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는 휴전선에 면해 있고 군사 지역이 많아 심리적 거리감도 있습니다. 양구에 백자박물관이 자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2004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이 양구지역의 유적 발굴조사를 하면서 그 계기로 발굴조사 보고회가 열렸어요. 그 자리에서 출토된 유물과 기증유물을 전시하고 생산하는 목적의 박물관 계획설계를 제안한 것이 기회가 되어서 군립방산자기박물관을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박물관이 들어선 곳은 직연폭포 인근 양구군 소유의 주차장 부지입니다. 사방으로 백토를 품은 산이 둘러싸여 있고, 북측에 2차선 도로 건너편 마을이, 남측으로 논이, 남서쪽으로 천(川)이 감싸고 도는 곳입니다. 최초 박물관 건축에 쓰인 다짐벽에는 이 냇가의 흙을 사용하기도 했어요.
양구백자박물관은 왜 증축하게 되었나요?
2005년 계획부터 증축을 고려해서 동측으로 증축 부지를 남겨 두었어요. 먼저 방문객의 체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체험동 건립이 결정되었어요. 입찰을 통해 춘천의 설계사무소가 낙찰되어 기존 박물관의 모티브를 차용한 체험동이 2009년 완공되었죠. 이후 박물관에서는 늘어나는 공간 수요와 미래 프로그램의 운영을 염두에 두고 주변 부지를 매입하고 군유지를 합병하는 등 부지를 확대했어요. 서울대학교 도예과와 MOU를 맺으면서 2013년 백자연구소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도자역사문화실이 건립되어 2020년 7월 마침내 박물관 단지가 완성된 거죠.
이번에 설계한 도자역사문화실은 2005년에 설계한 양구백자박물관의 증축과 관련 시설을 설계하면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프로젝트인데요. 어떤 과정으로 설계를 이어올 수 있었나요?
양구군의 관심과 지원, 박물관 구성원의 노력에 따른 결과입니다. 정두섭 관장님은 건물이 완공된 이후에 부임하셨어요. 설계자에게 누수 등의 하자 해결과 운영상 문제가 있는 공간의 변경을 상의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는데, 소소한 건축 문제를 지속적으로 상의하면서 지속적으로 증축 설계를 의뢰한 것입니다. 관장님은 박물관이 통일된 맥락으로 증축되기를 바라셨어요. 백자연구소와 도자역사문화실을 동일한 설계자에게 맡기는 것이 감사에서 지적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입찰이나 설계 공모가 아닌, 원 설계자와의 수의계약을 추진하셨습니다. 우리도 관장님의 설득과 부탁에 동의했고요.
처음 양구백자박물관 설계에서 고려했던 것과 증축한 도자역사문화실을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관계 설정이 궁금합니다.
도자역사문화실은 기능적으로 전시 공간을 연장하고 수장고를 증축하는 거에요. 따라서 기존 시설과의 연계가 중요했습니다. 배치도를 보면 점으로 존재하던 것들이 선으로 연결된 것을 알 수 있어요. 단면도를 보면 부지의 단자를 이용하여 입체적으로 연결한 것이 보이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존 시설과의 사이에 아치 회랑으로 둘러싸인 마당을 만들고 건물 안에도 중정을 두었어요. 늘어난 동선의 길이감과 함께 겹쳐진 공간의 깊이감을 두어 방문자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길게 감지할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
새로 증축된 부분의 재료 역시 기존 박물관과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양구백자박물관에서는 처음부터 백자의 원료가 되는 백토가 주인공이었어요. 방문하는 분들에게도 쉽게 그 맥락을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랐고 따라서 재료의 물성과 그 쓰임을 통한 건축의 구법이 생각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다짐흙벽과 전벽돌, 시멘트벽돌(안료를 지정해 주문제작), 점토벽돌 치장쌓기는 본디 흙인 것을 건축화 한 것이고 많은 노동력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구법이라는 점에서 도자기의 생산과정과 닮아 있어요. 검은색 노출콘크리트의 안료 성분은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산화철입니다. 유약의 원료로 쓰이던 느릅나무와 물푸레나무를 식재로 선택한 것도 개념적 맥락을 유지하기 위한 거예요.
공공시설의 설계와 실현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여러 행정 절차를 거치면서 건축가의 설계 의도를 지키고 완성도를 높이는 일일텐데요. 양구백자박물관 증축에서 어떤 협력 과정으로 이를 이끌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양구백자박물관을 작업하는 16년 동안 세 분의 군수에게 보고를 했고 행정과 계획을 협의한 문화체육과, 관광문화과 담당자와 백자박물관의 직원도 여럿이었어요. 하지만 방산자기박물관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행히 정두섭 관장님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불만과 불평으로 만났지만 오랜 시간 함께 같은 장소를 고민하면서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죠. 관장님은 실비조차 되지 않는 설계비에도 애정을 쏟는 건축가가 대견했는지 일관되게 건축가의 설계 의도를 지지해 주셨어요. 현장에 자주 방문하지 못하고 공공건축물의 제도적 특수성으로 감리의 권리가 없는 설계자를 대신해 건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공간이 그 쓰임새에 충실하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하나의 건축물이 변주를 통해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공정이라는 단어를 방패로 빙어적인 태도를 가지는 공공 영역에서 이러한 시도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또 이런 시도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두섭 관장님이 코로나로 공공건축상 현장심사에는 함께 하지 못하고 영상으로 참여했어요. 심사위원들이 공공건축 발주의 기준이 되는 설계공모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 수상의 결격 사유가 될 수도 있다고 물었죠. 관장님은 “제가 그 일로 계약부서와 다투고, 감사에서 수 차례의 경고와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떳떳하고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작업의 결과가 나쁘지 않았고 이후에도 성실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고 이진오 소장은 실력과 신의가 있는 건축가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증축도 같은 사람이 맡아서 완성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설계를 부탁하고 행정을 설득해서 진행한 것입니다.” 나 역시 그 마음의 진정성 때문에 일을 했어요. 시공의 품질은 형편없지만 품격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공공건축에서 발주, 시행, 운영의 영역과 건축가가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부분은 무엇인지, 제도적으로 보안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나라의 건축, 특히 공공건축의 법과 제도는 에너지효율등급이 나쁜 가전제품과 같아요. 절망스러운 것은 문제를 모두 알고 있지만 고칠 수 없다는 거죠. 혁명이 필요한 이유예요. 국민들은 건축 과정에서 공정, 안전,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제도와 규칙의 상호모순, 이율배반적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책임을 분산시키는 절차와 조달등록 제품의 이윤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가장 문제예요. 기획, 예산 편성부터 설계자를 선정하는 설계공모 과정에서는 부단한 노력을 들여요. 반면 시공자를 선정하는 것은 로또복권 당첨과 같은 가격입찰이 대부분이죠. 어이없게도 더 나쁜 턴키로 돌아가자는 말이 나올까 두려워요. 민간시장에서 좋은 건축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을 살펴보면 답이 나올 거라고 봐요.
인터뷰 진행 임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