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옮긴 지 1년 정도인데, 자리가 고정되지 않은 오픈 오피스 개념을 도입했어요. 내부 반응은 어떤가요?
일단 좋아요. 저보다도 직원들이 좋아하니까. 사무실의 경우 물리적인 공간을 바탕으로 일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사회적인 분위기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오피스 개념보다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멤버십 개념으로 바꾸고자 해요. 아주 중요한 이슈예요. 여기 있을 필요도 없고 저기 있을 필요도 없어요. 공간이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멤버가 만들어내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거죠. 직원, 소속 같은 개념보다는 개개인이 건축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른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업무공간과 공용공간이 같은 비율입니다. 공용공간이 상당히 넓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업무공간의 연장이죠. 자기 자리에서만 일하지 않고 회의가 없을 때는 열린 공용공간에서 일하기도 해요. 팀끼리도 자주 회의를 하니까요. 공간의 구분은 없는데 성격은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하나는 여유 있게, 하나는 밀도 있게 일하고 작업하는 분위기이에요.
직원들의 선호도는 어떤가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요. 작업 공간이 답답하다고 느끼는 친구들은 미팅룸에 컴퓨터를 가지고 와서 일하기도 하고 건물 위층에도 낮 동안 쓸 수 있는 라운지가 있는데 그곳에서도 일할 수 있도록 시설이 개방되어 있어요. 원하는 공간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인데, 데스크톱이 아닌 랩톱을 쓰고 클라우딩 서버를 이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죠.
앞서 ‘Kit & part’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울릉도 프로젝트는 건축을 컴포넌트로 해석하지 않는 지점이 온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엄밀히 이야기하면 울릉도 코스모스 호텔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내피는 컴포넌트(거푸집)가 건물 일부로 남아 융합된 경우예요. 안쪽 거푸집을 떼어내는 시공상 난제와 촉박한 공사 기간을 극복하기 위해 거푸집에 단열재를 치부하고 이를 뒤집어 매입하는 아이디어로 해결했어요. 거푸집이 인테리어 마감 가이드 역할을 하고 거푸집과 마감 사이 공간을 냉난방 챔버로 썼죠.
지금 3D 프린팅이 발달해 많은 논의가 이어지잖아요. 만약 모든 것을 이음새 없이 하나의 프로세스로 프린팅한다면 정말 일체화된 부품이 공간화됐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이런 부분에 관심이 많아요. 오래된 영사기 하나를 갖고 있는데, 이 영사기의 기계적인 부분을 줌인(zoom in)해서 촬영하면 드라마틱한 공간이 그 안에 있거든요. 이런 식으로, 만약 건축 스케일의 3D 프린터가 있고 건축 공간을 3D 프린팅하여 생산한다면 컴포넌트가 구별되지 않고 그야말로 일체화된 공간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산업 측면에서 보면 기술이 가져올 패러다임의 변화는 매우 크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3D 프린팅으로 3일 만에 건물을 만들 수 있다는 상상은 극히 건축가적인 시각이고, 그보다도 중요한 건 3D 프린팅이 가져올 물류 개념의 혁신이 아닐까 싶어요. 자재가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중요해요. 현장의 개념이 바뀌는 거죠. 현장이 공장이고 공장이 현장이 되고요. 래미안 모델하우스 입면에 쓴 3mX3m 패널을 예로 들자면 물류(logistics)를 고려해 4.5t 트럭에 맞춰 컴포넌트 사이즈를 생각해 낸 거예요. 그런데 현장 생산이 가능해진다면 기성품의 치수(dimension)가 필요 없어지고 다른 방식이 될 것이라고 봐요.
건축을 제작 방식의 측면에서 들여다보았다는 점은 여전히 중요해 보여요. 한국 건축의 가장 아쉬운 게 그동안 구축에 대한 논의보다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논의 중심으로만 전개된 게 아닌가 하는 부분이거든요.
