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차 다음에 당선된 게 SH 은평서대문종로센터이다. 서울서진학교와 비슷한 시기에 당선이 되었는데, 준공까지 오래 걸린 편이다.
김빈 설계도 그렇지만, 공사가 한동안 멈춰 있었다. SH 은평서대문종로센터는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역 연결 통로가 함께 있다. 관리 주체도 다르고 건축 허가 사항도 달라서 거기서 오는 복잡함이 있었다. 공사 시작하고 나서 상수도관 문제로 거의 한 1년 정도 멈춰 있었던 것 같다.
유종수 설계 기간이 3배 늘어났고 계약 연장이 6회차였던 걸로 기억한다.
지하를 연결하는 부분에서 협의할 부분이 많으셨을 것 같다. 그 과정은 좀 어떠셨는지 궁금하다.
김빈 대표적인 예로 건물과 통로가 같은 벽이다. 그 벽을 SH와 지하철 교통공사가 어떻게 나누어 소유할 것인가부터 시작했다. 단일 벽의 소유에서부터 설계를 시작한 거다.
그다음은 관리 문제인데, 그 통로는 지하철 일부가 되고 관리는 시설공단에서 하니까 멋지게 하려고 해도 관리 주체나 소유 주체는 ‘관리가 불편하다, 통로가 이래서 되느냐’는 의견을 낸다. 우리는 SH 공사와 협의했기 때문에 끝까지 의사 표현을 하고 디자인해서 설계하긴 했는데, 시공이 원하는 만큼 되지는 않았다. 디자인이 조금 변경되었지만 큰 틀에서 원하는 방향대로 갔다.
SH 은평서대문종로센터나 서진학교도 재료와 팟(POD) 같은 요소가 공간을 풍부하게 한다. SH 은평서대문종로센터도 공기업이 갖기 힘든 외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제안을 했고 또 발주처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유종수 사람들이 가장 빨리 인지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재료와 낯선 창의 패턴 같은 것이다. 공공건축이라고 해도 당연히 건축가로서 시도하고 싶은 것이 있다. 더군다나 이 대지의 경우 바로 옆에 큰 주차장과 건너편 대형쇼핑몰이 있어서 그 덩어리들과 싸우려면 훨씬 도드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경치가 워낙 좋은 이말산이라는 북한산 자락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조형이 나왔다.
김빈 처음 공모전에 제안했던 안은 더 단순했다. 중요했던 것은 루버와 사이사이 있는 판들이 전체 매스를 분절하는 것이었다. SH 담당 부서가 설계를 잘 아시는 분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에 실시설계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의견도 받아주고 입면을 바꿀 기회가 왔다. 예쁘게 하려고 바꾸었다기보다, 유 소장님 말처럼 주차장과 광장 사이에서 더 세져야겠다는 생각에 이 디자인으로 진행되었다.
사용하는 건축 언어는 단순하지만 특별한 장면을 만든다. 모든 프로젝트가 단순한 언어를 쓰는데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건축을 표현하는데 지향하거나 친숙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빈 유 소장님은 타고난 것 같다. 형태를 잘 다룬다. 반면 저는 선을 하나 그어도 명확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잘 안 된다. 사선 하나, 재료나 형태, 볼륨을 전체로 확장할 때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결과적으로 납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유종수 모든 건축가가 그럴 것 같은데, 저 자신만 놓고 봤을 때 아직 건축 어휘를 가지고 작업하고 싶지는 않다. 20년 가까이 건축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선생님의 건물을 봤겠나. 내가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했든 이미지로 머리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저는 그게 무의식중에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편 다른 사람이 한 건 하고 싶지 않아서 조금의 차이를 두고 새로운 것을 지향한다. 그런 것들이 다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우리는 둘이 같이해서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찾는데 적절하게 도움이 된다. 많은 시간이 쌓이고 접점이 많이 생겨서 동의하는 부분도 많고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같은 방향으로 결정되는 것 같다.
