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적 관심에 대해 여쭤볼게요. 작업 중에 공간이 부속으로 딸린 중심공간을 만드는 평면이나, 입면 구성에서 면의 분할, 목재를 활용하는 경향들이 흥미롭습니다. 설계할 때 주로 어떤 부분에 관심을 두고 전개하시는지 궁금해요.
우선 대지와 프로그램이 많은 것을 정해줘요. 건축 설계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법규도 변수를 줄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고맙죠. 다 펼쳐지면 계속 고민을 해야 하는데 다 끊어주니까. 아까 동은재 이야기를 하며 설명해 드린 것 같이 대지 분석에서 나오는 여러 요소를 가지고 문제를 풀 때가 가장 신나요.
너무 차가운 재료보다는 따뜻하고, 덜 가공된 재료를 쓰고 싶죠. 돌이면 돌, 재질이 확실히 느껴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목재가 재미있기는 해요. 시공도 빠르고 따뜻하고 좋은데 우리나라 기후에는 좀 힘들어요.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할 수 없이 콘크리트를 써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단열과 냉방을 동시에 하는 게 쉽지 않죠.
앞으로 전기요금이나 미세먼지, 단열을 고민하다 보면 형태가 많이 바뀔 거 같아요. 미세먼지에 대비한 공조시스템이 발전해야 할 것 같고요. 우선은 정부 정책으로 공기를 개선해주지 않으면 안 돼요. 개개인이 다 공기청소기를 두고 있는데 이것도 다 쓰레기가 될 거 아니에요. 참 큰 문제에요. 여름에 더 덥고 겨울에 더 춥고, 이제 캘리포니아 스타일처럼 전면 유리로 마감하는 건 끝난 것 같아요. 건축에서 이 에어필터를 어떻게 해야 하나. 현실적으로 에너지와 친환경이 건물에서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해요. 땅에 어떻게 앉혀야 단열이 가장 잘되는지, 그런 프로그램이 디자인을 다시 지배하겠죠.
건축가로서, 전문가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꼽으시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역사를 소홀히 하지 않고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구조, 설비 등 전문가와 협업하는 자세도 중요해요. 하청이 아니라 파트너로, 같은 디자이너로서 협업할 수 있는 자세. 저는 건축을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의뢰인의 요구가 있을 때 더 좋은 대안이 있으면 제안하지만 강요하지는 않거든요. 물론 완전히 잘못된 것을 해달라고 하면 거절해야 하지만, 건축은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내 미학적 고집(aesthetic persist)과 의뢰인의 요구가 부딪힌다면 가능한 범위에서 맞춰드려야 할 것 같아요. 주거 공간 같은 경우는 특히나. 그걸 잊고 건축의 숭고함만을 배우면 안 될 것 같아요.
귀국하셨던 1990년대에는 그런 분위기가 팽배하지 않으셨나요? 건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지금과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렇죠. 어떤 분은 자신만만하게 클라이언트를 야단쳤다고 하는데, ‘왜 야단을 치시지?’ 생각했어요. (웃음) 이해는 시켜드려야 하지만 서비스업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들어가야 해요. 그게 싫으면 클라이언트가 되어야죠. 그래서 힘들어요. 그렇다고 투자를 잘해서 커미션을 받는 게 아니라, 들어간 시간만큼 비용을 받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작업이라는 것을 전제해야 하는 직업 같아요.
건축 설계에 대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한국의 상황이 안타까워요.