그 시대에는 그것도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건축이 건설과 구분이 되지 않고 본의 아니게 그 영역에 대한 독립성을 획득하지 못했으니까요. 김수근, 김중업 선생님께서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따로 논의되었고요. 다른 건축가 선배님들은 낮아진 위상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기 위한 싸움(struggle)의 과정이었다고 봐요. 건축은 건물을 짓는 행위보다 더 다차원적이고 정신적인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대중에게 인지시키기 위해 더 어려운 방법을 선택하신 거죠. 이에 대해 대중이 이해를 하거나 원활하게 소통하지는 못하고 건축은 어렵고 철학적이라는 이해로 가버렸지만, 그런데도 건축이 특별하다는 인식은 정립된 것 같아요. 덕분에 후배들이 관심을 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해요.
텍토닉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것 같아요. 또 두드러지는 기술적 성취나 시도가 없는 게 아닐까 싶고요.
기술적으로 흥미로운 작업이 충분치 않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안타까운 일이죠. 분명 엔지니어링의 영역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특강 제목을 “THE_SYSTEM LAB Report”, 부제로 “Making Story”라고 써요. 만드는 것에 관해 이야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기도 해요. 결국, 건축은 짓는 게 중요한데, 짓는 것에 대한 새로움이 이야깃거리를 만든다는 이야기도 되고, 실제 만드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니, 제작과 새로운 기술적 구축에 관한 이야기가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죠.
새로운 재료, 다른 생산 방식을 도입하려면 설계사무소, 엔지니어링, 시공팀까지 소통하는 방식이 매우 중요해 보여요. 기술적인 소통의 방식이 사무실에서 어떻게 진화되어왔을지 궁금해요. 처음에는 작은 규모의 몰드(형틀) 제작에서 시작해 점점 더 확장되는 듯한데요.
안타까운 건 제가 어떻게 이야기를 하더라도 실제로 만들어야 하는 분들이 안 하겠다고 한다면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항상 쉽지 않은 결정에 기꺼이 동조해 준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지점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과정을 협업(collaboration)이라고 말하게 돼요. 왜냐하면, 제가 감당하는 리스크와 그분들이 감당하시는 리스크는 전혀 다른 부분이기 때문이에요.
최근 우리는 대형 회사들과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실행을 못하더라고요. 리스크가 큰 일이라서요. 담당자가 작업의 결정권자가 아니라서인 것 같기도 해요. 상대적으로 거대 자본이 있는 회사에서는 이 과정이 쉽지 않아요. 그런데 영세한 곳에서 꿈을 꾸시는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렇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어요. 제 언변이나 설득의 힘이 아니었어요. 논리적으로 그분들을 설득하지는 않아요. 그저 ‘꼭 같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꼭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사장님이 내리셔야 한다’라고만 해요. 고민을 많이 하셨겠지만 결국은 함께 해주시더라고요.
인상 깊었던 협력업체가 있나요?
FRP, 폴리카보네이트, 몰드 작업, 기계적 작동에 관한 부분, 파이프 밴딩 등등 너무 많죠. 한번은 함께 했던 회사가 망해서 그때그때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정말 작은, 영세한 곳이었어요.
시공 프로세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신 것을 보았어요. 이게 더_시스템 랩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었어요. 제작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엔지니어링을 디자인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기술을 사용한다는 표현을 쓰셨는데, 해당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내부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해요.
제작비가 예상 비용 안에 들어오는 게 중요해요.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비용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어서 저희가 시공 과정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시공사에서 하려는 방식 말고, 우리는 계속 비용 절감(cost saving) 측면을 제안하는 거죠. 우리의 의견은 계속해서 개진하는 거예요.
우리는 도서 납품 후에도 일이 끊이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감리까지 맡는 프로젝트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에서는 참 어렵죠. 그래서 어떻게든 감리 계약을 하려고 해요. 감리자가 해결 방법을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으니, 우리가 지원해 주겠다는 거죠.
감리 계약을 안 하면 설계 계약서에 따라 도서 납품과 동시에 업무가 종료되어요. 그러면 발주처는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갈등과 분쟁이 생길 수 있기에, 감리비가 적어도 오해 없이 감리를 맡으려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시공사가 특수한 설계 내용에 대해 비용 문제와 기술적 방법론을 사전에 연구하고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구축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던 초기에는 억울한 일들이 많았어요. 시공사에서 파견 나오신 분들이 ‘이건 안된다, 디테일이 안 나온다’라고 하시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해결해 드리겠다’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무책임해질 수는 없으니까. 물론 초반에는 그에 대한 비용을 받지 못했어요. 요즘은 상황이 달라요. 그러한 노력에 대해 존중받고 함께 비용을 정산받아요.
