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 배경의 출발점은 피터 아이젠만이었지만 케네스 프램튼(Kenneth Frampton)의 책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어요. 글은 언제 처음 접했나요?
한국에서 대학생 때 아티클로 접했던 것 같아요. 책으로 접한 것은 1997년~98년 정도였고요. 스위스로 교환학생을 가기로 하게 된 계기도 ‘버내큘러 아키텍쳐’에 대한 케네스 프램튼의 내용이 많은 영향을 줬어요.
케네스 프램튼은 책에서 동서양 건축의 비교,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소재와 소재의 결부 방식, 중국이나 일본의 목공예 결부 방식이 어떤 식으로 환경을 구축하는가에 관해 이야기해요. 그가 말하고 있는 논리는 텍토닉인데, 피터 아이젠만의 이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어요. 인문, 사회, 과학적인 컨텍스트로 폭이 더 넓어졌다고 느꼈죠. 피터 아이젠만이 건축가 사고의 논리성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케네스의 책에 와서는 더 확장된 느낌이었달까요. 그런 부분에 매료되었어요. 구축의 논리를 역사적으로 다루기도 하고요. 그래서 직접 스위스라는 사회를 경험하고, 환경이 설계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지역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계신가요?
지역성은 수출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최근 VR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지만, 지역성을 벤치마킹함으로써 우리가 얻어야 하는 것은 운영하는 방법과 관계에 대한 학습, 그리고 우리 지역 사회에 어떻게 반영해야 할 것인가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좋은 모델의 재현으로는 해결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쓰타야처럼 해달라는 사람들은 많아요. 그러나 그 어떤 모델도 한국에서 현지와 똑같이 성공할 수는 없어요. 일본인의 직장 문화와 그들이 갖는 취미 세계, 종업원들의 큐레이션 능력, 그 누구보다도 경험이 많다는 것 등이 함께 작용해야 하는 거죠. 그저 상품과 음식, 책만 꽂힌 공간이 생겨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걸 받아들이는 상태여야 하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무얼 해야 하는 걸까? 한국의 쓰타야는 결국 다른 것이어야 해요. 쓰타야를 통해 인사이트는 얻을 수는 있어도, 수출할 수 있는 모델은 아니라고 봐요. 모든 게 글로벌해지더라도 지역성은 생존력이 클 거라고 봐요.
건축적인 측면에서 지역성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가 될 수 있다고 보나요? 영향을 미치는 요소일까요?
지역성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예요. 지역성을 만드는 인자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가 문제예요. 지역성의 가장 직접적인 개념으로는 프로젝트의 특수 상황, 특히 발주처의 상황에 대한 맥락이 있어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발주처의 상황보다는 건축가의 입장에 치우쳐 있어요. 예를 들면 프로젝트의 정의를 지나치게 지형적 관계성에 두죠. 갤러리를 절벽이 있는 대지에 최대한 어우러지게 만들겠다는 것처럼요. 그런 판단 이전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건축주의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다음에 지형 등을 고려하는 거고요.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비용의 문제가 먼저 고려가 되지 않는다면 작업이 완성되기 힘들어질 거예요.
많은 사람이 의뢰인에 대한 고려를 비즈니스적이라 생각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것이 인문학적이고 사람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해요. 파트너쉽을 가진 프로젝트를 만들어나가기란 너무 힘든 일이에요. 비용만 주면서 원하는 대로 만들라고 하는 의뢰인이 몇이나 될까요? 대부분은 목적이 있기 때문에 건축가의 말을 무조건 들어주지는 않아요. 따라서 건축가는 설득해야 하죠. 그들을 이해시키고 끌고 와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사람들의 고민은 직접적이고 자극적이기 때문에 건축가가 들여야 하는 노력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죠.
그저 고상하게 이야기하는 세계가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겠네요.
그렇죠.
귀국 후 진행한 대표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어요. 대학교수로 왔지만, 당시 한국의 시장이나 상황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요.