전 세계적으로 건축가가 좀 그래요. 그게 가장 아쉬워요. 대학원 예산을 보면, 디자인 대학과 교육 대학이 가장 예산이 적어요. (웃음) 졸업생들이 그만큼 기부를 못 해요. 너무 빠듯하니까요. 로스쿨이나 비즈니스스쿨은 기부를 많이 받으니까 살림이 풍요로울 수밖에 없는데, 디자인 대학은 장학금을 주고 좋은 학생을 데려오고 싶어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살림을 해야 하는 거죠.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에요. 전 세계적으로 건축은 노동 집약적(labor intensive)인 분야이기 때문에 그런 면이 없지 않아요. 의뢰인에게 정정당당하게 시급제로 비용을 청구해야 하고 함께 단합해야 하는데, 일을 놓고 경쟁하다 보면 그런 단합이 힘들기도 하죠. 아쉬운 부분이에요. 요즘은 소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의뢰인들도 많고, 작은 사무실에서 잘해나가는 것 같아요. 세대가 바뀌면서 좀 개선이 되지 않을까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건축가에 대한 인식이 넒어져서 집을 지을 때 건축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어났는데, 소규모 프로젝트의 예산이 너무 적은 경우도 많아요. 무리해서 작업을 하다 보니까 젊은 건축가들도 출혈이 생기고요. 작업하더라도 유지가 안 되니 그런 작업을 반복하기는 힘들잖아요. 개개인의 의뢰인이 늘어나는 것보다, 제대로 돈을 쓰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맞아요. 그런 조언을 의뢰인에게 해야 해요. 무리하게 설계비를 150으로 낮추지 말고, 200을 주고 그 대신 제대로 서비스를 받으시라는 계몽운동이 필요해요.
소규모 스튜디오를 운영하셨는데요. 개개인의 작업을 충실히 할 수 있는 구조이지만 스튜디오도 결국 사업체인데, 대부분의 건축가가 경영에는 익숙지 않죠. 사무실 운영은 어떠셨나요.
이태원 사무실이었는데 꽤 큰 공간에 식구는 적었지만 재미있게 있었어요. 제가 미국을 가게 되면서 정리를 해야 했죠.
운영은 안 좋았어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내가 직접 관리하는 수준의 작은 아뜰리에고, 프로젝트가 커지면 큰 사무실과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해놨어요. 그렇게 구조를 만들었지만, 목표(goal)가 너무 낮았던 거죠.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해야 하니까. 손실이 좀 나면 내 월급으로 메꾸는 차원에서만 생각했지, 사무실을 확대하고 더 큰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마케팅할 여력이 시간상으로 없었던 거예요. 여자나 남자나, 개소를 너무 일찍 해서 한계에 빠지는 선이 있을 거 같아요. 스스로 다룰 수 있는 오버헤드와 프로젝트 규모와의 간극(gap)이 있기 때문에요. 협업하면 좋은데 보통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정석은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는 설계비를 청구하고, 시공비를 제대로 받아서 의도한 건물이 만족하게 나오고, 그 건물을 기반으로 더 좋은 프로젝트 따고, 더 좋게 짓고, 더 좋은 의뢰인과 만나고, 이렇게 해야 해요. 저는 그것을 잘 못 했죠.
참 어려운 거 같아요. 건축적으로 해결할 수는 있지만 싸게 지으면 결국 저렴한 건축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다음 단계를 보면 과연 더 나아갈 기회가 있을까 싶고요.
싸게 하려면 아이디어가 획기적이지 않고서는 안돼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서 욕심내면 오히려 화음이 아닌 소음이 되어 실패할 수 있어요. 물성을 보여주는 것보다 아주 간단하고 획기적인 공간 아이디어로 명확하게 돋보여야 그걸로 다른 의뢰를 받을 수 있어요. 저렴한 프로젝트를 자주하면 진만 빠지고 발전이 없기 쉽죠.
지금 젊은 건축가들이 가지는 딜레마가 아닐까 싶어요.
어떻게 보면 자기 스튜디오라는 낭만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죠.
저는 사실 제가 아프고 피곤하니까 학생들에게 점점 솔직해졌어요. 건축을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말을 못 하니까요. 이 공부를 하고 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멀쩡한 가장이 와서 전공을 바꾸어 건축대학원 지원할 때면 네가 진짜 원하는 거냐고, 힘들다고 말했어요. 학교에선 난감하겠지만 그 비싼 대학원 학비를 내고 오는데 정확하게 알려줘야겠더라고요. 정말 좋아서 하는 학생들은 해야 하고, 또 대형 건축사무소가서 괜찮은 수준으로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정확하게 알아야겠더라고요.