프로젝트에서 가장 최적화된 솔루션을 찾아가면서 시스템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 더_시스템 랩의 시스템 구축 과정이라고 하셨는데, 단지 건축의 구축 문제가 아니라 이슈 비용과 기획 등 건축 업역이 확장하는 느낌도 들어요. 소비자를 이해하고 어떻게 건축을 상품으로 바라볼 것인가로 보이기도 하고요. 이런 전략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각을 전공했다고 조각가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듯이, 3차원 형상을 상상하고 제작의 능력까지 보유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조각 전공자가 공업디자인이나 자동차 디자인으로도 많이 편입되기도 하고요. 순수 예술을 전공했지만 거기서 체화된 개념이 다른 곳에서 적용되었을 때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처럼, 융·복합적인 것이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요.
건축도 본질의 문제에 대해 딱 그 케이스를 만드는 사람만으로 충분하다면 업역이 확장될 필요가 없을 거예요. 그러나 종합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게 건축이잖아요. 예전에 “건축 계획 각론”이라는 교과가 있었어요. 예를 들면 복도는 폭이 몇 m여야 한다는 식의 규율을 정리한 건데, 매우 모더니즘적인 매뉴얼이에요. 그 당시에 종합적이라 하면 구조, 전기설비, 소방, 미적 아름다움, 기능과 동선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종합이라는 말 안에는 카테고리와 요소가 더 많아진 것이라 봐요. 예를 들면 물류나 이용자 층위에 대한 정보와 이해 등이 더 포함되고 있어요. 사회 현상과 방향까지 광역으로 늘어나고 있는 거죠. 여러 가지 상황과 행동, 그리고 상호작용까지 확장된 경우라고 할 수 있어요.
리테일 디자인을 예로 들면, 저를 기획자로 초청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제 디자인이 훌륭해서보다 리테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총괄건축가(MP)가 되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는 식이에요. 그래도 기획부터 끝까지 풀 패키지가 중요하지, 중간중간 참여하는 것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기는 하죠. 그러나 제가 선호하지 않을 뿐이지 컨설턴트로서의 가능성은 여전히 건축가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어쨌건 저는 골수 설계/디자이너예요. 그러나 건축 근방의 것들에도 접촉할 수(tapping) 있고 관심이 있는 사람인 거죠.
건축가 본연의 일이 주를 이루지만, 주변부와 접촉하고 확장하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최근에 코디네이터, 공간 크리에이터 등의 명칭이 많이 보여요. 그 분야의 전문성이 있겠지만…. 건축가들이 건축이라는 카테고리를 오픈 시스템으로 만들지 않고 너무 닫고 있어요. 다른 곳에서 치고 들어오는 것에 대해 결벽증적인 반응을 보이죠. 닫혀있으면 본인의 업역을 넓히기 어려워요. 그런 의미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미디어 작가, 아티스트 등과 함께 일하는 경험이 매우 중요해 보여요.
최근 나오시마에 방문해 니시자와가 설계한 테시마 미술관을 보았어요. 흙으로 만들어진 두꺼비집 같은 것이었는데, 직접 가서 보기 전까지는 그저 구축 논리의 아이디어가 좋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보니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이게 진정한 콜라보레이션이구나’하는 것을 목격했죠. 니시자와 류에가 직접 나이토 레이라는 아티스트를 선택하고, 그의 물방울 작업과 통합된 건축물을 설계했다는 지점에서 감동했어요.
아직 우리나라에서 예술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라고 하면 요구사항 자체가 일차원적이에요. “한쪽 벽면을 비워달라, 여기에 현대 미술 작품을 걸 것이다(전시할 것이다)”라는 식이죠. 그저 빈 벽면에 작품을 걸기만 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통합(integration)이 아니니 기획을 다시 하고 싶다고 하면 이해를 못 해요.