김빈 그래도 다행히 1+1이 2까지는 못 가도 1.2 정도 되는 것 같다. 당장 프로젝트를 딸 수 있을지 앞일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지난 10년을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유종수 앞서 말씀하신 계보나 좌표에 대해 우리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건축적인 태생이 어디냐고 한다면, 한국건축에 대해서 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제가 본 건 다 현대 건축이고 한옥에서 무언가를 느낄 만한 기회도 없었다. 단지 좋은 건물을 많이 접하거나 건축을 하면서 학습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무언가를 정해 놓기보다는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건축에 대한 기준이나 혹은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유종수 일단 콘셉트가 명확한 게 좋다. 우리도 그런 방향을 지향하려고 하는데, 새로운 건 굉장히 어려운 것 같다. 명쾌하면 좋을 것 같고 재료도 항상 새로웠으면 좋겠다. 건축 산업 전체가 진보하는 기술력을 무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당연히 루이스 칸의 건물처럼 그 자체로 압도하는 빛, 공간 등 건축의 기본이 되는 요소가 중요하다. 결국, 그것을 취하는 태도가 조금씩 다른 거 같다.
김빈 공간도 좋고, 빛도 좋고, 명쾌함도 당연한 부분인 것 같다. 제가 더 끌리는 부분이라면 절제된 것을 좋아한다. 미니멀하다거나 재료가 단순하다는 차원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자하 하디드의 DDP를 보면서도 절제돼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명쾌하다는 것과 연결되는 것 같다. 과도한 제스처가 나오지 않는 절제된 건물을 좋아한다.
사무실을 처음 열면서 건축의 새로운 유형 탐구에 관해 관심을 적었다. 결국, 불명확한 관념을 걷어내고 건축 자체의 구성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유종수 예를 들어 신설동 한옥(2016)을 보면 건물 위로 철골 구조를 올렸다. 한옥을 좋아하는 분들이 보면 한옥을 모르는 사람이 건축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옥의 아름다움과 좋은 점은 많은데, 저희는 새로운 유형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좋고 나쁘다를 떠나서,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고 가능성을 확장해줄 계기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문제작이 오히려 이야깃거리가 많을 수도 있다.
김빈 유형이라는 단어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하고자 했다기보다 조금씩 새롭게 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말씀하신 것처럼 신설동 한옥은 우리에게 파격적인 업무였다. 통상적인 한옥 위에 증축하는데 띄워서 올렸다. 결과적으로 기존 한옥을 덜 해치는 방식이 되었다. 만약 다른 방식으로 증축했다면 많은 부분을 해체하거나 기와를 다 부셔야 했을 거다. 이 방식은 상대적으로 기둥만 뚫고 내려갔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 한옥의 많은 부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게 접근하지 않았을 거다.
건축의 요소가 풍부하다.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과하지 않다. 과감한 요소를 절제해서 쓰는 태도가 코어건축의 특징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어 당선된 것이 광나루 수난구조대, 망우119안전센터, 한강공원 양화지구 매점인가?
김빈 2018년도에 서울시 스케이트장, 광나루 수난구조대, 돈의문박물관 수직 정원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2019년에 망우 119안전센터가 당선되었다. 이때 사무실이 조금 배고팠다. 2020년도에 다시 공모전에 엄청나게 참여했다. 한 해 동안 15개 정도 했고 마감은 13~14개 정도 했다. 내내 낙선하다가 연말에 일산직업능력개발원이 당선되고 해를 넘겨 1월에 2개의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2021년 하반기에 민간 지명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다.
유종수 한강공원 양화지구 매점은 공모전이 아니라, 광나루 수난구조대를 하면서 협력했던 특수구조 업체의 제안으로 진행된 작업이었다.
서울광장스케이트장은 해마다 젊은 건축가가 공모를 통해 진행되었다. 그때도 지명 공모였나?
김빈 그렇다. A3 세 장 정도 제출하는, 지명 공모 중에서도 가장 간소화한 공모전이었다. 스케이트장이 시간이 촉박하고 빨리 지었다가 빨리 없어지니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유종수 대지를 1년 중 3개월 정도 스케이트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부분이 재미있어서 참여했는데, 어떻게 하면 예산을 아끼고 공사 기간도 수월하게 할까 고민해서 공기막 구조를 제안했다. 가벼운 재료를 쓰고자 했다.