그때는 일단 너무 몰랐어요. 의뢰인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거의 없다가, 교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나마 ‘교수’가 약간의 보증수표로 작동하는 시장은 아주 작아요. 또 저와 일을 하긴 하지만 교수 타이틀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부리기도 쉽지 않죠. 이건 당사자들의 인식 문제예요. 정말 심한 사람들은 업체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왜냐면 자신이 상대하는 건축가가 명성이 없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지‘, ‘네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인데’ 식의 말들을 하는 사람도 있죠. 이런 갈등이 제가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의 실무 경험이었어요. 업체 취급하거나, 선생 취급하거나. 당시 저는 35살이라는 이도 저도 아닌 나이였고, 스스로 증명해내기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첫 프로젝트는 주로 서울시의 일들이었어요.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바로 <한강 보행자 터널 프로젝트>였어요. 짧은 설계, 시공 기간, 적은 예산으로 많은 수의 보행자 터널을 리노베이션해야 하는 미션이었는데요. ‘싸고 빠르게’를 원하는 한국 시장에 산업 재료로 문제를 해결한 첫 번째 프로젝트였습니다. 과정은 어땠나요?
갈등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해 나간다는 것이 괴로웠어요. 시간이 매우 부족해서 디자인 검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던 상황을 극도로 단순하게 진행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었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인지하거나 인정하기 쉬운 상황이 만들어졌달까요. 성공적인 마감 이후부터는 ‘정말 빠른 시간 안에 설계하는 사람이 있다’라는 인지로 시장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제가 따로 기획한 것은 아니지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죠.
일정이 너무 급해서 어쩔 수 없이 찾아왔거나, 문제도 매우 단순하고 목표는 시간 안에 완성하는 것이라는 식의 프로젝트가 많이 들어왔어요. 대부분은 담당 건축가가 있었다가 발주처의 의견 확정이 미뤄지면서 버려진 프로젝트를 하게 된 경우가 많았죠.
산업 재료인 폴리카보네이트 모듈은 교수님의 관심사와도 부합했겠지만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 상황에서 절묘한 한 수가 아니었나 싶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80m짜리 터널 안에 타일이나 벽돌, 도장 외에 사용하기 힘든 상황에서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도장보다 더 빠른 속도의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습식 대신 건식으로 가야 한다고 정했죠. 건식 재료는 곧 조립식일 테니, 조립식의 개념을 생각했고. 처음엔 재활용 폐자재도 생각해보고 요구르트병 수천, 수만 개의 가격을 알아보기도 했어요. 공산품을 찍어내는 과정을 알아보다가 폴리카보네이트가 가장 흔한 소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물론 건축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지 재료였어요. 건식 연결부를 생각하면 요소(component)가 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또 서도호 씨의 작업도 영향을 미쳤죠. 밀도(density)에 대해 의미 있게 생각해요. 밀도가 만들어 내는 강력한 텍스쳐같은 것들요. 큰 것 하나를 만들긴 힘들지만 작은 걸 여러 개 만들기는 쉬우니까요. 제 작업을 발표할 때도 서도호 씨의 작업에 대해 많이 언급해요.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건축 재료로 사용된 적이 없어서 제작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쉽지는 않은데, 당시 함께 하는 구성원들이 없었기에 제가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유학을 다녀오고 나니 유학을 가지 않았던 친구들의 경력이 훨씬 높더라고요. 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니, 표준 디테일에 관한 게임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차라리 디테일을 만들자는 생각이었어요. 어쨌건 디테일의 본질은 물이 새지 않는 것이니까. 표준 디테일보다 더 경제적인 해법을 찾게 되면 바뀌게 될 것이라는 게 제 지론이에요.
