다면, 주변의 적정한 공간이나 건물의 크기들을 존중하는 걸로 가야해요. 공사를 할 때 10, 20년이 지나도 하자 없이 잘 유지될 수 있게 하는 것도 합리적인 부분이죠.
원론적인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자면, 건축물이 한국에 있기 때문에 갖는 관계가 있어요. 한국 사람들 또는 우리 도시가 갖는 특징이 있거든요. 골목이 있다든가, 필지가 불규칙하게 생겼다든가, 주변에 산이나 강이 있다든가, 이런 특성에도 초점을 맞추면서 그것이 갖는 관계를 찾아보는 거죠. 가령 산을 등진다든가 바라본다든가 또는 좁은 건물에 어울리게 건물의 스케일을 너무 크지 않게 좀 더 분절한다든가 등등 조금씩 하다보면 건축적인 언어들이 생성되는 것 같아요.
그 다음에 아주 현실적인 문제들, 즉 1층은 열려야 하고, 주차가 돼야 하고, 지하층은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많이 파야 하고, 위에서는 철저하게 도시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다 보면 지하부터 위로 올라가는 구조 체계가 다양하게 변할 수밖에 없다든가 하죠. 그 속에서 일반적으로 편한 해법을 찾는다든가, 어떤 때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가, 어떤 때는 도시, 어떤 때는 평면의 형식에 대한 것으로 발전해 나가죠. 그게 깊어지면, 어떤 디자인 이론(theory) 내지는 건축방법론이 되겠죠.
제 경우 ‘내가 좋아서 했다. 특이하게 형태적인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만으로는 만족이 안 돼요. 물론 그게 어필하기는 쉬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심플하면 더 전달이 빠르고 간단하게 잘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게 제게는 의미도, 재미도 없어요. 감각 이상의 것, 즉 사람들은 삶의 형식을 찾는데, 그것은 수많은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형식이거든요. 건축도 결국 여러 형식들, 삶의 진실과 형식을 수정해 가면서 만들어지거든요. 솔직히 어려운 이야기죠. 보편성에 대한 이야기는 건축가 사이에서도 논쟁적인 소재지만, 보건소, 병원을 많이 짓고, 또 학교 프로젝트도 많이 하면서 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OHS
진행 임진영
정리 이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