시청 광장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제안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김빈 구조물이 일시적으로 있다가 사라지는 거라, 빨리 짓고 빨리 없앨 수 있는 게 가장 좋다. 그리고 재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조건으로 이중 공기막을 제안했다. 구현하는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공기도 금방 넣었다가 철거할 때도 금방 뺄 수 있다. 디자인 측면에서는 형태적인 것도 있지만 그 공간의 원형을 사람들이 한 바퀴 돈다는 공간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고려했다. 공기막 구조는 단열에 대한 장점도 있다.
유종수 시청 광장은 3면이 도로라서 접근이 좋지는 않다. 시청광장에 약 80m 지름의 원형경기장을 만드는 것이고, 조명까지 고려하면 그 안에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장면이 시민들에게 일종의 공공미술처럼 다가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광장을 광장답게, 이벤트 공간으로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광나루 수난구조대는 부유하는 건물이라서 기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외관의 질서도 인상적이다.
김빈 뜨는 구조는 기술적인 부분이고 사실은 놓였을 때를 생각했다. 말씀하신 것처럼 잔디밭에 있는 장면을 처음 생각했고 부유체라고 두께가 약 1.8m정도 되는 덩어리가 밑에 있는데 땅을 파서 그걸 감추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한 번 떴다가 내려오면 파인 땅에 진흙이 가득 차서 기술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디자인의 형태는 사실 프로그램과 관계가 있다. 한강을 관리하는 소방서니까 상주하는 사람이 있고 먹고 자야 한다. 체력 단련을 하는 시설도 있어야 한다. 지금은 그렇게 쓰이지 않는데, 지침에는 시민들을 교육할 수 있는 안전교육장을 담겠다고 했다. 그래서 계단식 강당도 필요했다. 이곳은 필지가 아니니 땅도 직사각형으로 주어졌다. 그 안에 필요한 요소를 넣어보니 형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숙소와 대피 동선, 1, 2층을 연결하는 출입 동선이 필요해서 동선 따로, 매스를 따로 배치하면서 만들어졌다. 향을 고려해 숙소를 배치하고 재료는 단순하게 쓰고 싶었다.
유종수 서울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 시청 광장도 그렇고 낙산도 그렇다. 한강도 서울에서 너무 중요한 공간이다. 그런 곳에 무언가를 한다는 게 굉장히 끌렸다. 장소적인 측면에서 끌리는 게 있었고, 부력체를 이용한 특수구조인데, 홍수 때 수난 구조를 하기 위해서 땅에 있어야 하는 것도 난센스 같았다. 1년 중 비 오는 기간은 얼마 안 되는데, 사용하는 사람을 위하면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플로팅 한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광나루 수난구조대는 건물처럼 생기기는 했지만, 건물이 아니라 시설물이다. 한강에는 건축이 없다. 시설물밖에 안 된다. 그리고 철골콘크리트로 지을 수 없다 보니 재료도 철물 같은 거로 조립할 수 있는 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터디할 때는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재료도 있었는데 비용 때문에 실현하지 못했다. 마지막에 해머로 누른 콘티 타공을 썼는데, 현장에서 햇살이 딱 한강에 비치면 울렁이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 한강에 뭔가를 할 때, 한강공원을 이용하는 많은 시민이 보기에도 좋아야 한다. 주변의 다른 건물을 보면 예전 서울시 디자인과에서 화장실을 매뉴얼화해서 노란색으로 만든 게 있다. 그 이후에 건축가들이 만든 전망대도 있어서 조금 일반적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필요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하지만 4면의 표정이 다르다. 어떻게 접근했는지 궁금하다.