그래서 아직도 우리 사무실은 표준 디테일이 없어요. 그때그때 풀어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죠. 보통 대형설계사무소는 계단, 난간 등의 디테일이 정해져 있지만 우리는 계속 만들어요. 최근 되어서야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자는 내부 의견이 있지만 디테일 재활용을 위한 것은 아니에요. 조금 더 진보된 방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매번 새로운 디테일을 만들지만 우리의 논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해요.
구체적으로 얼마나 기간과 예산을 단축했는지 궁금해요.
합정 보행자 터널 프로젝트 같은 경우 시공까지 일주일에 하나씩 마감했던 것 같아요. 원래 주어진 기간은 좀 더 길었지만요. 개소당 예산이 6억 원이었는데 2억씩 예산을 절감해서 20억을 절약했죠. 서울시가 매우 좋아했어요.
슬프게도 시간과 예산은 한국 시장의 핵심처럼 보여요.
그래서 아쉬워요. 시간과 예산이 우리의 가치처럼 되는 것이 매우 아쉬워요. 컨버전스, 협업의 의미에서 이런 상황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나라는 협업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작동했을 때 얼마나 상승효과가 있을지가 의문이에요. 능력 있는 뛰어난 개인들이 모여서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을 해내지는 못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더 빠르고 더 싸게’를 외치는 한국 사회에서 산업적 생산 방식이 두각을 나타낸 것 같아요. 특히나 한강 보행자 터널 프로젝트처럼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에서는 더더욱 그렇고요. 인상적인 건 문제 해결에 대한 추가 비용을 청구했다는 부분이었어요. 빠른 배송을 위해 비용을 더 지불한다는 페덱스(Fedex)를 예로 들었던 것도 흥미롭고요. 건축이라는 분야가 제값을 청구할 수 있는, 비용에 합당한 지점을 보여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도 문제 해결 비용을 더 요구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과감한 태도였을 것 같아요.
제가 건축을 해나가는 방향 자체가 일반적인 건축 수련 방식과는 굉장히 달랐어요. 저는 표준 디테일을 잘 알지 못했고, 어떻게 보면 그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마찬가지로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타당한 지점을 가감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예요. 용기를 내서 이야기한 것은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에 이야기한 것일 뿐이죠.
만약 제가 설계 조직이나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더라면 하지 못했을 일이에요. 한울건축에서 실무 할 때나 미국에서의 실무는 의뢰인과 발주처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의 구체화에 집중되어 있었어요. 그 때문에 발주처와 건축가, 그것이 돌아가는 기류와 시스템에 대한 정보가 저에게 있을 리 만무했어요.
페덱스를 생각해보세요. 목적지에 빨리 배송해 주기 때문에 비싸요. 그러니까 빠르면 비용을 더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상대방은 황당했을 수 있어요. 그러나 본인들도 워낙 급했던 상황인 만큼, 저에게 약속(기한)을 지키지 못할 것에 대비해 페널티를 걸더라고요. 하지만 기한은 지켰고, 그렇게 인센티브를 받게 되었죠. 너무 많이 알면 못 하는 것들이 있어요. 지식(knowledge)이라면 고민을 더 했을 테지만, 정보(information)가 많은 상황은 두려움만 커지는 것일 수 있어요.
현실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학교에서 졸업 설계반 학생들의 면담을 한 적이 있어요. 설계를 잘하던 친구였는데, 선배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어요. 건축 설계사무소에 취직하게 되면 연봉 얼마를 받게 되는데, 그 연봉으로는 결혼할 상대도 맞벌이를 해야 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고민이었어요. 문제는 그 기준점이 높고요. 아기가 태어나면 영어유치원에도 보낼 수 없고 백화점에서 장을 보기에도 터무니없을 거라는 거죠. 저는 그 친구에게 설계를 하지 말라고 조언했어요. 당신은 이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이라고요.
