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하우스서울 2018에서는 미니 인터뷰를 통해 오픈하우스서울과 함께 하는 건축가를 만나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건축가 켄민성진을 만나 지난해 오픈한 부산 아난티 코브에 대한 이야기, 도시와 건축에 대한 생각을 듣습니다. 오픈하우스서울 2018에서는 SKM Architects 오픈스튜디오와 준오 아카데미 오픈하우스를 통해 건축가 켄민성진을 만납니다.
지난해 오픈한 부산 <아난티 코브 Ananti Cove>가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컸고요. 아난티 코브에서 보여준 휴식 공간에 대해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어떤 공간 경험을 주고 싶으셨는지요.
<아난티 코브>는 하나의 호텔이나 리조트를 넘어 부산이라는 도시에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공공장소를 제공하고자 했어요. 프라이빗한 콘도미니움도 있으면서 세미프라이빗한 힐튼호텔도 있고, 퍼블릭한 성격을 띠는 아난티 타운과 그 앞엔 공공 공원이 공존하고 있죠. 부산 시민은 주말에 가서 커피 한잔하면서 책도 보고, 다양한 종류의 음식과 이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요. 도시에 새롭게 가볼 수 있는 장소를 하나 더 중첩한 거죠. 반면 호텔 투숙객 입장에서는 사적인 공간을 즐길 수도 있고요.
호텔 리조트라는 기존의 프라이빗한 거대한 장소에 여러 성격의 공간이 공존하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주요한 도전이었어요. 저는 모든 도시의 매력을 ‘공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간이 중첩되고 켜가 계속 생기고 포개지는 것처럼, 아난티가 부산에 또 하나의 시간과 장소, 기억을 더할 수 있는 곳이길 바랐죠. 그 켜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어야 하고요. 저는 어떤 건물이든 그 지역에 켜를 하나 더한다는 생각으로 건축 설계를 하고 있어요.
아난티의 계단, 지하, 1, 2층의 숍의 경우, 기능적으로 끊임없이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근린생활의 모습을 반영하려 했어요. 5성급 호텔이지만 1층을 시민에게 열어서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든 거죠. 대부분 5성급 호텔들은 프라이빗하잖아요. 그에 비하면 굉장히 열려 있고, 그런 면에서 다양한 쉼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쉼이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죠. 모든 건축가가 하는 노력인데 저평가받는 것 같아요. 건축가는 엄청난 혁신을 보여주기도 하고 공적인 작업도 하지만, 일상의 삶에서 건물을 더 낫게 진화시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고 생각해요.
소장님과 아난티 모두 휴식의 의미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신 거로 알고 있어요. 소장님이 생각하시는 휴식은 무엇인가요.
휴식은 삶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쉼일 수도 있고, 집에서 온종일 누워 있는 것도 일탈이고 쉼이죠. 이제는 쉼이라는 용어 자체가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현대 사회의 반복되는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일탈과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많은 도시가 풍족하다고 생각해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멋진 곳, 걸을 수 있는 곳, 자전거 탈 수 있는 곳, 미술관 등 만약 오늘 하루 일을 안 한다면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은 도시요. 사람들이 뉴욕 같은 도시를 가고 싶어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의 욕구를 다양하게 수용할 수 있는 곳, <아난티 코브>에서 주요하게 실현하고자 노력한 부분이에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거죠.
아난티 부산의 경우, 서울에서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다는 것도 중요했어요. 많은 사람이 외국 나가서 관광을 즐기는데, 대부분 한국에는 왜 그런 멋진 곳이 없냐고 해요. 저희가 아난티와 계속 의미를 둔 것은 그 부분이었어요. 외국 가는 비행기 표 값으로 <아난티 코브>에서 3박 4일 즐기는 것이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또 외국인 관광객을 한국으로 유치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요.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의 사계절 때문에 겨울에는 즐기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부산은 온천이 있고 여기에 쉼과 여행, 독서, 음악, 자전거, 바다 산책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은 항상 변하고 우리 삶은 진화하므로 쉼도 진화하죠. 선진국일수록 쉬는 방식도 다양해져요. 그런 고민을 건축주와 했던 것 같아요. 우리에게 쉼을 줄 수 있는 장소란 과연 무엇일까. 역설적으로 쉴 수 있는 장소는 다양성을 주는 장소인 것 같아요.
아름다운 공간미가 회자되고 있는데, 건축적으로 의미 있는 시도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소장님이 좋아하는 공간도 궁금해요.