김빈 우리 작업을 보면 기본적으로 재료를 많이 쓰지 않는다. 쓰더라도 하나의 재료로 강조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면서 변화를 주는 건데 광나루의 경우는 긴 면과 짧은 면의 프로그램이 극단적으로 달랐다. 메인 프로그램은 짧은 면에 다 몰려 있고 긴 쪽으로는 서비스-헬스장이나 이런 동선이 붙어 있다. 그러면 접근할 때 한쪽 재료를 다르게 표현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키네틱으로 접근했다가 그곳이 창이 많아야 하는 곳과 적어도 되는 곳이 있어서 피하고, 그럼 뭐가 좋을까를 고민했다. 결국, 철골 구조라 물에 떠야 해서 무거운 재료를 배제하고 나니 금속으로 점점 좁혀졌다. 금속 표면이 울렁거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마다 재료를 통일하려고 애쓰고 그걸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며 접근하는 것 같다. 망우 119안전센터에서는 콘크리트를 쓰고 있는데 어떻게 접근했는지 궁금하다.
김빈 덩어리를 스터디하면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어긋나게 하면서 복합적으로 아이디어가 생긴 것 같다. 3.9라는 세팅을 해놓고 3분의 1씩 끊어내면서 외부에서 조경이 되는 면이 생기고 어느 곳은 안에서 쓰기 좋은 공간이 생기도록 조합했다. 그래서 큰 틀에서는 보면 한 층에 재료 세 개가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사이 공간에 대한 비례감이나 공간감이 인상적이다. 망우 119안전센터나 SH 은평서대문종로센터에서도 안정감이 느껴지는 사이 공간을 만날 수 있다. 특별히 공을 들이는 부분이 있는가?
김빈 일반론으로 말하자면 공간을 시뮬레이션하고 세팅할 때 적당한 치수를 가지고 접근한다. 예를 들어 망우 119안전센터의 조그만 테라스 같은 경우, 숙소 사이에서 한 사람이 바람 쐬러 나왔을 때 적절한 공간이다. 어느 정도 크기라면 이곳을 쓸 수 있냐는 접근을 하고, 이것을 입체적으로 보았을 때 어떤지 살펴본다. 결국, 치수나 스케일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치수의 기준은 무엇인가? 치수가 아니더라도 외부 공간이나 연결 공간을 만들 때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서 듣고 싶다.
김빈 당연히 감이 있다. 말씀드린 것처럼 예를 들어 외부 공간이 있다면 거기에 접한 복도나 실이 있다. 그 둘의 관계로 정해지기도 하고 아니면 전체 볼륨에서 테라스가 디자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 다른 볼륨을 조정하기도 하는데, 시작은 평면의 치수이고 이를 조정해나간다.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다.
유종수 처음 설계할 때 항상 콘셉트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주어진 조건 안에서 놀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주어진 조건에만 만족한다면 그냥 단순한 건물이 될 거다. 처음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건 결국 그런 부분들인 것 같다. 적정하게 부분마다 스케일, 비례감을 잘 찾아가면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김빈 SH 은평서대문종로센터같은 경우 튀어나온 볼륨과 들어간 부분이 요철을 이룬다. 튀어나온 부분은 책상 하나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폭에서 조금 넓다. 그곳이 주 사무 공간이었기 때문에 마주 보는 책상이거나 책상 하나 정도 용납할 수 있는 최소 폭이었고, 그런 기준으로 폭을 조정해나갔다.
건축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태도에서 ‘직업인으로서 건축가의 의미’를 생각한다고 하셨는데, 직업인으로서 건축가는 무엇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유종수 일단 직업으로서는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는 직원들을 같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사회는 계속 나아지고 있어서 우리도 더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하고, 한편 아무리 하려고 해도 뒷받침이 안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경제적인 부분도 있고 시스템 문제도 있고, 저희 때와 생각이 다르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씩 변화해 가면서 바꿔야 한다.