일을 쉬고 계신데, 면역에 취약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과로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이가 늦었던 것도 몸이 좀 안 좋아서였어요. 31살 정도에 아기를 낳았는데, 좀 아파서 임신을 늦추었다가 그 뒤로는 임신이 안 되어서 늦었죠. 그러다 겨우 생겼는데 유산기가 있어서 10개월을 누워 지냈어요. 아이를 낳고 나서는 홀가분하게 활동을 하다가 2005년도에 다시 몸이 안 좋아서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에서 휴직했죠. 3번째 아픈 거였어요. 아이 낳기 전, 후 그리고 2005년. 이렇게 세 번 지병이 오다 보니까 의사인 사촌 언니가 ‘내가 너 같으면 쉬겠다. 왜 이렇게 미친 듯이 일을 하니?’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때까지는 아무 의심 없이 몸이 아파도 좀 나으면 일을 했는데, 삼세번이 되니까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쉬어보자 하다가 아이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뉴욕에 가게 되었어요. 저도 재충전을 하자 했죠. 그렇게 한 해 두 해 늘어나게 되니까 자꾸만 현장에서 멀어지게 된 거예요. 건강은 나아졌지만, 시간이 좀 걸렸어요. 한 가지 지병은 아직 관리하느라 병원에 왔다 갔다 하고 있죠.
건축 설계라는 분야가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격무인 것 같아요.
현명하게 해야 하는데 너무 미친 듯이 무리한 것 같아요. 좋아했으니까. 100만 원 받으면 딱 100만 원어치를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럴 수가 없어요, 다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싶잖아요. APAP나 그간 했던 전시도 판 하나 깔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꽤 많이 생각하고 모델을 만들곤 했죠. 과정이 참 좋았지만, 너무 무리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면에서 좀 그래요. 여행 가기 전에 집을 다 치워놓고 가는 성격 있죠? 갔다 오면 깨끗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나를 더 막 괴롭히게 되죠. 살림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터득하지 못하고 성에 차게 하니까 안 되죠.
모든 역할을 다 해내려 하신 거네요. 일하는 여성의 힘든 부분인 것 같아요.
저도 딸이 있지만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나눠야 해요. 제 딸은 저처럼 모든 것을 똑바로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은 성격이에요. 저는 꼭 똑바로 해두어야 하거든요. (웃음) 처음에는 야단을 치다가 지금은 내버려 둬요. ‘네가 앞으로 커리어를 갖고 살려면 이런 부분은 그냥 지나치고 가야 안 아프지, 매번 정리하고 살면 이 아이가 아프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저도 좀 바뀌는 것 같아요.
건축 실무에서 의뢰인을 상대할 때 여성이라는 점은 전혀 영향이 없었나요. 현장에서 작업하셨을 때 장단점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여자와 남자는 달라요. 그 다른 점을 쓰면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의뢰인은 여자라서 좋아하시는가 하면 어떤 분은 여자라서 불편해하시는 분이 있어요, 그건 사람의 취향이에요. 예를 들어 산부인과 갈 때 여자 선생님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자 선생님도 상관없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본인이 편한 쪽으로 가는 것에 대해 성차별이라고 얘기하기는 싫어요. 왜냐하면 건축은 긴밀하게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요. 헤이리 북카페의 경우 건축주분께서는 여자라서 더 좋다고 했어요. 여자라서 더 요구 사항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과는 잘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현장은 어차피 현장 소장이 있고 그 관계만 원활히 하고,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거기서 밀리거나 할 말을 못 하진 않아요.
저는 교수라는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수월했죠. 하지만 거기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가면 괜찮을 것 같아요. 대신에 확실하게 알고 얘기를 해야겠죠. 그렇다고 밀리지 않으려고 너무 세게 나와도 곤란하고요. 그게 참 묘미인 거 같아요. 남자들도, 여자들도, 둘 다 힘들기 매한가지지만, 힘든 부분이 다른 것 같아요.
너무 쉽게 얘기하는 것 같은데, 사실 힘들죠. 완벽주의자가 되지 않아야 하고, 일을 나누어야 해요. 혼자 다 못해요, 그리고 플랜 B가 많아야 해요. 일이 안 되었을 때 가동해야 하는 플랜 B, C를 준비해야 돌아갈까 말까 하죠.