생각해 보면, 선배들도 정말 너무 하기 싫은 일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거예요. 왜 굳이 후배에게 자신들의 삶이 불행하다고 하겠어요. 말하는 뉘앙스와는 별개로, 그 이면에는 본인들이 하고 있는 일의 자부심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사람은 프로그램한 대로 살아갈 수 없어요. 본인들이 예측하는 것만큼 인생이 단순하게 흘러가지는 않아요. 체크리스트에 하나씩 체크하며 넘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니까. 결론은, 너무 많은 정보들을 갖고 있다면 용기를 잃게 되는 거예요. 그것을 어떻게 지식화하고 현명하게 체득하느냐가 관건일 거예요. 저는 그러한 상황에 대해 전혀 예측하면서 살아오지 않았어요. 그저 내 일을 묵묵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잘 살게 되겠지라고만 생각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지금의 환경이 다른 것같아요. 예전엔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는 시대였고, 지금은 그마저도 불투명한 시대이니까요.
상대적으로 어려운 시기인 것은 맞지만 본질의 문제를 생각하면 판단하기가 훨씬 쉽다고 생각해요. 지금 상황에서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상황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실천해서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오케이’예요. 그러나 50대 즈음에 접어들었을 때 ‘힘들었더라도, 그 때 디자인을 할 걸’이라는 후회가 남아있게 된다면, 그 인생은 불행하지 않을까요?
어떠한 사회에 살아가던 간에, 결국 본인의 가치 판단 문제예요. 좋아하는 것을 할 것인가, 현실적인(금전적인) 부분에 비중을 둘 것인가. 이런 말에 지금 공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건축가가 문제 해결 비용을 청구하고 합리적으로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고무적인 부분이라 생각해요. 그만큼 건축가가 리스크를 감당했기 때문에 가능했고요.
맞아요. 게다가 항상 성공하는 것도 아니에요. 말에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힘들어지기도 해요. 계약금보다 더한 피해 보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해요. 물론 지금까지는 큰 피해가 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요. 또 손해를 감수하고 감행한 경우도 있어요. 예전같았으면 그 정도면 사무실이 뒤집어 질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규모도 커져서 크게 무리가는 상황이 오지는 않아요. 사람이 어떻게 매번 안타만 칠 수 없잖아요. 다만 타율이 너무 낮아지면 곤란하니까 일정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지점인 것같아요.
폴리카보네이트 마감을 활용한 이후, ‘모델하우스계의 황태자’라는 표현도 들었다고 했어요. 임시로 만들었다 부수는 모델하우스에 새로운 재질 선택, 입면 스터디, 모듈화하는 방식 등 산업 생산 방식은 딱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니었나 싶어요.
잘 맞아 떨어졌어요. 그리고 모델하우스는 저에게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실험을 할 기회를 준 셈이었어요. 보통 모델하우스의 경우 3~4개월 내로 마무리되어요. 일반적인 주택의 경우에는 설계에서 결과까지 1년이 넘게 걸리는데, 빠른 시간 내에 그것보다 큰 규모의 프로젝트 결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파빌리온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실험에 대한 부담도 적었고요. 프로젝트를 빠른 시간 내에 매니징한다든지, 운영방식에 대해서까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프로젝트들이었어요.
모델하우스를 통해 여러 실험을 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재료에 대한 스터디와 제작 방식, 운반을 고려한 사이즈- 예를 들면 트럭에 실릴 수 있느냐-까지 고려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재료에 대한 실험은 어디까지 이루어졌는지, 그것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 또, 이러한 시도에 흥미가 사라진 시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가장 경계했던 것은 매너리즘이에요. 공장 산업 방식이라는 것이 굉장히 다양하나, 건축에 적용 가능한 스케일에서 보자면 몰드 작업이 주를 이뤄요. 사출, 프레스 등의 방식은 건축 스케일에서 적용할만한 기계 사이즈도 없었어요. 따라서 몰드 작업을 주축으로 했기 때문에 그건 자신이 있어요. 이제는 형태만 봐도 몰드 작업이 가능하겠다, 아니겠다를 파일 수정 없이 진행하게 되어요. 몰드가 우리의 노하우가 된거죠.