그래도 하나은행 PLACE 1에서 진달래, 박우혁 작가와 함께했던 작업이 예외라고 볼 수 있겠죠. 제가 ‘아트 디스크’라는 것을 기획하고 아티스트들에게 공모를 했어요. 4명이 참여를 했는데, 진달래, 박우혁 작가가 공간을 잘 이해한 안을 내주었어요. 첫 콜라보라고 볼 수 있어요. 지하 1층 주차장 바닥 통로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빠키와 함께 했고요. 밋밋했던 통로 공간에 2차원 작업으로 3차원적인 입체감을 부여한 작업이에요.
어쨌건 테시마 미술관의 예는 작업이 훌륭해서 받은 충격이라기보다는, 이렇게 협력할 수 있는 사회적인 인식과 시도에 대한 투자와 맥락이 한 차원 높은 것이기에 받은 충격이에요. 그 공간에는 큐레이팅이 따로 필요 없어요. 그대로 있으면 되기 때문이에요. 한 작품을 위한 단독형 미술관이죠. 이러한 형태는 지정된 예술 작품이 아니면 다른 것은 전시할 수 없으니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구조예요. 조금 예민한 부분이겠지만, 문화 인식의 영역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쨌건 업역은 오픈 시스템이 되어야 해요. 그러려면 건축가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고요. 그래야 일도 더 많이 할 수 있을 거예요.
‘산업적 공예성’이라는 표현이 교수님을 가장 잘 표현해준다는 생각을 해요. 형태와 공간이 통합된 건축을 보여주는 말이고, 울릉도 프로젝트를 통해서 확연히 나타났다고 봅니다. 산업적 공예성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인식하게 된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사례라기보다는 방향에 관한 얘기예요. 그것도 물론 기술의 진보로 인한 방향이죠. 대량 생산(Mass production) 시대에는 사람들에게 선택권이 없었지만,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Mass customization)으로 바뀐 이후에는 뭘 사더라도 같은 모델의 다른 버전을 자신에 맞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어요. 매우 큰 사회적 변화예요. 저는 그 당시에도 그게 충격이었어요. 애플 컴퓨터를 사는데 사탕 고르듯이 색깔을 골라야 한다니! 결국,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을 보면서 다품종 소량생산이란 표현도 쓸 수 있겠다 싶었죠.
그리고 앞으로는 마이크로 커스터마이제이션(Micro-customization) 시대로 넘어갈 거예요. 이제 매스(Mass)에서 마이크로(micro), 개인에 대한 문제로 넘어온 거죠. 개인을 위한 생산이 가능한, 개별화된 내용물을 3D 프린터로 뽑아내서 개인에게 가장 최적화된 제품이 집까지 배송되는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 이제 공업 제품이라는 의미가 있을까? 공예는 똑같은 그릇을 만들어도 절대로 100% 똑같지 않아요. 왜냐하면,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방짜유기처럼 아무리 기술력이 좋은 장인이 만들어도 100% 똑같은 건 없는 거죠. 그게 공예의 속성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나하나 개인을 위해서 생산되는 공예의 속성을 닮은 제품이죠.
그런 개념에서 건축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해요. 마이크로 커스터마이제이션의 개념에서 보면 다 자기만을 위한 제품이기 때문에 가장 궁극의 지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건축은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는 개념을 많이 쓰죠. 많은 사람이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매우 민주적인 개념으로 이해를 하지만, 사실 그 대상 범위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소외되는 거예요. 유니버설 디자인에서는 17cm의 계단이 가장 편안한 높이 기준이 돼요. 하지만 2m 키의 사람과 어린 꼬마가 올라가기에는 불편한 계단이 될 수 있죠. 이 치수의 기준은 사실 150cm~185cm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에요.
그럼 마이크로 커스터마이제이션의 건축은 사람에 따라 실시간으로 최적화하며 변해야 할까? 이런 상상을 하곤 해요. 건축은 혼자 쓰는 물건이 아니므로 사고를 할 때도 갈등의 지점이 생기게 되죠. 아직 결론을 낼 생각은 없지만, 그냥 앞으로는 어떨지 계속 생각을 던지는 거예요. 결국은 처음부터 건축은 공공재의 성격이 있어서 어려운 문제예요. 이 갈등의 지점이 현재 제가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결국, 건축은 사회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교수님이 생각하는 사회적인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사회적인 가치일 수 있고 공공성이라는 개념,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착한 건축의 개념도 당연히 가치가 있을 수 있어요.