여러 장소가 있지만 몇 가지 건축적 시도가 있어요. 먼저 콘도 쪽으로 들어오는 자동차 드롭 장소를 지하에 만들었어요. 힐튼호텔은 지상에 있고 지하에 콘도 드롭존을 만든다고 했을 때 다들 왜 콘도의 얼굴을 지하에 놓느냐고 했어요. 지하지만 멋지게 만들자고 제안했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많은 지상 공간을 자동차가 점유하기 때문이에요.
두 번째는 아난티 타운인데요. 보통 호텔은 지하에 아케이드 형식의 상점이 많잖아요. 그것들을 지상으로 꺼내서 작은 건물들로 만들고, 바다 풍경을 보게 해주면서 일반인에게 오픈했어요. 많은 분이 이런 방식의 상점은 장사가 안될 거라고 했어요. 그래도 우리가 한번 해보자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오기 시작한 거죠. 이제는 소비의 자기 주도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강제로 물건을 팔려고 해서 팔리는 게 아니라, 방문하고 싶은 곳을 만들고 선택권을 주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사람들이 그 공간을 즐길 수 있고 좋아하게 만들면 좋은데 역설적으로 힘든 일이죠.
아난티 타운은 그냥 사람들이 방문하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래서 일반적인 쇼핑몰에 대한 모든 통념, 가령 서비스 동선은 뒤에 있어야 한다는 등의 공식을 무시했어요. 서비스 동선 때문에 공간이 불필요하게 커지거든요. 멋진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거기 오고 싶게 하자 했고 장사가 되든 안 되든 그 공간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어요.
바닷가이기 때문에 1층을 공공에 열어주고자 했고 이를 위해 프라이빗해야하는 호텔의 로비는 최상층으로 올려보냈죠. 스카이 로비를 두려면 인력이 더 필요하지만 말이에요. 부산에 새로운 레이어를 더해간다는 느낌으로 ‘스카이 로비란 무엇인가?’, ‘상점은 어떤 성격이어야 하는가?’, 하나하나 질문을 하면서 채워갔어요.
아난티 프로젝트가 알려지다 보니, 소장님의 작업이 리조트 프로젝트로만 주목받는 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소장님이 애착을 가지는 프로젝트는 어떤 게 있을까요?
평당 220만 원 정도의 매우 낮은 공사비로 지었던 엠파크 허브 매매단지가 있어요. 한국에서 가장 큰 조립식 콘크리트 건물이고요. 금강산에 지은 아난티 클럽하우스도 한국에서 가장 큰 조립식 목조건물인데, 구조적 실험을 하면서도 공사비를 맞추는 게 중요한 콘셉트였어요.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공간적인 임팩트를 가져가는 것이죠. 너무 시각적 임팩트만 있고 기능이 충실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좋은 건축물이 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결국 건축물은 특정 개인에 의해서 평가되기보다는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받게 되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요.
부산 아난티 코브 건물이 30도 정도 비스듬히 누워 있는데, 외관을 중요하게 생각한 게 아니에요. 개별 발코니마다 수영장이 있기 때문에 발코니에 햇볕이 드는 것이 매우 중요했어요. 테라스가 수직으로 올라가면 수영장에도 방에도 햇볕이 안 들기 때문에 리조트에서 기대하는 따뜻한 햇볕을 느끼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건물을 뉘면서 야외 테라스에서 햇볕과 바다를 즐길 수 있게 했죠.
아난티 프로젝트에서 성취하고자 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도 있지만 하나 사서 오래 쓰고 클래식으로 남한테 물려주는 것이 있죠. 저희는 클래식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해요. 디자인, 철학, 총체적 맥락이 맞을 때 비로소 클래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은 만들어지자마자 ‘멋지네!’라고 반응하지만, 곧 소비되고 잊혀지죠. 우리는 아난티를 통해 클래식을 만들려고 하죠. 사람들도 그런 가치에 의미를 두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철학과 공간과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도시에서 긍정적인 일원이 되는 그런 건축물요. 그게 제가 가진 목표인데 사실 쉬운 건 아니에요. 그런 마음을 갖고 가는 거죠. 100년 전에 나온 어떤 램프는 현재의 사무실에 놨을 때 어색하지 않아요. 그런 퀄리티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를 항상 생각해요.