사무실 운영 측면에서 말인가요?
사무실 운영, 아이 보는 것 모두요. 얼굴 보고 힘든 말도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더 힘들고 불필요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쓰더라고요. 직원을 하나 내보내야 하면 고민을 하지만 딱 얘기를 하고 뒤처리를 깔끔하게 해줘야 하고, 그런 판단을 빨리하는 연습을 하면 좋아요. 너무 많은 욕심을 내면 일을 그르치거나 건강을 그르치거나 하죠. 저는 건강을 그르친 나쁜 사례이고, 현명하게 하려면 일을 나눠서 해야 하고, 플랜 B가 많아야 하고, 자존감 있게 하나에 집중할 때에는 다른 건 안 해야 해요.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인 거 같아요.
이 인터뷰가 시작된 계기는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는 50대 여성 건축가의 부재가 컸습니다. 공간 재직 시절에 네이버 한국인 시리즈 <건축가> 인터뷰를 했는데 동시대의 여성 건축가분들이 안 계신 거예요. 물론 개별적인 사정이나 건강 문제가 컸지만, 한편으로 과연 우리 사회는 여성 건축가에게 큰 프로젝트를 할 기회를 주는가라는 질문이 떠올랐어요. 작은 프로젝트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대형 프로젝트, 혹은 지명 공모전에 여성 건축가가 호출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과연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여성 건축가들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사회적인 선입견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큰 프로젝트를 하는 분들은 있는 데 보통 같이하시는 경우가 많죠. 규모 있게 사무실 운영하는 분으로 김용미 선생님도 있고요.
우리가 좋은 예가 못 돼서 아쉬워요. 그때 저와 민선주 씨, 서혜림 씨를 삼인방이라고 불렀는데, 선주 언니 아프시고 서혜림 씨도, 저도 아프고, 이런 상황이 참 안타까웠던 거 같아요. 서울대 후배들을 보면 사무실을 개소해서 열심히 운영하는데 얼마나 큰 프로젝트를 맡는지는 모르겠어요. 대형설계사무실에 임원진은 계시죠. 정말 더 나와야 할 텐데요.
건축에서 젠더 이슈를 크게 체감하지 않는 이유가 건축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여자든 남자든 큰 차이가 없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졸업생 성비, 젊은 여성 건축가가 배출되는 비율만큼 중견 건축가까지 그대로 유지가 되느냐는 질문을 들었습니다.
잘 안되죠. 너무 힘드니까, 그리고 육아를 하다 보면 쉬거나 파트너쉽으로 가죠. 어떻게 보면 나눠서 하는 게 현명한 거예요. 나눠서 하면 계속할 수는 있으니까. 자신의 이름 하나로 내거느냐 아니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둘 다 원하면 나눠서 하는 것도 좋고, 그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만약 올인하고 싶으면 희생할 것은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다 백 점으로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예전 글에서 조경이나 건축이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으셨고, 그에 대해 ‘랜드아키텍처’라는 표현으로 관계 구성과 구축에 대해 정리하셨습니다. 건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게 된 시기는 언제인가요?
사실 제 마음대로 생각했던 건축물을 충분히 지을 기회가 없었어요. 하지만 항상 랜드스케이프 스케일이 아니라 건축 스케일에서 땅을 더 적극적으로 만질 수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건물을 잘 앉히면서도 그렇다고 땅속에 집을 짓는 것도 아니고요. 할 게 너무 많은데 목표는 세워놓고 많이 미달이 된 느낌이 들죠.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어요.
실현되지 못한 것을 담고 있어서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돼요. 지금은 일을 쉬고 계신데, 이후에라도 기회가 있으면 작업을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여건이 되면 하고 싶죠. 이전 프로젝트를 볼 때면 ‘왜이랬어, 더 잘하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평창올림픽 폐막식 영상에 제 프로젝트가 나온 걸 보고도 ‘지붕 색으로 천장을 칠하는 건데’ 그러고 있어요. (웃음) OH
+ 진행 임진영
+ 사진 정멜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