제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그 일을 어떻게 했느냐’,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예요. 예를 들어 한강 프로젝트 때문에 만났던 몰드 제작을 하는 사장님은 사실 명절 선물 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포장재를 찍어내던 일을 하시던 분이었어요. 처음 뵈었을 때 돈은 잘 벌지만, 인생의 낙이 없는 분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저희와 프로젝트를 하면서 건축 외피를 생산하게 되니까 갑자기 열정맨이 된 거죠. 본인에게는 뜨거운 경험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회까지 확장된 느낌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자기 일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봐요. 그다음으로 공통된 키워드는 결국 ‘새로움’인데, ‘새로움’에 대해서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 사회적인 인식의 발전이 사회적인 가치 창출이 아닐까 생각해요.
여러 재료와 구조에 대한 실험 중 UHPC를 사용한 PLACE 1이 분기점인 것 같아요. UHPC에 대해서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양산 프로젝트와 다락다락 등 일련의 프로젝트가 콘크리트 구조인데 단면이 노출되는 디자인이었어요. 더 얇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죠. 여러 가지 모색을 하던 와중에 PLACE 1 프로젝트의 외장 패널을 콘크리트로 하려고 했더니, 너무 두꺼운 거예요. 8cm 두께의 이미지를 보여주니까 엔지니어 쪽에서는 최소 18cm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18cm 두께로 잡아봤더니 너무 두껍고, 패널 하나의 무게도 6.5t이나 됐죠. 그러다가 어떤 협력사에서 연필통을 선물로 보내줬는데 쓰다 보니 한 실장이 이게 UHPC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찾아보기 시작했죠. 해외에서 교량의 연결 부위에 쓰고 콘크리트보다 5배 이상의 강도가 있었어요. 두께를 1/5로 줄여도 기존 구조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해서 몇 개 검색해서 모크업 시도를 해봤어요. 그런데 안되는 거예요.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UHPC는 연구원과 학계에서 실험을 해왔는데 결국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함께 테스트를 해보게 되었어요. 모크업을 하는데 돈이 굉장히 많이 들었죠. 우리가 비용을 다 부담했어요. 은행 쪽에서도 포기하라고 했어요. 시공사를 선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지체에 대한 부담이 있어서 발주처에서도 이번에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그런데 5번의 모크업이 실패한 후 몰래 마지막 실험을 하고 그게 성공하면서 지어지게 되었어요. 결국은 그 필통에서부터 시작된 거죠. 국내 업체들이 UHPC로 필통과 화분 같은 걸 만들어서 팔아요. 해외에서는 벤치처럼 스트리트 퍼니처에 많이 쓰이고 훨씬 범용화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PLACE 1의 경우 입찰 때 모든 시공업체가 포기할 정도로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로 알고 있어요. 모크업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요.
고민의 밑바닥에는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어요. 최진철 실장이 현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심했을 거예요. 지금이야 말할 수 있는 거지만 거푸집이 깨졌다는 문자, 모크업이 실패했다는 등등의 연락이 오는 게 너무 싫었고 전화 받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 때도 있었죠.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나요?
마지막 시연했을 때. 마지막 모크업이 성공하고 발주처 임원분들을 불러서 보여드렸을 때 놀라셨어요. 그때 좀 눈물이 났죠. 특강을 할 때도 그 당시 시연했을 때의 사진을 자주 보여줘요.
UHPC라는 새로운 재료와 구조로 시도하면서 다양한 협력사, 엔지니어링과 긴밀하게 협업을 했습니다. 협업 과정의 경험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협업 과정에 두 가지 기분이 있어요. 하나는 애잔한 마음과 안 좋은 마음. 함께 협업한 엔지니어링 회사가 결과를 홍보할 때 우리가 진행한 이미지 자료, 거푸집 프로파일링, 도면과 같은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가져다가 마치 자신들이 다 한 것처럼 홍보하는 경우도 봤어요. 윤리적으로 맞지 않아 화가 많이 나기도 했죠.