기본적으로 노동의 대가를 미루면 안 되고,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노동 시간과 근무 기준은 맞추고 싶은 게 우리의 큰 방향인데, 아직 우리도 그걸 지키지 못하고 있다. 실천을 함으로써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을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김빈 ‘직업으로서의 건축가’라는 표현은 이런 거다. 건축가라는 직업이 가진 속성이 있다. 본질은 당연히 도시와 사회에 좋은 건물을 만들고 도시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반면 그냥 직업으로서 속성이 있다. 건축가는 클라이언트가 있어야 존재한다. 의뢰인의 요구에 충실하다는 의미 보다는 직업이 가진 속성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다. 공공 건축이든, 민간 건축이든, 일이 들어오면 제한된 조건에서 우리가 가진 전문성과 타고난 감각, 재능을 발휘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직업적 본질이다. 그것을 최대한 집중해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이 당연히 중요한데 건축가의 속성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는 차원에서 한 이야기이다.
건축가로서 서울에 대응하는 태도도 궁금하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어떻게 읽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 건축가로서 서울의 속도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여쭤보고 싶다.
김빈 사실 서울을 바라본다고 할 때 건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빨리 변하는 것도 맞고 그 와중에 오래된 것을 남기려고 하는 반작용도 너무 강하다. 거기에 부동산이라는 경제 현상이 서울을 지배하고 있어서 건축적인 시각으로만 보기 어렵다. 어쩌면 지금 용광로 같은 상황 자체가 서울의 모습이 아닐까?
변화의 속도에 대응한다기보다 서울에서 계속 작업을 한다면, 결국 우리가 가져와야 할 콘텍스트는 서울의 역사라기보다 지금 주어진 상황 자체가 아닐까 싶다. 그때그때 주변에서 취할 수 있는 걸 취하면서 자유롭게 접근하면 좋겠다.
유종수 깊게 생각해본 것이 아니라서 조심스럽다. 단지 내가 사는 도시이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사실 건축하면서 속도감은 잘 인지하지 못한다. 단지 대전차기지처럼 프로젝트가 주어졌을 때 불과 50년 전에 황무지였던 곳에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는 자료를 보면 정말 빠르게 변하는 도시구나 싶다. 하지만 그런 것도 그냥 관념 중 하나인 것 같다.
그저 내게 주어진 건축에서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저는 건물 하나로 도시를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50년 만에 이렇게 바뀌었는데, 과연 50년 이후에는 우후죽순 들어선 아파트들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를 우리 모두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항상 조심스러운 게 건축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와 도시 계획대로 조성되는 도시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건축가가 만든 도시 중에서 좋은 도시가 없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완성도를 만들기 가장 어려운 공공 건축 분야에서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이미 증명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지금 진행하시고 있는 민간 프로젝트 소개도 부탁드린다.
김빈 제주도에 300㎡(90평) 주택을 하고 있다. 또 성수동에 복합문화시설을 설계하고 있다. 기존 공장을 남기면서 위로 새롭게 증축하는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남산에 네리앤후 상하이 중국 건축가와 로컬 아키텍트로 협업하고 있다.
코어건축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빈 건축적인 부분과 회사 시스템이 아닐까? 회사의 시스템은 상식적인 회사 운영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아틀리에라는 게 시간을 많이 들이니까 당연히 시스템이 필요하다.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게 의미 있는 건 알지만 일반적인 회사 운영의 관점에서 보면 비상식적인 부분이 많다. 상식적인 근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직원들이 아직 야근을 많이 해서 안타깝지만 덜 하게 하고 싶다.
유종수 최근 민간 지명공모전에서 우리가 선택된 것은 건축주의 요구를 잘 받아들여 줄 수 있겠다는 이유였다. 안을 고집할 수도 있지만, 충분히 바뀔 수도 있다. 그게 좋다, 나쁘다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우리는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색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결과물로 만들어 보여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부탁드린다.
유종수 시민들에게 쉽게 얘기한다고 해도 건축가의 이야기가 잘 와닿지도 않을 수 있다. 건축이라는 게 꼭 어려운 게 아니고, 오픈하우스서울에서 시민들에게 많은 건축을 알리면서 건축이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다가오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다. 저희 작업도 그렇게 봐주시면 좋겠다.
김빈 순간순간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 애쓰고 있다.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이 건축이니까 좋은 걸 만들려고 한다. OHS
인터뷰 임진영 사진 이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