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선잠박물관 일대는 박물관과 여러 시설이 조성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지역의 특징과 선잠박물관이 들어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선잠단은 조선 시대 역대 왕비가 누에로부터 좋은 실을 얻게 해달라는 기원을 드리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습니다. 선잠단은 1908년에 사직단으로 옮겨진 이후 터로 남게 되었는데, 복권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인근에 선잠박물관이 조성되었습니다. 작지만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한 선잠박물관은 옛것을 살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선잠단의 역사적 가치를 깨우고 함께 호흡하는 성북동 역사문화관광 거점이자 시민문화 공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초등학교에 기대어 있는 대지 주변 상황이 흥미롭습니다. 주변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내고자 하셨는지요?
성북동은 역사와 문화적 토대가 비옥하지만, 거리 풍경은 이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차 높은 초등학교 축대벽을 등지고 성북로만 바라보고 있는 위치가, 성북동의 역사적 풍경을 드러낼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잠박물관의 입면은, 직조의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비단처럼, 부분이 조립되어 전체가 만들어지는 구축 방식을 택하였습니다. 작은 박물관으로 시작했지만, 선잠단 방향으로 접하는 다른 공공건물까지 미래에 확장되는 것을 상상했어요. 역사적 거리가 현재에도 재해석되어 이어짐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리모델링 프로젝트라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기존 건물의 특징은 무엇이었는지, 새로 박물관을 조성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셨는지요?
기존 건물은 오래된 근린상가 건물이라서 층고가 낮고, 뒷면이 축대벽과 붙어있어서 평면이 얇아요. 그래서 박물관의 공간감을 실현하기는커녕 필요한 설비공간을 확보할 때 천장이 오히려 더 낮아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물관에 전시장, 수장고, 사무소 등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면적이 있어서, 바닥을 오픈하는 등의 공간적 사치는 지양하고, 가용면적을 최대한 활용하였습니다.
외장재가 건물의 흥미로운 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알루미늄 파사드를 만들게 된 이유와 제작 과정 중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선잠박물관 바로 앞으로 한양도성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긴 장벽이지만 산을 따라 곡면으로 올라가는 부드러움이 돌의 물성과 대조되며 아름답습니다. 성벽이 솔리드한 벽면이라면, 이와 상대적으로 가벼운 켜(layer)로서 투과하는 벽(silk wall)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알루미늄 질감으로 만들어진 파사드를 성북로를 따라 길고 곧게 뻗어 나가게 해서, 두 개의 벽이 마주 보며 상호 대화하는 구도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착공 후 공사비가 낙찰가 차이로 더욱 줄었습니다. 입면에서 의도했던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10cm가 필요했지만, 8cm로 줄여 재료비를 절감해야 했습니다. 조립과 확장을 할 수 있는 축조 방식이므로, 나중에 깊이의 차이는 새로운 변화의 이미지를 만들 가능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린생활시설이었던 건물이고 또 면적이 작다 보니 평면을 풀어내기 어려웠을 듯합니다.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내부 가용면적을 최대화하고 이동 동선을 끌어내고, 외부와 관계를 갖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증축한 장애인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서 계단으로 내려오는 동선을 고려하여 계단이 전시의 확장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했어요. 가급적 기능적인 화장실과 사무실 공간은 숨겨서 이동 동선이 모두를 지나가며 주변을 전시장 일부처럼 경험하도록 의도하였습니다. 지붕에서는 한양도성 전망을, 길에서는 개방된 전시 공간을 열어두고자 했습니다.
성북구에 기반을 둔 사무소이면서 성북구의 공공건축에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공공시설의 설계와 실현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여러 행정 절차를 거치면서 건축가의 설계 의도를 끝까지 지키고 완성도를 높이는 일일 텐데요. 어떻게 이를 끌어내고 계시는지요?
공공건축의 실현 과정은 끊임없는 논의로 이루어집니다. 많은 관계자에게 설계 의도를 전달해 합의를 끌어내고, 3차원으로 종합되는 건물을 2차원의 분해되는 도면으로 그려내고, 낙찰가로 정해지는 시공사가 정해진 비용으로 실현할 수 있되 전체적인 완성도를 포기하지 않도록 디테일을 선택하고, 시공 현장에서 벌어지는 변수에 대응하며 설계 의도를 구현하고자 합니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공공건축의 발주, 시행, 운영의 영역에서 건축가가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고려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제도적으로 보완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공공건축은 건축설계 분야에 과도한 업무 범위와 법적 책임까지 지우고 있습니다. 건축 행위를 하기 위해 관련된 도시, 안전, 환경 등 여러 복합적인 업무를 총괄하는 업무도 건축에 부여하고 그 책임도 물고 있습니다. 발주처가 제시하는 지방계약법과 특약조항으로 만들어진 계약서를 볼 때 과중함과 불공정에 대한 무거운 짐을 느끼게 됩니다. 공공의 재산과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일이기에 책임이 따르는 것이겠지만,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조적이고 감동을 주는 건축이 아닌, 늘 해오던 방식으로 복사하듯 건물을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특별하게 떠오르는 공공건축이 없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공정하며 대등한 관계, 명확한 업무로 일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좋은 결과물은 당연히 따라올 것 같습니다.
인터뷰 진행 임진영