PLACE 1에서는 외장 패널로만 활용했는데, 울릉도 코스모스 호텔에서는 현장 타설 구조체로 시도합니다. PLACE 1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을까요?
PLACE 1을 했기 때문에 훨씬 편하게 접근했어요. 물성에 대한 결과물을 알기 전의 불안감은 말도 못 했지만 결국 구현할 때까지 고생하고 난 다음에는 심리적으로 편했어요. 코스모스의 거푸집 제작도 쉬웠어요. 물론 2번 정도 모크업 실패가 있었고 훨씬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우리로서는 편했어요. 어느 정도는 결과물에 대해 예상하는 것이 있었고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기도 쉬웠어요. UHPC는 시각적인 부분도 그렇고 거푸집 자체의 완성도가 훨씬 높아야 해요. 그 기술이 굉장히 중요하죠.
지금 한남동에 세 번째 프로젝트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같은 UHPC로 반 패널, 반 공간의 개념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이건 콘크리트 두께가 더 얇아 3.5cm예요. 구조재는 아니지만 나름 공간을 형성하는 작업인데, 역시 만만치가 않아요.
구조를 해석한 터구조 대표님은 나중에 보니 울릉도 코스모스 호텔의 볼트형 단면이 UHPC에 구조적으로 가장 적합한 형태였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UHPC는 얇게 할 수는 있으나 인장에는 취약한 재료였기 때문에 어떤 형태에 적용하느냐도 중요해지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그 구조에 가장 적합한 재료와 형태를 가져와야 하며 자기 완결적"이라는 교수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형태의 생성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요.
힘이 흐를 수 있도록 하고 싶을 때 제 경우는 곡선을 쓰게 돼요. 힘을 받지 못하면 크랙이 가는데 스트레스를 나눠주기 위해서 제 작업에서는 곡면이 쓰여요. 폴리카보네이트의 경우 표면으로 힘을 흐르게 해야만 강성이 나오지, 판재로만 나오면 스트레스가 집중되죠. 울릉도도 볼트형 구조를 선호한 이유는 힘이 흘러서 땅으로 꽂아주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에요. 디자인적으로 의미가 없다기보다 구조적으로 취약한 거예요. 이런 게 재료적인 특성이죠.
자동차 디자인에서 중요한 특징 하나가 안전을 위해서 직선을 쓰면 안 되는 것이 있어요. 보통 자동차의 유선형을 바람에 대한 저항으로만 생각하지만, 충돌이 있을 때 힘을 빨리 차 뒤편으로 보내야 안에 있는 사람이 보호돼요. 직선으로 보이는 것 같아도 모든 차는 바람만 넘기는 게 아니라 충돌을 예상한 곡선이 있죠.
사람들은 가우디를 독창적인 형태만으로 인식하지만, 실제 그의 작업은 유기적인 형태에서 오는 가장 안정적인 구조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죠. 사그리나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할 때 추를 달아매어 거울로 반전시켰을 때의 형태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해요. 건축가 김찬중의 설계 방식에서 유기적인 형태는 결국 안정적인 구조를 효율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결과물로 봐야 할 부분이겠네요.
물론 동역학이 아닌 정역학과 관련된 거지만 그렇게 되게끔 하는 게 중요한 부분이죠. 아치를 스타일로 보는 게 아니라 더 강력하고 능동적인 구축 체계를 만들고 싶은 거예요. 자연적인 흐름이 있으니까요. 폴 스미스 플래그쉽스토어의 경우도 셸(shell) 구조와 같은 방식의 구조예요. 껍데기라고 하더라도 구조 기둥이 없으니까 건물의 응력 또는 구조적 스트레스가 표면으로 흘러서 땅에 꽂히게 되는 거죠. 결국, 구조의 문제인데 왜 사람들은 형태로만 인지하려고 하는지 조금 궁금해요.(웃음) OHS
진행 임진영
녹취 및 정리 우경희
사진 이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