다만 빠른 완성을 요구할 때에 몰드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그로 인해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진것이 아닌지 고민했어요. 물론 조금 더 확산적으로 사고해서 더 할 수 있겠지만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이 정도 했으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오픈소스로 돌리자는 이야기도 스태프들과 나누는 중이에요.
모델하우스 이후에는 새로운 방식을 테스트하기 위한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마침 전시 프로젝트가 많이 들어왔어요. 전시를 통해 실험 대상을 정했죠. 전시 준비는 건축보다 훨씬 더 개념적이거나 시론적인 부분에 대해 사고할 수 있기 때문에 이때가 또다른 중요한 시기였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필두로 FRP라는 물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고, 그 외의 전시를 통해서도 절곡기계 사용, 미디어 관련 실험을 했어요. 항상 전시는 일종의 테스트베드가 되어주었죠. 예를 들면 현대백화점 어린이책미술관 설계에 FRP를 적용했더니 훨씬 부드럽게 해결되었고요. 하나은행 PLACE 1의 부분 몰드로 모두 FRP가 사용되었어요. 금호미술관 전시에서는 절곡기계 사용을 실험했는데 아직 설계에 직접 적용해보지는 않았어요. 입면 구조(façade structure)를 스틸로 만드려는 시도인데, 전시 준비 과정이 데이터화되어 이후 실무에서 물성 작업에 영향을 주게 되더라고요.
건축에 적용할만한 산업재의 규격이 많지 않다는 것이 건축과 일반 산업과의 차이를 가장 명쾌하게 보여주는 지점인 것같아요.
스케일이 다르니까요.
산업방식에 대한 관심이 결국 그것을 전환하는 지점을 만난게 된것이 아닌가 싶어요. 건축에서 컴포넌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을 것 같은데요.
학생 때도 크리틱을 받을 떄 제 작업을 두고 ‘kit & part’ 라고 정의를 내리더라고요. 하나은행 PLACE 1 프로젝트까지는 부품 제작 공정과 같은 그동안의 맥락과 함께 했었고, 한남동 빌딩이나 폴스미스의 경우도 건물은 일체화되었지만 작업의 공정상으로는 부분적으로 같은 매락이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울릉도 코스모스(kosmos)호텔 프로젝트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어요. 일체화되었기 때문이에요. 울릉도는 물리적 상황을 반영하여 한번에 구축했죠.
공간을 이야기하지 않고 외피에만 집중을 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직원들은 ‘껍데기 건축’이라고 폄하했다며 울분을 토해냈지만 정작 저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제 반응은 ‘나 껍데기 좋아하는데(웃음)’ 정도였어요. 뭐 어때? 껍데기라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캐쥬얼하게 반응했죠. 직원들은 조금 억울해 했지만요. 어쨌든 비판을 불식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울릉도의 경우는 결과물로 이야기했다고 생각해요. 그 상황에서 최적화된 시스템은 한번에 구조물을 구축하는 것이었기에 선택했을 뿐이지만요.
건축 담론을 이야기할 때에, 저도 들으면서 ‘진짜 어렵다, 나도 어려운데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더 어려울까’ 싶어요. ‘왜 이렇게 건축이 어려워졌을까’에 대해 생각해요. 어짜피 건축은 짓기 위해 어려워야 하는 것이지, 보고 반응하는 데 어려울 필요는 없다고 봐요.
물론 콘크리트 벽 하나만으로도 심오한 인사이트를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해요. 도슨트는 그것을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갖지만,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아니겠죠. 그래도 내면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사이트를 주는 건축이라면 그건 예술의 경지라고 생각해요. 건축도 그럴 수 있지만, 건축이 기본적으로 갖는 역할은 예술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요. 건축의 본질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 그 이외는 본질이 아니죠.
진행 임진영
녹취 및 정리 우경희
사진 이강석
인터뷰④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