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루는 기존 건물의 공간을 활용하는 기획입니다. 공간 전략은 어떻게 세우셨는지요?
김태영 기존 건물이 가지고 있는 공간적 잠재성, 가치를 재정의하여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현재 사용자의 공간 점유 방식도 세심히 관찰하여, 유지하거나 더 활성화했으면 하는 가치 매김을 하기도 합니다. 기존 건물의 공간적 특성을 최대한 향유할 수 있는 공간 점유 방식, 현재의 사용 방식을 강화하거나 기억할 수 있는 건축 요소의 개입이 가능하도록 큰 원칙과 접근방식을 수립합니다. 책마루에 공통으로 사용된 공간 용어들은 그 원칙과 전략의 결과입니다.
성수책마루 뿐만 아니라 책마루 시리즈를 여럿 참여했습니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셨는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현준 성동책마루는 '책마루'라는 공공 서가형 로비의 정체성을 실현하는 첫 프로젝트였습니다. 구청 로비라는 특성, 1,000명이 넘는 공무원의 업무공간이라는 점, 불특정 다수의 민원인이 방문한다는 점, 무지개도서관이 이미 자리해서 복합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는 점이 도전이자 가능성이었습니다.
성수책마루는 공연예술장이 주 기능인 아트홀의 로비였습니다. 사용 시간대가 명확하고 공간 사용 밀도가 확연히 높아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서로 충돌할 수 있는 다수의 프로그램 혹은 서로 간섭할 수 있는 사용자가 한 공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전제라서, 이를 공간 영역의 설정이나 동선 체계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특히 중점을 두었습니다.
성수책마루가 들어설 성수문화복지회관의 조건은 무엇이었는지, 해결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장수정 책을 매개로 한 공공의 거실 같은 공간이고 편안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추구한다는 점은 전체 책마루 프로젝트의 공통된 특성인 것 같아요. 공업지역의 특성상 공공건물임에도 조경 공간이 거의 없다는 점, 기존 건물의 지오메트리(geometry)가 복잡하다는 점은 성동구청과 다른 점이었어요. 성동책마루는 계단이나, 서가의 일부에 곡선의 요소를 두어서 그리드를 깨는 시도를 했다면, 여기에서는 가급적 기존 건물의 요소와 평행한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처음부터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태도를 가진 방식을 고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끼리는 책마루가 시리즈가 된다면 주변 지역에 좀 더 기여하는 북 큐레이션을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명확한 기획을 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이 근처는 젊은 창업자들이 많은 동네니까, 외부 공간이 페차쿠차같은 느낌으로 활용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조경과 휴식, 발표를 겸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했습니다.
성수책마루의 주어진 프로그램을 담기 위해 고민했던 부분도 궁금합니다. 특히 첫 번째 책마루에 대한 호응도 높고 그에 대한 피드백도 고려했을 듯합니다.
김태영 책마루에 공통으로 사용했으면 하는 공간 전략을 성수책마루의 조건에 맞도록 적용하고자 하였습니다. 이곳은 레벨 차이가 나는 여러 공간이 로비에서 연결되어 공연장까지 이어져요. 그리고 소규모 공연이 로비에서 벌어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공연 전후로 관객들이 대기하거나 모이는 장소가 확보되어야 하는 점도 주목하였습니다. 기존 카페가 중심에 있지만, 잘 쓰이지 않는다는 점, 출입 동선과 화장실 입구가 노출된다는 문제에도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외부에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옥외 계단이 낡았다는 것과 길에서 잘 보이지 않는 한계도 개선하고 싶었어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공연이 가능한 '계단 마당'과 중층의 어린이 서가 '북웨이', 서가로 둘러싸여 안정된 느낌을 주는 '클라우드 서가', 그리고 사서 코너와 티켓 오피스를 이어주는 '아카이브' 서가 등을 제안했습니다. 성동책마루에서 사용한 공간 전략을 적용한 것이죠. 가운데 카페를 활성화하기 위해 동선 체계를 재조직하고자 하였습니다. 3개층 높이의 아트리움을 채우고 있는 '아카이브' 대신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과 화단을 제안해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거리의 코너에서 성수책마루가 인지되도록 하였습니다.