저는 도시도 그렇게 보거든요. 역사와 맥락을 보면 무엇을 보존하고 싶은지 알잖아요. ‘아 저건 부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클래식이죠. 이상하게도 그런 것들은 유명 건축가들이 한 거예요. 유명 건축가들이 했다고 해서 보존하겠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생기는 거죠. 나중에 사람들이 ‘이 건물을 보존해야겠네?’ 하는 마음이 들면, 그리고 그런 건물이 많아지면 저는 풍족한 도시라고 생각해요.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도 지금부터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보존할 것하고, 없앨 것은 없애다 보면 만들 수 있어요. 더 중요한 건 지금부터 지어지는 건물 자체를 하나하나 도시의 일원이라는 마음으로 지어야겠죠. 삶도 그렇잖아요. 당신의 건물도 도시의 일원이라는 이야길 하고 싶어요. 도시의 기록에는 건축가의 이름도 남지만, 건축주의 이름도 항상 같이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영향력 있는 행정가이고 꼭 한 가지를 해야 한다면 그 기록을 남기도록 하고 싶어요. 그래서 <아난티 코브>에는 잘 보이는 광장에 그 기록을 넣었어요. 건축주의 이름도 물론 있고요. 그렇게 하면 많은 건축주가 달라질 것 같아요. 건축물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도시 역사에 켜를 더하는 작업이거든요. 건물의 등기부 등본을 떼었을 때, ‘건축주 누구와 건축가 누가 언제 지은 거다’ 그리고 그걸 허가해준 공무원도 같이 기록되면 많은 것이 바뀔 것 같아요. 건물이 도시의 한 부분이고, 하나의 켜를 더하는 거로 생각하면 건물 하나하나가 중요한 거죠.
우리 도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소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근시안적으로 바라본 것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조급할 필요 없어요. 왜냐면 도시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중첩된 켜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지금 만들어 가는 건축물이 새로운 켜를 더해 나가고 있는 것이죠. 서울은 큰 켜로 한강이 있고 북한산, 관악산이 있고 경복궁이 있고 창경궁, 시청, 청계천, 서울역이 있고 지하철 등등이 있죠. 많은 사람이 쓰는 공공 건축과 인프라를 잘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건축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결국 건축은 우리의 진화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시대성을 반영하는 거죠. 그 화두는 영원한 거고, 우리는 끝없이 변화해요. 한시라도 가만있지 않잖아요. 사람이라는 존재가 참 재미있는 게,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끊임없이 원해요. 양면성을 갖고 있죠. 애증의 관계 같아요. 시간의 신이 절대적 존재예요. 그건 이길 수가 없어요. 이 세상의 모든 건 소멸하지만 시간이 허락하니까 우리가 존재하는 거죠. 하루살이에게는 신이 하루라는 시간을 준 거고, 인간에게도 한정된 시간을 줬지만, 산과 바다는 1만 년도, 지구에는 1억 년도 주어지죠. 우리는 시간과 역사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데 그걸 잊으면 사람들이 오만해지고, 돈과 명예에 집착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창의적인 우위(creative edge)를 잃는 것 같아요. 크리에이티브는 세상사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사물을 바라볼 때 생기는 것 같아요. 예술가 집단이 가장 그러한 집단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사회에 신선한 자극을 던질 수 있는 거고요.
자신의 맥락을 찾아가고 자기가 살아가는 삶과 추구하는 삶과 시간과 공간, 도시와 건축을 보는 맥락이 통일되고, 그것을 본인이 디자인하는 건축물에 충실히 반영하려고 노력할 때 좋은 건축가가 될 가능성이 열린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드물죠. 인간의 삶과 도시의 공통점은 좋건 싫건 끊임없이 레이어가 계속 중첩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도시를 보는 관점은 그 계속되는 켜에 있어요. 도시에서 내가 짓는 건물도 하나의 켜가 되는 거고, 건축주도 그걸 알아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모든 사람에게 전반적으로 영향을 주니까 모두 플라스틱을 줄이려고 하잖아요. 행동으로 이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 자체도 중요하잖아요. 서울시에 지어지는 건축물도 하나의 구성원이 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좀 더 풍부한 걸 하고 싶지 않을까요?
사람은 길게 100년을 살지만, 건축은 몇백 년 존재하며 도시의 한 구성원으로 켜를 만들고 있으니,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만들어 간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라 생각해요. OHS
진행 임진영
정리 이경희
사진 SKM Architect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