기존 건물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담기 위해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김현준 ‘책마루’는, 새로운 프로그램이기보다 기존의 프로그램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융합되는가에 중점을 두고 기획되었습니다. 성동책마루, 성수책마루 건물 상층부에는 공공도서관이 있었어요. 이는 책마루가 공공도서관이라는 기존 프로그램 범주에 속하지 않음을 반증합니다. 성수책마루 위층에는 공연장 외에도 6개의 다른 공공기관이 입주해 있지만, 이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은 부재했다고 합니다. 다른 기관의 직원들, 각각의 민원인들, 그리고 방문객들의 관계와 공유, 흐름과 머무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 재료의 선택에서 고심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장수정 책마루가 비슷한 언어를 갖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클라우드 서가, 스탠드형 계단, 포켓 공간 등등의 공간 요소는 공통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출발했습니다. 이곳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생동감 있지만,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기도 해서, 편안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주는 형상과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성수, 성동 둘 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건물에서 진행되는 작업이라, 현장 작업 시간을 줄이고 가급적 공장에서 작업하는 부분을 늘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시민들이 공공건축의 공간을 더 쉽게 활용하기 위해서 고민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장수정 최근 건축 단위의 변화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지하철 역사나, 동네 길 같은 건축과 도시 사이에 있는 부분도 좀 더 잘 가꿔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구도심의 길을 걷다 보면 가로에 지하철 환기구, 전기설비, 불규칙한 맨홀 등 때문에 산만한데요. 서울은 건물 단위로 제공되는 공간의 퀄리티는 좋은데, 도시 전체로의 경험은 조금 아쉬울 때가 있어요. 그리고 이런 마을 만들기 같은 사업에서 자꾸 벽화를 그리는 방향성은 아쉽습니다. 덧붙이는 것보다 잘 정리하고 버리는 작업이 선행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기존 건물을 활용한다는 책마루의 전략이 흥미롭습니다. 도시의 점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앞으로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혹은 건축가로서 더 제안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장수정 사용자의 의견을 모으고 기획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책마루로 보자면 지역 주민들이 읽고 싶은 책이나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되는 거죠. 물론 주변 거주자나 지역의 특징을 공개된 데이터 안에서 유추할 수 있지만, 리노베이션의 특성상 신축보다는 공사 기간도 짧고 사용자와의 거리가 더 가까워서 그런 특성을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현준 오픈하자마자 별도의 상업적 마케팅 없이 지역 어머니들 SNS에 화제가 되었어요. 몰려드는 사람으로 주말 포함 저녁 9시까지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기획 단계에서 또는 도시 및 건축과 통합되어 이러한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기가 참 어렵습니다. 건축법적 용도, 기능적으로 기획되다 보니, 공공기관의 로비 공간은 전국적으로 유사해요. 관리와 보안의 문제도 있고, 공간에 맞는 가구를 제대로 선정하기 어려운 절차적 문제도 있으며, 공간적 또는 운영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형적인 재료로 시공해 버리는 결과가 단조로움에 한몫을 하기도 합니다. 도시 건축적으로 중요한 공공건물은 기존의 기획, 공모전 방식과 다르게 거시적 그리고 미시적 관점을 함께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김태영 점적인 네트워크의 특성은 동등하거나 유사한 퀄리티의 분산을 통해 접근성을 확보하고 공정한 분배를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네트워크로써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물리적으로 또는 인프라적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접근성이 좋은 몇 군데에 집중하여 더 좋은 퀄리티를 가지는 공공건축을 실현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미 실현된 지 오래되었지만, 낙후된 동네에 이미 활성화된 시장과 도서관, 취업 지원 등 공공복지 네트워크를 결합하고자 한 런던의 아이디어스토어 프로젝트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해요. 리모델링이 아니라 신축으로 접근한 방식도 흥미로운 프로젝트입니다. 공공건축의 기획 및 발주 방식이 더 유연해진다면 우리 도시와 건축, 공공서비스에 맞는 점적 네트워크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터뷰 진행 임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